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세계

드가(1834~1917)의 그림 세계

백조히프 2018. 4. 3. 21:45




오늘은 프랑스 화가 일레어 드가의 그림세계를 소개하네요. 데쌍을 중시하며 정확한 소묘 능력으로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으로 도시적 삶을 묘사하며 우아하게 드러내는데 독특한 한획을 그었다는 화가지요. 도회적 인물(발레 무희, 경마 기수, 카페 여가수, 세탁소 여직공, 욕실 여인 등)들의 동세들을 순간적으로 정확하게 포착하여 일본 우끼요에에 영향받은 바처럼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부분적 강조로 수많은 수작들을 양산했심다.


특히 제게는 요즘 미투운동으로 많은 분야의 유명인사들이 하루가 멀게 추락하는 상황 속에서 이 양반이 150년도 더 된 시절에 그린 <강간>(The Rape)이라는 그림이 퍼뜩 생각나 이를 모티브로 삼아 이 아재의 그림세계를 소개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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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1834~1917)의 그림 세계

 

 

작성: 김재민

2007. 2. 17


일레어 제르망 에드가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gas)는 1834년 7월19일 부유한 은행가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출생했다. 공상기간이 많았던 중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부친의 바램을 저버리지 못해 법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내 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1855년 미술학교로 전과했다. 여기에서 신고전학파의 거두 앵그르의 제자 L. 라모트에게 사사했다.  


내성적 분위기의 드가


원숙기의 드가

 

1856년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에 심취하였다. 이때부터 10여 년 간은 화가로서 본격적인 수련을 위해 고전 그림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시절 새로운 회화적 기법과 파스텔 사용법 등에 대한 힌트를 터득하게 되었다. 파리로 돌아온 74년부터 86년까지 인상파전에 7회나 출품한 뒤 다른 인상파 동료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데쌍을 중시하며 정확한 소묘 능력으로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으로 도시적 삶을 묘사하는데 우아하게 드러내었다. 도회적 인물의 동세들을 순간적으로 정확하게 포착하여 일본 우끼요에에 영향받은 바처럼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부분적 강조로 수많은 수작들을 양산했다. 경마의 기수들과 함께 발레의 무희, 카페의 여가수, 세탁소 여직공, 욕실의 여인들을 특히 즐겨 그렸다.

선천적으로 자의식이 강한 성격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보내다 만년에 시력을 잃고 그림보다 조각 제작에 더 높은 예술혼을 보이다 1917년 파리에서 83세의 생애를 마쳤다.

 

드가는 인상파 그룹에 참여했지만 대상의 정확한 묘사보다 물체를 둘러싼 광선의 흐름에 커다란 관심을 보인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앵그르식의 사실주의에 입각해 야외 풍경보다는 인간 동작의 한 순간을 사진 스냅처럼 탁월하게 잡아내었다.

이렇게 정확함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적 감각은 파스텔화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정을 구가하였다. 특히 인간의 동작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발레리나의 그것을 파스텔로 즐겨 다루었다. 그의 좀 더 뚜렷해지고 절제된 회화적 선은 후일 앙리 마티스와 같은 야수파 화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무대 위 스타 무용수(1878)

 

드가의 발레 오페라좌 그림 중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작품이다. 넓은 무대에서 꿈의 날개를 펴 보이는 듯한 자태로 회전하는 순간의 프리마 무용수를 높은 시각에서 포착하고 있다. 커튼 뒤로 가리워진 남자와 조연 무용수들은 자유분망한 필치 속에 간략하게 처리된다. 배경의 오른쪽 저 멀리 펼쳐진 무대장치는 전면의 공간감을 더 한층 확대시키며 무대면과의 원근감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화가의 독특한 화면 구성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꽃화분 옆에 앉아있는 여인(1865)

 

이 그림에서 탁자 곁에 팔을 기대 앉은 여인과 꽃들은 구도상 서로 양분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수 많은 꽃송이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데 비해 여인의 모습은 왼족 화면 한쪽에 치우쳐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인물이 주대상이 되고 꽃들이 부제가 될터인데 드가는 이런 시각을 한번 뒤바꾸어 본다. 불균형한 면적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안정감이 유지되는 것은 드가가 시도한 구도 설정의 재치 때문이다.

현란한 색채의 갖가지 꽃이 약간 산만하게 어울려져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옆에 있는 여인의 모습과 표정에 시선을 더 주게 한다. 아울러 인물의 뒷배경을 창문 저 멀리 펼쳐놓음으로서 화면의 공간감을 확대시켜 그림의 전체적 안정감을 확보한다.   

  

베렐리 가족(1867)

 

1867년 살롱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그 당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드가의 초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서도 드가는 의도적으로 대담한 화면구성을 선보인다. 의자에 앉아 등을 돌린 뒷모습의 자세를 취하는 드가의 베렐리 고모부, 얼굴의 측면 만을 보이는 고모, 그리고 두 사촌 여동생들의 시선이 제각각이다. 


경직된 정면향의 자세가 아닌, 순간 포착의 자연스러움은 파격적이기조차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으로 인해 현실의 실제감이 더욱 생동감 있게 드러내어지는 것이다.   


 

관람석 앞의 기수들(1868)
 
1862년부터 드가의 주요 작품 테마로 등장하는 경마 연작 중 이 그림 역시 독특한 구도와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잘 드러낸 드가의 수작 중 하나로 사랑을 받고 있다. 제작은 아틀리에에서 기억에 의거해 행했지만, 마치 옥외의 밝은 빛 아래에서 바로 그린 듯한 실감을 준다. 경마를 시작하기 전 기수들의 흥분된 서성거림을 역동적으로 화폭에 담고 있다. 특히 말들의 그림자를 풀밭에 길게 드리워지게 묘사함으로서 그 동적 효과를 상승시킨다.   



제임스 티소의 초상(1868)
 
1850년대 프랑스에 처음 소개되어 빠른 속도로 대중화된 일본 판화는 서구의 회화적 전통과 전혀 다른 구성 방식을 보여주었다. 드가 역시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린 것 같은 불안정한 느낌의 일본 판화에서 새로운 표현세계를 발견하여 이 작품을 제작했다. 절친한 친구 화가였던 티소를 모델로 한 이 초상화는 우끼요에 식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각을 취함으로서 원근과 공간감을 확대하고 있다. 작품의 윗부분을 가로지르는 배경 그림은 일본 풍속화이다.  



강간(1869)
 
드가 그림 중 카테고리화 하기가 복잡하고 난해한 사례들이 몇몇 있다. 그것들은 개념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수수께끼와 같아 관람객에게 '어떻게 봐야 하나?'와 '왜?'라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들이다. '강간'(The Rape)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은 그러한 부류의 대표작이다. 체념한 듯 등 돌리고 있는 여인과 조롱하듯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모호한 제목만큼이나 이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석이 등장한다.
강간이라는 여성비하적 소재에 잠시 눈을 돌린 채 드가가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만 염두에 둔다면, 남녀관계가 갖는 당시 사회의 불평등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려 했다는 추측이 가능해 진다. 하지만 이 그림에 깔린 음울한 분위기와 소재의 불편함은 오랜 기간 '여성혐오자'라는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드가의 왜곡된 여성관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났다는 비판적 시각도 간단하게 기각하기를 어렵게 만든다.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성적 관음증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드가 반대파들의 주장이 발레 무용이나 욕실 그림들에서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위에서의 발레 리허설 The Dance Class(1874)
 
이 그림은 제 1회 인상주의전 출품작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시각과 화면의 중앙을 비워두는 구도는 드가가 매료되었던 일본 우끼요에 목판화에서 영향 받았음에 틀림없다. 단색 톤의 그림에서 이처럼 생동감이 감도는 것은 음영 대비 속에 독특한 동작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 각별한 관심을 품었던 드가의 회화 감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리허설 중 지루한 듯 하품하거나 등을 긁적이는 전면 무희들의 모습을 통해 화가의 여성무용수들에 대한 속물적 비하감이 언뜻 느껴진다.     
 

무대 위에서의 총연습(1874)

 
드가가 발레에 대해 원래 가졌던 주요 관심사는 넓은 공간에서 약동하는 무희들의 군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무희들이 개별적 묘사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돌리게 된다. 이 그림에서도 총연습 중에 일부 무희가 딴청 부리는 것을 스냅 사진처럼 생생하게 포착해냄으로서 오히려 회화적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오페라의 댄스 Class(1872)


 

발레 그림 중 초기 작품으로 오페라 극장의 무용실 광경이다. 수직과 수평선의 구성이 이루는 안정된 정적의 공간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시선의 흐름은 왼쪽 무희에서 가로대에 한 발을 걸친 무희를 거쳐 오른쪽으로 옮겨가는데 전체적인 역동감이 물씬 풍겨난다.

  

댄스 학교 Ecole de danse(1872)

 

여기서도 드가는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과 신발을 신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개개 무희들의 일상적 단면을 아주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광에 투시된 댄스학교 실내 연습장에서 발 끝을 곧추 세워 연습에 막 돌입하려는 무희, 연습차례를 기다리는 무희, 막게단을 올라오는 무희 등의 모습에서 연습 공간내의 분주함이 잘 느껴진다.  

 

댄스교습(1875)

 

이 작품은 유명한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쥘 페로가 지도하고 있는 무용수업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20명 이상의 인물이 연습실에 퍼져 있는 여기에서는 드가가 그간 즐겨 사용했던 화면 구성과는 다른 점이 엿보인다.

연습실이 북적거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리본을 다시 매거나, 스트레칭 연습을 하거나, 동반 가족과 얘기를 나누는 무희 그룹과 페로 사이에 일정 거리를 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화면 하단에는 작은 개 한마리가 물병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란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철저한 일상성의 세계이다.  

 

발레 리허설(1875)

 

무대 실연이 임박한 시점에서의 최종 리허설 장면 같다. 조명과 무대 배경, 그리고 무용수들의 곧추 선 동작과 슈즈 끈을 다시 매는 모습이 안무가의 마무리 지적와 함께 긴장감이 배어 있는 리허설 분위기를 재현한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느낌이 화면 가득 전해 오는 듯 하다. 


부케를 든 무희(1877)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프리마 무희가 관객이 던져 준 꽃다발을 받아 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무대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배경에는 조연 무용수들이 마무리 군무 동작으로 대단원의 갈채를 유도하는 듯 하다. 화면 전체가 부드럽고 밝은 색조를 띄고 있어 드가의 절정에 이른 파스텔화 기법을 감상할 수 있다.



무용시험(1878)

 

제5회 인상주의전 출품작으로 평론가 조리스 칼 위스망의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무용시험을 앞 둔 소녀 지망생들이 자신의 발 동작을 살펴보거나 스타킹을 고쳐 신고,  보호자인 듯한 노부인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비스듬한 각을 이루는 지면의 불안정한 느낌을 완화하기 위해 수직으로 곧추 선 인물을 배치해 대각을 이루는 구도로서 안정감을 회복한다.    

 


발레 연습(1878)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듭된 수정 흔적은 드가가 마지막까지 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는 증거이다. 그 결과 이 그림은 그의 발레 관련 작품 중 구성상에서 가장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3인 군무를 연습하는 정경인데 벽과 바닥의 공간 대비가 대담할 정도로 커보인다.

화면 왼편 상단부에는 3명의 무희가 몸의 균형을 잡는 동작을 하고 있고, 오른 편에는 옆머리가 특별나게 길쭉한 안무 선생 모습이 보인다. 화면 전경에는 어느 무희의 보호자인 듯한 노부인이 무용 연습에는 무관심한 듯 신문을 열심히 보고 있다. 이런 심드렁한 부인의 모습을 화면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서 예술과 일상성의 세계를 다시 한번 대비시킨다.  



압쌩트(1876)

 

카페를 대상으로 그려진 드가 작품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그림 중 하나이다. 제작된 지 17년이 지난 1893년 런던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런던 관람객들은 파리의 하류 사회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냉철한 극명성에 상당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싸구려 술 압쌩트 한 잔을 앞에 놓고 무표정한 여인의 초라한 행색과, 옆에 앉아 다른 곳에 멍한 시선을 보내는 알콜 중독자같은 남자의 모습이 소외되고 박탈당한 자들의 실제 전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뒤쪽에 보이는 거울과 탁자의 가장자리 선이 사선으로 기울고 있음에도 두 인물이 차지하는 화면상의 묵직한 배치감으로 인해 알맞은 균형세를 자아내고 있다. 약간 위에서 내려다 본 시각 속에 인물이 화면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구도가 우끼요에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시사한다.        

 

개의 노래(1877)

 

카페 콩세르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팔을 늘어뜨린 채 개짓는 형상으로 노래를 부르는 샹송 가수 에마 발레동을 강한 후트 라이트의 조명 속에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역시 '강간'에서처럼 발랄하고 우아한 목소리의 당대 인기 여가수의 노래 모습을 왜 이런 식으로 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당혹감을 준다. 드가 반대자들로부터 '여성혐오자'의 진면목이 또 한번 발현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검은 장갑의 여가수(1878)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드가는 이 그림에서 여가수에게 아주 바짝 다가간 듯한 위치에서 몸의 상반부만을 그리고 있다. 각광을 받으며 열창하는 가수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어 배경에 나타난 화려한 색상의 커튼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앞의 여가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몰입의 진지함이 배여난다.     

 


기다림(1882)

 

드가는 발레의 세계에서 허무적인 일상성을 담아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연습을 마치고 잠깐 휴식하는 중 발목의 피로를 푸는 무희의 독특한 포즈와, 보호자인 듯 하며 연습시간의 종료를 함께 기다리는 검은색 의상의 무표정한 여인을 대비시킨다. 그리하여 화면 전체에 그 어떤 일상에 매몰된 애잔한 페이소스 같은 것이 엿보인다. '예술은 당대의 사회상을 벗어날 수 없다"던 드가 자신의 회화 철학이 문득 생각나면서..    



다림질 하는 여인들(1884)

 

이 작품에서는 다림질의 열기와 수증기로 후끈거리는 세탁소 안 정경이 두 여자 세탁부의 상반된 동작과 함께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오른편 핑크색 의상을 입은 여인은 다리미를 힘껏 내리 누르며 고단하게 다림질을 하는데 반해, 왼쪽 동료 여인은 다림질을 잠깐 잊은 양 한손에 포도주 병을 잡고 한껏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한다. 하층시민들의 밥벌이를 위한 고단한 삶의 일상이 가감없이 포착되고 있다.  


욕실에서 머리 빗질하는 여인(1885)

 

드가는 자신의 누드들이 '열쇠구멍으로 들여다 보는 듯한' 시각속에 그려진 것임을 시인했다. 그 때문에 모델 여인들은 제3자의 관음적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막 목욕을 마치고 머리 빗질하는 여인은 꾸밈이 없는 자태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드가의 누드는 음욕을 자극하는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어떤 관조적 절제감 같은 것도 함께 나타나 적절한 균형을 찾는데 성공한다.      

 


욕조통에 들어간 여인(1886)

 

욕조 여인 누드 연작 중 가장 아름다운 포즈를 포착한 그림이다. 욕조통에 들어가 목욕을 준비하는 여인의 빼어난 여체미가 르누아르의 여인들과는 아주 달라 보인다. 드가의 정확한 드로잉능력이 한껏 돋보이는 작품이다.  

 


욕조통에 앉아 있는 여인(1886)

 

1878년부터 시작한 욕조 누드화 작업의 막바지인 1886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드가의 예술적 완숙성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다. 관람객의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닦는데만 전념하는 여인의 모습, 화면을 과장되게 양분하는 듯한 테이블의 대담한 구도, 그리고 여인을 굽어 보는 시선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이상화된 완벽한 미인 누드화가 아닌 점에서 드가 누드화의 사실적 진정성이 돋보이게 된다. 

 


머리 빗질받는 여인(1888)

 

이 누드 여인은 목욕을 끝낸 뒤 하녀에게 머리 치장을 맡긴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3자의 시선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무방비적 모습이다. 르누아르의 누드 여인들에 비해 풍만한 여체의 성적 매력은 거의 없어 보인다. 드가는 다양한 자태의 누드를 통해 한 순간의 여체가 형성하는 특이한 선들의 체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