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민법서 ‘보류’ 뜻이 ‘남기다’라니…일본법 오역, 70년의 역사
- 수정 2026-07-17 12:08
헌법 포함 6법에 오자·비문·일본어투 난무
70년 전 일본 법 그늘 여태 걷어내지 못해
“법 속 말의 오류 바로잡을 국민운동 절실”

“매도인이 매매계약과 동시에 환매할 권리를 보류한 때에는 그 영수한 대금 및 매수인이 부담한 매매비용을 반환하고, 그 목적물을 환매할 수 있다.”
민법 제590조 제1항의 이 문장에서 ‘보류한’의 뜻은 무엇일까. 백에 아흔아홉은 미룬다는 뜻으로 새기지 않을까. 그러나 아니다. 여기서 보류는 “지니다”나 “남기다”를 뜻한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용법이다. 그럼 이 괴상한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본 민법에 나오는 ‘留する’(남기다, 지니다)를 ‘보류하다’로 잘못 번역해 들여오면서 생긴 사태다.
“(전략)감사 또는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회사를 위하여 이사에 대하여 그 행위를 유지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상법 제402조의 이 문장에서 ‘유지할’의 뜻은? 누구나 짐작하는 “계속할”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중지하다”는 뜻이다. 한자로는 우리가 아는 ‘維持’가 아닌 ‘留止’. 역시 국어사전에 없는 이 말도 일본어에서 왔다.
일흔여덟번째 제헌절에 맞추어 나온 책 ‘당장, 6법을 교정하라’를 읽다 보면 헛웃음과 탄식이 그치지 않는다. 자고로 법이란 나라의 근간이고, 국민의 삶을 하나에서 열까지 규정하고 통솔하는 규칙인데, 이토록 엉망진창인 말들로 그 법이 이루어져 있단 말인가. 이렇게 잘못된 법조문 위에서도 나라는 무너지지 않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말이 지나치다 싶다면 책을 몇쪽만 들춰보아도 생각이 바뀔 것이다.
“타인의 지시를 받어 물건에 대한 사실상이 지배를 하는 때에는”(민법 제195조)에서 ‘받어’는 ‘받아’의 오자인데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형법 제269조 제2항)도 마찬가지. “회사에 현존하는 순재산액이 자본금의 총액에 부족하는 때에는”(상법 제650조)에서 ‘부족하는’은 ‘부족한’으로 써야 한다. “최후의 등기후 5년을 경과한 회사로써”(상법 제520조의2)에서 ‘회사로써’는 ‘회사로서’가 맞다. 초등학생도 틀리기 어려운 이런 오자가 심지어는 헌법에도 버젓이 나온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여기서 ‘붙일’은 ‘부칠’로 바꾸어야 한다. 1987년 지금의 헌법이 만들어질 때에는 ‘붙일’이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다음해인 1988년 한글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붙이다’와 ‘부치다’를 구분해서 쓰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지만, 그래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헌법 제57조)에서 ‘증가하거나’는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이기 때문에 ‘늘리거나’나 ‘증가시키거나’로 바꿔야 한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헌법 제107조 제1항)에서 ‘위반되는’은 ‘위반되는지’로 써야 정확하고,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헌법 제53조 제7항)에서 ‘효력을 발생한다’는 ‘효력이 발생한다’로 써야 한다. 헌법이 이 모양이다.

“절도가 재물의 탈환에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형법 제335조)이라는 문장을 보라. 절도가 사람인가. ‘도둑’이나 ‘절도범’으로 써야 할 것이 이렇게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 제120조 제1항에 나오는 ‘건정’의 뜻을 아는 이가 있을까.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말은 뜯어 보면 ‘열쇠 건(鍵)’과 ‘자물쇠 정(錠)’으로, “잠금장치”라는 뜻이다.
민법 제197조(점유의 태양)에서 ‘태양’은 하늘의 해일까. 아니, 한자어 ‘態樣’으로, “모습”이라는 뜻이다. 2015년 국회에 제출되었던 민법개정안에서는 ‘점유의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바람에 아직도 ‘점유의 태양’으로 빛나고 있다.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다. 원인과 대책으로 눈을 돌려 보자. 헌법을 제외한 나머지 5법은 1953~1962년에 제정되었고, 당시 법률가들은 일본 법에 크게 의지해, 문구를 그대로 번역해 싣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한국어 지식은 떨어져서 어색하거나 틀린 표현들이 난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70년 뒤인 지금까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법제처 등 관련 기구에서 개정 노력이 없지 않았지만, 법 개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의 직무태만, 그리고 낡은 법 질서에 집착하는 법률가들의 반대로 거듭 좌절을 겪었다.
다시금 생각한다. 법이란 무엇인가. 강제력이 수반된 국가의 규범이 곧 법인데, 법이 이토록 허술하고 모자라도 괜찮은 것일까. 문법 역시 법일진대 6법은 문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런 법조문으로 세상을 읽는 법조인들의 뇌 구조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이 입는 피해가 걱정이다. 법의 근거이자 목적인 국민이 법을 어려워하고 멀리하는 까닭은 법 자체의 이런 불구성 때문 아닌가.
1991년 국립국어원 개원 때부터 사반세기가량 근무하고 퇴직한 지은이 김세중은 절박한 심정으로 외친다. “말의 오류가 넘쳐나는 현재의 6법을 바로 세우자는 국민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 법은 나라의 근간이고, 법 언어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남루한 누더기 법전”을 바루는 일이 내란 청산에 버금가는 시대적 과제인 까닭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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