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언론매체 기사/진보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말, 자주 하세요?

백조히프 2026. 2. 21. 12:21
반응형

한겨레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말, 자주 하세요?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 사전] 소극적 능력(Negative Capability)

  • 수정 2026-02-19 09:15
  • 등록 2026-02-19 09:00
 
클립아트코리아
 
 

“만약 모든 것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딘가에 사악한 사람들이 숨어 악행을 저지르고 있고, 그들을 우리와 분리해 파괴할 대상으로만 여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선과 악은 모든 인간의 심장을 가로지른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30살 지민씨는 5년째 홍보대행사를 다니다가 최근 새로운 결정을 했다. 대학생 때부터 품어온 꿈인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드라마 아카데미에 등록한 것이다. 입사 초반에는 보도자료를 쓰고, 캠페인을 기획하고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반복되는 비슷한 업무는 지민씨를 지치게 했다. 퇴근 후 책상에 앉아 드라마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래 미뤄두었던 꿈은 구체적인 계획이 되었다. 시놉시스를 구상하고, 인물과 배경, 캐릭터를 짜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런데 드라마 대본 합평을 하면 지민씨가 반복적으로 듣는 피드백이 있었다. 인물의 고민이 너무 빨리 해결된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갈등이 깊어지기도 전에 정리되는 느낌이 들거나, 플롯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지민씨의 시나리오는 인물이 문제에 부딪히면 곧바로 깨달음을 얻고, 관계 갈등은 빠르게 봉합되었다. 반전은 거의 없었고, 선과 악의 구도는 명확했다.

 

지민씨는 처음에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물이 문제에 부딪히면 빨리 선택하고, 빨리 깨닫고, 다음 장면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갈등을 오래 끌면 답답할 것 같았다. ‘드라마는 진행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닌가?’ 고민하던 지민씨는 자신이 대본 속 인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다루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인물이 모순된 감정을 갖고 있으면 불편했다. 갈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지속되는 장면은 얼른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는 지민씨가 습관처럼 자주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확신이 없을 때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라고 사람들에게 물으며 정답이 정해진 것처럼 행동하는 지민씨였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를 어려워하는 지민씨를 정신분석가 비온이 말한 ‘소극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을 통해 이해해보자.

 

클립아트코리아

 

존 키츠가 말한 셰익스피어의 자질

 

‘소극적 능력’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영국 시인 존 키츠다. 존 키츠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결핵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키츠는 1817년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위대한 시인에게 필요한 자질을 고민하다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가졌던 특별한 능력을 발견했다고 썼다.

 

키츠는 셰익스피어가 예술가로서 가진 가장 훌륭한 장점을 ‘소극적 능력’이라 부르면서, ‘조급하게 사실이나 이성에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 신비, 의혹들 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라 말했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창조적 수용성을 말한 것인데, 여기에서의 소극적(negative)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서둘러 설명하거나 단정짓지 않는 태도, 판단을 유보하는 힘을 의미한다.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섣불리 제거하지 않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알 수 없는 상태를 관찰자의 자세로 더 깊이 바라보는 능력이다. 키츠가 말했던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 인물을 단면적인 캐릭터로 그리지 않았다. 인물들은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함을 모두 가진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수록 인물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다.

 

햄릿은 결단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망설인다. 리어 왕은 딸 코딜리아의 절제된 표현을 오해한다. 인물들은 서로 착각하고 오인하며 쉽게 판단하지만, 작가는 그 판단을 즉각 정정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내려놓을 때 새로운 통찰과 이야기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영국의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은 ‘주의와 해석’에서 키츠의 편지를 인용하여 정신분석적 사고에 필요한 태도가 ‘소극적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비온에게 좌절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란, 불확실성과 의심 속에서 소극적 능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해석이나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면 새로운 생각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비온은 ‘비록 지금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는데, 판단을 어렵게 하고, 생각하는 것을 불편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은 바로 불확실성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까지 두려워했을까 싶은 삶의 순간도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과 좌절을 낳고 사고를 단순화시킨다. 하지만, 조급하게 결론 내리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이 불확실성이란 깊이 있게 생각 속에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가만히 머물러 보는 마음

 

소극적 능력은 문학적 맥락에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예측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나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동시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삶의 예측불가능한 장면에서 매 순간 놀라는 자신에 관해 썼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한다. 심리학 서적을 읽고, 경제 공부를 하고, 경력을 차곡차곡 쌓는다.

 

가능한 선택지를 늘리고, 실패 확률을 낮추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임에도 나만 문제가 많은 것 같고,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스스로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껴지게 한다. 이런 불완전한 나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진다.

 

클립아트코리아

 

키츠는 세상이 완전히 이해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곳이라 여겼다. 키츠는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던 결핵에 자신이 걸렸을 때 따뜻한 기후가 도움될 거라는 기대 속에 로마로 떠났지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키츠는 삶의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앞에서도 최악을 상정하거나 과도하게 낙관하지 않았다.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할 때,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울 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칠 때, 그저 그 안에 가만히 필요한 만큼 머물러 보는 마음이 바로 키츠가 말한 ‘소극적 능력’이다. 서둘러 답을 내리지 않고 불명확함과 모호함을 탐구하듯 가만히 머물러 보는 마음이다.

 

나의 소극적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해당하는 문항을 체크해보세요.

 

□ 선택 전 100%의 확신이 필요하다.

□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기보다 타인에게서 답을 찾는 편이다.

□ 선택이 어려울 때는 누군가의 확답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 결정을 내린 뒤에도 계속해서 검증한다.

□ 상대방이 ‘모르겠다’고 말하면 불편하다.

□ 실패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긍정적 결말을 덧붙인다.

□ 중요한 선택임에도 즉각적으로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 TV나 영화에서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 “그래서 결론이 뭐야?” 라는 말을 자주 한다.

 

* 0~2개: 비교적 불확실한 상태를 잘 견디는 소극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