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진보 매체 기사 소개

시력 잃고 치매 온 반려견... 내게 올 미래 같습니다

백조히프 2025. 6. 20. 16:39

오마이뉴스

 

시력 잃고 치매 온 반려견... 내게 올 미래 같습니다

 

늙고 병든 두 반려견과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25.06.20 10:20 | 최종 업데이트 25.06.20 10:20 | 이종범(jleefamiry)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92세 아버님과 아내, 그리고 세 마리의 소중한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06년 초부터 가족이 된 열아홉 살 뽀돌이와 2010년 12월부터 함께한 열네 살 미소, 그리고 1년 전 어느 날 어미에게 버려진 채 저희 집으로 들어온 길냥이 땅콩이까지, 총 여섯 식구가 북적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와 사는 두 반려 노견을 지켜보며 느낀 것, 인간의 노년과 다름없는 생명의 순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 열아홉 뽀돌이의 시간

뽀돌이가 오던 날(좌) 세월이 바꿔놓은 뽀돌이의 현재(우)어릴때와 나이든 지금, 가족의 케어가 필요한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 이종범

열아홉 살 치매를 앓는 뽀돌이는 사람으로 치면 거의 90대 노인인데, 영락없는 아기 같습니다. 방이나 거실 구석에 들어가면 길을 찾지 못하는 상태로 "음~... 음~마"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이 소리가 뽀돌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엄마, 나 좀 꺼내주세요" 하고 애원하는 듯 애처롭게 들립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슨 일을 하든 뽀돌이와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녀석의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을 기울이게 됩니다.

작년 11월, 뽀돌이는 닷새 동안 물만 마시고 잠만 자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병원 치료를 주장했지만, 장모님과 아내는 뽀돌이의 마지막을 예감했는지 집에서 편히 보내주자고 했습니다. 넷째 여동생 부부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 떠난 반려견 케리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엿새째 되던 날, 딸의 간곡한 요청으로 뽀돌이는 병원 진단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신장 기능 이상과 위험 수준으로 증가한 염증 수치. 의사는 신장 회복은 불가하고 악화를 늦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소견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조단백질 10% 미만의 사료와 탄수화물 위주 식단으로 바꾸고, 각종 항생제와 피하 수액을 투여하며 2주 간격으로 병원 진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100㎖씩 피하 수액을 직접 놓아주고 있습니다. 만성 신장 질환을 앓는 강아지에게 피하 수액은 탈수를 막고 노폐물 배출을 촉진하며 신장 부담을 줄이는 중요한 조치라고 합니다.

계속 병원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어설프지만 직접 주사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뽀돌이의 피부를 잡고 주삿바늘을 꽂을 때면 제 손끝이 미세하게 떨립니다. 그 작은 몸에 약물을 주입하는 순간이 녀석의 신장 기능을 보존하는 유일한 끈처럼 느껴집니다.

밤이 되면 뽀돌이는 아기처럼 안아줘야만 잠이 듭니다. 품에 안고 있으면 이 작은 몸이 온전히 저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뽀돌이 숨결이 제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지금도 우리 가족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밤마다 두세 시간 전후로 깨서 축축한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상이 6개월째 반복되고 있지만, 뽀돌이가 뽀송한 기저귀로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뽀돌이를 위해 목줄은 매지 않습니다. 거동도 불편한데 구속받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늦은 저녁, 인근 공원 잔디 운동장에서 산책 겸 걷기 운동을 시킵니다.

집에서는 대부분 잠을 자지만 운동장에 가는 건 좋아합니다. 그곳에서는 집에서처럼 약 5m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원을 그리듯 뒤뚱거리면서 돌아다닙니다. 물론 후진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직진만 합니다. 뒷다리 힘이 약해서 가끔씩 주저앉는데, 이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소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열네 살 미소

미소의 어제(좌)와 다른 오늘의 눈(우)미소의 어릴적 눈망울엔 왠지모를 슬픔이, 나이든 눈망울엔 하얀 막이 생긴 변화가 슬프다 ⓒ 이종범

미소는 종합병동이라 불릴 만큼 여러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약 5년 전 심장 기능 이상 진단을 받아서인지 근거리 산책 중에도 자주 헥헥 거립니다.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식단 관리는 기본이고, 운동하거나 크게 짖는 것도 우려된다는 의사 소견이 있는 만큼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방광에서 담석이 발견되었는데, 아직도 체내에서 빠져나오지 않아 방광 내에 상처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1년 전에는 망막 이상으로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수술이 필요했지만, 심장병을 앓고 있어 마취도 어렵고 설령 수술이 되어도 6개월 이상 보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고민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약물로 대신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결국은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고요한 밤, 잠자리에 들면 미소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불규칙 박동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모르지만, 작고 여린 미소에게 좋은 느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립니다. 미소와 한 배에서 태어난 두 강아지들도 근처에 살았는데, 녀석들도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더 마음이 쓰입니다.

소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며 움직이는 미소는 부딪히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제가 부딪히는 듯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하얀 막이 생긴 미소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절망감이 전이되는 듯 느껴집니다. 꽃이 피고, 눈이 오고,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 별과 달, 구름의 변화를 미소에게 속삭이듯 말해주는 것이 지금은 제가 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미소는 겁이 많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움찔하며 반응합니다. 특히 천둥 번개 소리엔 자지러집니다. 공포에 휩싸인 듯 안절부절못하며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 두려워하는 미소를 볼 때마다 천둥 번개 치는 하늘을 원망하곤 합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사랑으로 채울 마지막 시간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다가올 두 아이와의 이별을 덤덤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애써 마음을 다잡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은 아무리 준비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앞을 보지 못해 자주 부딪히는 미소, 애타게 불러도 반응 없는 뽀돌이의 뒷모습. 두 녀석들이 늙어가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은 생명의 말년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언젠가 저 또한 겪어야 할 노년 시기일 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녀석들에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녀석들의 굳은살 박인 발바닥을 만지고, 거칠어진 털을 쓰다듬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남아있는 시간만이라도 온전한 사랑과 정성으로 채우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별의 순간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잔인하게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녀석들과 함께하며 나누는 깊은 위로와, 이들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제게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각인될 것입니다.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뽀돌이와 미소가 하늘의 별이 되어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두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