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
그의 색채사용법은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주로 과거와 당대의 사건이나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고,
1832년에 모로코를 방문한 뒤로는 좀더 이국적인 주제도 다루게 되었다..
녹색 조끼를 입은 자화상, 들라크르와, 1837년, 캔버스에 유채, 65 x 54.4cm..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일 뿐 아니라
『저널(Journal)』이란 일기로 더욱 유명합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작품과 정신세계를 돌아보는 일기를 쓸 만큼,
자의식이 강했던 화가였죠.
그는 6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현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하녀였던
제니 르 귀유에게 주었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평소 자신의 외모에 비관하였던 들라크루아는
그러한 외모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는지
옷차림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에서 들라크루아는 전통적인 3/4 정면 자세로,
약간 몸을 튼 포즈를 취했습니다.
녹색 조끼를 받쳐입은 멋스러운 감각,
오똑한 콧날과 분명한 골격, 다소 턱을 치켜든 의식적인
포즈에서 화가의 강한 자의식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팡탱라투르가 그린 '들라크르와에 대한 경의'(액자그림의 들라크르와)
Girl Seated in Cemetery
1824.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묘지의 고아>는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살롱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묘지에 있는 가난한 소녀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젊은 처녀가 묘지를 배경으로 입은 벌려진 채
초점이 없는 커다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슬픔과 허무,
비탄의 분위기는 들라크루아 작품들 특유의 화려하고 힘찬 색채와
붓 터치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치밀하면서도 어둡게 채색된 그림입니다.
23세에 '고아'를 주제로 그린 두 작품 중의 하나로,
그 자신이 7살 때 아버지를,
16살 때는 어머니를 여윈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Female Nude Reclining on a Divan.
c1825-1826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Apasia, 1824, oil on canvas, Musée Fabre, Montpellier.
Justice,1833-37, oil on mounted canvas,
Salon du Roi, Palais Bourbon, Paris.
낭만주의란 하나의 사조나 양식이라기보다 정신적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의 핵심은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며
예술가는 자신의 미의식에 따라 주제와 표현방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겠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사실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세계의 중심을 바꾸는 발상이었습니다.
20세기 미술이 보여주는 어지러울 정도의 '주관'의 강조도
거슬러 올라가면 낭만주의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Louis d'Orleans Showing his Mistress,1825-26, oil on canvas,
Fundación Colección Thyssen-Bornemisza, Madrid
19세기, 서구에는 두 개의 사조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실증주의와 낭만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과학적 실증성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실증주의 철학은 19세기 학자들 일반의 성향이었고,
낭만주의 철학은 합리성에 대비되는 열정과 낭만을 추구했습니다.
물론 빼어난 사유들은 이 두 측면이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낭만주의 사유에서 문학과 역사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수학을 모범으로 했던 고전적인 학문은 공간적 사유,
정적인 사유, 법칙적인 사유를 구가했으며,
이런 흐름은 19세기에 들어와 모든 담론이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시간적 사유, 동적인 사유,
우발성이 깃들인 사유로 전환됩니다.
때를 같이해서 문학에서는 그때까지 사유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광기, 꿈, 죽음, 폭력 등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Greece on the Ruins of Missolonghi. 1826
Oil on canvas.
Musee des Beaux-Arts Bordeaux, France
Woman with a Parrot
1827. Oil on canvas.
Musee des Beaux-Arts Lyons, France
Portrait de Delacroix en Hamlet, ou en Ravenswood,1821,
캔버스에 유채, 91 x 33 cm ,루브르 박물관 , 파리
당대의 문학 작품들, 소설과 시나리오를 즐겨 읽었던 들라크루아는
종종 문학적인 영감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끌어오곤 했습니다.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의 모델이 햄릿, 혹은 월터 스콧이란 작가의 소설
라마무어의 시집에 등장하는 레벤스우드로 분장한
들라크루아 자신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제목 역시, <레벤스우드, 또는 햄릿으로 분장한 자화상>이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레벤스우드(Ravenswood)는 스콧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불행하고 비극적인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들라크루아는 평생 빈곤과 고독으로 괴로워했던 자신을
그의 모습 속에서 투영시킨 모양입니다..
The Death of Sardanapalus.
1827-1828.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Liberty Leading the People (28 July 1830)
1830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Women of Algiers in Their Apartment.
1834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Cleopatra and the Peasant
1838. Oil on canvas.
Ackland Art Museum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Chapel Hill, NC, USA
Medea about to Kill Her Children. 1838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1840.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작가소개-
파리 교외의 샤랑통에서 외교관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제재는 광범위하여 종교·신화·문학·역사로부터 풍속·인물·풍경·정물 등의
전 영역에 걸쳤으며, 벽화장식을 포함한 유채화 853점 외에 데생화 6629점,
수채화·파스텔화 1505점, 판화류 133점, 화첩 60점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하였고,
예술상의 깊은 성찰을 기술한 일기·평론·서간도 많이 남겼다.
고전파 화가인 P.N. 게랭에게 배웠으며
선배인 T. 제리코를 알게 되었고,
당시 고전파의 대명사격인 A.J. 그로의 전쟁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냉담한 고전파 데생의 속박을 파괴하고,
강렬한 인체데생과 거기에 반항하는 자연 등을
동적인 구도로 종합하여 극적인 표현을 달성하였다.
색채를 중시하고 붓놀림을 가능한 눈에 띄게 하여 강렬한 효과를 지향했으며,
때로는 보색관계에 주의해 색조 분열을 시도, 후에 나타나는 인상파로의 길을 열었다.
통제를 기피하여 개성의 해방과 고양을 추구하고, 회화의 예술적 본성을 잘 이해하여
개화에 주력한 그의 깊은 영향은 세잔·고흐 등 후대의 뛰어난 화가들에게서 나타났다.
그의 회화는 <구상력의 예술>이며 <자연은 사전이다>라고 할 만큼 자연을 구사하고,
현실을 초월해 현실보다도 진실한 상상세계 속에서 늘 추구하던 인간의 위대한 모습,
영광·패잔 속에 있는 영웅적 노력의 자세를 그렸다.
또 자신이 좋아한 과거나 동시대의 역사 속에서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건을 선택하여 제재로 삼고 구성했다.
이러한 풍경·구도·효과 등은 영국의 회화에서 적지 않게 영향 받은 것인데,
그의 문학적 교양과 함께 음악애호의 깊이를 반영하는 특색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쇼팽의 비장한 초상과 그의 자화상 등 혼까지 몰입된 작품을 남겼으며,
정물화·나부, 풍속화 등도 다수 그렸는데,
사막의 아라비아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 등에서
풍속화를 예술적으로 시각화하였다.
1832년의 모로코 여행은 그의 상상력에 이국적 습속의 자극을 주어
다수의 이국적인 제재와 강렬한 색채효과를 발휘하여,
이후 서양화에 큰 의미를 주는 새로운 방면을 개척하였다.
낭만주의는 중세 취미를 부흥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제재를 취급하였는데,
그의 예술 중 가장 뛰어난 것도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말년에 그는 동판화, 특히 석판화 제작에 몰두하여
흑백대조가 강조되고 한층 환상적 표현기교를 보인
《파우스트석판화집(1827)》 《햄릿석판화집(1843)》
등의 걸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