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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10년, 영국이 받은 충격적인 성적표

백조히프 2026. 6. 2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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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브렉시트 10년, 영국이 받은 충격적인 성적표

 

[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현대 경제의 연결성 과소평가한 결과

 

26.06.23 12:01 | 최종 업데이트 26.06.23 12:01 | 임상훈(anarsh)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 연합뉴스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브렉시트는 다시 평가대에 올랐다. 당시 핵심 구호는 "통제권 회복"이었다. 법은 런던이 만들고, 국경은 영국이 관리하며, 돈과 무역의 방향도 스스로 정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문제는 손해였느냐, 이익이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브렉시트는 주권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정치적 실험이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 뒤 정말 더 독립적인 나라가 되었느냐는 데 있다.

영국과 유럽의 통상 전문가들이 참여한 글로벌무역정책관측소(GTOP)의 브렉시트 10년 분석은 냉정한 수치를 제시한다. 이 자료가 인용한 경제학자 니컬러스 블룸 등의 연구에 따르면, 2025년 영국 국내총생산은 브렉시트가 없었을 경우의 경로보다 6~8% 낮은 수준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일시적 충격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손실에 가깝다. 정치의 약속은 빠르게 말해졌지만, 경제는 더 느리고 단단한 방식으로 그 약속을 검증했다.

그래서 브렉시트 10년은 단순한 손익계산서가 아니다.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이 곧 스스로 서는 것인가. 연결을 줄이면 주권은 더 강해지는가. 이 질문 앞에서 브렉시트는 영국만의 사건이 아니라, 현대 국가가 독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 사례가 된다.

'영광스러운 고립'의 오해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 연합뉴스

영국에는 오래된 자기상이 있다. 19세기 외교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영광스러운 고립"이라는 말이다. 유럽 대륙의 복잡한 동맹에 깊이 묶이지 않고, 바다와 제국과 금융의 힘으로 자기 길을 간다는 상상이다.

그러나 그 말은 완전한 단절을 뜻하지 않았다. 영국은 유럽 밖에 홀로 떠 있던 나라가 아니었다. 해상로를 장악했고, 식민지를 거느렸으며, 세계 교역과 금융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고립처럼 보였던 것은 실제로는 더 넓은 연결망을 배경으로 한 거리 두기였다.

브렉시트는 이 오래된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유럽 대륙의 규칙에서 벗어나면 영국은 더 자유롭고 민첩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의 영국은 고립되어 강했던 것이 아니라, 세계적 연결망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이 차이를 놓치면 독립은 쉽게 고립으로 바뀐다. 독립은 혼자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연결 속에서도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이다. 브렉시트의 진짜 시험은 바로 그 능력이 영국에 남아 있었느냐는 데 있었다.

국경은 비용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숫자로 드러난 곳은 무역이었다. 영국의 대유럽 수출은 브렉시트 이후 기준 경로에 비해 크게 내려앉았다. 새 통관 절차와 원산지 규정, 인증 부담이 교역의 문턱을 높였기 때문이다. GTOP의 자료는 이 행정 절차 비용을 평균 8%, 전체 절차를 포함하면 12~13% 수준으로 추정한다.

국경은 정치의 언어로 말할 때 선명하다. 그러나 기업의 장부에서는 서류, 시간, 대기, 비용으로 기록된다. 통제권 회복이라는 구호가 현장에서는 거래 비용 증가로 번역된 셈이다.

그 비용은 모든 기업에 똑같이 작용하지 않았다. 2019년에서 2024년 사이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영국 초소형 기업은 31%, 소기업은 22%, 중기업은 14% 줄었다. 반면 대기업의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글로벌무역정책관측소(GTOP) 보고서 갈무리. ⓒ GTOP 보고서 갈무리

같은 장벽도 누구에게나 같은 장벽은 아니다. 큰 기업은 전담 부서와 법률 자문, 물류망으로 새 절차를 흡수할 수 있다. 작은 기업에게 같은 서류는 수출을 포기하게 만드는 문턱이 된다.

가계도 비용을 피하지 못했다. 비관세 장벽은 식품 가격을 약 6% 끌어올렸고, 가구 당 약 210파운드의 부담을 만들었다. 그 부담은 최하위 10% 가구에 최상위 10% 가구보다 52% 더 무겁게 작용했다.

이 대목에서 브렉시트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바뀐다. 주권 회복은 국가 전체의 이름으로 말해졌지만, 계산서는 아래로 먼저 내려갔다. 작은 기업과 취약한 가계가 그 선택의 비용을 가장 먼저 떠안았다.

세계로 간다는 약속의 한계

브렉시트가 약속한 것은 손실의 감수가 아니었다. 영국은 유럽 밖 세계로 더 빠르게 나가겠다고 했다. "글로벌 브리튼"은 고립이 아니라 더 넓은 독립을 약속하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무역의 지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24년에도 유럽연합은 영국 수출의 41%, 수입의 50%를 차지했다. 2015년의 42.3%, 52.5%와 비교하면 차이는 제한적이다. 가까운 시장은 정치 구호보다 오래 버텼다.

협정의 성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국은 기존 유럽연합 협정을 이어받는 37개 연속 협정을 만들었지만, 새로 체결한 협정은 4개에 그쳤다. 국내총생산 증가 효과도 0.32%로 제시된다. 독자 협상권은 생겼지만, 시장 규모가 줄어든 만큼 협상력도 작아졌다.

금융에서는 더 미묘한 결과가 나왔다. 런던 시티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일부 기능은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더블린, 파리, 룩셈부르크, 뉴욕으로 흩어졌다. 유럽 대륙도 런던을 대체할 단일 금융 중심지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 빈자리를 가장 크게 활용한 쪽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일 가능성이 크다. 대형 상장과 깊은 자본시장, 달러의 힘은 뉴욕의 중심성을 더 키웠다. 영국이 유럽을 떠났다고 영국의 금융 주권이 온전히 커진 것도, 유럽의 금융 자율성이 곧바로 강화된 것도 아니었다.

에너지에서는 성과와 의존이 함께 나타난다. 영국은 주요 7개국 가운데 전력 탈탄소화를 가장 빠르게 이룬 나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25년 순전력 수입은 33TWh, 전력 구성의 약 12%에 이르렀고, 주된 공급원은 프랑스였다.

전력망의 현실은 국경선처럼 잘리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 전력 시장 밖에 있지만, 전기의 흐름은 여전히 대륙과 이어져 있다. 제도적으로 분리되었다고 해서 물리적 의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규제와 제재 정책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영국은 형식적으로 독자 규제권을 회복했지만, 개인정보, 온라인 안전, 경쟁 규제, 대러 제재에서 유럽과 다시 맞춰갔다.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서는 빠졌지만, 규칙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독립은 연결 속에서 증명된다

유럽연합 재가입을 요구하며 지난 20일(현지 시간) 런던 도심에서 거리 행진을 진행 중인 영국 시민들. ⓒ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내부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론조사기관 YouGov의 2026년 6월 분석에 따르면, 영국인의 57%는 2016년 유럽연합 탈퇴 투표가 잘못이었다고 본다. 재가입 지지도 55%로 나타났다. 다만 과거 영국이 누렸던 예외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조건이라면, 재가입 지지는 35%로 떨어진다.

이 변화는 브렉시트가 더 이상 국민투표 승리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영국인에게 그것은 생활 속에서 다시 평가되는 선택이 되었다. 주권의 이름으로 약속했던 독립이 실제 삶에서 충분한 안정과 선택지를 만들었는지 되묻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브렉시트의 핵심 문제는 유럽연합을 떠났다는 사실 하나에 있지 않다. 더 깊은 문제는 독립을 고립의 방식으로 이해한 데 있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더 자유로워진다는 상상은 현대 경제의 연결성을 과소평가했다.

형식적 주권은 결정할 권리다. 실질적 독립은 그 결정을 현실에서 작동 시킬 능력이다. 영국은 전자의 일부를 되찾았지만, 후자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장, 협상력, 제도 참여권, 기반 시설 접근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독립은 혼자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이다. 브렉시트 10년의 교훈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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