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세계 17

제리코(1791~1824)의 그림 세계

제리코(1791~1824)의 그림 세계   노르망디 지역 루앙에서 출생하여 베르네와 게랭에게 그림 기법을 사사한 테오도르 제리코(T. Gericault)는 프랑스 회화의 아카데믹한 전통에 반기를 들며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며 축적된 말에 대한 격정적 애착은 그의 초기 그림들에서 잘 나타났다. 루브르 미술관에서 티치아노와 반 데이크의 그림을 모사하며 최초의 주목할 만한 작품인 '황실근위대 기병 장교' (1812)를 제작했다. ​여기에서 그는 말과 말 탄 사람의 순간적 자세에서 전해지는 전쟁의 격렬성, 색채의 생생함과 역동성을 잘 묘사했다. 2년 뒤에 그린 '부상당한 중기병' 역시 한 순간을 잘 포착하여 전쟁에서 패전한 병사의 비애감을 상상력 속에 잘 나타내었다. 자화상(1820..

베르메르(1632~1675)의 그림 세계

베르메르(1632~1675)의 그림 세계   작성자: 김재민2006. 11. 19 서구 회화사에서 전례없던 17세기 네델란드 회화의 황금기를 빛낸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얀(또는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로테르담 근교 델프트에서 중고 골동품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베르메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외모에 화가로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 ​살아 생전에는 도시의 화가조합에도 등록해 이름이 알려졌지만 작품수가 적은데다 거의 팔지도 않았기에 사후에는 화단에서 급속히 잊혀져 갔다. 그의 이름이 회화사에 등장한 것은 그가 죽은 후 거의 200년이 지나서였다. 베르메르 자신으로 추정되는 자화상(1656) 베르메르는 43년의 생애동안 겨우 4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고, 그 ..

폴 고갱(1848~1903)의 그림 세계

폴 고갱(1848~1903)의 그림 세계  작성자: 김재민2006. 11. 12 고갱은 1848년 2월 혁명의 여파로 정치적 소요가 심했던 시절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남미로 이주해 페루의 리마에서 4년 간 머물렀다. 이 시절의 이국생활이 후일 남태평양의 섬에 대한 동경심을 키운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865년 하급선원이 되어 대서양 항로를 오가는 무역선에서 일했고, 몇 년 후 파리 소재 금융회사인 베르탕 상사에서 근무했다.   캔버스 앞 자화상팔렛을 든 자화상(1894)  1873년 거리에서 알게 된 덴마크 여인 소피와 결혼해 다섯 아이를 얻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고갱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부터인가 '회화의 악마'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27~28..

앙리 루소(1844~1910)의 그림 세계

앙리 루소(1844~1910)의 그림 세계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웃사이더로서 원근법까지 자주 무시하는 화풍 때문에 소박파라고까지 불려지는 루소는 파리 근교 세무국에서 15년 간 수세 관리로 근무했다. 30세 중반 때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884년에 퇴직한 뒤 마침내 전업 화가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루소 1894년 앵데팡당전에 참가하여 을 전시했는데 여기에서 몽환상태에 가까운 독창적 기법을 보여주었다. 양식의 발전이나 시대의 동향과는 전혀 무관한 듯 생각하지도 않았던 걸작이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갑자기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 있다면 1897년 파리 앙데팡전에 출품되었던 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꿈이라고도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괴상한 세계로 ..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그림 세계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그림 세계 2006. 11. 1.김재민  궁정화가이자 풍자화가로서 이중적 면모를 보이며 18~19세기의 스페인 역사를 화폭 속에 개성있게 옮긴 고야는 끝없는 예술적 상상력으로 괴기스러운 실체를 과감하고 깊이있게 창조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살다 간 시대는 예술사적으로 후기 로코코 시대에서 낭만주의에 들어서는 시기였는데 사회사적으로는 민중혁명과 외국의 침략, 내전으로 얼룩져 있었다. 계몽되지 못한 왕정 지배체제와 인간성이 상실된 전쟁 속에서 극심하게 억압받는 민초들의 저항심을 극적으로 묘사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그칠 줄 모르는 위정자의 권력욕과 우매함에 대한 냉소적 항변으로 가득찼다.  젊은 시절의 고야(1791)원숙기에 접어즌 고야(1815)​1800년에 제작한..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작품 세계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작품 세계 2006. 10. 27.작성자: 김재민 19세기 전반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파를 대표하는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는 독특한 빛의 광채를 제대로 구현한 화가로서 커다란 명성을 떨쳤다. 또 판화가로도 뛰어난 재능을 과시했고, 음악과 문학에 대해서도 다방면의 조예를 가져 시인 보들레르로부터 근대예술의 출발점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은 예술론을 저작하기도 했다.  들라크루아 초상 들라크루아에 의해 주도된 낭만주의 회화는 규격화된 데쌍과 안정된 구도를 기초로 교과서적 회화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적 화풍에 반발하여 생겨났다. 이들 낭만파는 모든 이에게 공감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 즉 이상적 미가 있다는 전제하고 이를 고수하려는 자크 다비드같은 신고..

렘브란트(1606)의 그림세계

렘브란트(1606~1669)의 작품 세계  작성자: 김재민2006. 10. 21  빛의 유혹에 자신의 영혼을 던졌다고 할만큼 빛의 흐름을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포착했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van Rijn)는 1606년 7월15일 네델란드의 레이덴에서 출생했다. 그가 활약한 17세기는 네델란드 회화의 황금시대로 불릴만큼 할스, 로이스달, 베르메르 같은 뛰어난 화가들이 수많은 걸작을 남긴 시대였다.​유트레히트파, 카라바조주의, 티치아노로 대표되는 베네치아파, 그리고 플랑드르의 바로크 유형이 한꺼번에 나타난 이 시기의 회화적 조류에 렘브란트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23세 때의 자화상(1629)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던 시절의 자화상(..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세계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세계  디에고 리베라(1886~1957)는 11살 때부터 멕시코 미술학교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며,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던 해인 1907년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를 거쳐 1911년부터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입체주의의 조류를 직접 만났다.​그러나  브라크, 피카소, 피카비아 등 입체파 화가들과 광범위한 교류를 했음에도 그 조류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타고난 색채 감각에 의한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흡수했다. 즉 입체파가 추구했던 형상의 재구성에는 수긍했지만 무채색 사용 같은 것에는 전혀 찬동하지 않았다.  이렌 리치에게 헌정한 자화상(1946)말년의 프리다와 함께  멕시코 혁명 이후 신정부는 멕시코 인디언들의 토착 문화에 대한 인식을 ..

프리다 칼로의 생애와 작품세계

프리다 칼로의 생애와 작품세계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54)는 멕시코의 한촌 코요아칸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1910년대의 멕시코에는 민중적 각성에 의한 농민봉기, 노동자 파업, 지식인의 무장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다가올 러시아혁명을 예고하는 최초의 사회혁명이 여기에서 일어났다.  디에고와 결혼 사진(1929)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프리다는 21세 되던 해에 운명적 사랑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났다. 천재 벽화화가이자 열렬한 사회주의자며 호색한인 디에고와의 결혼은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당대의 평가를 받았다. 평생에 걸쳐 여러 번..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그림 세계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그림 세계  2006. 10. 6.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익숙한 우리의 감각을 뒤집고 관습을 거부하며 실제의 세계를 시험하기 위해 한 평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창의성을 회화속에 표명함으로서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하여 화가라는 이름을 거부하며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음악이나 글로 생각을 나누듯이 회화를 통해 사람들과 생각을 교류하려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젊은 시절 마그리트 노년의 마그리트  그에게 회화란 현상세계를 넘어서는 '메타 리얼리티'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자 존재의 평범함에 대항하는 영원한 반항정신의 전달체였다. 그럼에도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는 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