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빨간 구두
별관 장례식장 앞/ 안, 오후
검은 예복 차림의 이수(여, 50), 준우(남, 52) 자동문이 열리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망자의 컬러사진과 이름(50, 이수련), 호실 번호가 떠 있는 로비 전광판 앞에 서는 두 사람.. 이수, 울컥 눈물을 흘리며 서 있고, 재촉하는 준우 "가자"하며 이수를 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가는 두 사람.
장례식장 앞/안
도열해 있는 화환들을 지나 영정 사진 앞에 서는 이수, 준우.
하얀 국화꽃 속의 수련의 영정사진, 30대의 아름다운 수련이 웃고 있다.
별관 장례식장 앞, 오후
택시가 서면 검은 예복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설희(여, 75)가 내린다. 교양있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노부인의 모습. 여행용 가방을(빨간색)을 끌고 간다. 망연자실한 얼굴..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다.
장례식장내 내실.
소파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는 이영 (여, 47).. 얼굴은 부어 있고 선그라스를 쓰고 있다.
"네,네... 삼중병원이예요.. 네, 가락동.. 장례식장요...네..."
이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보는 이영.
이수 왜 여기있어? 안 나가봐? 방안에서 웬 썬그라스..??
이영 (전화를 끊고, 선그라스를 벗는다, 부어오른 얼굴에 살색 반창고)
이수 (보고 놀라는) 웬일이야? 땡겼어??... 꼭 처키같고만..(팔을 올려 귀옆에 대 고 도끼 든 처키흉내를 낸다.) 웬일이야.. 큭
이영 하필 이럴때..(다시 선그라스를 쓴다)
이수 어이가 없어서... 니 얼굴 보니 눈물이 쑥 들어간다..
이영 ... 어제 오빠가 작심하고 터뜨렸나 보더라?
사람들 앞에서 엄마 개망신을 줬대..
이수 뭐라 했는데..??
이영 자기한테 시집오지 않았으면 저렇게 빨리 죽지 않았을거라고..
이수 (놀라) 시집..?? 언제적 얘기야..?? 기기 막혀서.. 엄마는 가만히 있어?
이영 기막혀 하시지.. 애들도 대놓고 할머니 땜에 지네엄마가 죽었다구 하더라구..
이수 자기엄마 설득해서 수술이나 시키지.. 다 큰 것들이 늙은 할머니한테 왜 그 래..
그때 문이 열리고 상복을 입은 이형(남, 53, 이수 오빠)이 들어서자 말을 멈춘다.
이영의 집, 거실
소파에 제 편할대로 앉은 설희, 이수, 이영 (반창고는 없는)
설희 (흥분하여) 제 빤스만 입고 시집온 거를, 나 보다 더 잘해 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어디 걔가 시어미 양말짝 하나 혼수라고 해 왔으면 내 말 을 안해!!
이수 엄마, 사람 하나 묻고 온 날이예요. 헌사를 해도 뭐 할 판에 그딴 말이 왜 나와요.. ??
설희 걔네들이 하는 것 못 봤지? 못 봤으면 말을 마.. 그렇게 잘 해 줬는데.. (눈 물).. 내가 억울해서 그런다..
이영 (달래는) 엄마가 잘 해 주시기는 했죠.. 집에 차에 우리 도장까지 찍게 하고 (불만) 건물에.. 휘황찬란한 보석에.. 그럼 뭐해요.. 사람 맘을 편하게 해줘 야죠~
그런 돈으로 하는 건 세상 누구 부럽지 않게 해 줬지만... 몸도 마음도 고 됐나 보죠..
설희 병원에 가 수술하면 말기암도 다 살더라..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그래도 양귀비까지 구해준 시에미는 나 밖에 없을거다..(허탈한 눈빛)
이수 완벽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이해관계가 척척 맞는 비즈니스 관계였잖아..
엄마와 새언니,...나 같으면 안해!
설희: (이수에게 거친 눈길을 쏘며) 그래, 잘났다! 그래서 그 잘난 박사짜하고
그 모냥 그 꼬라지로 사니?? 너 사는 꼴을 좀 봐..
이수: (들은 척도 않고) 그래도 난, 그 무거운 제기그릇을 들고 나르던 새언니 생 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 엄마도 어제 오빠하는 소리 들었잖아.. 새언니 손 이 시집 오고 바로 식모 손으로 변했다고.. 엄마의 그 완벽주의가 사람 하나 잡은 건 맞는 것 같애! 아주 사람 진을 빼니까.(이영이 손을 잡고 그만하라 고 눈치를 준다)
설희: 그래 너 말 잘했다. 나도 죽기전에 꼭 한번 물어 보고 싶었다. 너는 어째서 외할머니를 그렇게 가시게 했니?(울컥)
이수: (쿵하고 떨어지는 이수의 마음)...
설희: 삐쩍 마르고, 어쩜 할머니를 그렇게 돌아가시게 해?
너 할머니를 굶겼지?.. 귀찮아서.
이수: (분노로 일그러지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걸 지금 엄마가 물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그게 엄마가 내게 맡길 일이었어?
설희: 그래도 니 외할머니잖아!!??
이수: 엄만 할머니 목욕 한번 시켜줘 봤어?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이네.
이영: (둘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왜들 그래??.. 언제적 일인데.. 엄마도 그만하세 요... 엄마가 그러시면 언니 진짜 억울할 것 같아요.
이수: 나치 맹엘레 생체실험에 말야.. 엄마와 딸에게 전극을 연결하고 전류를 흐 르게 했는데 엄마가 자기한테 오는 전류를 딸에게 돌린데...
이영: 언니, 그만해 정말 이럴거야..??
이수: 알고 싶지도 결코 알려고도 하지 않았잖아?
지금 그게 왜 궁금해?
할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운거면 내가 이해를 하겠어.
이영: 언니!
이수: 그래, 굶겼어! 가끔.
감당이 안되어 미칠것 같았으니까.
내 몫이라는게 용납이 안됐으니까..
내가 할머니를 죽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다 함께 유죄가 아닐까?
엄마, 외숙모, 기훈오빠, 이영이, 새언니, 오빠,..다 함께 한거야..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열차처럼 한 칼질씩해서..
살인을 완성한거야!
그 폭탄돌리기가
재수없게도 나 한테서...
팡 하고 터진거지...
보현의 장례식장, 오후 (회상)
자막 1996년 봄,
영정 앞, 국화 꽃 속의 보현(여, 88세)의 영정사진.
향불이 올라오고 있다.
그 앞에 선 이수.
(E)이수, 마음의 소리
할머니, 내가 할머니를 죽였지..??!!
할머니..
용서하지마..
나도 할머니처럼.. 살다 죽을께..
그래도 날 용서할 수는 없을거야...
난 할머니를 마음으로 수백번 버렸어
방치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인간으로서의 존엄스런 죽음은 꿈도 꾸지 않을게..
이제... 이 말 밖에는 아무 것도 해줄게 없네..
할머니..
타이틀 <빨간 구두> 뜬다.
공항/ 입국장, 오후 (이후 씬들 과거)
자막 1996년, 겨울.
이수,(여,35), 준우(남, 38) 은결(남,7), 은새(남, 5) 짐을 잔뜩 실은 카트를 끌고 공항입국장 게이트를 나오고 있다.
이수를 발견한 이영(여, 33) 언니!하며 손을 흔들고
이수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영을 본다.
공항길을 달리는 이영의 차, (그 위에)
이영E: 언니,.. 10년만이지..?? 소감이 어때..??
이수E: 이제 행복 시작이지... 난 무척 기대되.. 결혼하고 바로 가서 한국이야말로 내겐 이국같애.. 당신은 어때..
준우E: 난 리얼리스트라서... 온갖 게 걱정인데.. 마음 편해 좋겠다.
차 안
이영은 운전을 하고, 준우는 보조석, 이수와 아이들 뒷자리에 앉아 있다.
이영: 독일 사는건 어땠어요..? 난 참 좋을 거 같은데...
준우: 사람사는데.. 어디나 비슷하지..
이수: 난 헤르만 헤세와 전혜린 때문에 갔는데...
이영: 80년대 전혜린 때문에 독일간 사람 은근 많았을거야.. 그지..??
이수: 가보니 별로더라... 안정되기는 했지만 지루한 사회더라니깐.. 한국은 좀 덜 안정되었다는 점이 되려 익사이팅하게 여겨져 사람사는 맛이 더 낫다 여겨 져..
준우: 그게 공동체 사회인 한국과 이해관계 사회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차이 같아.. 게젤샤프트가 이해관계 사회라는 말인데.. 독일은 가족 간에도 이해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책임과 권한이 투명한 대신 우리 정서에는 이해하기 힘든 쌀쌀맞음이 있는거 같고, 우리는 만수산 드렁칡이 엉켜진들 어떠하리 하며 끈끈한 정으로 뭉친 공동운명체로 서로 코꿰인 채 살아가잖아?.. 사람 간의 훈훈함은 있지만 어쩌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라도 걸리면 국가가 아닌 해당 가족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야.. 독일이 시스템이라면 한국은 정이랄까...
cut to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그 위로
이수E: (웃음)아~아~~파란만장 했지.. 교수가 뉘른베르크로 학교를 옮겼는데 따라 갈 수가 있어야지..
이영E: 왜? 왜 못가??
(차 안)
이수: 형부, 베를린에서 택시운전했잖아, 논문도 다 되가고.. 이제 한국 가야지 어 딜 가?
이영: 와~, 베를린의 택시운전수요.. 멋진데요.. 형부.. (보는)
준우: 베를린 거리하고 골목을 샅샅이 외워야만 되서, 박사논문보다 택시고시가 더 어렵지이.. 하하
이영: 설마요..
이수: 논문내고, 교수 면담갈 때.. 따라갔거든. 희망에 부풀어서 갔다가... 교수한테 퇴짜 맞고 돌아오는데.. 둘 다 아무 말없이 아우토반을 달리는데.. 차 안에서 차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리더라. 그 때 생각만 하면.. 세상에 그런 절망이 있을까 싶었지... 10년이 다 되갈 때였거든..
이영: (걱정스레 이수를 건너다 본다) 그런데... 언니,... 또 어떻게 견디려구?
이수: 뭘? 뭘 견뎌?
이영: 대림아파트에서 살 거라며...
이수: 으~응, 그럼, 어떡해?? ... 갈 데가 없는데.. 돈도 없고.. 우리 거지야.
준우: ...
아파트 주차장, 오후
이영의 차에서 짐을 내리는 준우, 심란하게 아파트를 올려다 본다.
아파트/거실
40-50평대 아파트.
은은하게 처진 커텐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들어와 있는 고즈넉한 풍경. 넓은 거실에는 그 흔한 거실장이 없고 3개의 높낮이 다른 금색 빈티지풍의 풍속화가 그려진 장식장이 줄맞춰 요염하게 서 있다. 소파 탁자 오래된 그림과 사람 키보다 더 큰 시계까지 집주인의 예사롭지 않은 장식미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꼼꼼하게 진열된 진기한 장식품들 중 장식장 하나를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스와롭스키 스톤이 장식장 하나 가득한 것이 이채롭다.
아파트 대문 앞/현관 /공동욕실
열쇠로 문을 여는 이수. 현관 등이 켜진다. 뒤따라 아이들 들어서고, 준우 가방을 끌고 들어온다.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문간방 옆 화장실, 변기 옆에 할머니가 앉아있다.
이수: (깜짝 놀라고 반가워 다가가며) 어!.. 할머니!!
보현: (여, 86)( 쪽진 머리를 든다.)...?? 누구세요..??(바가지로 변기 물을 퍼, 세수를 하려 한다)
이수: 나, 이수... (깜짝 놀라 손으로 막으며) 어..어.. 할머니 왜 이래..?? (바가지를 뺏으려 하자)
보현: 아이... 저리 가... 성가셔~ (바가지의 물을 이수에게 끼얹는다.)
이수: (변기물을 뒤집어 쓰고 경악, 진저리를 치며) 어머, 할머니 미쳤어..??
아~아, 나 몰라.. 이게 뭐야...(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본다)
욕실/밖
옷을 입은 채 샤워하는 이수.
이수: (물을 맞고 서서) 아이.. 씨..,
준우: (욕실문을 세게 두드리며) 괜찮아?
이수: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다 멈추고) ..응, 괜찮아..
준우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보현.
보현: 이수...??
인서트 컷
어두어진 저녁, 닫힌 문 앞에서 울며 문을 두드리는 어린 이수(5)
주방, 오후
젖은 머리를 타월로 닦고 있는 이수.
수련: (여, 35: 이수의 올케) 오자마자 웬일이야... 너무 놀랬겠다.
이수: 놀란것 보다.. 할머니 생각보다 많이 심하시네요.
수련: 그렇죠.. 약도 숨기고, 안드시고.. 아무래도 연세가 연세니만큼.. 그러시네요.. (사이) 쌀도 사뒀고 김치도 있고 장도 조금 봐뒀어요. 외출할 때 가스 꼭 잠그고 다녀야 되요. 할머니 때문에 몇 번 불 날 뻔 했거든요.
이수: 그런데... 할머니를 혼자 두셨어요?
수련: 아가씨가 왔잖아요, 우리도 이사간 지 한달 밖에 안되요. 아가씨 덕분에 우리집으로 돌아간 거죠.
이수: 어떻게... 저렇게 방치할 수가 있죠..??
수련: 제게 하실 말씀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아가씨도 한번 겪어봐요..
그런 말 나오나..
저도.. 식사 챙기러 왔다갔다...할머니 땜에 부지기수로 불려 다녔어요..
이수의 아파트/거실, 밤
전화하고 있는 이수.
이수: 어떻게 이래..??
이영(F): 긴 병에 효자 없다잖어.. 엄마에게 말해봐야 엄마도 답이 없어.. 양로원에는 못보내실거야.. 고려장이라고 생각하시니까..
이수: 할머니 벌써 고려장 당하셨던데.. 뭐, 이 아파트에.. 뭐가 달라..??
이영(F): 언니, 내가 그랬잖아, 언닌 못견딜거라고..
그냥 가, 시댁으로...
이수: 못간다 했지...치매냐, 술주정이냐.. 니보고 고르라면.. 너는 뭘 고를래??
이영(F): 엄마도 할매 두 분은 무리잖아..
부산, 설희의 집 (이수모)/ 시모 방, 밤
규모가 좀 있는 한옥집.
대청마루 건너 안방 옆에 붙은 방,
이부자리가 깔려 있고 시모(여, 83/이수모의 시모) 중풍으로 몸져 누워있다.
시모를 일으켜 죽을 떠 먹이는 설희(여, 63)
(E)전화벨 소리
이영의 아파트/침실, 밤 (화면 분할)
이영(옷 갈아 입는데)
이영: (대충 껴입고 전화 받는다.) 네 ,엄마
설희: 이수 꼬라지는 어떡하고 왔디? 안봐도 비디오다마는..
이영: 언니 행색이 지금 문제예요? 엄만, 참..
설희: 뭐 그런 집구석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자는 말 한마디 없고 명색이 장남인데 같이 못 살 거 같으면 자기네 집 담보로 작은데 전세 하나 얻어 줄 성의도 없다니?..
이영: 뭐.. 형편되는데 그러기야 하겠어요..?
설희: 다 큰 애 둘 달고 거기 밖에 갈 데가 없나 생각하면,... 들어가 살라 했지만 내 이수 생각만 하면 심장이 푹푹 썩어..
이영: 그렇게 속상하시면 엄마가 좀 도와주세요...
설희: 내 돈도 없지만 할 만큼 했어. 이제 그 집 생각만 하면 머리 뚜껑이 다 열 린다... 아이고... 10년 하면 됐지... 돌부처도 돌아앉을 세월 아니냐? 분명 내 믿고 그러는거 내 모를 줄 알고..
이영: 그럼 믿고 내 버려 두세요. 자리 잡겠죠.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