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 그리고 하녀의 삼각관계... 반전이 너무 많다
[안치용의 영화적 사유] <하우스메이드>
26.01.19 13:59 | 최종 업데이트 26.01.19 13:59 | 안치용(carminedraco)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스릴러 장르에서 '저택'과 '하녀'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소재다. 외부인이 폐쇄적인 공간에 발을 들이며 시작되는 긴장은 관객으로 하여금 저택의 주인이 가진 위선이나 하녀의 숨겨진 욕망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의 신작 <하우스메이드>는 이러한 장르적 익숙함을 발판 삼아, 관객의 예상을 보란 듯이 빗나가는 영리한 도약을 선보인다. 이 영화의 정수는 단순히 놀라게 하는 '반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반전이 일어나는 방식과 그로 인해 뒤집히는 '계급적 역전'에 있다.
전형성을 파괴하는 '밀리'와 '니나'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지운다. 그동안 수많은 스릴러에서 '하녀' 혹은 '가정부'는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소비되었다. 상류층의 비밀을 엿보다 희생당하는 가련한 피해자이거나, 저택의 안주인 자리를 노리고 유혹을 일삼는 팜므 파탈이다.
그러나 시드니 스위니가 연기한 '밀리'는 이 두 가지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과거를 숨긴 채 저택에 들어온 그녀는 초반부에는 젊은 안주인의 변덕스러운 폭언에 시달리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그 연약함 아래 숨겨진 강인한 생존 본능을 드러낸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연기한 '니나' 역시 흥미롭다. 완벽한 아내의 미소 뒤로 광기 어린 행동을 일삼는 그녀는 전형적인 악한 고용주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행동에 숨겨진 또 다른 층위의 진실을 배치함으로써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두 여성 캐릭터는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누가 누구를 조종하고 있는지에 관한 주도권 싸움이 끊임없이 물고 물리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한다.
한국 영화에서 <하녀>의 계보
'하우스메이드'는 한국어로 '하녀'다. 한국 영화에서 하녀 캐릭터는 영화사에서 흥미로운 흔적을 남겼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이은심)는 중산층 가정의 평온을 파괴하는 침입자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성적 욕망을 무기로 가정을 파탄 내는 전형적인 악녀로 묘사되었다. 당시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는 공포스러운 외부 존재를 의미했다.
2010년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작의 은이(전도연)는 상류층의 유희에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순진무구한 희생양에 가깝다. 가진자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그녀의 선택은 복수가 아니었다. 허망한 자살로 마무리되며 계급의 벽 앞에 무너지는 개인의 비극을 강조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제작된 <하우스메이드>는 프리다 맥파든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의 계보를 잇지는 않았지]다. 하지만 이 논의에선 하여튼 대담한 역전을 선보였다.
1960년의 하녀가 '포식자'였고 2010년의 하녀가 '먹잇감'이었다면, 2026년의 밀리는 판 자체를 다시 짜는 '전략가'로 등장한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밀리를 2010년의 은이처럼 가련한 피해자로 여기게끔 유도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1960년의 하녀가 가졌던 파괴적인 에너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폭발한다. 고전적 '하녀'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을 완전히 걷어내고, 현대적인 주체성을 부여한 화려한 변주다.
영리한 반전

지난해 해외에서 개봉했을 때 평가의 키워드는 반전이었다. 보도자료를 통해 전한 해외 언론의 평은 '예측 불가능한 전개'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스릴러에 기대하는 모든 걸 갖췄다"(프레쉬 픽션) 같은 게 대표적이다.
<하우스메이드>의 반전은 결말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식스 센스>식이 아니다. 관객이 "아, 이제 알겠다"라고 안심하는 순간마다 영화는 새로운 진실의 조각을 던지며 판을 뒤흔든다.
페이그 감독은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보여준 특유의 위트와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윈체스터 저택의 웅장한 나선형 계단과 높은 천장은 인물들을 압도하는 권력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반전이 드러날 때마다 이 공간은 인물을 가두는 감옥 혹은 그들이 탈출해야 할 미로로 재정의된다. "밝은 햇빛 아래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포착한 존 슈워츠먼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화려한 미장센 뒤에 숨은 불온한 기운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하녀의 역습과 계급적 카타르시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하녀'라는 존재를 취급하는 방식에 있다. 고전적인 하녀 서사에서 신분 상승의 도구는 주로 '섹슈얼리티'나 '비밀 공유'였다. 하지만 <하우스메이드>의 밀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위치(가정부)를 오히려 자신의 패를 숨기는 완벽한 가면으로 활용한다.
이상적인 남편으로 보이는 앤드루(브랜든 스클레너)와 밀리, 니나 사이의 삼각 구도는 영화 중반 이후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른다. 세 사람의 관계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짜릿한 해방감은 이 영화의 지향이 평범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억눌린 자의 통쾌한 반격임을 증명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와 영웅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교체되는 과정은 관객에게 넘치는 도파민을 선사한다.
테일러 스위트프의 'I Did Something Bad'를 비롯해 사브리나 카펜터, 라나 델 레이 등 당대 최고 팝 아티스트들의 곡을 배치한 사운드트랙은 이 영화가 무거운 정통 스릴러의 문법에 머물지 않음을 방증한다. 화려한 캐시미어 의상과 낡은 중고 옷의 대비, 완벽한 대칭 구조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아름다움 아래 도사린 위험"이라는 테마를 감각적으로 완성한다.
영화 <하우스메이드>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이용해 관객을 속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김기영과 임상수의 <하녀>가 보여준 계급의 비극과 공포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혹은 기억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가 선사하는 전복의 카타르시스는 각별하다. 반전 스릴러를 넘어, 여성 캐릭터의 연대와 전복, 그리고 인간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뜨겁고 섹시한 서스펜스 영화다.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 28일 개봉.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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