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거기서 나와…매끄러운 ‘요약’의 함정
- 수정 2026-04-01 09:04
[새벽 5시 AI 그리고 당신] 텍스트의 글을 제대로 기억하고 인용하기

완연한 봄입니다. 대학 캠퍼스에는 매화와 벚꽃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봄소식처럼 독자분들의 편지도 받아보았습니다. 한 독자분은 책을 펼치는 순간 결말에만 관심이 쏠린다고 이야기해 주셨고, 또 다른 독자분은 장편소설을 끝까지 읽기가 어려워 짧은 단편소설에 더 마음이 간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합니다. 텍스트의 긴 호흡을 따라가며 행간의 의미를 읽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읽기의 과정을 조금 더 세분화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없는 ‘제한적 추첨제’
우선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몰입하고 연루될 수 있도록 ‘대학생의 삶과 공부’라는 소주제로 4개의 글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핵심어와 중심 문장, 기본적인 논리 구조를 짚어 가며 읽는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지난주에는 마이클 샌델과 토마 피케티의 대담을 정리한 ‘기울어진 평등’에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대입 제도에 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샌델이나 피케티 가운데 한 사람의 입장을 선택해서 읽어 오도록 안내했습니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학생들은 각자 읽은 소감을 공동 문서 작업이 가능한 구글독스에 익명으로 기록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문장이나 인상 깊은 문장을 그대로 적어도 좋고, 왜 그 문장이 흥미로웠는지 의견을 덧붙여도 됩니다. 대개 한두 줄 정도 적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에 닻을 내리는 순간입니다.
교실 앞 슬라이드에는 서른 명 안팎의 학생들이 남긴 짧은 소감이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대체로 책을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문장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샌델의 추첨제 논의에 동의한다. 미세한 점수 차이가 실제 능력 차이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식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이런 문장은 텍스트의 논지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읽으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익명의 소감 속에서 거슬리는 한 단어가 눈에 띕니다. ‘제한적 추첨제’라는 표현입니다.
샌델은 ‘제한적 추첨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학생 스스로 해석하면서 ‘제한적’이라는 말을 덧붙일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본인이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서술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라는 점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한적 추첨제’가 원문의 표현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역 자체가 아니라, 그 언어가 원문의 표현처럼 유통되는 것입니다.
지워지는 사실과 의견의 차이
이것은 생성형 AI 사용의 폐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성형 AI는 읽기 자료를 능숙하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원문의 핵심 개념과 저자의 언어를 임의로 치환해서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매끄럽게’ 지워냅니다. 저자가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문맥상 그럴듯해 보이는 표현을 통계적 확률에 따라 생성하는 것입니다. ‘제한적 추첨제’와 관련해 생성형 AI에 물으니 “원문의 lottery of the qualified를 두고 ‘유자격자 추첨제’ ‘자격 기준 통과자 대상 추첨제’ ‘제한적 추첨제’ 정도로 옮길 수 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번역은 가능한 표현을 늘어놓는 일이 아니라 개념의 결을 가리는 일입니다. ‘제한적 추첨제’는 추첨제가 제한적이라는 뜻으로 읽히기 쉬운 반면 실제 맥락은 학생 선발에 부분적으로 추첨을 도입한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번역자였다면 ‘제한적 추첨제’를 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샌델의 또 다른 책인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유자격자 제비뽑기’라고 옮긴 것 역시 그러한 맥락을 고려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다른 문장에서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추첨제는 대표성을 보완하는 제도이다”라는 문장이나 “샌델이 추첨제를 통해 노동의 존엄성을 지키려 한다”는 문장은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AI가 생성한 요약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문장입니다. 샌델은 추첨제를 말하면서도 ‘대표성’ 논의를 전면화하지 않습니다. 대표성의 문제는 할당제 등을 통해 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맥락에서 더욱 선명하게 등장합니다.
‘노동의 존엄성’ 역시 샌델 맥락에서 얘기될 수도 있지만 피케티 논의 속에서 사용할 때 더 적절합니다. 이처럼 같은 책 안에 있는 단어라 해도 그것이 놓인 맥락과 사유의 결은 서로 다릅니다. ‘추첨제’와 ‘대표성’이라는 단어는 같은 텍스트 안에 있어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사유, 서로 다른 두 개의 맥락,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 질서를 통해 의미를 구성합니다. 읽기는 바로 그 차이를 식별하는 일입니다.
미로 탐험일까 고랑 걷기일까
참고로 다음과 같은 소감이 텍스트를 더 충실하게 읽어낸 경우에 가깝습니다. “내가 상위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의 문장은 구어적인 표현이라 앞선 문장보다 가볍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울어진 평등’에서 샌델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운’을 핵심어로 붙잡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제대로 읽은 경우에 속합니다. 학술적으로 더 정제된 문장은 아닐 수 있어도 적어도 텍스트의 언어를 따라가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읽기입니다.
읽기는 미로를 헤매는 탐험처럼 언급되기도 하지만 봄 밭의 고랑에서처럼 한 걸음씩 움직이며 언어의 결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즉 읽기는 저자가 기록한 단어의 질서를 차분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들을 임의로 바꾸지 않고, 그것들이 놓인 자리와 연결의 방식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세계, 서로 다른 사유의 층위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일입니다. 특히 저자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그가 말한 맥락 속에서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저자의 개념과 핵심어를 오염시키지 않는 ‘발췌’를 기본으로 요구합니다. 생성형 AI의 ‘매끄러움’은 때때로 의미의 차이를 대가로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읽기가 어려운 시절이지만 적어도 텍스트의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의 ‘한 문장’을 제대로 기억하고 인용하는 일은 더 중요해질 듯합니다. 때때로 하나의 개념, 혹은 하나의 문장은 하나의 세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사용으로 생긴 오해와 문제, 그리고 그것이 읽기와 쓰기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 기록들을 함께 모아 오래 고민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글의 예시 문장은 여러 사례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RE: AI 사용으로 생긴 오해와 문제가 있었나요? 그리고 그것이 읽기와 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박숙자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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