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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으면 훨씬 더 잘 고쳐집니다
[썼으면 고쳐야지] 끌어올리는 마음
26.06.06 19:24 | 최종 업데이트 26.06.06 19:24 | 최은경(nuri78)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재를 시작하면 하늘이 돕는다. 쓸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쓸 게 생긴다. 그렇게 또 마감을 지키게 된다. 새로운 소설을 쓰는 중이던 <어세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작가가 쓴 아래 글을 읽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며 소설을 계속 읽는다. 초고를 쓰던 시기에도 글을 읽기 전에 옆에 놓아둔 소설을 몇 페이지씩 읽었다. 주로 이미 읽은 소설들이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들. 나는 왜 이 소설을 재미 있게 읽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소설을 읽다 보면 어쩐지 자신감도 생기고 위로도 받는다.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도 결국은 단어의 묶음이고, 또 평이한 문장들의 나열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다.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라고 해도 번뜩이는 아이디어, 폐부를 찌르는 통찰을 모든 문장에 담지 않는다. 나 같이 평범한 독자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을 잇다가 소설가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또는 느끼는) 시점에 빛나는 생각들을 담는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에 밑줄을 긋고.
퇴고를 할 때도 소설을 옆에 두고 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내 소설을 읽고 수정하는 것이다. 자신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
- 황보름 작가의 브런치스토리 '퇴고 시작'
'에세이를 쓰는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많이 읽는데, 소설가는 소설을 더 많이 읽나 보다'라는 당연한 생각도 잠시, 그의 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내 소설을 읽고 수정한다'는 것이었다. "자신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그러고 보니 그의 비법이란 게 소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에세이를 많이 읽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좋은 에세이라고 모든 글에 '킥(강렬한 맛이나 핵심 재료를 뜻하는 용어)'이 있는 건 아니었다.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책에 실린 모든 글에 '킥'이 있다면 그것도 부담스럽지 않을까. 반대로 '킥'이 하나도 없는 책은 치른 값을 생각하면 허탈한 마음이 들 것 같고. 강약 조절이 잘 된 책이 읽기 좋다. 그런 책은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예기치 않을 때 등장하는 장면에서 대책 없이 호로록 마음을 내주게 되니까.
그래서 '내 글은 왜 이렇게 히마리('힘'의 전남 지역 방언)가 없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냐고? 그런 글들이 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쉼표가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러니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는, 방송인 이호영씨가 자주 하는 말처럼 텐션을 '끌어올려' 써야 한다.
퇴고할 때는 더 그렇다. 고치다 보면 마음에 드는 때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나. 고치고 고치다 보면 나아져야 하는데, '최종'이 '최최종'으로 다시 '최최최종'으로 넘어가도 만족스럽지 않을 때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그저 기분일 뿐이기도 하다. 그런 기분은 바꾸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왜 고민을 하겠어?' 뼈 때리는 이 말도 맞다. 그런데 혹시 기억하시는지?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이 장면을. 변은아(고윤정 역)와 황동만(구교환 역)이 나누던 대화.
"저는 이거(감정워치) 차면 기분 좋아질 줄 알았어요. 아, 나 지금 우울하구나. 바꿔보자. 하면 바꿀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안 되던데요."
"놉. 감정은 의지로 못 바꿔요. 절대. 우울할 때는 길바닥에 떨어진 500원이라도 주워야지. 작은 성공, 그런 게 있어 줘야 기분이 바뀌지. 의지로는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매일 이쯤에서 뜁니다. 기록 경신의 행복을 위하여."
기분은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말, 공감한다. 기분을 바꾸는 건 작은 성공이라는 말도. 글을 쓸 때도 그런 적 있지 않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지은 한 문장이 쌓일 때마다 "경신"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바꾼 문장이 마음에 쏙 들면 황동만이 전속력을 다해 뛸 때 변한 속도판 숫자 24만큼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쌓아가는 동안은 행복하다
그러나 글은 속도전이 아니다. 쌓고 쌓는 게 글이다. 누적의 기쁨에 가깝다. 양이 질을 높인다. 글을 많이 다듬어 볼수록 검토 실력이 늘고, 많이 쓰는 만큼 글 실력도 는다. 이게 나의 믿는 구석이다. 믿는 구석을 뒷배 삼아 계속 글을 쌓는다. 마음이 푸지고 푸짐해지는 기분이다. 쌓아가는 동안은 행복하다. 쌓을 게 없는 날이 괴롭고 힘들지.
퇴고도 마찬가지. 고치기 전과 고친 후의 문장을 보라. 500원을 주운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지 않나. 내가 떠올린 단어에, 맞춤한 서술어. 딱 알맞은 비유. 내가 어떻게 이렇게 썼지? 싶은 문장 하나. 고치기 전후의 문장 차이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 차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렇게 쓰다 보면 이렇게 빨라져도 되나 싶은, 무서운 속도의 '격한 수치'를 맛볼 날도 오겠지. 오로지 꾸준히 썼을 때 생기는 기쁨을 나는 계속 만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또 한 가지. 나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글도 누군가는 좋아하더라. 반대로 나는 좋아했던 글도 누군가는 별로라고 여길지도 모르는 일. 글쓰기의 재미는 이런 걸 말하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 어디서 빵 터질지 모르는 글의 매력을 생각하면,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물론 안다. 그 말이 독자 입맛에 맞게만 쓰라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내가 가진 매력을 독자에게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지를,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을 더 치열하게 하는 것에 더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그러니 퇴고할 때는 기분을 바꾸자. 기분이 좋으면 훨씬 잘 고쳐진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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