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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빚에 죽고 싶었던 날 살린 200만원의 위로

백조히프 2025. 12. 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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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억대 빚에 죽고 싶었던 날 살린 200만원의 위로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은혜는 우리가 산산조각 난 순간에 온다

  • 수정 2025-12-09 09:35
  • 등록 2025-12-09 09:31
 
클립아트코리아
 
 

학창 시절 가장 친한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대학 동기였던 한 명은 강남 8학군에서 엘리트 부모 아래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녀의 세계는 교회와 학교가 전부였다. 공강 시간에는 성경을 들고 캠퍼스를 돌며 전도를 하는 친구였다. 또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 동기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부모 아래서 어렵게 자란 뒤 열렬한 운동권 대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주중에는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각종 시위 현장을 누볐다.

 

둘은 결이 많이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없이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고, 둘 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었다. 한 명은 ‘하나님의 세상’을 내걸고 출마했고, 다른 한 명은 ‘민중의 세상’을 내걸고 출마했다.(둘은 서로 다른 대학이었으며, 나를 통해서만 서로의 존재를 알았을 뿐 직접 알지는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에게 사기를

 

내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둘 중 한 친구가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급매로 나온 집을 사려는데 자금이 모자란다고 했다. 집을 산 뒤 바로 전세를 놓으면 전세보증금이 들어오기에 한두달 안에 갚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내 이름으로도 대출을 받고 남편에게도 대출을 부탁해 빌려줬다. 억대의 돈이었다.(당시는 경제 호황기였고 지금처럼 대출 규제가 없던 시절이라 신용대출이 잘 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세입자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친구는 많이 미안해하면서 우리 부부의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입금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분에게 돈 빌려주신 적 있죠? 사기 피해입니다. 빨리 경찰서로 오세요.”

 

뭔가 단단히 오해가 있는 거라고 믿으며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다리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나의 친구는 오래전부터 사기꾼과 내연의 관계에 빠져 있었고, 사기꾼이 시키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각종 거짓 명목으로 돈을 빌렸으며, 그렇게 빌린 200억원의 돈을 들고 둘은 미국으로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자책과 수치심에 허우적거릴 때

 

당시는 고금리 시대였고 이자만 해도 한 달에 수백만원이었다. 원금을 얼른 갚지 않으면 돈은 몇 년새 수억으로 불어날 상황이었다.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표현이 곧 내 현실이 될 처지였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 부모님께 솔직히 상황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당분간은 밥값도, 커피값도 낼 수 없고, 용돈도 드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결혼을 앞둔 남동생에게도 축의금을 전혀 낼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의 상황을 들은 지인들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친구와 돈 거래하는 거 아니야.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라니까.”

“어떻게 겁도 없이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줄 생각을 했어?”

“남편이랑 관계는 괜찮겠어? 그러다가 이혼까지 가는 거 아니야?”

 

모든 말이 다 옳았다. 다들 내 상황이 걱정되고 안타깝고 답답해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딱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창피했고, 수치스러웠다.(다른 범죄 피해자와 달리 성폭력 피해자와 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을 격렬히 느낀다.)

 

돌 반지 팔아 한걸음에 달려온 또다른 친구

 

그때 위의 친구 중 다른 한 명이 어린 아들을 둘러업고 먼 길을 달려왔다. 그 친구는 당시 친정의 가세가 기울면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친구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나에게 딱 세 가지만 물었다.

 

“밥은 먹을 수 있어?”

“밤에 잠은 잘 수 있어?”

“내가 뭘 도와주면 좋겠어?”

나는 울음을 삼키며 답했다.

 

“네가 특별히 도와줄 것은 없어. 다만 한동안은 만나기 힘들 것 같고 만나더라도 내가 돈을 낼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만 이해해줘.”

친구가 돌아간 뒤,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손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장롱에 있는 돌 반지까지 팔았는데도 지금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이것밖에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이 돈은 갚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급한 생활비로 쓰도록 해.”

 

나는 그 200만원을 갚기 위해 살았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경찰서를 다녀온 뒤 나는 정신줄을 완전히 놓은 상태였었다. 그런데 이 세 문장을 읽고 나자, 내 머릿속에는 이 말만 계속 떠올랐다.

 

‘갚아야겠다. 반드시 살아서 갚아야겠다.’

억대의 은행 빚은 난감하고 막막하고 억울했다. 도저히 갚을 수 없을 것 같고, 갚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준 200만원은 반드시 갚아야 할 돈이었고, 너무나 갚고 싶은 돈이었다. 친구가 보여준 위로에 응답하기 위해 나는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그때부터 빚을 갚기 위한 맹렬하고도 치열한 그랜드 플랜이 시작되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살 돈을 아끼려 천 기저귀를 썼고, 분유 한 통을 살 때도 손을 덜덜 떨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무더위에도 음료수 한 캔을 사 먹을까 말까를 수십번 갈등하며 버틴 덕에 드디어 은행 빚을 다 갚았고 친구에게도 2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오직 친구에게 200만원을 갚을 날을 목표로 산 덕분에 나는 배신에 지지도 않았고 경로를 이탈하지도 않았다.

 

내가 깨지기 전엔 은혜가 들어올 수 없다

 

가장 친했던 한 친구는 나를 생애 최악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지만, 또 다른 가장 친했던 친구는 가장 재빨리 나를 그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삶의 원리를, 나는 조금은 일찍 그리고 조금은 매섭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 인생의 가장 나쁜 날들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국의 영성 작가 앤 라모트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

“은혜는 우리가 산산조각 난 순간에 온다. 부서지기 전에는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이다.”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는?

 

필자는 언론사에서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한 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먹고산다. 현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누구라도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정확한 위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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