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동물들은 왜 아무하고나 짝짓기 하지 않을까
이정모의 함께 꽂아두면 폼나는 책
동물들의 번식행동에도 감정의 전류 흘러
‘이상한’ 성은 자연스러운 전략의 하나일 뿐
성역할은 본능 아닌 생태계 조건이 만든다
- 수정 2025-12-13 10:58
- 등록 2025-12-13 10:00

사람들이 성을 말할 때는 얼굴을 붉히지만 자연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숲과 초원과 바다에서는 매일이 ‘짝짓기 특집 다큐’다. 심지어 인간이 ‘기이하다’고 부르는 장면들도 자연 입장에선 “그게 왜?” 싶은 일들이다. 이번에 소개할 열권의 책은 자연이 연출한 이 끝내주는 성생활 코미디를 진화라는 감독, 생존이라는 대본, 본능이라는 배우들로 읽어내는 컬렉션이다. 함께 꽂아두면 생명의 38억년짜리 콘텐츠를 마음껏 스트리밍할 수 있다.
짐승도 사랑을 할까? 우리 같은 사랑은 아닐지언정 분명히 무언가는 있다. 페터 볼레벤의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이마)은 이 주제로 접근하기 위한 가장 부드러운 입구다. 그는 숲속 동물들의 질투, 애정, 배신, 헌신을 관찰자 시점으로 기록한다. 우리가 보기엔 번식 행동 같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전류가 흐른다. 과학적으로는 신경 내분비 반응이지만, 동물들을 보다 보면 “그래도 사랑 맞는 것 같은데…” 싶은 건 아마도 인간이 ‘해석하는 동물’이라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동물들은 아무하고나 짝짓기를 하지 않을까? 다케우치 구미코의 ‘진화의 원동력 짝짓기’(디오네)는 “차라리 클론을 찍어내면 되지 않나?”라는 의문을 명쾌하게 해결한다. 비효율적인 유성생식 덕분에 세상이 다채로워졌다는 것이다. 섹스는 단순한 번식 방식이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을 폭발시키는 ‘진화 엔진’이다.
자연의 성은 기상천외하다. 코르크 마개 형태의 오리 페니스, 교미 후 식사하는 암컷 거미 등 우리가 비정상이라 부르는 사례는 자연에선 그저 하나의 전략일 뿐이다. 미하엘 미어슈의 ‘동물들의 기이한 성생활’(성우)은 자연의 ‘이상함’이 곧 ‘자연스러움’임을 보여준다. 본능의 기본값은 언제나 “일단 되는대로 다 해보자”다.
결국 살아남는 건 전략이고, 전략은 때때로 인간의 상상력보다 훨씬 과하다. 감히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고대 물고기에서 발견한 페니스를 강연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생물학자 존 롱은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행성B)를 통해 크고 화려하고 과한 것들의 진화학을 펼친다. 이 책은 화석을 들고 ‘과시의 진화’를 멋지게 설명한다. 아르헨티나 오리의 과한 생식기부터 초기 포유류의 번식 장치까지 결국 암컷의 선택이 방향을 결정했다. 취향은 진화를 바꿀 만큼 강력하다. 이것은 자연계의 아주 오래된 진실이다.

취향이 다르면 갈등도 생긴다. 일본의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의 ‘바람난 유전자’(부키)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암컷은 유전적으로 품질 좋은 수컷을 고르고 싶고, 수컷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과 짝짓기할 기회를 원한다. 이 불일치가 바람, 짝 지키기, 우회 전략 등 온갖 행동을 만들어낸다. 인간에게도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짐승의 세계에는 도덕 따위는 없다. 오로지 진화적 유불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짐승들을 보며 바람났다고 놀라지 말자. 그건 그냥 유전자가 일하는 방식이다.
곤충은 이 세계의 극한 버전이다. 2017년 이그노벨 생물학상을 수상한 가미무라 요시타카의 ‘곤충의 교미’(아르테)와 미국의 곤충학자 제임스 케이(K) 웽버그의 ‘곤충의 유혹’(휘슬러)은 “작은 몸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나?”라고 묻게 만드는 책들이다. 곤충의 교미는 ‘극단의 생존술’이다.
정자 경쟁은 격렬하고, 페니스는 도구이자 무기이며, 수컷은 한번의 교미를 위해 목숨을 걸 때도 있다. 이쯤 되면 번식이 아니라 거의 스포츠다. 그것도 데스매치 계열. ‘곤충의 유혹’의 한국어판의 아쉬운 점 하나, 흰개미와 비슷하게 생긴 밀벌레 수컷의 경쟁의 연구자를 쵸(Choe)라고 옮겼는데, 쵸는 사실 최재천 교수다.
짝짓기의 결과는 출산과 육아다. 그런데 육아는 암컷만의 일일까? 일본의 잡초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수컷들의 육아분투기’(윌컴퍼니)는 알을 품고, 새끼를 지키고, 심지어 잉어처럼 입속에서 기르는 수컷들을 소개한다. 성 역할은 본능이 아니라 생태계의 조건이 만든다. 육아는 암컷의 의무라는 오래된 편견은 자연의 실제 사례들을 보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자연에서 강한 수컷, 상남자는 육아에 적극적이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자연과 닮았을까? 심리학자 제시 베링의 ‘조금 다른 섹스의 모든 것’(뿌리와이파리)은 우리가 이상하다고 느껴온 여러 성적 행동이나 욕망들도 사실은 인간이라는 종이 원래 지닌 폭넓은 성적 스펙트럼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즉 단순히 예외나 일탈이 아니라 생물학·심리학·문화가 얽히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란 뜻이다. 이 책의 장점은 스캔들이 아니라 복잡성을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자연의 성은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을까? 캐나다의 생물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브루스 배게밀의 ‘생물학적 풍요’(히포크라테스)는 자연계의 동성애·양성애·성역할 전환을 압도적 자료로 정리한 명저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연에는 정답이 없다. 오직 스펙트럼과 전략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서가에 꽂아둔 독자는 자연이 얼마나 창의적이며 동시에 얼마나 관대하게 다양성을 품어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동물들의 성생활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성은 품위의 영역이 아니라 진화의 창작극이며, 그 창작 과정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유머러스하고, 더 정교하고, 더 미친 듯이 재밌다. 결국 자연은 매우 오래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여러분, 인생도 그렇고 섹스도 그렇고… 정답 찾으려 하지 말고 전략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전략이 다양할수록 생명은 더 오래 버틴다. 자연은 늘 그랬다. 우습게 보이지만 그게 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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