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라는 집단적 오독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
- 수정 2026-01-21 10:19
- 등록 2026-01-21 09:00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공교육 교과 과정 곳곳에서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준법정신의 예화로 소개되어 왔다. 부당한 기소에 억울한 판결까지 받아 복역 중인 아테네의 노인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권유하는 동료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독약을 들이켬으로써 덤덤하게 자신에게 언도된 국가의 사형 명령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60∼90년대 법학도들이 부단히 들춰보았을 일부 법사상사 교과서에서는 한술 더 떠 “선량한 시민이 악법을 따르는 것은 악한 시민이 양법까지도 침범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법 실증주의의 교시에 가까운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
다만 초·중등교과서에서는 2002년과 2004년 각각 국가인권위원회와 헌법재판소가 시정 권고를 내리면서 ‘악법도 법’ 에피소드가 빠졌는데, 그마저도 준법정신을 절대적인 복종 의무로 연결짓는 교육 사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에서였지 소크라테스의 일화 속 사실관계에 딴지를 건 것은 아니었다. 늘어놓고 보니 도덕 교과서 집필자부터 헌재 재판관까지 일련의 사태에 연루된 어느 한 사람도 플라톤의 ‘대화편’을 제대로 읽은 이가 없었다는 점은 신기하다.
결론부터 말해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독배를 받아든 소크라테스의 일화라는 것은 허구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다룬 플라톤의 저작 ‘크리톤’, ‘파이돈’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인데, 한국에서는 1993년 권창은(철학), 1994년 강정인(정치학)의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 학계에서조차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악법도 법이다’는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신문에서 인용하는 교양 상식으로 통용되었다. 두 학자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는 일본 제국부터 군부독재까지 권위주의 통치에 길든 근대 한국 사회에서 소크라테스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이용당한 결과라고 개탄한다. 그럴싸한 설명이지만, 왜곡의 내막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소크라테스가 말 그대로 ‘악법도 법’이라는 문구를 구사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렇게 읽힐 수 있는 흔적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크리톤’을 보자. ‘크리톤’은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와, 그에게 탈옥을 권유하는 죽마고우 크리톤 사이 논박을 담은 대화편이다. 이미 간수까지 매수하여 탈옥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크리톤은 아테네 시민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친구를 잃게 된 현실에 안타까워 한다.
이대로 오판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적들을 이롭게 하고 자신을 내팽개치는 것이므로 탈출하여 스스로 구원하는 쪽에 정의도 따르지 않겠냐고 소크라테스에게 호소한다. 다양한 논변으로 친구의 제안을 되받아치던 소크라테스는 대화 후반부 아테네 법률과 국가의 입장을 의인화하여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펼친다.
“법률과 국가 공동체가 여기서 달아나려는 우리에게 다가와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가정해 보세. ‘소크라테스, 내게 말해 보시오.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법률인 우리와 나라 전체를 파멸시킬 작정이오? 당신이 생각하기엔 어떤 나라에서 법정 판결들이 무력화되고, 개인들에 의해 효력이 상실되고 파기된다면 그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존립할 수 있겠소?…(중략)…
당신(소크라테스)은 우리(법률과 국가)에 의해 태어나고 양육 받고 교육받았으니, 당신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도 우리의 자손이며 노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소?…(중략)…다음과 같은 것을 알지도 못했단 말이오?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 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 내야 한다는 것, 정의로운 것이란 그와 같다는 것을.”(플라톤, ‘크리톤’, 이기백 역, 이제이북스, 67∼70쪽, 50b∼51c, 일부 필자 윤문)
태어나게 하고 살게 한 국가의 은혜는 모른 척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법의 결정을 뒤엎으려 든다면 그것은 곧 조국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니 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행위라고, 소크라테스는 인격화된 법률에 이입하여 주장하고 있다.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법률의 논변’ 중에서도 가장 강성한 대목만 따온 것이긴 하나, 소크라테스를 골수 국가주의자로 보이게 하는 구절이다. 이를 토대로 토마스 브릭하우스나 니콜라스 스미스 같은 소수의 학자는 소크라테스를 철저한 준법정신의 수호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브릭하우스와 스미스의 소크라테스는 석연찮은 뒷맛을 남긴다. ‘크리톤’의 전편 격인 ‘소크라테스의 변론’(이하 ‘변론’)에서의 소크라테스는 물론, 당장 ‘크리톤’ 전반부의 소크라테스와도 사상적으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먼저 ‘변론’의 소크라테스를 보자. ‘나라가 공인한 신을 믿지 않고, 주제넘은 탐구로 사론(邪論)을 정론(正論)인 양 꾸며대며, 이러한 가르침을 퍼뜨려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다소 모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변호하고자 배심원단 앞에 선다.
이 자리에서 그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삶의 자세’다. 철학 하는 삶, 다시 말해 ‘주제넘게 탐구하는 삶’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는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단이 설령 ‘무죄로 방면해줄 테니 철학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다.(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46∼47쪽, 29c∼d)
이어서 그는 과거 평의회의 일원이던 시절 위법한 재판 진행에 반발하여 홀로 반대표를 던졌던 일이나, 스파르타 괴뢰 정권으로부터 무고한 이를 연행해 오라는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여기에 가담하지 않고 귀가한 일(앞의 책, 31e∼32e)을 거론하며 그 자신의 불복종 경력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크리톤’ 전반부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정의롭지 못한 짓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크리톤’, 49a∼c)라는 대원칙을 못 박아두기도 했다.
이에 비춰볼 때, 그가 크리톤의 탈옥 제안을 거부한 것은, 탈옥이―나라의 법률 시스템을 유린하는―불의한 행위일 뿐 아니라, 설령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보복으로 불의를 행하는 짓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그의 정의관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이쪽이 ‘준법정신의 수호자’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일관성에 부합한다.
소크라테스가 그 자신을 결단코 ‘악법’의 희생양으로 인식한 적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는 ‘변론’에서 “나는 구금이나 죽음이 두려워 여러분의 부당한 결정을 지지하느니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32c)라며 사람들의 결정과 법 자체는 엄연히 분리된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또한 ‘크리톤’ 속 법률의 논변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법률이 아니라 사람들(배심원단)에게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한 것’(54c)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단의 잘못된 판결을 비판하였을 뿐, 아테네의 국법을 악법이라 규정한 적이 없다. 따라서 악법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는 수사는 들어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는 공개적이고 반복적으로 죽음에 대한 각오를 천명해 왔다.
상술했듯, 그는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철학을 금지당하느니 차라리 철학자로서 죽겠다는 의지를 배심원단 앞에서 공표하였고, ‘크리톤’에서도 의인화된 법률의 목소리를 빌려 이미 추방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 자신이 이제 와서 말을 뒤집고 탈옥한다면 이는 ‘가장 하찮은 노예’가 할 법한 일이 아니겠냐고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였다.(52c∼d) 탈옥은, 그가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함께 내걸었던 삶의 결심을 우스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변론’부터 ‘크리톤’, ‘파이돈’에 이르는 소크라테스의 서사는 죽음을 직감하고,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처럼도 읽힌다.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철학자의 유언은 ‘악법도 법이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참된 철학자라면 죽음을 추구해야 한다”(플라톤, ‘파이돈’, 전헌상 역, 이제이북스, 68쪽, 64a)고 주장하던 그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았다고, 파이돈의 입을 빌려 플라톤은 전한다.
“이것이 그(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고대 그리스 의학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 주게, 잊지 말고.’ ‘그렇게 하지.’ 크리톤이 말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할 말이 있나 보게.’ 이렇게 물었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저 사람(크리톤)이 그를 덮었던 것을 벗겼고, 그의 두 눈은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크리톤이 입을 다물어 드렸고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벗의 최후였습니다. 우리는 말할 겁니다. 그는 당시 우리가 겪었던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웠노라고.”(앞의 책, 118a)
박강수의 허언록은?
곡해, 도용, 날조, 과장, 오역 등 비틀린 말의 사정을 추적하는 에세이입니다. 보통 ‘잘못 알려진 명언’을 검증하지만, 개중에는 ‘잘못 알려졌다고 잘못 알려진’ 이중 왜곡이나 도무지 기원을 찾을 수 없는 미제 사건도 적지 않습니다. 오해를 바로잡겠다는 마음보다는 오해의 경위를 들여다보는 일이 재밌어서 씁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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