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세계
디에고 리베라(1886~1957)는 11살 때부터 멕시코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며,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던 해인 1907년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를 거쳐 1911년부터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입체주의의 조류를 직접 만났다.
그러나 브라크, 피카소, 피카비아 등 입체파 화가들과 광범위한 교류를 했음에도 그 조류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타고난 색채 감각에 의한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흡수했다. 즉 입체파가 추구했던 형상의 재구성에는 수긍했지만 무채색 사용 같은 것에는 전혀 찬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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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 이후 신정부는 멕시코 인디언들의 토착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며 벽화 운동을 시작해 외국에서 체류하던 자국 화가들을 불러들여 공공 건물에 멕시코 역사를 주제로 하는 벽화 제작을 전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귀국한 디에고는 자신이 이태리 여행에서 매료된 지오토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기법을 적용하여 은은한 색채 효과가 나는 벽화들을 제작했다.
1923년 디에고는 프리다를 처음 만났다. 장난기에 넘치면서도 절대적인 것을 향한 열정에 불타던 비범한 소녀와, 여인들을 탐닉하며 벽화 제작에 전념하던 식인귀의 만남은 운명의 장난처럼 진실이면서도 신비로운 사건같았다. 바람둥이의 관능을 뒤흔들어 놓은 소녀의 대담한 시선과 우아한 예술적 분위기는 디에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아 그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예술적 본질에 좀 더 깊숙히 접근하게 했다.
동시에 이 만남은 육체적 고통의 멍에를 막 지기 시작한 어린 프리다를 영혼적 고통의 한계상황에까지 몰고 가 빈센트 반 고호만큼이나 끝없는 고통 속에 가장 처연한 멕시코적 예술혼을 만개시킨 위대한 예술가가 되게 한 그 어떤 숙명으로 작용했다.
디에고와 프리다는 멕시코의 진정한 가치인 고대 아즈텍 문명의 예술과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하던 시대의 대표주자들이었다. 특히 디에고는 멕시코 혁명(1910)과 원주민 역사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시킨 최초의 예술가였다. 고대 원주민들에게 돌, 구름, 새, 꽃들은 환희의 근원이었고 위대한 물질성의 표현이었다.
디에고와 프리다는 이러한 원주민 세계의 이상을 추구하는데 자신들의 생애를 바쳤다. 바로 그 이상이 그들에게 민중혁명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었고, 내전으로 피폐한 멕시코의 한 복판에 찬란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 그 집념어린 투쟁적 예술행위는 전아메리카 대륙의 시선을 끄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병기창고 내에서(1928)
디에고의 벽화에는 무엇보다 집단적인 존재감이 항상 살아 숨쉰다. 이것이야말로 외진 해변에서 독주나 한잔하며 고립된 삶에 매몰되어 있는 무력한 개인에게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멕시코시티 공립학교 2층 <축제의 장>에 그려져 있는 이 벽화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얻은 혁명의 성과와 이상적인 계급투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녀자들도 혁명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작품 중앙에는 마오쩌뚱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프리다가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나눠주는 모습을 등장시키고 있다. 한편 왼쪽 구석에는 또 다른 멕시코 벽화제작의 거장 시케이로스가 붉은 별이 달린 노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난장판인 부자들의 밤(1928)
이 작품 역시 그런 상황적 배경 속에 록펠러 등을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상징적 기업인으로 지목하여 이들의 방탕한 작태를 풍자적으로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덕성과 인간성이 결여된 이들 졸부들의 타락한 부도덕성이 한껏 부각되어진다.
설탕농장과 금광에서의 중노동(1923)
설탕 작업장(1924)
착취자들(1926)
서부 멕시코의 광산을 배경으로 농노(peon)의 고난을 그린 일련의 벽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의 종교화 분위기를 띄고 있지만 노동과 착취, 그리고 연대와 해방을 비애미 담긴 화필로 그리고 있다. 1910년 당시 80%에 달했던 문맹률 때문에 벽화운동은 멕시코 민중이 살아온 과거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교과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지하의 힘 Subterranean Forces
캘리포니아 알레고리(1931~32)
이 벽화는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증권거래소의 런천 클럽 내부에 그려진 작품이다. 처음 도착할 무렵 자유롭고, 자신을 환대해 주는 미국사회가 마음에 들었는지 정치관의 차이로 크게 부딪히기 싫어 디에고는 비교적 온건하고 긍정적인 주제를 여기에서 담아내었다.
반면 좌경적 비평가들로부터는 계급투쟁의 精致한 메시지가 실종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 디에고는 "예술작품이란 모름지기 놓여질 장소와 조화로울 때에만 진실하다"고 반박하며 그 무렵 멕시코 공산당과 거리를 두려는 자신의 정치관을 분명히 피력했다.
한편 그림 상단 중앙에 있는 여인은 당시 여자 테니스 스타였던 헬렌 윌스 무디였는데 바람기 많은 디에고는 이 선수의 하늘로 솟구치는 이미지를 잡는다며 뻔질나게 무디가 나타나는 테니스장을 찾았다. 디에고와는 달리 미국사회가 생경스럽기만 했던 프리다가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전찻길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르내리게 내버려둔 채로..
디트로이트 산업(1932~33)
디트로이트 미술학원 건물 내부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 디에고는 인간과 기계의 일상을 묘사하며 자신의 주특기인 이중성을 교묘하게 접목시켰다. 이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해 남북 양쪽 벽면에 생명과 농업, 또 산업과 죽음의 위협을 대비시킨 것이다.
분주하게 작업하는 현대 노동자들 위로 고대 여신들처럼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누드 인물상들은, 현대산업이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서 인간을 재물로 삼던 피에 굶주린 신들에 비견할 만한 파괴적 미신임을 암시한다.
십자로의 남자 Man, Controller of the Universe(1934)
록펠러 재단의 의뢰로 제작된 이 벽화의 한복판에는 기계를 조작하는 노동자 한 명이 두 개의 타원 교차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이 타원들은 대우주와 소우주를 연상시킨다. 원래 이 벽화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역량과 진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힘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런데 익명의 노동자가 그려지려던 위치에 레닌의 얼굴이 등장함으로서 문제가 불궈졌다. 이를 용인할 수 없었던 넬슨 록펠러가 레닌상 삭제를 요구한 것이었다.
디에고와 록펠러 간의 이데올로기적 기세 싸움이 언론매체를 통해 한동안 전개되었지만 디에고는 삭제를 거부한 채 완성 제작을 포기했다. 대신 좌파 이데올로기에 우호적이었던 New Wokrers School 건물에 이 벽화를 그대로 옮겨 그렸다.
계급투쟁 Epic of the Mexican People - Mexico Today and Tomorrow(1934~35)
벽화의 꼭대기 부분에 칼 마르크스가 산업발달의 미래를 가리키며 서있다. 그 아래 상징적으로 그려진 공장 내부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하수인들이 음모를 꾸미고 매수하는 타락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 밖에는 노동자와 농민이 마르크스가 제안하는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 중이다.
분명히 계급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두 계급 간의 격렬한 투쟁은 회피되고 있다. 다만 벽화의 윗부분에 농민과 노동자가 미래의 문턱에서 손을 굳게 맞잡으며 서로간의 계급적 유대를 확인하는 묘사 정도로 디에고 자신의 온건한 혁명관을 드러낸다.
케찰코아틀의 전설(1929~35)
국립궁전 내부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서 고대 멕시코의 신인 케찰코아틀의 신화를 중심으로 고대 인디오의 아즈텍 문명을 소개하고 있다. 종교문화적 상징인 깃털 달린 뱀신 케찰코아틀이 중앙에 위치하고, 원시적 폭력과 희생 및 권력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는 사회가 보여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박한 조화의 세계에 대한 디에고의 염원이 고대문명을 통한 멕시코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잔잔히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The Great City of Tenochtitlan(1945)
오늘날 멕시코 시티의 전신이자 고대 아즈텍의 마지막 수도였던 테크노치티틀란의 융성했던 무렵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마지막 황제였던 목테수마가 자신의 치적이 만만대에 내려갈 것임을 믿는 듯 위용에 찬 시선으로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굽어 본다.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입으로 자신이 마지막 황제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모자 쓴 남자(1934)
마치 일정기 막바지에 수탈의 극치를 당한 우리 농촌의 풍경이 그대로 오버랩 되는 듯 하네..
에두아르 갈레아노나 노엄 촘스키 등 살아있는 양심들이 자주 다룬 <서구의 제3세계 정복 500년사>에 나오는 일상적인 한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말린 옥수수 껍데기 팔러가는 여인(1937)
이런 그림을 보면 그 당시 민초들이 힘들어 보이는 일상에서도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듯 꿋꿋하게 살아가는 힘을 부각시키려 한 디에고의 심정적 지지심이 엿보인다.
아기를 업고 가는 엄마(1944)
모진 가난의 운명에도 인디오 여인과 그 아이는 세월을 헤쳐갔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현실은 개선되었는지?..
밤풍경(1947)
억압당하고 박해받으며 소외된 멕시코 민중들이 낮 동안의 고달팠던 일상을 보낸 뒤 밤에도 무료한 시간을 나무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서글픈 모습을 강렬한 노란색 붓터치로 절절이 부각시키고 있다. 인디오의 후예들이여.. 그대들에게 삶의 희열을 느낄 날은 도대체 언제 오려는 것인가?..
꽃을 지고 가는 여인(1950)
아기 돌보기(1954)
일하는 남자(1956)
아르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1947~48)
이 벽화에는 멕시코 독립투쟁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그 중심에 성장을 한 해골의 손을 잡고 있는 장난스러운 소년으로 디에고 자신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력을 나타내는 모습으로 주위에 포진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개인에 대한 특별한 느낌을 끄집어내기 보다는 불변의 민족이라는 관념 속에 포착된 모든 군상들을 포용하려는 듯 하다.
Totonac Civilization(1950)
<토토낙의 문명>은 국립궁의 복도에 제작되어 있는 벽화로 화려한 의상의 인디오 부족들이 물물교환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뒤쪽에는 아름다운 피라밋과 함께 민속졸이 중 하나인 높은 탑 위에 사람을 거꾸로 매달고 돌리는 놀이도 그려넣고 있다. 제단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광경을 재현시켜 멕시코 민중에게 자신들의 평화롭고 우수했던 고대 문명의 추억을 일께워 준다.
모스크바의 노동절 행진(1956)
프리다가 죽고나서 커다란 심적 타격을 입은 디에고는 자신의 죽음도 임박했음을 어렴풋이 감지한 채 모스크바를 방문해 <메이데이>의 장려한 노동자 행진을 화폭에 담는다. 프리다와 자신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마지막 이별 행진임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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