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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레 남편 입에서 "은퇴하길 잘했어" 말 나오게 만든 여행
6070 둘이 준비해 떠난 9박10일 서유럽행... 15시간 비행,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
25.05.26 17:58 | 최종 업데이트 25.05.26 17:58 | 유영숙(yy1010)
100세 시대다. 일벌레인 남편이지만 70세까지 일했으니 충분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여행 가는 것도 취미 생활도 거의 하지 못했다. 완전하게 은퇴한 지금부터 자신을 위해 은퇴 생활을 즐겨본다고 한다. 남편의 도전이 다른 은퇴자들에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여행 가고 싶으세요?"
"나는 스위스는 꼭 가 보고 싶었는데 마침 여행 가고 싶은 세 나라를 묶어서 갈 수 있으니 좋은 것 같아서 보고 있었어."
"파리도 가고, 융프라우도 가고, 로마도 갈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네요."
서유럽 여행 상품을 보며 나도 건강할 때 남편과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일흔 살이 넘었다. 60대 중반인 나 역시, 장거리 여행도 마다 않던 때와는 달리 나이가 드니 비행시간이 길면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언제나 지금이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이기에, 용기를 내 보았다. 홈쇼핑으로 여행을 간 적이 없어, 여행을 자주 가던 선배님께 여쭈어보았다.
"우리도 홈쇼핑 예약해서 남편과 호주에 다녀왔는데 괜찮았어. C 여행사 상품으로 갔었는데 함께 간 분들 만족도도 좋았고. 그리고 홈쇼핑 상품은 이미 공지한 거라 일정 등 변경이 없으니, 믿어도 될 거야."
우리가 본 여행 상품도 C여행사라서 상담 전화번호를 남겼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자식들 도움을 받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진행했다. 여행사와 계약하고 비행기 좌석도 사전에 지정, 온라인 체크도 우리 스스로 하였다.
이렇게 우리 혼자 여행을 추진해본 건 처음이었다. 보통 아들네가 선예약해서 가거나, 모임 총무가 예약한 걸 따라다니기만 했다. 온라인으로 좌석 지정하고 체크인할 때 한 번에 안 되어 여러 번 실패를 반복했지만, 해보니 할 만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남편과 나는 기대로 행복했다. 여행에서 입을 옷, 모자, 신발 등을 준비했다. 유럽 패키지여행은 많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에서도 매일 6천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했다.
장점이 더 많았던 여행... 하루 평균 1만 2000보 이상 걸었다
이번 여행은 장거리 여행이었는데, 저가형 비행기를 타야 해서 자리가 좁아 다리가 불편할까 봐 걱정되었다. 비행기 좌석을 사전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앞쪽으로 좌석 지정을 해서인지 걱정했던 것만큼 불편하진 않았다.
15시간여의 비행 끝에 안전하게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었다. 기내식을 먹어서 따로 저녁 식사는 없었기에 햇반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여행 가면 시차 적응으로 힘들다. 한국은 벌써 새벽 2시인데 파리는 이제 저녁 일곱 시밖에 안 되었다. 졸렸지만 버티고 버티다가 잤는데 깨어보니 새벽 2시다.
여행을 간 5월 7일부터 16일까지, 9박 10일 동안 함께한 여행객은 총 25명이었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주로 우리처럼 은퇴한 부부가 많았고, 삼 남매 부부가 그동안 국내 여행을 함께 다니다가 처음 해외여행을 왔다는 팀도 있었다. 손녀와 아들과 함께 3대가 온 70대 후반 어르신 부부와 딸 둘과 함께 온 엄마, 자매, 직장 선후배 팀 등 다양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왼쪽은 센강 유람선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트로카데스 광장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유영숙
이번에 다녀온 서유럽 3개국 여행은 C 여행사에서 2025년에 새로 개발한 여행 상품이다. 좋았던 점은 패키지여행인데 자유 시간을 많이 주어서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었고, 직접 도시의 음식점을 방문하여 식사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할 때는 TGV 테제베(고속열차)를 타고 이동해본 것도 좋았다.
서유럽 3개국을 9일 동안 여행하기에, 일정이 빡빡했다. 캐리어를 들고 계속 호텔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건 어려웠고,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로마 바티칸 성전 가는 날은 도시락을 들고 새벽 5시에 출발해야 했다. 중요한 일정이 관광으로 묶여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도 인솔자가 따라다니며 안전하게 안내해 주고, 설명 해주니 편한 점도 많았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2박을 하였다.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인 5월 8일은 우리나라는 어버이날이지만, 프랑스는 80주년 전승 기념일로 공휴일이라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다. 전승 기념일 행사로 개선문 향하는 길을 통제하는 바람에 가지 못하고, 다음 날 샹젤리제 거리 건너편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 남편과 손잡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걸으며,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에펠탑의 야경을 보고,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와 세잔을 만나며 그렇게 은퇴 후의 여유를 느꼈다. 그날은 1만 8000보를 넘게 걸었다.
파리는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현지 가이드 말에 따르면, 파리 사람들은 미관을 해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전선을 땅속으로 묻었고, 발코니 등에 빨래를 널지 않으며 에어컨 실외기도 밖으로 내놓지 않는단다. 정말 설명대로 건물 밖에 빨래 널은 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평소 촬영을 꺼리고 싫어하던 남편조차, 눈이 커져서 사진 찍느라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내인 내 사진과 풍경 사진을 찍는 걸 넘어, 자기 사진도 내게 자주 찍어달라고 말하곤 했다.
"5월에 눈을 다 밟아 보네요"... "버킷리스트 이뤘다"는 남편

▲스위스 융프라우왼쪽은 그린덴발트에서 촬영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융프라우에서 아이거산을 배경으로 촬영한 인증샷 ⓒ 트로카데스 광장
다음에 방문한 나라는 스위스였다. 스위스는 호수와 산과 동화 같은 마을풍경이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다녀본 나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란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는 유채꽃이 피었는데 위쪽은 설산으로 자연의 신비함이 느껴졌다.
우리가 스위스 인터라켄에 온 이유가 융프라우(알프스의 4158m 봉우리)에 오르는 거였다.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고, 그린덴발트에서 익스프레스 곤돌라를 타고, 다시 알프스 산속으로 뚫린 융프라우 터널을 톱니바퀴 열차로 갈아타고 통과하여 융프라우에 올랐다.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인솔자가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준 수신기를 통해 설명을 들으며 얼음 궁전을 지나 드디어 융프라우에 올랐다. 융프라우에 발 딛는 순간, 남편 표정이 못 보던 표정이다. 아이거산을 배경으로 스위스 국가가 걸린 포토존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며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융프라우를 밟다니 정말 감동적이네, 그것도 날씨가 가장 좋은 5월에 여행을 오다니... 은퇴하길 참 잘했어."
"저도 늘 방송으로만 본 곳을 실제로 보니 더 감동이 되네요. 어쩜! 5월에 눈을 밟아 보네요"
"융프라우에 오니 자연이 위대해서 인간은 자꾸 작아지는 것 같아. 우리, 앞으로 겸손하게 살아요."
다음 날 스위스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며 아름다운 스위스 풍경을 다시 한번 즐기며 스위스 매력에 푹 빠졌다. 그냥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스위스 휴게소 화장실 입구화장실이 유료로 1프랑(1유로)을 넣으면 차단기가 열려 들어갈 수 있다. ⓒ 유영숙
스위스는 휴게소 화장실에 갈 때도 돈을 내야 했다. 1유로(1프랑)를 넣으면 화장실 입구 차단기가 열려서 통과할 수 있는데 영수증으로 환급된 0.5프랑으로 휴게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휴게소 화장실에 무료로 들어가는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해외에서 느꼈다. 식당에서도 물을 사야 마실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내가 그랬다.
이탈리아(3박)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도시 베니스(베네치아), 피렌체,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섬, 로마, 파티칸 등 도시를 방문했다. 첫날 방문한 베니스는 수상 택시와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여행하며 중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간 것 같았다.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베니스는 인공섬으로 수상 택시를 타고 들어가서 곤돌라를 갈아타고 운하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중세시대 건물이 운하 가장자리에 있어서 마치 중세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 유영숙
피렌체에서 두오모 성당을 보고, 폼페이에서 2천 년 전 화산 폭발 이전으로 여행하고, 소렌토 재래시장을 걸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하였다. 카프리섬에서 후니쿨라 기차를 타고, 카페에서 레몬 소다를 마시며 지중해에 손도 담가보았다.
마지막 날 새벽부터 바티칸에 들어가기 위해 새벽 6시부터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예배당,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폴리에 정박한 크루즈와 카프리섬우리가 간 날은 크루즈 두 대가 나폴리에 정박하였는데 많을 때는 일곱 대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나폴리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카프리섬으로 여행객이 들어오기 때문에 카프리섬이 여행객으로 붐볐다. ⓒ 유영숙
지난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이 선출되었기에 이번 바티칸 방문은 더 의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입장이 허가되지 않았던 시스티나 예배당에 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을 직접 관람하고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타 조각상을 볼 수 있었다.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전 세계 여행객들이 방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로마에서 바티칸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선택 관광인 벤츠 투어로 진행했다. 자동차를 타고 로마 골목길을 구경하며 유적지에 내려 콜로세움, 판테온 신전 등을 방문하며 8박 9일 여행의 막을 내렸다.

▲로마 콜로세움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광장로마는 시내 전체가 유적지라서 벤츠 투어로 시내 곳곳에 있는 유적지를 관람하였고, 바티칸은 새벽 6시부터 줄을 서서 입장하였다. 바티칸은 요즘 성지순례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여행객으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 유영숙
9박 10일 서유럽 여행. 남편은 종종 지친 것은 맞지만, 이제라도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로마의 어떤 호텔은 샤워 부스가 좁아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고 침대가 싱글인 등 열악한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편 호텔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유럽을 여행할 때 컵라면이라도 먹고 싶다면 접이식(이동식) 전기 포트를 별도로 챙겨가는 것이 좋겠다. 바디 제품도 그렇다. 우리나라 호텔처럼 다 구비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 난감해질 수 있다.
무릎이 아프다던 70대 남편도 잘 버틴 해외여행... 자신감이 생겼다
여행은 세 조건이 필수다. 여행비와 시간, 그리고 건강이다. 우리는 지난 11월에 퇴직한 남편의 퇴직금과 아들이 주는 용돈에 연금 중 일부를 매달 정기적금으로 모아 여행경비로 사용했다.
그간 교사로 일 하느라 여행은 가장 더운 여름 방학과 가장 추운 겨울 방학에 비싸게 주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제 남편도 나도 은퇴했기에 가장 날 좋은 5월에 여행을 갈 수 있었다. 유럽은 5월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데, 우리 중에 날씨 요정이 있었는지 내내 날씨가 좋아서 여행을 더 빛나게 해 주었다.
남편이 평소에 무릎이 조금 안 좋아서 많이 걷는 여행이 조금 힘들었다지만, 그래도 자주 웃는 모습이었다. 길다면 긴 10일 동안 잘 견뎌주어 감사하다.
남편과 둘이 해외 여행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코로나 직전에 중국 북경에 다녀왔었다. 역시 여행은 마음 맞는 남편과 가는 게 편하다. 남편도 내 덕에 버킷리스트를 이루었다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유럽행이 좋았는지, 남편도 건강을 잘 챙겨서 다음에 또 여행을 나오자고 재촉한다. 이번 여행으로 자식들 도움받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또한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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