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클래식, 클래식과 재즈
장병익
클래식 음악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분명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선택받음'이 거액 과외라든가 음대 입시 부정같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변질되어, 때로는 격렬한 '손가락질'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클래식이란 음악은 과연 그렇게 보통 사람들과는 유리된, '잘난' 사람들만의 음악인가?
그렇다고 해서, 요즘 TV같은 데서 흔히 보이듯이 고궁의 뜰에서 풀 오케스트라가 그 곳에 쉬러온 일반 시민들 앞에서 잘 알려진 곡을 연주한다거나, 인기 성악가들이 톱 대중 가수들과 나란히 협연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서 일반인들과의 거리가 좁혀 질 것인가? 클래식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낮추어야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클래식과 대중 음악이 한 군데에서 아름답게 공존했던 시절은 과연 없는 걸까?
금세기 초 미국.
거기서는 그 둘의 '행복한 공존'이 성취되었다. '가장 미국적인 음악가' 조지 거쉬인(1898~1937)이라는 거장에 의해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의 '서머 타임', '아이 갓 리듬', '포기와 베스', '랩소디 인 블루' 등은 당시의 신생 음악인 재즈가 없었더라면, 실로 꿈도 꾸어 보지 못했을 걸작들이다.(바로 위의 '블루'라는 말은 최근 우리 나라에서 '도시적 감성' 혹은 '도시적 세련미'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거의 무원칙적으로 부쩍 쓰이고 있는, 말하자면 현재의 '인기 시사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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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h5ddqniqxFM (빌리 홀러데이, Summertime)
http://www.youtube.com/watch?v=1j6avX7ebkM (엘라 핏츠제랄드, Summertime, 베를린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v=mzNEgcqWDG4 (제니스 조플린, Summertime, 스톡홀름 공연,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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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재즈적 음계를 가리키는 말 '블루 노트(blue note)'에서 연원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 두자) 그 후 한동안 둘은 각기 열심히 발전해 오다, 바로 앞 시리즈에서 언급된 존 루이스나 키이스 자레트 같은 거장들의 노력에 힘입어 서로 손을 굳게 잡게 된 것이다.
그럼, 그러한 예외적 거장들말고, 재즈 그 자체에서는 어떤 내재적 계기가 없었던가?
재즈는 출발선에서부터 그러한 '고급화'의 계기를 깔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폭넓은 표현력에도 불구, 가냘픈 음량때문에 트럼펫이나 트롬본같은 우렁찬 악기들의 뒷전을 벗어날 수 없었던 바이올린(당시의 일반적 명칭은 '깽깽이(fiddler)')은 재즈에서 클래식적 선율의 마지막 보루로서 근근히 자리를 지켜왔다.
그 한계를 처음으로 돌파한 인물이 미국인 조우 베누티(1903~1978)였다. 바이올린을 분해하다시피 하는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혁명적인 '연주' 기법들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이후, 재즈 바이올린의 주도권은 유럽, 주로 프랑스쪽으로 넘어갔다. 그들 중 구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이 스테판 그라펠리(87)이고, 신세대의 대표는 장-뤽 퐁티(53)이다. 특히, 퐁티는 바이올린에 전기적 음량 증폭기를 도입하여, 충격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가 발명한 그 악기가 '비올렉트라(violectra:전자 바이올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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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e Grappelli and Martin Taylor in Australia in 1990. Jon Burr on bass.
http://www.youtube.com/watch?v=VhB5qAq7OkI (그라펠리, Bad Moon)
Rare Live in Warsaw 1991 No Need to further describe anymore about Grappelli simply good tune & well played. Always reminds me what a musician should play and could play on stage
http://www.youtube.com/watch?v=S4kf5aU1Wtg (그라펠리, How High The Moon)
http://www.youtube.com/watch?v=VpmOTGungnA (쟝고 라인하르트/그라펠리, Minor S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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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같은 시도는 '점잖은 음악'을 너무 욕뵈는 짓 아닌가?"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할만큼 그들의 모험은 충격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온 그의 음악은 너무나도 우아하고 따스하며, 무엇보다 어렵지 않다.중요한 점은, 그런 재즈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 그의 탄탄한 클래식적 기초와 거장적 테크닉 덕택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그의 재즈를 섣불리 따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그 맥은 젊고 걸출한 한 바이올린 주자에 의해 더 탄탄해져 있다. 신세대 바이올린 주자 나이즐 케네디. 한국에서는 클래식 바이올린 주자로 이미 낯익다.
그 활달하고 절묘한 비발디의 '사계' 연주가 음반, 영상 등 갖가지 매체로 잘 소개되어 있는 덕택이다. 그리고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피아노만의 반주로 재즈의 명곡 7곡을 연주한 사실까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음악은 클래식인가, 재즈인가?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인가?
참고로, 그는 그라펠리의 제자이자 파트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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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Gershin(1898.9.26~1937.7.11) 소개:
뉴욕 출생. 대중적인 경음악을 작곡하면서 재즈기교에 의한 수준 높은 관현악곡과 오페라를 창작하여 새로운 측면을 개척하였다. 소년시절 개인교사에게 피아노와 화성학을 배우고 16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 음악출판사의 피아니스트로서 작곡을 시작하였다. 19세 때부터는 극장 전속 피아니스트로 근무하였으며, 21세 때에는 《스와니》를 발표하여 히트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인기를 모아 리뷰나 쇼의 일류 작곡가가 되었으며, 1924년(26세) 폴 화이트먼이 위촉한 재즈의 기법을 따른 피아노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고전음악과 경음악을 조화시켜 관현악곡 《파리의 미국인》(1928) 《피아노협주곡 F장조》(1925) 및 오페라 《포기와 베스》(1935) 등의 본격적인 작품 외에도 많은 통속 희가극과 대중음악,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는데 뇌종양이 발병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Stephane Grapelli (1908.1.26~1997.12.1) 소개:
프랑스 파리 출생. 이사도라 던컨 예술학교와 파리예술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으나 1920년대의 대공항으로 15세 때부터 생존을 위해 파리의 클럽과 극장을 전전했다. 19세 때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조 베누티(Joe Venuti)의 협연을 보고 감동받았고, 그때부터 재즈와 바이올린을 자신이 나아갈 방향으로 선택했다.
위대한 집시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와 함께 1934년 '유럽 재즈의 효시'라고 부르는 핫클럽5중주단(Quintette du Hot Club de France)을 조직했다. 클래식 현악 3중주를 변형시킨 3대의 기타, 1대의 베이스와 바이올린이라는 이채로운 형식을 취한 이 그룹은 곧 프랑스와 유럽, 미국에 영향을 끼쳤고, 그의 우아하고 기교 많은 바이올린 연주와 장고 라인하르트의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는 유럽 전역을 재즈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1939년 그룹을 해체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에서 피아니스트 조지 셰어링(George Shearing) 등과 함께 연주활동을 했다. 세계로 연주여행을 다녔으며, 파리 힐턴에서 5년간 공연했다. 1969년에는 미국에 데뷔하여 새로운 그룹을 조직, 리코딩과 연주회를 가졌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여 1970∼1980년대에 그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동료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장 뤼크 폰튀(Jean-Luc Ponty), 조 베누티,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등과 함께 꾸준히 리코딩 활동을 했으며, 1988년에는 카네기홀에서 다른 재즈 음악가들과 줄리아드현악4중주단, 첼로 연주자 요요마와 함께 협연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1990년대 중반까지 연주활동을 계속했다.
장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미국의 음악'으로 인식되어온 재즈의 이미지를 최초로 붕괴한 인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재즈의 공간에 밀착시킴으로써 '재즈 바이올린=그라펠리'라는 등식을 마련, 다른 악기 연주자들을 이끌어가는 메인 악기로서 바이올린을 자리매김시켰다. 1997년 9월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명예시민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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