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여러분, 요즘 제 고교 동기들이 옛 시절을 회상하는 글쓰기 복고조 바람에 부화뇌동해 소생도 19년 전 제 처인 박애숙 점주와 함께 쓴 '독일에서의 사우나 혼탕 체험기'라는 글을 다시 발췌해 올리네요.
와이프가 2000년 대 초 사원주부 알바인 현대중공업 사보 문예부 리포터로써 끄떡끄떡 다니며 기고문 숙제를 해야 한다기에 소생이 제법 많이 거들어 준 글임다. 80년대 후반인가 함부르크 시절 동네 사우나 장에 같이 간 기억을 더듬어 썼는데 당시 중공업 아재들에게서 뿅가는 반향을 얻었심다. 여성 차장 편집인은 문제될 야한 표현이 혹시라도 있는가 내부검열 한다고 엄청 신경을 썼고요.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심다.
20여년이 지난 후배뻘 르뽀 작가들이 최근 비슷하게 체험한 독일 사우나 후기와 한국말 잘하는 독일친구 다니엘 린데만(JTBC 교양에능 '비정상 회담' 출연)이 소개한 독일 누드문화에 대한 기사 글들도 같이 소개 하네요.
https://blog.naver.com/corazon27/221450563648 (남녀 상관없이 '그냥 벗는' 목욕탕, 야하지가 않네, 오마이 뉴스)
https://blog.naver.com/corazon27/220854742818 (독일의 ‘누드 문화’ 어디까지 알고 있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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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사우나 혼탕 체험기
(2000년 12월 현대중공업 사보 기고문)
박애숙
80년대 말 독일 함부르크의 거리와 골목들이 일상의 情調로 익숙해지던 무렵 한국 교민들로부터 독일에는 남녀가 혼탕으로 사우나를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일본의 시골에서는 아직도 에도시절부터 내려오는 혼욕 온천문화 전통이 남아 있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은 있었지만 독일에도 혼탕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새삼 뜻밖이었다.
호기심 많은 남편이 먼저 독일 사우나장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사우나장은 수영장, 헬스클럽, 호텔, 온천장 등 곳곳에 부대시설로 널려 있었다. 물론 특정 요일을 정해 여성출입 전용일로 시행하는 곳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녀혼욕을 원칙으로 하였다.
남편에 의하면 처음에 출입할 때는 상당히 에로틱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남녀노소가 여러 개의 사우나 도크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즐기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신의 흥분되었던 기대가 곧 촌스럽게 느껴지더라는 소감을 전해 주었다.
사실 이곳에 와서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는 도심지 내 공원들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낸 채 누워서 일광욕을 태연스럽게 하던 것을 밥먹듯이 보며 면역이 되어왔던 탓에 남편의 이야기가 그리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독일 땅에서 영화나 TV 드라마, 출판 미디어들을 통해 남녀의 누드를 자주 대하다보니 어느 날 남편이 함께 사우나 혼탕체험해 보자고 제의했을 때 "여자가 어떻게?" 하는 생각보다는 "이 기회에 한번!"하는 모험심이 나도 모르게 솟아났다.
고대 로마식 공중목욕탕 스타일로 지었다는 집 근처 스포츠센터 내 사우나장을 찾았는데 역시 처음에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내가 독일여자들처럼 누드로 남자들과 함께 사우나를 할 수 있을까 참 많이 망설여졌었다. 하지만 들어가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거라던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아줌마다운 패기로 도크에 드디어 입장했다.
안에는 노인부부, 젊은 연인커플,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사우나 객들이 두런두런 타월을 밑에 받치고 땀을 빼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통해 독일 사우나장에서는 도크내에서 가운 따위를 걸치는 것이 금지된 채 아담과 이브로만 머무르고, 바닥에 자신의 땀이 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준비해 온 대형 타월을 의무적으로 깔고 앉아야 한다는 규정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독일식 사우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지 않는 채 지그시 눈을 감거나 누워서 사우나 삼매에 빠지는 독일인들의 혼탕 매너를 접하면서 나도 조금씩 사우나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도크에서 땀을 뺀 후 원형의 널찍한 냉탕 푸울에 들어가서는 남자 욕객들과도 그야말로 평상심으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異문화를 접할 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담함 때문이랄까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여유가 저절로 생겨났었다. 그 이후 몇 번인가 더 남편과, 또는 한국에서 들리신 친정 엄마와도 함께 사우나장에 들릴 기회가 있었는데 유교문화적 터부를 넘어선 그 자유롭고 푸근한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독일의 사우나 문화는 서쪽 이웃인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별로 정착되지 않는 듯했으며, 사우나의 원조국인 핀란드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이웃인 스칸디나비아국들을 경유해 들어온 듯 했다.
아무튼 독일의 흥미로운 혼탕문화는 독일사회의 제도적 경직성을 많이 완화해 주는 문화적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듯이 여겨졌다. 터부가 없는 섹스관을 비롯하여 툭 터진 思考의 자유를 '열린 사회'의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이는 게르만 민족의 문화적 기질이 사우나 혼탕 체험에서 적지않게 체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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