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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는 외계에서 오지 않았다

백조히프 2025. 5. 29. 12:24

한겨레

 

극우는 외계에서 오지 않았다

 

[우리 안의 극우] 1. 연재를 시작하며

  • 수정 2025-05-29 09:05
  • 등록 2025-05-29 09:00

 

2003년 3월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 반김 3.1절 국민대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 우리 안의 극우는?

 

필자 박권일은 기자와 공직을 거치고 미디어사회학자가 되었다. 능력주의, 극우주의, 미디어-감정을 주로 연구하며, 지은 책으로 ‘우리가 기다린 건 바로 우리다’ ‘한국의 능력주의’ ‘축제와 탈진’ 등이 있다.

 

앞으로 이 연재는 우리가 목도하는 극우가 어디서 유래했고, 어떻게 활성화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오늘의 극우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들이 마치 고름 터지듯 분출되는 현상이다. 오랜 반공주의, 노동과 인권에 대한 반감,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힘의 논리, 부패한 엘리트 카르텔, 국가가 주도하는 여론조작 등은 극우가 대중을 끌어모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면서 동시에, 한국이 반 세기 넘게 해결하지 못한 치부이자 환부였다.

 

즉, 극우는 외계에서 온 게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것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이다. 극우를 직시한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내재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일이다. 극우를 '정상적 우리'와 명확히 구별하고 타자화하는 태도로는, 문제에 대응하기는커녕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안의 극우'가 연재 제목이 된 것은 필연적이다. 이 연재는 지난 십여 년 연구하고 발표해온 주제의 중간 결산이라는 의미도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아스팔트 극우의 시작은 최소 2003년

 

오늘의 세계는 적대와 혐오로 넘실댄다. 민주주의 체제가 이토록 위태로워 보인 적은 없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군중의 의회 습격, 트럼프의 재선과 함께 시작된 극심한 혼란, 명실상부 제도권 정치에 안착한 유럽의 극우 세력들, 내란을 일으키고 파면된 대통령 윤석열과 법원을 때려 부순 폭도들. 이 모든 풍경이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트럼프와 르펜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듯, 한국의 극우도 별안간 외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극우세력이 거리로 몰려나와 “아스팔트 극우”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긴 것이 2003년 3월1일이다(‘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 그러니까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 극우세력이 집결하여 ‘실력행사’를 시작한 게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극우는 ‘외래종’이 아니라 ‘자생종’이며,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