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삼성전자 성과급과 AI 시대의 분배
- 수정 2026-06-04 19:34


최동범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걱정은 저성장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예상을 뛰어넘는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출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성장 전망에도 모처럼 온기가 돌고 있다. 이러한 반전 속에서 삼성전자의 천문학적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성과급 논란이 일었다. 다행히 노사가 타협하며 파국은 피했지만, 이번 사태는 기업 내부의 보상 문제를 넘어 다가올 시대의 분배 문제에 관한 화두를 던졌다.
성과급은 본래 기대 이상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자, 더 높은 생산성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결과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나쁜 결과에 따른 부담도 어느 정도 동반되어야 한다. 성과가 좋으면 막대한 보상을 받지만, 반대의 경우 해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미국식 보상 체계가 그 전형이다.
반면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은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기본급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하방 위험은 제한적으로만 부담하면서 호황기의 이익에 대해 거액의 성과급을 요구한다면, 외부의 시선에는 성과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이라기보다 유리한 몫만 취하려는 선택적 요구로 비칠 수 있다.
더구나 이번 반도체 호실적은 내부 혁신만으로 설명되기보다, 예기치 못한 외부 요인이 공급 부족과 맞물려 발생한 초과이익의 성격 또한 강하다. 수요가 폭증하더라도 산업 특성상 공급은 단기간에 늘어나기 어렵고, 그 결과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익이 곧바로 거액의 성과급을 정당화할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이번 논란을 통상적인 성과 보상이 아니라 노사 간 이익 공유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기업이 벌어들인 초과이익의 일부를 노동자가 요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낯선 일이 아니다. 시장이 노동의 몫을 언제나 공정하게 정해준 것은 아니었으며, 임금과 노동조건은 오랜 기간 단체교섭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형성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뜻밖의 호황으로 생긴 이익의 일부를 구성원과 공유하자는 요구가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인공지능 시대에 노동과 자본의 몫을 어떤 원칙으로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하면 새로운 쟁점이 생긴다. 노사 간 이익 배분이 문제라면, 특정 사업부에 훨씬 더 많은 몫이 돌아가는 방식은 내부 형평성과 충돌할 수 있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노동 대 자본의 구도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편 일각에서는 위험을 부담한 주주만이 초과이익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주주가 잔여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반도체처럼 국가 전략산업의 성격을 띠는 경우에는 이 원칙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 반도체 기업의 성장에는 물론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기술 축적이 핵심적인 구실을 했지만,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 인프라 구축, 외교·통상적 뒷받침 등 정책적 지원도 그 배경에 있었다.
무엇보다 ‘국민기업’이 흔들릴 경우 정부와 사회는 그 충격을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이번에도 정부가 노사 중재에 적극 개입하였다. 하방 위험을 온전히 주주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면, 호황기의 이익이 전적으로 주주의 몫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런 맥락에서 사전에 정해진 원칙에 따라 초과이익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방안도 충분히 논의할 만하며, 이를 단순히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이번 사태는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의 분배 문제를 미리 떠올리게 한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인공지능이 산업 전반에 스며들수록 그 과실은 소수 기업과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기 쉽다. 반면 노동의 몫은 줄고, 일부 노동자의 협상력은 더 약해지며,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는 한층 심화할 수 있다. 과거와 다른 경제 구조가 자리 잡는다면 재분배의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만큼, 당장의 성급한 제도 개편은 경계해야 한다. 다만 혁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성장의 혜택을 자본과 노동, 사회가 어떤 원칙으로 나눌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숙고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원칙을 세우고, 실제 분배는 즉흥적 대응이 아니라 이에 기초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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