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팝, 재즈와 블루스
장병익
재즈는 모든 음악을 아우른다. 그래서 재즈는 음악의 점이지대(漸移地帶)이다.
'에릭 클랩튼의 부활'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 '랩(rap)'등의 지각 분열속에서도 '노장은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준 것이 92년도의 영화 '러시(Rush)'의 사운드트랙 음반이었다. 그 중 특히,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에 쏠린 대중적 지지는 세계적으로 가히 폭발적이었다.
2007년 12월 내한 공연차 한국에 들렸을 때의 에릭 클랩턴
이어, 그 해 M-TV '언플러그드 시리즈'에서의 그 거장적 공연. 몇 년 간의 침체 끝에 드디어 그는 더욱 원숙해진 모습으로 되살아 온 것이다. 거기에서의 주종은 자신의 히트곡 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금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블루스곡들이었다. 덕분에 그는 그 해 그래미상 5개를 석권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국내에서 그 공연 실황은 각종 음반과 비디오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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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AscPOozwYA8 (에릭 클랩턴, Tears in Heaven, 뉴욕 메디스 스퀘어 가든1999)
http://www.youtube.com/watch?v=O_huUo8EURc (Tears in Heaven, 기타 연주)
http://www.youtube.com/watch?v=b6t4Zs5Yq_k (에릭 클랩턴, Tears in Heaven, made by Peach St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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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활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 한마디로 '블루스에로의 회귀', 바로 그것이다.
원래, 블루스(blues)란 철저하게 발가벗겨진 자의 절규이다. 사람 사냥꾼들에게 포획 당해 자유와 고향을 졸지에 박탈당해야만 했던 아프리카 노예들이 그 엄청난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극도의 절망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불렀던 (더 정확히는 '울부짖었던') 가장 원초적인 노래의 형식이다.
맨처음에는, 그것은 결코 '음악'이라 할 수 없었다. 들판같은 데서의 고함 소리(field holler)나 노동요(work song)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점점 일정한 음률을 띠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 토속 음악과 서양 음악 어법이 그런 식으로 예기치 않게 충돌하여 만들어 진 그 음악이 통칭 '블루스'이다. 굳이 말하자면, '흑인 노예들의 아리랑'쯤으로 생각하면 제일 무난하겠다.
그 블루스가 노래한 흑인의 절망은 예를 들면, 이러했다.
'블루스여, 블루스여, 너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가져 왔니?…(중략)…오 죽음이여, 나를 이 비참에서 꺼내 주오. ' (초창기 어느 블루스의 가사)
그런데, 이 '출구없음'의 감정이 예술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정제된 형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경우, 그것은 3소절 형식(threefold form)이라는 가장 단순한 노래 형식을 빌어 단조(短調)로 양식화되었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그렇게 생겨난 블루스에는 불가피하게 '새 땅', 즉 서구의 음악 언어가 녹아들 수 밖에 없었다. 머잖아, 그 블루스 어법은 그들 자신의 새 음악 장르인 '재즈' 속으로 자연히 융해되어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고통과 절망의 언어는 단순한 한풀이 넋두리를 벗어나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재즈-블루스' 초창기의 대표는 머디 워터스, B. B. 킹, 레이 찰스 등이다.
이어, 50년대 중반. 척 베리, 레이 찰스 등의 블루스가 그야말로 열화의 기세로 백인의 록 음악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또, 엘비스 프레슬리 등 백인 스타들이 대거 블루스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블루스가 명실공히 '팝의 언어'가 된 때이기도 하다. 그 선두가 밥 딜런, 비틀즈, 롤링 스톤즈였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설명의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시대의 표상'들이다. (여기서, '롤링 스톤(Rollin' Stone)'이란 그룹 이름은 머디 워터스의 대표곡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짚어 두자)
그런데, 백인들이 블루스에 본격 진입했다는 사실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 현지의 음악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렇듯 '백인 블루스맨(white blues man)'들의 대(代)가 줄기차게 이어짐으로써, 백인 음악은 이제 비로소 흑인 음악과 '평등(equal)'해졌다고... 오늘날, 그 '평등'은 불세출의 백인 블루스 맨 에릭 클랩튼(50)의 부활로 더욱 확고해진 것이다.
그런데, 클랩튼의 '천국의 눈물'이 93년에 흑인 색소폰 주자 죠슈어 레드먼(26)의 재즈로 되살아나, 화제를 더했다. 설흔도 안 되었으나 엄청난 실력파인 그를 우리 시대 재즈의 명장 세 사람이 성실한 연주로 보필하고 있어, 더욱 이채롭다. 기타에 팻 메스니(40), 베이스에 찰리 헤이든(58), 드럼에 빌리 히긴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거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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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클랩튼이 비틀즈의 죠지해리슨과 공연을 하면서 죠지해리슨의 아내 패티보이드를 좋아하게 된다. 에릭클랩튼은 패티 보이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Layla'를 앨범에 실어 발표(1970년)한다. 에릭 클랩튼은 'Layla'의 사연을 절대 밝히지 않았고 후에 죠지해리슨과 패티보이드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에릭 클랩튼은 패티보이드에게 사랑고백을 하여 결혼을 하게되었다. 이후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주벽이 심한 에릭 클랩튼과 몸치장에 열을 올리는 패티보이드는 서로에게 멀어졌다.
그러던 중 에릭클랩튼이 이탈리아 투어를 갔을때 사진작가이자 여배우로 활동하던 로리 델 산토를 만나 비공식적인 연인관계를 유지하던중 로리가 임신하여 에릭 클랩튼의 아이를 갖게된다.
에릭 클랩튼은 로리가 자신의 아들을 낳으면서 전 부인 패티보이드와는 공식적이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혼의 분위기로 흘러갔다. 에릭 클랩튼은 로리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숀 코너클랩튼이라 짓고 로리와 살게되었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과 로리 사이는 처음부터 삐걱거리며 얼마지나지 않아 별거생활을 하게된다. 아들이 없던 에릭 클랩튼은 별거중에도 숀 코너를 끔찍히 아꼈는데 엄마 로리와 뉴욕의 한빌딩 53층에 살던 숀 코너는 발코니에서 놀다가 가정부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에릭클랩튼은 슬픔을 이기지못하며 고통가운데 쓴 곡이다.
<출처 - google>
미국의 컨트리 가수이자 가스펠 가수인 제니 프리키가 독특한 고음처리와 차분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다시 부른 Tears in heaven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마음을 차분히 그려 인간적인 정감이 감미롭게 흐른다.
미국 가스펠에서는 이곡을 가스펠로 인정하여 점차 대중화가 되고있으며 팝의 디바 'Withney Huston'의 어머니인 블랙 가스펠의 디바 'Cissy Huston'의 앨범에 제니 프리키가 참여하여 곡을 불렀으며 음반은 미국 Compendia Label을 통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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