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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사업자 1년새 29% 늘고, 카드연체 20년새 최고…“이젠 버틸 수 없다”

백조히프 2025. 5. 17. 06:17

중앙일보

 

신용불량 사업자 1년새 29% 늘고, 카드연체 20년새 최고…“이젠 버틸 수 없다”

입력 2025-05-17 00:01:03

벼랑끝 몰린 취약계층


‘서민경제의 체온계’를 가리키는 지표인 신용카드 연체율이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금리 고착과 장기 불황, 규제 강화라는 삼중고 속에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빚으로 빚을 갚던’ 서민과 자영업자가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진다. 하반기 대출 절벽이 예고되면서 ‘포용금융’ 강화와 실효성 있는 취약계층 지원 대책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 붙은 카드대출 안내문. [뉴시스]

“대출이 결국 독이 됐습니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는 못 버팁니다.”

9년째 외식업을 해온 한 40대가 최근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다. 코로나 당시 저금리로 빌린 돈은 이자와 함께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일시적 생존을 위한 대출이 시간이 지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장기 불황과 고금리 속에 ‘대출 청구서’는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은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고,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1년 새 30% 가까이 급증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하반기 규제 강화와 높아지는 대출 문턱으로 ‘대출 절벽’이 예고되면서, 저신용 서민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고금리·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5대은행 중·저신용 신규대출 24%→16%로


서민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제도권 금융에서 마지막으로 찾는 창구는 카드론이다. 카드론은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은행과 저축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이 고금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상품이다. 여신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신용점수 700점 이하 차주가 받은 카드론 평균금리는 15.99~19.32%에 달한다. 법정 최고금리(20%) 턱밑이다.

2020년 말 32조원이던 카드론 잔액은 올 3월 기준 42조원대로 불어나며 10조원 넘게 폭증했다. 고금리에도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멈추지 않고 있다.

문제는 결국 과도한 카드 빚이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월 일반은행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3.8%로, 2005년 카드사태 막바지와 같은 수준이다. 카드사태 직전인 2001년 말 2.6%였던 연체율은 2002년 말에는 6.6%까지 급등했고, 정점을 이루던 2003년 말에는 14.1%까지 상승했다. 이때 370만 명이 신용유의자로 전락했다. 한 대형카드사 관계자는 “현재는 연체율 등 신용 리스크가 통제 범위 내에 있지만, 경기 악화가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신용카드 연체는 금융 부실의 도화선으로 꼽힌다. 카드 이용자 상당수가 다중채무자인 만큼, 연체 확산은 금융권 전반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카드사들이 본업인 신용판매보다 카드론 등 고금리 대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급격히 치솟은 배경에는 결국 취약계층이 더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현실이 자리한다. 장기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권이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자 중·저신용자들은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급전으로 내몰리며 상환 부담이 커졌다.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 14만129명으로, 1년 전보다 28.8%나 급증했다. 금융 시스템의 말단에서 무너지는 취약계층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은행권은 고신용자 위주로 자금을 배분하고 있고, 저축은행 역시 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소액 신용대출을 사실상 회피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 중 소액신용대출 실적이 ‘0원’인 곳이 16곳, 1억원 미만인 곳까지 포함하면 38곳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서민이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금융 창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셈이다.

은행의 이익은 사상 최대지만,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공급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규 대출 비중은 2019년 24.4%에서 지난해 15.8%로 급감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저신용대출 확대 여력이 있음에도 은행이 자산 건전성만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시급한 개선을 요구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재점화 부작용 우려


하반기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로 서민의 금융 접근성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는 대출 심사 시 가상의 금리를 반영해 대출 가능 금액을 줄이는 제도다. 규제 대상은 은행뿐 아니라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된다. 생계형 대출 비중이 높은 중·저신용자에겐 신규 대출은 물론 기존 대출 연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여기에 대선을 앞두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 논의가 재점화되면서 금융권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표면적으로는 이자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차주를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적지 않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최고금리가 27.9%에서 20%로 낮아졌던 2018~2021년 사이 최대 73만 명이 제도권 금융에서 이탈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엔 현행 20%에서 10%대로의 추가 인하가 검토되면서 저신용 차주의 금융 접근성은 더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최고금리 24% 시절에는 6등급 차주도 대출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5등급 이상만 거래된다”며 “금리를 더 낮추면 사실상 1~2등급만 제도권에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최고금리는 시장 여건에 따라 금융권 자율로 결정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부채가 한국 경제의 ‘취약 고리’로 떠오르면서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3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다중채무자 중 저소득·저신용 자영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 42만7000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13.7%에 달한다. 취약 자영업자 대상 대출은 1년 새 9조6000억원 증가해 125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11.8%에 해당하며, 경기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상환능력 저하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은은 이에 따라 연체·폐업 차주에겐 ‘새출발기금’을 통한 채무조정, 재기 희망 자영업자에겐 취업·재창업 지원 등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무분별한 금융·세제 지원은 되려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경기 회복기엔 창업 지원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침체 국면에선 오히려 한계 차주만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자영업 시장이 과포화된 만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김상봉 교수는 “경쟁에서 밀려난 자영업자가 실질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폐업 지원을 확대하고,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일자리 연계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6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