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탐방기-1/3
2019. 2. 24
방문객 여러분, 지난 2/19(화)~2/22(금) 기간에 몽골여행을 다녀왔네요. 대학동기인 한교수가 아주 가성비 좋은 몽골행 관광상품이 나왔다고 동행을 권하기에 다른 대학후배, 그리고 한교수 지인과 함께 모두 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체 33명으로 구성된 연합 패키지 관광단에 묻혀서 갔다온 것임다.
그동안 제게는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집중관심도에서 중간 쯤에 머물던 국가였는지라 이번 여행을 계기로 조사 좀 제대로 해보자 싶어 데이비드 모건의 ‘몽골족의 역사’, 강툴가의 ‘몽골의 역사’, 그리고 강사라의 ‘샌배노(안녕하세요?) 몽골어’를 출발 전날 대출해 각 1/3 쯤씩이라도 읽고 갔더니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가 좀 더 솟아나는 듯 했네요.
이번에는 세 밤을 자고 왔으니 3번에 나누어 탐방기를 올리려 함다.
<몽골 전도(UB: 울란바토르)>
미지의 여행길에 오르다
지난 1월 말 해외여행에 이력이 난 한교수가 저가항공 에어부산이 최근 개통한 부산-울란바토르 노선의 활성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아주 파격적인 가격(3박4일 30만원)에 제공한다는 동계특가 몽골여행 상품정보를 전해주며 같이 가자고 하여 성사된 이번 여행에 허겁지겁 참석하여 2/19일 아침 9시까지 지하철과 경전철로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가보니 우리팀 다른 일행들은 이미 도착해 있어 비자받은 여권과 항공 티켓을 수령하고, 진영, 대구, 수도권에서 온 다른 단체팀들과 합류해 출국수속을 받은 뒤 에어부산 보잉 737기에 올라탔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
<시내 이동 버스 내>
기내는 거의 만석이었고, 양이 부담스럽지 않은 볶음밥 도시락이 한번 제공되고는 3시간 40분 여를 날아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에 착륙했다. 국토 크기가 한국의 16배에 달하는 156.7만 제곱킬로, 인구 3백만이 조금 넘어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 당 1.8명(세계 최소)이라는 이 나라의 관문 공항이라 그런지 크게 낙후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현대적인 세련됨과도 좀 거리가 멀었다.
호감 주는 몽골녀 가이드
캐리어 짐을 찾고 별로 까다롭지 않은 입국절차를 마친 우리 일행과 전체 33명의 한국여행단은 우리를 기다리는 여성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현대차 대형버스에 올라탔다. ‘아유나’라고 자기 소개를 한 가이드는 울란바토르대 한국어과를 졸업한 뒤 한국기업에 좀 근무하다 7여년째 한국인 관광객 전문 가이드로 일해 왔다고 했다.
<우리일행을 나흘간 프로페셔널하게 케어한 가이드 아유나>
초원에서 막 자라 생활한 여인들의 투실투실한 용모와는 달리 동서양 교차점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누린 듯한 실크로드적 융합형의 지적인 엘리트 미모를 갖추어 첫 눈에도 우리 모두에게 호감을 강력하게 심어주는 인상이었다. 한국에는 그동안 서너번 정도 단기방문만 하고 장기체류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도 모든 이들이 감탄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할 뿐 아니라 애교있는 웃음 속에 능청스러운 유머 화술까지 겸비해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제법 남을 추억거리를 추가로 만들어 주었다.
내게는 자기나라에 대한 어설픈 쇼비니즘(국수주의) 대신, 객관적 비판능력을 갖추어 칭기스칸 시대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 17C 이후 역사의 전면에서 뒤처진 채 낙후된 제도와 인습, 그리고 1990년 초부터 독립국으로써 개방노선으로 들어선 뒤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열악한 사회적 인프라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현황을 알려주려는 열린 안목과 자유정신이 특히 맘에 들었다.
산업화의 성장통을 앓는 울란바토르
차 안에서 내다 본 수도 울란바토르(‘붉은 영웅’의 뜻)에 대한 첫 인상은 공장굴뚝과 수년 사이에 크게 늘어난 차량에서 뿜어내는 매연에 찌들려 스모그와 미세먼지, 그리고 교통체증이 만성화된 문제적 도시로 비춰졌다.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가 겨울이라는 이 나라에서 冬期 건설은 올스톱 되기에 시내 곳곳에 공사가 중단된 채 널브러진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울란바토르(UB)전경>
원래 60만이던 수도권 인구가 개방경제노선을 본격화한 90년대 이래 130여만으로 급증했음에도 걸맞는 도로 확충과 석탄에너지 위주구조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완화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아 겪어야만 하는 도시화의 문제가 이 나라에도 예외없이 들이닥친 듯 했다.
자이센 전승탑을 만나며 반추된 몽골사
<울란바토르 시내 사원>
시내 한복판에 있던 라마교 계통의 전통 사원을 잠깐 방문한 뒤 이 날의 주 탐방지인 ‘자이센 전승탑’으로 갔다. 이 탑은 전후 1945년 무렵 회주의적 형제애 관계가 돈독했던 러시아인들이, 프랑스가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보내주었듯 몽골인들의 환심을 사려 지어줬다고 했다.
<자이센 전승 기념탑에서>
13C 중반까지 몽골 본토에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이슬람권(페르샤, 우즈벡, 터키)을 정복하고는 동유럽(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폴란드)을 거쳐 서유럽(독일 쾰른)까지 진출해 사상초유의 칭기스칸 대제국을 이룬 이래 동쪽으로는 북중국의 금왕조를 굴복시켜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개국 후 마침내 남중국의 남송까지 접수해 중국 정복의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세상만사의 이치대로 칭기스칸의 사후(1227) 정복전이 중단되고 킵차크, 일, 차카타이 칸국, 그리고 몽골 본토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전란이 별로 없는 평화의 시대가 유지되자 칭기스칸의 후손들은 자기들의 통치영역 내에서 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반목과 분열을 일삼으면서 서서히 소국들로 쪼개지는 과정의 길목에 들어섰다.
<독소전 승리의 벽화 앞>
몽골 대제국의 영화가 거의 바닥을 보인 17C 이후 칭기스칸의 후예들은 만주 여진족에 뿌리를 둔 청조에 200년 간 식민지의 수모 기간을 가졌던 탓인지 중국인에 대한 적개심은 뿌리 깊은 반면, 1911~1917년 사이 청이 망하고 러시아 혁명으로 외몽골이나마 독립하는데 긍정적 환경을 만들어준 구소비에트에 대한 연대감은 상당했다. 중국 한자의 사용은 200년 간이나 거부했지만 독립국이 된 후 러시아식 키릴문자는 별 저항없이 받아들일 정도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습득한 채 자이센 전승탑 언덕에 올라보니 탑에 새긴 여러 부각물과 조각물, 그리고 소비에트군을 그린 벽화 등에 대한 연유들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의 몽골-러시아 간 관계는 한국전쟁 후 한중수교 때까지 유지된 북-중 혈맹관계 만큼이나 돈독했음이 잘 이해되었다.
첫 밤의 회포 자리
이곳을 방문한 후 첫 숙박지인 J-호텔에 도착해 2인 1실의 방을 배정 받고 후배인 염사장과 한 조가 되어 여장을 풀었다. 방은 예상외로 와이파이도 잘 터져 갖고 간 노트북을 요긴하게 쓸 수 있었고 분위기도 제법 아늑했다. 한교수는 자기 지인인 김선생과 바로 앞 방에서 묶었고, 우리 4명은 씻고난 다음 호텔내 식당에서 한식으로 좀 늦은 저녁 허기를 때웠다.
식사 후 근처에 있는 현지 마트를 방문하여 4명이서 첫 밤을 기념할 자리를 위한 칭기스칸 보드카를 비롯해 안주용 모짜렐라 치즈 등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흐뭇하게 구입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라면 류와 제과, 생활용품들이 제법 비중있게 진열되어 있는 것도 많이 반가왔다, 하지만 유럽에서 수입한 제품들이 한국보다 더 싼 가격들로 매겨져 있어 이들의 구입이 더 매력 있었다.
<첫날 밤 회식 자리>
한교수 방에 모두 모여 이번에 처음 본 김선생과도 본격적인 수인사를 나누며 각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안주거리들을 내어놓자 40도의 보드카가 고급 중국 백주 마시듯이 술술 들어갔다. 나는 첫잔만 받아 맛과 향취만 시음한 뒤 한국에서 공수해간 무알콜 맥주로 술판에 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번 몽골 여행이 꽤 괜찮겠다는 예감을 받은 채 첫 밤이 마무리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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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영 19.02.25. 08:41
몽고의 달밤을 느껴보셨는지요?
그리고 별미 몽고의 유목민 여인의 허벅지에서 빚어낸 만두는 먹어보셨는지요?
몽고의 만두는 목욕을 잘 하지 않는 여인의 살의 일부분인 때가 밀가루와 함께 섞여서 아주 간이 잘 배겨 있습니다 물론 만두피의 색깔이 좀 어둡게됩니다...운이 좋으면 허벅지에 만두피를 빚다가 너무 올라가서 꼬불꼬불한 거시기 털도 같이 들어가서 ...
┗ 지흥석 19.02.25. 09:01
아니.. 이거 농담이요 진담이요.
엘에이에도 몽고출신 도우미들이 가끔 있심니다.. 근데 유목민 같지 않고 의외로 굉장히 예쁜애들이 많습니다.. 원래 몽고족이 그런지.. 아님 타민족과 혼혈들인지.. 늘 궁금..
┗ 이길영 19.02.25. 09:33
지흥석 몽고 유목민 체험 여행 상품이 있습니다. 현지식을 제공합니다. 드넓은 들판에 달이 뜨면 고향 생각이 나게 한답니다.물과 나무가 귀하다보미 만두피를 미는 곳도 넓은 여인의 허벅지가 밀판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꼬불꼬불 한 거시기가 들어가서 잇사이에 끼이는 수도 있습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합니다. 천지사방을 둘러봐도 밥 사 먹을 곳이 없습니다.양대가리를 삶은 것을 먹는데
손님이라고 커다란 양눈깔도 먹어야 합니다.만일 안 먹겠다면,집에 다갔습니다.
┗ 김수인 19.02.25. 12:46
지흥석 당연히 튀기, MIXED죠 ㅎㅎ
┗ 김재민 19.02.25. 14:05
허어.. 길영공의 유머러스한 육담에 본문 내용읽는 독자보다 길영공 댓글보러 더 많은 손님이 꼬일 것 같소이다. 근엄해 보이는 지박사도 몽골녀 허벅지 만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구료. 나 역시 마찬가지 외다.
┗ 이원익 19.02.26. 03:18
내 몬살아~~~ 댓글 놀이 고만 할라 캤는데 길영공 땜에 업무에 지장이 많소... 물리 주소. 우리 어릴 때 여인들이 길쌈할 때 삶을 삼껍질을 손톱으로 잘게 찢어 갈라낸 것을 이어 붙여 삼베 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갈라내어 생긴 양쪽 끝을 조금 겹쳐서 치마를 걷어 올린 한 쪽 허벅지에 대고는 손가락으로 밀어 비벼 붙여 긴 실을 만들어 나갔지요. 그 모습이 좀 에로틱해서 머슴애들은 근처에 못 오게 했지요. 몽고 여인들이 허벅지로 만두피 빚는다는 얘기는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무슨 ... 하하하
┗ 이길영 19.02.26. 11:02
이원익 삼껍질 벗겨 삼실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담배잎을 말아서 시가를 만드는 것도 살살 돌리고 비비고 말고
하면서 ,간간히 향기로운 술도 뿌려가면서,부드러운 담배 잎을 비벼가며 딱딱하게 만듭니다.조그만 구멍을 내어서 잘 빨리는지를 입에 넣는 것이 꼭 거시기를 입에 넣었다 뺏다 하면서 하는 것이..
거시기는 아이스케키입니다.할배들이 다른 것으로 오해할라... 세워 총을 그냥 쉬어 총...
이길영 19.02.25. 09:39
먹으면 싸야지,화장지? 그런 것 없습니다. 계단이 있는 변소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미끄럼 타듯이 계단에 죽 늘어진 새끼줄을 타고 쭉 내려오면 뒤처리가 됩니다. 잠깐 줄타기 전에 줄을 살랑살랑 흔들어서 앞에 사람이 싸고 닦은 줄에 묻은 똥가루를 날라가게 하여야 합니다.워낙 건조지역이라 흔들면 미숫가루 날라 가듯이 날라가서 깨끗합니다.
┗ 지흥석 19.02.25. 11:21
몽고는 말만 듣고 포기하기로 결심했십니다.
┗ 김수인 19.02.25. 13:11
지흥석 호텔은 괜찮겠지 ㅎㅎ
┗ 김재민 19.02.25. 14:01
길영공의 갈데까지 가는 농담 덕에 많은 친구들이 몽골행을 미리 포기하는 듯 하네요. 나도 이번에 가기까지는 날씨가 영하 35도로 방한복 단디 준비하고, 게르 안에는 말똥 연료로 난방을 하기에 꼬롬한 냄새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오래 전에 다녀왔다던 사람들이 엄청 겁을 줬심다.
현지에 가보니 서울 날씨보다 더 춥지 않았고, 게르 안도 장작 난방에다 바닥은 전기열선으로 시설해 놓아 오히려 난닝구 입고 잘 정도였심다. 그럼에도 길영공의 '믿거나 말거나 아무말 대잔치'는 그 해학성에서 항상 기상천외하외다.
┗ 이길영 19.02.25. 20:20
김재민 몽고의 혹한은 대단합니다.
만일 뜻하지 않은 추위를 만나면 말을 죽여서 내장을 빼내고 그 안에 들어가면 살 수가 있습니다.
피비린내? 얼어 죽으면 피비린내를 맡고 싶어도 못 맡습니다.
┗ 이원익 19.02.26. 03:14
이 새끼줄 얘기는 국민학생 땐가 들었는데 몽고가 아니라 종이가 귀했던 우리나라 산골 얘기였어요. 지어낸 얘기 같지만. 한달 쯤 쓰면 너무 빤질빤질해져서 시아버지가 낫으로 잘라 내고 새로 꼰 새끼줄을 다시 쳤다는.. ㅎㅎㅎ
┗ 이길영 19.02.26. 11:04
이원익 이 새끼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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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 단디 해야 합니다.난 내보고 헛소리 하지 말라고 욕하는 줄 알았네..
┗ 이원익 19.02.27. 04:22
이길영 두 가지 '새끼'가 경상도에서는 서로 억양이 달라서 말로 할 때는 확연히 뜻 구별이 되고 혼동이 없는데 글로 쓰니 그럴 염려가 있네요. 조심 하겠심다. 감사~
백민호 19.02.25. 10:22
길영공은 모르는게 없구려.
재민박사 여행기가 올라오니 기대됩니다.
소생도 3월 하순경 몽골여행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난 몽골 오지로 갑니다.
┗ 김재민 19.02.25. 13:55
백교장은 우리보다 더 오지로 가는 모양이구려. 익사이팅한 여정이 되기를 기원함다. 몽골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곧 뜰 여행지 같아 보입디다. 조만간 아시아나도 몽골노선 개통하면 방문객 수가 바짝 올라가겠습디다.
김수인 19.02.25. 13:13
아니, 숙식 포함 30만원? 여기에 사전 공지를 좀 하시지...
몽골에 대해 이야기할게 좀 있는데 나중 밤에...
하여간 맛깔나는 기행문, 땡큐 ㅎㅎ
┗ 김재민 19.02.25. 18:25
기본가는 30만원이었지만, 비자값 3만원+현지 기본옵션(가이드 피, 승마비, 마사지) 120불의 추가 비용이 들었음..
┗ 이길영 19.02.25. 18:58
김재민 싼게 비지떡입니디.싼 상품은 쇼핑만 다닙니다.만일 옵션 행사에 참가를 안 하면 차안에서 대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줄 돈 다 주고 기분 좋게 여행을 다녀야 합니다.
싸게 가면 밥도 시래기 국에 노숙자를 위한 밥차 메뉴보다 도 못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런 것 먹으려고 여기에 왔나 하면서 쳐다 보는 달이 유난히 더 처량해 보이고 배에서
敲腹聲이 울려 펴지게 됩니다.
몽고의 유목민이 말 타고 양을 모는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요새는 오토바이로 양을 몹니다.
김재민 19.02.25. 14:00
인터파크 여행사를 통해 갔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항공료 때문에도 같은 코스가 130여만원 한다 합디다. 내가 30만원짜리 상품은 언제까지 하느냐고 담당자에게 카톡 질문 보내놨네요.
김재민 19.02.25. 20:00
인터파크 담당자: 3월달까지는 299/399 상품으로 가능하시고 그 이후는 4월달 화요일 출발로 최저가 399로 가능하십니다.출발날짜별로 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 홈쇼핑상으로 일정 및 요금 재확인 부탁드립니다
문의전화: 051-901 2053 (직통) 9시~18시까지 상담가능..
이길영 19.02.25. 20:11
몽고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눈을 한 동안 가려 놓습니다.
그러면 시력이 5.0까지 좋아 집니다.그래야 잃어 버린 양도 잘 찾고,멀리 있는 적에게 활로 잘 맞출 수가 있습니다.
말을 어려서부터 타면 안짱 다리가 되어서 말에서 내려온 몽고군은 쪽을 못씁니다.
유목민은 알고 보면 모계 사회입니다.적어도 어머니가 낳은 자식은 그 집 자식이 됩니다.
손님이 오면 마누라까지 딸까지 내어주어서 극진한 대접을 하였습니다. 만일 거절하면 그냥 모가지가 댕강...
징키스칸도 마눌이 적에게 잡혀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몽고왕이 왕비를 삼을 때 후보자의 규수를 귀족의 집에 같이 살게 하면서 관촬을 합니다.
┗ 김재민 19.02.27. 04:50
유목민 몽골인들 시력에 대해 가이드인 아유나가 그랬는데, 아이들이 가축 몰고 먼곳 가 방목하던 아빠가 저멀리 언덕에서 내려오는 게 보이기에 '아빠 온다!' 하고 소리를 냅다 질렀다 함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다음날 집에 도착했을 정도로 먼거리에 있는 자기 아배를 본 것이라는 둥 능청을 떨데요.
┗ 김수인 19.02.25. 22:03
김재민 몽골인들은 유목민이라 대개 시력이 2.0
우리 골프장에서는 몽골 캐디를 쓰자는 얘기가 한때 나왔으나, 그들은 공 날라가는건 잘보지만 다른건 젬뱅이라 없었던 일로.
┗ 이원익 19.02.26. 03:15
몽고 등 초원이나 사막의 유목민들이나 외딴 섬사람들이 대개 눈이 좋은 것은 적자생존 부적자도태의 진화론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저 지평선에 가물거리며 나타나는 약탈자를 조금이라도 먼저 보고 피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어물거리다간 잡혀 죽고 후손을 남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멀리 정확히 보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약탈자 역시 눈이 좋을테니 달아나는 속도가 생사를 좌우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 놀릴 때도 허벅지 쪽을 끈으로 묶어 방치합니다. 어느 정도 움직이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되 그리 빨리 멀리 못 가게 해서 언제든 말타고 찾을 수 있도록 한다지요.
┗ 이원익 19.02.26. 09:28
이원익 유목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과거는 모계사회였습니다. 유목민은 좀더 오래 끌었지요. 그리고 인구가 작고 고립된 유목민이나 섬지방, 고산지대나 극지방의 인간 집단은 오랫동안 족내 결혼만 하면 유전자 풀이 작아 후손의 생산이나 형질상 문제가 생깁니다. 이의 해결책으로 간간이 외지의 유전자를 조금씩 공급 받아 희석시켜야 함을 본능적으로나 경험상 아는 거지요. 그래서 몽고나 에스키모 등 고립된 씨족들은 외지인이 오면 아내나 딸을 내어 주어 강제로 동침하게 하여 씨를 받습니다. 거부할 수 없지요. 풍습이란 본래는 다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지요. 길영공, 대단히 아쉽게도 이제 이런 풍속도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답니다.
┗ 이원익 19.02.26. 03:17
이원익 위의 속도 문제와 족내 결혼 문제와 어울린 문제인데 유목민은 정착된 농경사회와 정조관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몽고의 여인들은 혼자서 가축 떼를 돌보다가 멀리서 약탈자가 나타나면 일단 달아나지만 잡히기 일쑤지요. 일단 잡히면 더 이상의 저항은 포기하고 누워서 고개만 옆으로 돌립니다. 강간자는 말 낚아채는 긴 장대를 언덕위에 꽂아 두면 다른 사람이 근처에 오기를 피하지요. 전통적인 천막인 게르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별로 없으므로 부부관계도 야외에서 이런 식으로 했다고들 합니다. 아무튼 이런 느슨한 정조관념이 유전자 풀에는 도움을 줬지만 매독이 급격히 퍼지게 하여 몽골족을 약화시키는데도 일조를 했다 하네요.
┗ 김재민 19.02.26. 09:11
이원익 히야..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에게서 생존과 근친교배를 벗어나려는 외부 유전자 확보를 위해 형성된 다아윈적 '자연선택'의 습속에 대해서 읊어주는 법사의 해박한 설명이 참 대단함다. 고맙기 짝이 없네요.
에스키모인도 몽골인적 형상과 습속을 비슷하게 갖고 있으니 이 자연선택적 설명이 그럴 듯 하게 여겨짐다.
┗ 이길영 19.02.26. 10:54
이원익 막강한 몽골군을 약화시킨 것은 매독이었는데, 썩어서 새는 파이프를 납의 증기를 씌우는데 결국 납중독도 일으키고 합니다.나중에는 이 매독군이 남미로 까지 가서 인디언의 파이프까지 작살을 냅니다.
┗ 이길영 19.02.26. 12:49
이원익 역사적으로 오래 전에 존재한 유대인들도 아버지가 유대인 것보다 어머니가 유대인인 경유를 더 유대인으로
쳤습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인 아닌 경우는 뱃속의 아이가 꼭 유대인 아버지의 씨라고 볼 수는 없지만,엄마가 유대인이면 적어도 1/2은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길영 19.02.25. 19:19
만일 몸에 냄새가 나서 왕이 모처럼 천막을 친 거시기가 내려 앉으면 안되니까,실격을 시킵니다.
백민호 19.02.25. 19:24
징키스칸 장남이 주치입니다.
몽골말로 손님이란 뜻입니다.
주치에겐 영토를 거의 주지않았습니다. 몽골족은 말자 상속제를 시행했습니다.
차카타이 오고타이 툴루이 막내가 툴루이 입니다. 툴루이집안에서
대권을 이어갔습니다.
┗ 김재민 19.02.26. 09:11
주치는 칭기스칸이 되기 전인 테무친 시대의 와이프가 라이벌 부족에 납치되었을 때 강간당해 낳은 남의씨 자식임다. 테무친은 이 아이를 자신의 장자로 받아들여 성심껏 키워줬지만, 가신들의 눈이 있어 후계자에 있어서만은 자신의 씨앗 아들 중에서 후계자를 간택했다 하네요. 아마 친자 중 3남인 툴루이였지 싶슴다.
┗ 이길영 19.02.25. 20:12
김재민 말만 후계자라고 해 놓고 핀치를...
백민호 19.02.25. 21:17
3남 오고타이가 점 대귄을 물려받고 그다음 4남 툴루이 아들 몽케, 몽케 동생 훌라구 다음 쿠빌라이가 통일하여 원 제국을 세우지요.
주치 아들 바투가 러시아 원정을 떠나 현재 동유럽까지 진출 하여 일한국을 세워 러시아를
지배하였지요.
하였던 징키스칸의 후손들이 단시간에 세계 최대의 제국을 세웠습니다. 영토 확장보다 동서문화 교류와 시장의 통일이 큰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 김재민 19.02.26. 09:15
우리 백교장이 이쪽을 깊게 전공하셨는갑소. 나도 지금 데이비드 모건과 강툴가의 '몽골의 역사' 책들 읽고 있는 중인데 백교장의 언급이 적실함다. 몽케, 훌라구, 쿠빌라이, 바투 등 다 나옵디다.
┗ 이길영 19.02.26. 10:50
김재민 몽고가 결국 인도의 마지막 왕조 무굴제국을 세웁니다.몽골? 무골? 오나지데스요..
이원익 19.02.26. 05:21
역시 재민공입니다. 나도 가보고 싶은 몽골인데 후편이 기대됩니다. 백교장님의 역사해설도 좋습니다.
김의철 19.02.26. 04:45
김박사가 요즘 좀 뜸하다 했더니 그 사이 몽골을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여건이 닿는대로 이처럼 짬짬하게 다니게 되는 여행 재미가 훨씬 더 쏠쏠할듯 함미다.
얼마 전에는 가족들과 베트남도 다녀오시고..그 이전에는 북한과 일본에도..
그러고보니 김박사는 가히 짬짬이 여행 기회포착의 전문가- 그만큼 결정과 행동력이 빠르다는 이야기-
이는, 근자 회자되는 김태우 수사관처럼.. 주변에 정보제공자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는
의미이자 스스로도 평소 많은 정보를 주변에 보시하고 있다는 뜻이겟지요.^^
"아유나" 와 함께 계속될 이후의 이바구 전개가 아주 크게 기대되는군요.
┗ 김재민 19.02.26. 09:40
없는 살림에 싼 근교여행 건 물건 떴다 하면 후닥닥 챙겨 떠나네요. 그래도 수년 전에 서토와 약속한 남미여행 건은 항상 꿈 속에 보듬고 있심다. 그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서토와 함께 할 페루->칠레->아르헨티나->쿠바 코스를 열심히 책을 통해서나마 공부해 놓겠심다.
아유나의 풀네임은 어용항뜨 아유나인데 우리 여행단에게는 유나라고 불러달라 합디다.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33세 두 아그의 엄마라 소개 하데요.
김재민 19.02.26. 12:08
몽고가 아닌 몽골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적은 몽골유학생의 기사문 하나 소개함다.
https://blog.naver.com/corazon27/221467115211 (동아일보, 몽고라 부르면 섭섭합니다)
┗ 지흥석 19.02.26. 12:40
잘 봤슴미다.
근데 김박의 블로그의 어마어마한 양의 내용에 많이 놀랐심다..
걸 다 유지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대단히 많이 들 것 같심다.
┗ 이길영 19.02.26. 12:54
蒙古의 蒙은 속인다,눈을 감는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일부로 몽골의 한자를 그렇게 지었습니다
┗ 이원익 19.02.28. 00:41
이길영 중국애들은 자기 주위의 민족들을 한자로 적을 때 낮추 보는 나쁜 뜻의 글자를 갖다 붙이기 일쑤였지요. 몽골은 '어리석고 케케묵은 놈들(蒙古)'로, 주르친은 "참말로 계집애 같은 놈들(女眞)'로 , 티베트는 '덤불에 사는 토 나오는 놈들(吐蕃)'로, 본음을 추정하기 쉽지 않지만 '이르막' 비슷했을 만주의 우리 조상들에 대해서는 '흐리멍텅한 승냥이(濊貊)'로 표기했지요. 공산화 된 후 소수민족 포용, 분리독립 저지 차원에서 이보다 심했던 모욕적인 여러 명칭들을 금지하고 좋은 뜻의 글자와 이름으로 싹 갈아치웠지요. 이미 역사적으로 굳어진 것들은 그대로 두었고요.
김수인 19.02.26. 17:11
몽골의 세계 지배는 역사의 영원한 미스테리다. 어떻게 변방의 유목민족이 갑작스레 용맹성과 잔인성을 폭발시켜 러시아 동토를 밴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절반을 점령했을까? 몽골의 세계 지배야욕은 진주만 습격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첨부터 무리였다. 침략은 할수 있으나 지배는 할수없었으므로. 점령한 그 많은 땅을 적은 인원으로식민지 관리를 할수없었기 때문. 어떻게 보면 좋아하는 여성을 겁탈엔 성공했으나 마음을 얻지 못한것과 같은 꼴~~~
김수인 19.02.26. 17:14
몽골이 얼마나 잔인했냐면-. 점령한 마을은 사람은 물론, 동물 한마리까지 몽땅 불태웠으므로 다음 점령당할 마을은 지레 겁을 먹고 몽골군이 오기 전에 성문을 열어 무혈입성을 가능케할 정도. 그러나 눌려 지내는 1년여 사이에 반란을 도모해 쉽게 몽골군을 쇠퇴시킬수 있었다고. 그 엄청난 민족들이 몇 세기가 지나도 반동을 못하고 죽어 지내는것 또한 미스테리다.
┗ 이길영 19.02.26. 19:20
몽고군은 반항하는 사람들을 껍데기를 벗겼습니다.그리고 식수에 독을 뿌리고 병들은 가축이나 사람의 시체를 성안으로 던져 넣는 세균전을 폈습니다.
점령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역참제도를 원활히 운용하여 빠른 시간내에 황제가 보고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조직원의 보고를 잘 하고 받는 것이 기업 경영 관리의 골자가 되겠습니다.
지연 보고나 허위 보고는 즉각 그 책임을 물어서 파면 시켜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치매 환자 똥 싼 것
감추듯이 부실을 감추어서 나중에서 기업을 망하게 합니다,
┗ 지흥석 19.02.27. 06:24
한국의 EBS같은 미국의 DISCOVERY CHANNEL인지 HISTORY CHANNEL인지에 의하면 동유럽까지 진군한 몽골군의 공격을 사시나무 떨듯이 걱정한 프랑스에선 어느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몽골군이 너무 이상하여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천주교 사제인 누군가를 몽골의 사정을 알아보려 파견을 했답니다. 이 냥반이 몽골의 수도까지 기행을 하여 남긴 글도 있고 하다는데 결론적으로는 점령당시에 그토록 무시무시한던 몽골이 통치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하는 개방정책을 썼답니다. 따라서 당시 몽골의 수도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또 무슨 종교건 다 허용이 되고 활발하게 교류가 되었다고 함.. 기독교만 골수로 믿고 ㄱ
┗ 지흥석 19.02.27. 06:26
지흥석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유럽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발견이었다고 합니다. 몽골의 철군은 아다시피 칭기스칸의 사망으로 유럽정벌이 막을 내렸던 것이라고 하지요. 결국 전쟁은 전쟁이고 통치를 할 수 있는 대제국의 이념적 인프라가 잘 발달했었다는 말입니다.
┗ 이원익 19.02.27. 06:49
몽골군이 전투 시 잔인했던 건 사실이나 그냥 잔인했던 게 아니라 철저히 전략적인 관점에서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행했지요. 현대전의 금과옥조인 심리전, 정보전, 속도전, 최소비용전 등의 개념은 모두 이미 몽고군이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개별 병사들의 누수 없는 명령의 전달과 두려움 없는 즉각적인 이행성 및 잔인성 등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가축의 사육과 부림, 도살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축은 채찍을 가하면 명령 받은 대로 그냥 돌진하는 거지요. 군마를 탄 병사도 실은 명령 받고 훈련 받은 대로 망설임 없이 그대로 돌진하고 죽이고 하는 기계적인 전달자, 하나의 가축인 셈이지요.
┗ 이원익 19.02.27. 06:45
지흥석 한 가지 종교에 병적으로 매달리는 당시의 유럽인들이나 중동인들을 일종의 야만인이나 비실용적인 황당한 인간들로 보고 마르코 폴로처럼 써 먹을 만한 놈이 있으면 종교적 인종적 편견없이 이용만 한 거지요.
중국 주변의 거의 모든 민족이 중국을 정복하면서도 그 문화와 문명을 선망하여 곧 동화되어 사라졌는데 몽고족은 중화문명을 비웃으며 별 쓸데없는 도덕이나 명분 같은 것에 매달리는 먹물들이라며 천시했지요. 결과적으로 정체성을 지켜 그나마 지금 외몽고가 독립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 이원익 19.02.27. 06:55
이원익 이러한 동북아 유목민의 핏줄이 연관되어 있어선지(좋게 말해서 기마민족) 한국군이나 일본군의 죄의식 별로 없는 잔인성(brutality)은 널리 알려져(notorious) 있습니다.
┗ 김수인 19.02.27. 07:59
지흥석 동유럽 침공 직전, 징기스칸이 사망했다는 비보듣고는 바로 말머리를 돌렸다고...역사의 아찔한 순간!
징기스칸이 좀 늦게 죽었다면 유럽이 쑥대밭!!!
┗ 이길영 19.02.27. 11:00
이원익 군인은 돌격 앞으로! 명령에 거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 안됩니다.
파블로의 개처럼 그저 반사적으로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군대는 한 번 써 먹으려고 반복적인 훈련을 하여 살인 기계가 되는 것이 정답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전역 후에나...
┗ 이길영 19.02.27. 13:28
김수인 그렇습니다! 징기스칸이 땅 많이 따 먹었다아이가~` 하면서 철군 하도록 하였답니다.
만일 후계자인 새로운 왕이 군권을 확실히 쥐기 전에 새 왕이 마음에 안 든다고 파병 즁인 군대가 반기를 들면
안되기 때문인가 합니다...
이길영 19.02.26. 19:12
(중략)
몽골어에서 말의 털빛을 가리키는 표현만 무려 240종이 있다고 한다.
또한 가축들이 1살일 때와 2살일 때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1살 짜리 소는 '토갈(tugal)'이라 부르고 2살 짜리 소는 '뱌로(byaruu)'라고 부른다.
심지어 가축들의 똥을 부르는 말도 다르다. 양, 염소, 낙타의 똥은 모두 '호르골(horgol)'이라고 하지만 소똥은 '아르갈(argal)', 말똥은 '호몰(homool)'이라고 한다.
반면 시베리아 북동단에서 캐나다, 그린란드에 걸친 광대한 북극 툰드라 지대에 분포하는 이누이트족(에스키모인)은 눈의 유형을 여러 가지로 분류해 수많은 단어로 눈을 표현한다.
이길영 19.02.26. 19:12
스웨덴 북부의 광산도시 키루나에는 눈을 묘사하는 500개의 단어와 순록을 규정하는 수천 개의 단어가 있으나 컴퓨터에 관한 단어는 하나도 없다.
남부 인도의 코가 부족에게는 열대 지역의 중요한 천연자원인 대나무를 표현하는 일곱 가지 단어가 있지만 눈을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 김수인 19.02.26. 22:06
감탄, 감탄!^^
┗ 이원익 19.02.27. 06:46
말이란, 어휘란 필요에 의해 생기고 파생 되는 법이지요. 밥을 거의 먹지 않는 미국 사람들은 밥이나 쌀이나 벼나 나락이나 우케나 다 한 단어 rice 로 표현하지요.
백민호 19.02.26. 22:57
길영공 이런걸 어찌 다 알고 있는교?
감탄
┗ 이길영 19.02.27. 04:45
돈 안되는 것만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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