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야 놀자

재즈의 역사

백조히프 2018. 4. 2. 22:02

 

재즈의 역사
 

 

우종국



"재즈"란 단어는 언제부터인지 별로 어색하다거나 거리감 없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 어떤 노래를 듣고 나서 "재즈풍"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지금 재즈를 듣고 있다."라든가 "피아노로 재즈를 좀 쳐보았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즈의 실체에 대하여, 즉 기원, 역사, 음악적 특징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재즈는 오늘날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서양 예술 음악사의 현대음악편에 클래식 음악과 나란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같은 이들은 재즈의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킴으로써 클래식 세계에 재즈를 도입하였고, 재즈 음악가들 역시 클래식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1950~1960년대에 유행한 쿨 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두 세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서양에서는 재즈를 초,중,고 교과서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자기나라의 민속음악이라고 칭하면서 그 진가를 높이 평하고 있다.

(Ⅰ) 재즈의 발생 및 초기 형식들

1. 재즈의 발생


재즈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노예신분이었던 미국의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음악이다. 17세기부터 성행한 노예무역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 지역인 세네갈, 기니아 해안, 니제르강 유역, 그리고 콩고 등지를 중심으로 행하여 졌다. 노예 상인들은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마을을 덮쳐 주민의 거의 1/3이상을 포로로 잡아 노예선에 싣고 몇 달 동안의 항해를 거쳐 미국에 도착한 뒤 노예 시장에서 백인 주인에게 팔았다.

노예선 안에서의 참상은 이루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며, 그 당시의 어떤 보고서를 보면 노예를 실었던 선실의 폭은 120~150cm, 높이는 60~90cm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흑인을 오른손과 왼쪽 발을 같이 묶어 줄을 지어 빽빽히 앉히고 철봉을 그 사이에 쭉 질러 꽂아 놓았다고 한다. 흑인들은 바로 눕지도, 바로 앉을 수도 없는 자세로 몇 달 동안을 항해하여야 했는데, 너무나 비위생적인 처리로 인하여 혼절했다 깨어났다 하는 상태에서 죽는 이도 많았다. 노예제도는 법적으로 1863년에 폐지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19세기 말엽까지도 근절되지 않았다고 하며, 현대에는 인종차별 문제도 번져 아직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즈는 위와 같이 역경속에 있었던 미국의 흑인에게서 비롯된 음악이므로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속에 흐르는 감정과 가치관은 그들만의 특유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의 사회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백인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았으리라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즉 재즈는 흑인적인 요소와 백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태어난 새로운 방향의 음악이라고 하겠다.

2. 재즈의 초기 형식들

재즈가 전문 음악가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뉴올리안즈(New Orleans) 에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노예들 사이에서 넓게 퍼져 불려지면 백인들이 배워 부르기도 하였으며, 음악적인 형태는 대개 단순한 가창곡이었다.

예를 들면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블루스 (Blues), 그리고 노동요(Worksong)등이 있으며, 이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음악형식과 감정표현이 내포되어 있어서 좋은 곡들은 후에 재즈 음악가들에 의해서 다시 불리워져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하였다.

재즈 초기의 음악형식과 감정표현 방식은 재즈 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재즈의 스타일이 다양하게 변하여도 항상 밑바닥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위에 소개한 영가, 블루스, 노동요와 초기 재즈 기악곡 형태인 랙타임(Rag time)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흑인 영가 (Negro Spiritual과 Gospelsong)

아프리카에서는 종교와 주민의 생활이 대단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인 행사는 거의 종교적인 행사와 관계를 맺고 치뤄지며, 여기에는 또한 음악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제의를 맡고 있는 주술사는 음악가이며, 주민들 역시 노래하고 춤추면서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와 같은 종교적, 음악적 전통을 갖고 미국에 도착한 흑인들은 새로운 백인 주인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고 종파도 결정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서양의 교회음악에 접하게 되어,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라고 할 수 있는 영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Spiritual의 가사는 대부분 구약이나 신약 성서에서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한 대목을 골라 종교를 자신들의 세속적인 생활과 연결시키는 내용인데, 신앙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으리라고 희망을 품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예로써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처지와 연결시킨 내용이며, 이런 식으로 "Swing low, sweat chariot", "Nobody knows", "When the saints" 등등의 주옥같은 곡들을 들 수 있다. Spiritual의 음악적 특징은 대개 5음음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까지 부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Fine이라고 쓴 곳까지 부르는 다-카토 형식으로 되어있다.

영가의 한 종류인 Gospelsong은 Spiritual보다 훨씬 활기차고, 현대의 댄스리듬이 섞이기도 하며, 즉흥성이 더욱 살려져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Spiritual은 노예제도하에서부터 흑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불리웠는데, 1880년 경부터는 차차 백인들이 모아 부르기 시작하였다. 영가 가수로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mstrong),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비숍 켈시(Bishop Kelsey), 골든 게이트 4중주단 (Golden Gate Quartet)등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2) 블루스 (Blues)

블루스는 영가가 종교적이며 희망적인데 비해 세속적이며 비관적이다. 흑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비애를 노래한 것으로 Blue란 색깔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울한 노래이다. 그러나 블루스에는 재즈의 음악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블루스는 우선 특이한 음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블루노트'(Blue Note)라고 한다. 보통의 장조 서양 음계와 비교해볼 때 3음, 5음 그리고 7음이 반음씩 내려가 있다. 그러나 이 음계는 멜로디를 이끄는 데에만 사용되고, 화음으로 반주하는 데에는 서양의 장조 화음을 사용한다. 따라서 블루 멜로디와 화음반주가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 음향이 재즈란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블루스의 두번째 특징은 리듬에 있다. 싱코페이션과 삼련음표를 사용하여 독특한 느낌을 안겨 주는데, 약박에 악센트가 들어감으로 인하여 쇼크를 받는 순간과 같은 매우 강한 심리적인 반응상태에서 출발하며 인간은 그에 육체적으로 움직임으로써 보상하는 상태를 불러 일으킨다. 즉 블루스의 리듬은 자동적으로 율동을 부른다. 이와 같은 블루스의 리듬은 역시 흑인 특유의 감정에서 유발된 것이라고 하겠다.

블루스의 세번째 특징으로 블루스 노래는 각 행이 4마디씩으로 구성되어있고 모두 3행이 모여 1절을 이룬다. 즉 도합 12마디이며, 화음이 정해져 있다. 노래할 때는 12마디를 모두 빽빽히 노래하지 않고, 반 정도 만 노래하고 나머지 부분은 악기 반주로 채워지는데 대개 노래 음성 표현을 그대로 모방하는 형식이라서 매우 재미있다.

블루스는 노예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870년대부터는 지방과 도시 블루스로 분류되어 발전된다. 블루스의 최성기는 1920~1930년 경 이라고 할 수 있고, 유명한 가수로는 마 레이니 (Ma Rainey), 베씨 스미스 (Bessie Smith), 루이 암스트롱 (Louis Amstrong), 빅 빌 브론치 (Big Bill Broonzy)등이 있다. 블루스는 20~30년대에 피아노 곡으로 사랑을 받기도 하였는데, 멜로디의 특징은 블루스와 같고 왼손 반주는 구르는 듯한 리듬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이와 같은 블루스 피아노 곡을 가리켜 '부기 우기 (Boogie Woogie)'라고 부른다.

3) 노동요 (Worksong)

아프리카인들은 일을 할 때 반드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다. 노래를 함께 리듬에 맞추어 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리기도 하고, 노래 가사에 뉴스를 전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은 미국의 흑인들에게로 이어져서 도로를 닦을 때, 철로를 놓을 때, 노를 저을 때, 나무를 벨 때 등등의 일을 하며 노동요를 불렀다. 노래 형식은 선창자가 노래하면 합창으로 대답하는 형식이다.

4) 랙타임 (Rag time)

Rag이란 "이그러졌다"라는 뜻이며, time이란 악보의 한 마디를 것이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이다. 래그타임은 쉽게 이야기 하여 완전히 작곡된 피아노 음악을 말하는데, 재즈의 특징인 즉흥연주가 빠져있는 형태이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도 유행하였으며, 왼손으로는 정확한 박자를 짚고, 오른손은 싱코페이션이나 부점음표들이 등장하여 리듬이 매우 어긋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스콧 조플린 (Scott Joplin)과 젤리 롤 모턴 (Jelly Roll Morton)등이 있으며, 예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스팅의 주제가 "The Entertainer"를 들 수 있다.

(Ⅱ) 재즈의 변천사

1. 뉴 올리안즈 재즈 (New Orleans-Jazz)

1) 재즈의 정의 및 뉴 올리안즈 재즈의 발생

재즈의 발생지를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 뉴 올리안즈로 보는 것은 재즈가 초기에 가장 활발히 연주되던 대표적인 곳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여 재즈란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 발생한 음악이라고 단정짓기 보다는 흑인 노예제도가 성행한 이래로 수십년 동안 점차적으로 발전된 음악이다.

재즈란 이름을 갖게 된 시기나 그 어원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흑인 영가, 블루스, 노동요 등은 미국적 민요에다 유럽의 민요나 오락음악, 군악대 음악의 기법을 첨가하여 전문 음악가들이 연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재즈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Civil War,1861-1865)이후에 군대에서 악기를 불하하여 악기가 시중에 많이 퍼지게 되었고, 프랑스인과 흑인노예의 혼혈인 크레올(Creole)이 대거 참가하여 많은 악단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크레올은 피부가 흑인보다 밝고,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어로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경제나 사회적으로 흑인보다 우세하였으므로 노예해방 이후(1865) 흑인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그리하여 흑인의 단순한 형태의 음악에 유럽적인 기법이 침투하게 되었으며, 악기편성은 군악대편성에서 차차 소편성의 밴드중심으로 나아가긴 하였으나 여전히 취주악기가 그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즈의 특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크레올과 흑인들은 길거리나 공원, 결혼식, 장례식, 피크닉, 카니발 등에서 연주를 하였으며, 1900년 경에는 댄스홀이나 술집에 고용되어 연주하였다. 특히 뉴 올리안즈의 홍등가인 스토리빌 (Storyville)에서는 랙타임 피아니스트와 소편성 밴드를 고용하여 손님을 접대하였으므로 흑인 음악가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에는 재즈란 이름으로 연주한 것이 아니나, 최초의 재즈밴드로 알려진 것은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코르넷)의 밴드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곧 백인들이 모방하여 댄스음악으로 연주하는 악단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는데(1910년 경부터) 이들 중에서 니크 라 로카(Nick La Rocca,트럼펫)가 이끄는 "오리지날 딕시랜드 밴드(Original Dixieland Band)"가 1917년 최초로 레코드 취입을 하여 재즈가 드디어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2) 뉴 올리안즈 재즈의 음악적 특징

뉴 올리안즈 재즈는 1900년에서 1925년 사이가 전성기이고,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버디 볼든(Buddy Bolden, 트럼펫), 벙크 존슨(Bunk Johnson, 트럼펫), 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 키드 오리(Kid Ory, 트럼본), 젤리 롤 모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그리고 백인 밴드로 "오리지날 딕시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와 "뉴 올리안즈 리듬 킹즈(New Orleans Rhythm Kings)"등이 있다.

악기 편성은 백인의 군악대를 본땄기 때문에 멜로디 악기로 트럼펫, 클라리넷, 트럼본 등의 관악기를 편성하고, 리듬악기로 드럼, 벤조, 기타, 튜바, 그리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되어 구성되었다.

연주 형태는 흑인 음악가들이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순전히 청력에 의해 연주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들은 12마디의 블루스나 32마디의 노래나 랙타임을 주제로하여 각 구성원이 제작기 동시에 즉흥적으로 연주하였으며 이를 가르켜 "집단 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라고 일컫는다. 리듬 형태는 단순한 2박자(한 마디에 2박이 들어가고 첫박에 악센트가 있다) 재즈가 성행하였다.

이 시기의 재즈 특징은 시대가 변하여도 영원한 재즈의 특징으로 전승되게 된 요소들이 많은데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블루음표 (Blue Notes)
(2) 거칠은 음색 (dirty tones)
(3) 억세고 폭발적인 억양법 (hot-Intonation)
(4) 기본 박자를 무시한 리듬과 악센트 (off beat, swing)
(5) 주어진 테마로 즉흥연주 (Improvisation)

2. 시카고 재즈 (Chicago-Jazz)

1) 시카고 재즈의 발생 및 발전


1917년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뉴 올리안즈가 중요 해군기지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스토리빌의 향락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하던 많은 음악가들이 해고를 당하여 이들 중에는 미시시피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세인트 루이스(St. Louis), 캔자스(Kansas), 시카고(Chicago)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꽤 되었다. 이 도시들 중에서 시카고는 특히 1920년대부터 재즈가 활발히 꽃피기 시작한 도시로서, 루이 암스트롱, 죠 킹 올리버, 키드 오리, 젤리 롤 모튼 같은 이들이 뉴 올리안즈에서 시카고로 이주하여 활동한 대표적인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시카고에서 새로운 연주법을 구사하여 "시카고/ 뉴 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예를 들면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20년대에 "핫 파이브(Hot Five)"와 "핫 세븐(Hot Seven)"밴드를 조직하여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년대에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행대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와 "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40년대에는 "올 스타즈(all Stars)"악단을 조직하여 다시 뉴 올리안즈 스타일로 되돌아 갔다. 루이 암스트롱과 버금가는 유명한 음악가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 이다. 그는 크레올 출신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테마를 작곡하고 또한 이를 편곡하여 그의 밴드를 연습시켰다. 그의 악단의 특징은 그러므로 즉흥연주의 폭이 훨씬 적었으므로 재즈 동료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시카고에서는 재즈의 세계에 백인이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또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백인 고교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재즈는 신선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어스틴 하이스쿨 갱(Austin High School Gang)"과 같은 모교 이름을 본딴 유명한 밴드라든가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같은 훌륭한 연주가가 속출하였다.

이들은 과거의 딕시랜드와는 달리 진정한 재즈세계를 탐구하여 그 당시 백인의 취향인 "스위트 뮤직 (Sweet Music)"을 침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들 음악의 특징은 테마작곡과 편곡을 역시 오선지에 철저하게 적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므로 흑인악단보다 즉흥연주가 적으며, 솔리스트의 활약이 전체적인 밴드연주보다 대단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은 흑인의 것보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2) 시카고 재즈의 음악적 특징

시카고 재즈의 전성기는 대략 1925년에서 1930년까지로 추정되며, 뉴 올리안즈 출신의 흑인 음악가들은 시카고에서 좀더 고상하고 세련되고 노련하게 스타일을 바꾸어 나갔다. 이들은 또한 뉴올리안즈 재즈 음반 제작을 이곳에서 실행하였다(1923-1928).시카고 재즈는 그 유래로 말미암아 뉴 올리안즈 스타일과 흡사한 점이 많으나 특징을 끄집어 내자면 다음과 같다.

(1) 합주에 대응하는 솔로의 즉흥연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집단 즉흥연주는 쇠퇴되었다.
(2) 멜로디 악기들이 제각기 횡적으로 즉흥연주를 하기보다는 화성적으로 맞추게 되었다.
(3) 벤죠와 튜바보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즐겨 연주하였다.
(4) 악센트를 제2박, 제4박에 두어 스윙감을 더했다.(뉴 올리안즈 시대의 2박자 재즈에서 4박자 재즈로 옮겨와 약동감이 더해지는데 이를 '스윙'이라고 한다. 4박자 재즈의 최초의 공로자는 루이 암스트롱이다)

3. 스윙 재즈 (Swing-Jazz)

1) 스윙 재즈의 발생 및 발전


스윙(Swing)이란 단어에는 흔들리다, 흔들거리다 라는 뜻이 있듯이,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강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스윙 재즈의 음악적인 요소들은 시카고 시대부터 있었던 것들이지만, 스윙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확대되고 발전되어 완성되었다.

스윙감을 주는 제일 큰 원인은 박자에서 온다고 보겠는데, 2박자에서 4박자 재즈로 발전된 점이다. 4박자는 보통 때 박자를 세는 식으로 "하나, 둘, 셋, 넷"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그리고 둘 그리고 셋 그리고 넷 그리고"하면서 "그리고(and)"에 악센트를 탄력있게 줌으로써 강한 율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박자를 "Off-beat"라고 부르며, 스윙 시대에 있어서 재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스윙 재즈가 나타난 시기는 1920년대 말 경이었다. 세계 공황이 1929년에 일어났으므로, 이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때였기 때문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해고를 당한 재즈 음악가들은 큰 밴드에(Big Band) 흡수되는 경향을 보이고, 밴드가 커짐에 따라 즉흥연주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어 즉흥연주보다는 바레이션 형태로 연주하게 되었다. 스윙 오케스트라에는 흔히 백인과 흑인이 함께 섞여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으며, 이들은 음악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악보를 볼 수 있었으므로 미리 정확하게 편곡을 하여 연주하였다.

경제적인 이유 및 그 당시 유행하던 댄스음악 계통인 "스위트 뮤직(Sweet-Music)"으로 인하여 계속 빛을 못보던 스윙재즈는, 드디어 백인 클라리넷 주자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로스엔젤레스의 팔로마 볼룸에서 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하여 (1935) 본격적인 스윙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어서 그가 1983년 1월에는 클래식만을 공연해 오던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열어 성공을 거둠으로써 재즈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을 증명한다.

2) 스윙 재즈의 음악적 특징

스윙 재즈는 율동감이 대단하며 큰 밴드(Big Band) 중심으로 화려하지만, 재즈 본래의 특색이 매우 제약받은 상태의 재즈이다. 즉 밴드 인원이 많았으므로 전체가 행하는 즉흥연주는 편곡으로 대체되어 미리 연습하여, 즉흥연주는 솔로주자나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위법적으로 멜로디를 충실하여 즉흥연주를 하던 것이 화성적으로 맞추어 진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결론적으로보아 스윙 재즈는 유럽적인 냄새가 짙은 재즈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클라리넷),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피아노), 카운트 베씨(Count Basie,피아노),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가수)와 빌리 홀리데이(Billy Holyday,가수), 해리 제임스(Harry James,트럼펫)와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트럼펫),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색소폰)와 레스터 영(Lester Young,색소폰), 글렌 밀러(Glenn Miller,트롬본), 테디 윌슨(Teddy Wilson,피아노)과 아트 타툼(Art Tatum,피아노), 진 쿠르파(Gene Krupa,드럼)등이고 시기는 대략 1930년에서 1945년 사이로 본다.

4. 밥 (Bop, Bebop 시대)

1) 비밥 재즈의 발생

"밥"또는 "비밥"이란 단어의 어원은 밥(Bop) 재즈를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이 "비비비비 밥밥밥" 또는 "비밥 비밥"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라라라"와 같이 뜻없이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음절이었다.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 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만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밥 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으며, 밥 재즈는 초기부터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강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으며, 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이라든가 7도, 9도, 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 템포는 바른 편이며, 율동감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술성이 강하여 예술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다는 의미에서 전통 재즈 혹은 고전 재즈(Traditional Jazz, Classical Jazz)라고 부른다.

비밥 재즈는 예술성은 강하지만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도 외면하는 이가 많았다. 따라서 방송출연은 하기도 어려웠고, 레코드 취입은 뒤늦게 1945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비밥이 이렇듯 인기가 없었으므로, 한편으로 전통 재즈인 뉴 올리안즈 재즈를 비롯하여 딕시랜드 등이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으며, 블루스, 스윙에서 파생된 부기우기 등이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어쨌든 비밥 재즈가 예술 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 경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 (지방 블루스<Land-Blues>, 도시 블루스<City-Blues>, 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Rhythm and Blues>, 뉴올리안즈 재즈), 춤과 오락 음악 (딕시랜드<Dixieland>, 스윙<Swing>), 예술음악 (비밥<Bebop>)등등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된다.

2) 비밥 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비밥 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짚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거칠은 음색, 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표 또는 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광포하며 전율적이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앨토 색소폰), 존"디지"질레스피(John "Dizzy" Gillespie,트럼펫)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트럼펫), 텔로니어스 몽크(Thelonius Monk,피아노)와 버드 포웰(Bud Powell,피아노), 마일드 잭슨(Milt Jackson,비브라폰),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콘드라베이스)와 찰리 밍구스(Charlie Mingus,콘트라베이스),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기타), 케니 클락(Kenny Clarke,드럼)과 맥스 로치(Max Roach,드럼)등이며, 시기는 1940년에서 1955년까지로 본다.


5. 쿨 재즈 (Cool-Jazz)

1) 쿨 재즈의 발생


"쿨(Cool)"이란 단어에는 "시원하다"라는 뜻이 있듯이, 쿨이란 전통재즈의 표징인 "핫(Hot)"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전쟁 중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배했던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미국 사회에는 인종문제 등이 아직도 해결안된 불쾌한 현실로 부상되어 사람들은 허탈감과 울적함에 젖어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후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모든 허탈감, 울적함, 심기일전 등의 시대감정은 종래의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며 강렬함에서 탈출하여 시원하고 미끈하며, 고상한 휴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50년 이후의 유행을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의 짧은 머리, 드레시한 옷, 형광등의 출현으로 인한 파리한 색채를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으므로 한 마디로 말하여 이 시대의 시대감정을 표현하자면 바로 "쿨"인 것이다.

위와 같은 현상은 재즈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전통재즈는 비브라토를 수반한 강렬한 음향과 더불어 춤과 연결되는 율동적인 리듬이 필수적이었으며,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쿨"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즈는 정반대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즈 음악계에는 정식으로 음악수없을 받은 음악가들이 점점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재즈에 클래식 음악기법인 화성법, 나아가서 12음 기법등을 결합시키면서 재즈와 클래식의 접합을 시도하였고, 그들은 또한 재즈를 클래식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연미복을 입고 음악회장에서 정식으로 격식을 차려 연주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음향은 비브라토가 없이 부드러우며, 자극이 없고, 서정미가 있는 현대적인 음향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드디어 재즈를 춤과 술과 혼합하여 생각하지 않고, 재즈를 조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감상하는 음악으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쿨 재즈의 음악적 특징

쿨 재즈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있지만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서 화성법, 대위법, 목조성(Polytonal), 무조성주의 등을 차용하여 음악적으로 수준이 한결 높아짐과 동시에 음악회용 음악 즉 감상음악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쿨 재즈의 음향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비브라토와 다이너믹이 절제되었으며 부드러운 음색이다.
(2)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완되어있어 매끄럽고 스마트한 느낌을 준다.
(3) 서정성과 함께 멜랑콜리한 표현이 많다. 그러나 리듬은 핫-재즈나 마찬가지로 강렬하다.
(4) 엄격한 음악형식 때문에 (클래식에서 받아온) 즉흥적인 면이 감소됨을 보여준다.
(5) 캄보밴드 스타일이 지배적이다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쿨재즈의 전성시기는 1950년 경부터 1960년 사이로 보여지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트럼펫)를 기수로하여 리 코니츠 (Lee Konitz, 앨토-색소폰), 레니 트리스타노 (Lennie Tristano,피아노), 데이브 브루백(Dave Brubeck,피아노) 그리고 모던 재즈 4중주단 (Modern Jazz Quartet)등을 들 수 있다.

쿨한 감각이라든가 음악형식면에서 클래식을 접합시키는 방법은 같으나 음악적 표현이 종래의 비밥(Bebop)을 이어받아 좀 거치른 재즈의 형태로 하드밥(Hard-Bop)이 있다. 하드 밥은 1950년 이후에 출연하여 순수 쿨 재즈와 공존하였는데, 50년대 말 경에는 하드 밥과 쿨의 경계선을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60년대를 넘어 가면서는 음악 형식에 있어서 클래식 형식 뿐 아니라 스페인과 남아메리카의 리듬, 아랍이나 인도의 음계와 리듬 등을 받아와 재즈는 음악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표현영역이 넓혀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드 밥은 백인에 의해서 미국 서부 해안에서 시작된 웨스트코스트 재즈(West-Coast-Jazz)와 뉴욕의 젊은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이스트코스트 재즈(East-Coast-Jazz)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하드 밥은 비밥처럼 재즈에 있어서 흑인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음향이 거칠고 폭발적이며, 타악기를 강조하고, 표현력이 강하며 단순하다.

따라서 활력이 넘치며 블루스와 흑인영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여기에서는 블루스가 체념하는 형태가 아니라 폭발하는 형태이다. 이런 연주형태를 특히 "펑크(Funk)"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자는 흑백문제가 계속 투쟁을 거듭하면서 흑인들은 끊임없이 도시에서 평등권을 얻기를 원했는데, 이에 대한 신경질적인 기대감이 비밥으로 표현된 것이라면 하드 밥은 반항하고 데모를 일으키는 상태가 표현된 것이라고도 한다.

하드 밥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아트 블레키(Art Blakey, 드럼)와 그 일행, 캐논볼 아델리(Cannonball Adderley, 색소폰), 소니 롤린스(Sonny Rolins, 색소폰), 맥스 로치(Max Roach, 드럼),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피아노)등이 있다.

6. 프리 재즈 (Free-Jazz)

1) 프리 재즈의 발생

프리 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의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 음악가들인 오넷 콜맨 (Ornette Col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 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 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리스타노와 그의 일행은 여러 개의 독립된 멜로디선이 빚는 불협화음으로 복조성적인 음악을 캐피틀(Capitol)레코드사에서 레코딩함으로써 처음으로 조성의 기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음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를 포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국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볼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2) 프리 재즈의 음악적 특징

프리재즈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단어 그대로 매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하겠다. 연주가들은 개별적인 표현욕구를 구속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기법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리 재즈는 연주 중에 연주자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고 하는 새로운 연주방법을 도입하였는데, 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 것이 프리 재즈의 묘미이다.

프리재즈의 전성기는 1960년대 이후라고 보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피아노),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색소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색소폰), 에릭 돌피(Eric Dolphy, 플룻, 바리톤색소폰), 돈 케리(Don Cherry, 트럼펫) 챨리 밍구스(Charlie Mingus, 베이스), 아키 세프(Archic Shepp, 색소폰)등이 있다. 프리 재즈는 유럽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들은 미국 재즈보다 유럽 예술음악의 갈래인 전위음악과 가깝다.

7. 록 재즈 (Rock-Jazz)

1) 록 재즈의 발생


록 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재즈로서(70년대) 프리 재즈와 함께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형태이다. 록(Rock)이란 유럽에서 대중적인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것으로 블루스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로큰 롤(Rock'n Roll)의 준말이다.

록은 1960년도 중반에 나타나 가사의 예술적 표현에 보다 치중하여 즉흥 연주 등은 그리 강하게 다루지 않았다. 비틀즈(Beatles)를 위시한 많은 그룹들은 조곡형식(Suite)의 대편성 심포니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부류들은 종래의 록을 고수하여 하드 록(Hard Rock)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록 그룹들은 블루스를 기초로 하였으나, 재즈와 록이 완전히 융합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엮어 놓은 상태에 불과하였고, 예술적인 면의 추구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감을 준다.

재즈와 록이 참으로 융화되어(Fusion) 예술적인 형태를 띠면서 재즈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이다. 체이스(Chase), 블러드(Blood), 스웻 앤 티얼스 (Sweat & Tears) 등의 그룹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스윙 록 (Swing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초에는 재즈의 대가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록과 전자악기에 관심을 두어 <비취스 브루(Bitches Brew)>란 음반을 내놓음으로써 본격적인 록 재즈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점은 전자악기를 일반 재즈악기와 함께 섞거나, 전체를 전자악기로 대체하고 연주하여 음향을 더욱 강하게 확대시킨 면과 예술적인 즉흥성을 강조한 점이다. (전기기타, 전기콘트라베이스, 전자피아노, 신디사이저 등을 사용)

2) 록 재즈의 음악적 특징

위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록 재즈는 전자악기 연주로 인한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 하며, 음악적인 기법을 프리 재즈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어서는 모던 재즈(비밥, 쿨, 프리 재즈)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여 스윙(Swing)과 비슷하나 약간 더 강하고(예를 들면 동양에서 온 순환하는 박자사용),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를 바탕으로 한 섭법을 중심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어법에 있어서 옛 두박자 재즈부터 프리 재즈까지의 요소들을 도입하므로 연주자 모두가 각자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보다 부드럽다고 하겠다.

록 재즈의 대표자로는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 죤 멕로린(John McLaughlin, 전기기타)과 그의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Chick Corea), 허비 행콕(Herbie Hancock)와 죠 채위눌(Joe Zawinul), 웨더 리포트와 유나이티드 재즈 록 앙상블 (Weather Report & United Jazz Rock Ensemble)등이 있다. 록 재즈는 일렉트릭 재즈(Electric Jazz), 퓨젼 재즈(Fusion Jazz), 크로스오버 뮤직(Crossover Music)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명칭은 록 재즈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기 시대의 스윙과 밥 재즈가 클래식 음악과 어깨를 겨룰만큼 음악적으로 성장함을 보여 주었다면, 후기 시대의 쿨, 프리, 록 재즈에서는 예술적인 발전을 더욱 거듭하여 현 시대 음악의 한 장르로서 클래식 음악사에 당당하게 편입됨을 보여주었다. 즉 재즈는 더이상 좁은 의미의 오락음악이나 민속적인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서양 예술음악의 한 갈래로서 인정받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Ⅲ) 20세기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 학자들은 70년대부터 음악사, 음악교육학책 등에 암스트롱과 바흐의 이름을 나란히 올리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재즈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계 도처에서 흔히 보여지는 광경이다. 재즈는 이렇듯 발생한 지 일백년이 되기도 전에 세계적으로 벌써 그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재즈가 초기의 단순한 가창형태에서부터 이렇듯 발전하게 된 데에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재즈 음악가들이 스윙시대 이후 대거 참여하여(1930년대 이후) 재즈와 클래식의 접목을 시도하고, 또 이에 자극받아 재즈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살려 보려는 강한 노력들이 모여 이룩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재즈의 발전상에는 클래식 음악의 영향이 음으로 양으로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하여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도 역시 재즈의 발자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클래식 계에서 재즈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재즈가 아직 단순한 영가나 블루스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20년대 이전부터 드뷔시(C.Debussy, 1862-1918)와 스트라빈스키(I.Strainsky, 1882-1971)등의 작품에 나타난다.

드뷔시는 괴물의 케이크 워크(The Gollwog's Cakewalk, 1908)의 몇 작품에,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병사의 이야기(L' Histoire, 1918)중에서 악마의 춤에 그리고 11개의 악기를 위한 래그타임(Ragtime, 1918)및 피아노 래그 뮤직(Rag Music, 1919)에서 재즈적 착상을 도입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유럽에 블루스와 래그 타임이 크게 유행할 때였다고 하는데, 새로운 음향과 새로운 리듬을 찾아서 고심하던 현대 작곡자들에게 재즈의 신선하고 진기한 리듬과 끈끈한 호소력은 대단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을 듯 하다. 그후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기가지 힌데미트(P.Hindemith, 1895-1963)가 피아노 조곡 래그타임(Ragtime, 1922)을 라벨(M.Ravel, 1875-1937)가 피아노 콘체르트 G장조(1931)에서 재즈의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가 1933년 1월에 정권을 잡게 되자 유태인 박해 및 독재로 인하여 유럽의 많은 중요한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대중 음악가 출신인 거쉬인(George Gershwin, 1898-1937)이 클래식을 습득하여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1924), 피아노 콘체르토 F장조(1925),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1935) 등으로 크게 성공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작품은 재즈다운 싱싱한 선율과 적당한 스윙감 그리고 세련된 화성 등으로 재즈를 예술적 수준으로 높였다. 그의 통속적인듯 하면서도 예술적인 음악은 그가 미국 최초의 민족음악가란 칭호를 받게 했으며,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의 민속음악이 재즈라고 확신하게 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작곡가들은 재즈에 더욱 매료되어 그들 중에는 순수 재즈작품을 작곡하여 재즈악단에 주기까지 하였는데, 바르톡(Bela Bartok, 1881-1945)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랩소디 를 시게티와 베니굿맨에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에보니 콘체르토(Ebony Concerto, 1945)를 우디 허먼 악단(Woody Herman)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그밖에 12음기법의 창조자인 쇤베르크(A.Schonberg, 1874-1951)는 그의 에세이에서 재즈의 예술성과 형태, 느낌에 대하여 극찬한 바 있으며(1924), 미요(Darius Milhaud, 1872-1955)도 그의 작품에 재즈의 형식을 도입한 좋은 작품들이 있으니, 이와 같은 예는 일일이 하나 하나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재즈의 발달에 클래식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한 바와 마찬가지로, 재즈는 또한 20세기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재즈에 있어서 클래식 음악의 역할은 단지 재즈의 독창성을 발휘시키기 위한 자극을 주는 정도의 역할 밖에 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하여 클래식에 도입된 재즈는 그 형태상으로 보아 재즈의 본질인 즉흥성 등이 빠져있는 상태로, 재즈의 리듬이나 약간의 착상을 빌려와 작품에 이용하는 소극적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