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결국 듣고 만, 퇴직자의 연말을 서늘하게 하는 말
불쑥 찾아온 기약 없는 기다림의 순간... 끝이 아닌 '신호'로 도착한 통보
25.12.26 21:12 | 최종 업데이트 25.12.26 21:12 | 이종범(jleefamiry)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퇴직 이후, 지난 3년 동안 나를 가장 아프게 한 말이다. 아프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차라리 서늘하다는 쪽이 더 맞다. 통화는 끝났는데 내 쪽은 끝나지 않고, 손에 쥔 휴대폰이 식어 가는 동안 가슴 한쪽이 깊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는 알아듣는다. 그런데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함께 올라온다. 끝난 건가, 아닌가, 그럼 언제인가. '다음'은 날짜가 아니다. 약속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다. 끊어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어진다는 약속도 아니다. 가능성만 남기고 생활은 비워 둔 채 떠나는 말처럼 들린다. 끝났다는 말보다 더 오래 마음을 헤매게 만드는 이유다.
하필 그 말이 연말에, 그것도 이번 주 월요일에 도착했다. 12월은 원래 "올해도 수고했다"는 덕담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달이고, 사람들은 달력을 정리하면서 '다음'을 희망처럼 붙여 말한다. 내년엔, 다음 달엔, 다음엔 좀 나아지겠지 하는 식으로 말끝이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나를 뒤흔든 '다음'이라는 말

하지만 그날 받은 연락에서 '다음'은 희망이 아니었다. 생활의 자리를 '미정'으로 밀어 넣는 통보처럼 들렸다. 친절하게 말해주니 화를 내기도, 누군가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은 오히려 더 정돈되지 않은 채로 흔들린다.
퇴직 후 3년 동안 나는 매달 두 번씩 가는 곳이 있었다. A사 연수원이 있는 두 곳을 오가는 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외부 일정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나는 아직 사회 안쪽에 있다"는 확인이었다. 특히 매달 고정으로 잡힌 일정은 돈도 돈이지만, 달력에 찍힌 그 두 번의 '약속된 이동' 자체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일종의 기본값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이 겹치는 날, 비록 잠깐이지만 나 자신을 다시 믿게 되는 날, 그래도 나는 아직 쓸모가 있다고 믿는 날이었다. 그 감각이 오늘까지 나를 버티게 했던 디딤돌이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A사에서 지난 3년 동안 맡아 오던 교육 과정에서 내 이름이 빠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모든 강의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보험사에서 진행하는 변동성 강의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매달 '고정'으로 잡혀 있던 일정이 사라졌다는 점이 달랐다. 교육 책임자와 실무진이 새로 구성됐고, "강사진을 새롭게 바꾼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리고 통화 끝에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전화를 끊자마자 머릿속이 바빠졌다. 1년을 다시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들어갈 돈은 그대로인데 들어올 돈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을 압박한다. 다른 일정이 남아 있어도, 매달 고정으로 들어오던 한 축이 빠지면 생활은 '계획'에서 '미정'으로 넘어간다.
숫자보다 먼저 느끼는 불안
'소득의 약 40%가 날아가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압박은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감각이 먼저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말수는 줄고, 커피 맛은 밋밋하게 느껴지고, 괜히 휴대폰만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이 통보가 전혀 예상 밖이었던 것은 아니다. 퇴직 이후의 시장에서는 상황만 다를 뿐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유는 대개 내 바깥에 있고, 결과는 단정형으로 도착한다. 설명은 친절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 결론이 생활의 한 부분을 건드릴 때 사람은 숫자보다 먼저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은 '부정'보다 '미정'에서 더 커진다. 차라리 "끊어졌습니다"는 아프지만 정리라도 된다. 반면 '다음'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붙잡아 둔다. 기다리게 만들고, 스스로를 더 많이 의심하게 만든다. 요즘 내 심정이 그렇다.
중장년의 불안은 소득의 크기보다 '예측 가능성'이 사라질 때 커진다. 조직 안에 있을 때는 관계와 일이 어느 정도 자동으로 이어지지만, 밖으로 나오면 연락처는 남아 있어도 다음 일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개인의 성실함이나 능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퇴직자는 어느 날 '경험 많은 사람'에서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그 변화는 사소한 안부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요즘 일 많으세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대답이 길어진다. 일정이 많다고 말하려 애쓸수록, 마음은 오히려 강의가 없는 날을 먼저 더듬는다. 그런 상태에서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같은 문장은 끊어졌다는 선언이 아니면서도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어서, 말은 남겨 두되 책임은 남기지 않은 채 사람을 묘하게 붙잡는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

기대하지 말아야 덜 다친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지금 심정은 그 말에 기대고 싶어진다. 아직 완전히 밀려난 것은 아니라는 신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은 현실에서 내 생활을 책임지지 않는다.
'혹시'에 기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닳는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기다림만으로 내일을 버티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퇴직 이후의 삶에서는 "누가 불러주면"보다 "내가 움직이면"이 조금 더 현실적이다. 불러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그대로 지나간다. 고정비는 차곡차곡 쌓이고,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더 빨리 쪼그라들 뿐이다.
요 며칠 동안 다시 할 일을 정리하고 있다. 연락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먼저 연락할 곳부터 적어 본다. 소개를 부탁할 사람도 콕 집어 정리한다. 새로 기획할 강의 주제와 콘셉트를 추려 보고, 익숙해졌던 강의 자료는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는 중이다. 물론 이런 행동들이 당장 큰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마음이 한쪽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나쁜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말이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나 같은 퇴직자의 시간을 붙잡아 두고, 그 붙잡힘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주 월요일 내게 도착한 통보는 끝이 아니라 신호다. 기다림에 삶을 맡기지 말라는 신호다.
'2025년 진보 매체 기사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탈팡'은 불매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이다 (1) | 2025.12.27 |
|---|---|
| 유럽은 이미 알고리즘에 책임 물었다... 플랫폼 노동, 기로에 선 한국 (1) | 2025.12.27 |
| "쿠팡 사태, 19세기 돌아간 느낌... 보호 못 받는 노동자 너무 많다" (1) | 2025.12.26 |
| 도박 중독에 빠진 택배기사, 세 번의 기회와 파국 (1) | 2025.12.25 |
| 이제는 ‘미국 결정론’에서 벗어나자 (1) | 2025.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