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비정상적’ 노력들
- 수정 2026-04-30 09:13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 사전] 노모패시(normopathy)

나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바로 그날 아침, 제이 시에게 들켜버렸던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 가졌던 불쾌한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기분이었고, 더는 진실을 감출 수 없었다. 19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상을 타고, 이런저런 장학금을 타고 살았는데 경주에서 뒤로 처지는 기분이었다.
-실비아 플라스 ‘벨 자’
마흔다섯살의 약사 주은씨는 누가 봐도 부족할 게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이자 모범생으로 자란 주은씨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학업과 진학, 결혼, 출산까지 ‘해야 할 때’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중요히 여기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동갑인 남편은 대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두 아이는 건강히 잘 자랐다. 동네에서 10년째 약국을 운영하며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온 주은씨를 보며 주변에서는 “주은씨는 남 부러울 게 없죠? 인생에서 필요한 걸 다 가진 사람 같아요” 말했다.
어느 날 주은씨는 무심코 남편의 휴대폰을 살펴보다가 회사 후배와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부 사이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좀처럼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 주은씨는 남편 본인에게도, 가까운 친구나 지인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생각했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평범한 부부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 일 아닐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을 지금에서야 겪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주은씨의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생각이 많아지면, 집안일을 하거나 밖에 나가 걷고 뛰었다. 몸을 움직이고 나면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아 좋았다. 주변 사람이나 지인이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거나, 가까운 친구가 “남편이랑 잘 지내지?”라며 물을 때도 주은씨는 “뭐, 우리야 항상 잘 지내지”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한두 개쯤 비밀을 숨기며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 믿고 싶었던 것이다.
주은씨에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저 평범하게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남들 눈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평화로웠던 일상이 깨진 안타깝고 위태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사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의 욕구를 느끼는 것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문제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 이를 ‘노모패시(normopathy)’의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비정상’ 적으로 ‘정상’이고 싶은 마음
‘지나치게 정상적이 되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병리적인 모습’임을 강조하는 노모패시는 정상(normal)에 병리(-pahty)를 결합한 의미 그대로 ‘정상성’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경우를 뜻한다. 정상 강박으로도 불리는 노모패시는 눈에 띄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된다. 노모패시를 가진 이들은 매우 모범적이다. 불평하지 않고, 갈등을 만들지 않으며, 언제나 무난하게 기능한다.
‘규칙에 따르고’ ‘규범에 들어맞는’ 것이 중요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며,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를 추구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종의 ‘낙오’로 여기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상성’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이란 보통이나 평균을 의미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는 내면화된 사회적 규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외부에 순응하느라 내면을 살피지 못하는
노모패시는 정상성을 향한 비정상적인 강박이다. 평범과 보통의 기준을 넘어설 때 느끼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노모패시로 설명한 조이스 맥두걸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뉴질랜드 출신의 정신분석가다. 맥두걸은 겉보기에 특별한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는 환자들이 찾아와 괴로운 이유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감정도 의문도 갈등도 허용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공허함에도 자신의 걱정과 욕구, 동기를 탐색하고 살피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는 사회적 규칙에 강박적으로 순응한 나머지 자신의 내면과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규범과 사회적 기준에 맞추느라 자기 인식을 발전시키거나 내면의 삶에 호기심을 갖기보다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데 ‘비정상적’으로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이스 맥두걸은 이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피로와 두통, 소화장애, 피부 트러블 등 정신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신체언어로 전환되는 신체화(somatization) 증상을 많이 보인다고 말하면서, ‘마음의 극장에서 열리지 못한 공연은 결국 몸의 극장에서 열린다’고 설명했다. 몸은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을 대신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모습 뒤에 숨겨진 불안
노모패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질 뿐, ‘정상성’의 범주에 안전하게 머무르고 싶은 열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모패시적 경향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끼리만 어울리는 폐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회적 배경과 성장과정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면서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이다.
노모패시를 가진 사람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 보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위협적이고 두려운 느낌을 갖는다. 자기 의심, 자기 탐구, 내면의 모순을 허용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허락되지 않는 ‘위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정은 스스로에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주고, 그 느낌을 떨치기 위해 감정과 생각이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은씨가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유튜브를 켜거나 청소를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감정을 인식하고 신체감각 살피기
‘정상’이라는 기준에 포섭되지 못한 경험은 과연 삶에서 들어내야 할, 불필요한 경험이어야 할까? 오히려 맥두걸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감정,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의 혼란, 남들에게는 그리 대수롭지않는 일에 유독 마음이 쓰이는 경험들, 이것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노모패시에서 벗어나는 것은 갑자기 사회적 규범을 모두 부인하거나 감정을 모조리 쏟아내거나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감정과 생각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이상하다며 ‘비정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맥두걸은 노모패시를 벗어나기 위해 거창한 변화보다 작은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했다. 오랫동안 꺼두었던 감정의 스위치를 갑자기 켜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순간순간 멈추어 ‘나는 지금 어떤가?'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음은 내 감정과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내 감정과 마음 상태 알아차리는 방법
1. 누군가 “요즘 어때?”라고 물을 때, 자동으로 나오는 “괜찮아요” 대답하지 말고 3초 정도 멈춰 정말로 내가 괜찮은지 생각해 본다. 답변 전, 잠깐 멈추는 것만으로 나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 내 마음과 감정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는 신체 감각에 이름을 붙여본다. 지금 어깨가 뭉쳐 있는지,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지, 배가 불편한지는 아닌지 나의 신체 감각에 주목하면서, 그 감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3. 하루를 마치며 그날의 감정을 한줄이라도 적어본다. 감정 일기를 통해 하루 동안의 감정을 천천히 살펴보고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늘 감정은 잘 모르겠다’라고 적어도 좋다.
4.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사소한 말부터 시작해 본다. “오늘 좀 피곤해”, “이 음식은 좀 짜네요”와 같이 작고 가벼운 의사표현을 소리내어 이야기 해보는 것이다. 타인에게 표현하고 공감받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감정을 드러내도 안전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나는 ‘정상이 아니다’ 혹은 ‘비정상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2.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되어 마음속의 감정이나 기분을 숨긴 경험이 있나요?
3.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느낄 때 나는 그 감정들을 어떻게 대하나요?
오늘의 용어: 노모패시( normopathy)
사회가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정상적인 모습'에 지나치게 순응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감정과 욕구, 자기 탐구의 능력이 만성적으로 억압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겉으로는 기능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이지만,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내면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감정적 공허함이 있다.
정신분석가 조이스 맥두걸은 ‘적당한 비정상성을 위한 변론(Plea for a Measure of Abnormality, 1978)’에서 노모패시의 개념을 제시하며 ‘정상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사회에는 오히려 어느 정도의 ‘비정상성’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모패시 치료의 핵심은 감정을 통제하거나 즉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자존감과 개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노은정의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은?
개인이 느끼는 일상의 정서와 감정에는 무의식적인 모순과 억압된 기억, 문화적 압박과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때문에 잘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마음을 돌보는 일은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모호하고 낯선 마음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보는 노은정의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은 격주 목요일 한겨레에서 연재됩니다.
노은정 두번째마음 심리상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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