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살아온 역정

7. 여물어져 가는 중3 시절

백조히프 2018. 6. 11. 10:51



7. 여물어져 가는 중3 시절

 

 

<1969년의 초중반 중3 시절>

 

내면적으로는 에로스의 격동이 시작된 중2 시절이 저물면서 점점 무르익는 중3 시절에 접어들었다. 3-8반에 배치된 것 같고 담임은 일반사회 담당의 전병호 선생이었다. 이 양반은 부산여중에서 오래 근무하다 경남중으로 전근해 왔기에 학우들이 좋아하는 여중에서 겪은 여러 일화들을 군데군데 섞어가며 수업을 진행했기에 인기가 꽤 많았다.

 

국어선생은 옆반 담임이었던 조달곤 선생으로 여겨지는데 이 양반 수업이 그런데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1953)를 다룰 때가 압권이었다. 내게는 이 소설이 사춘기 소년 소녀의 조심스러운 사랑놀이를 그 어떤 익사이팅한 불꽃 스파크도 없이 미니멀리즘적 記述로서만 다루었던 듯 해, 두 사람의 내면적 심리들을 주위의 정황 묘사를 통해 짐작만 되게 했을 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기에 좀 심심해 성에 차지 않았다.


<황순원-소나기의 명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채색도>

하지만 그 간접적 묘사속에서 한 사춘기 시골 소년이 자신의 동네로 내려온 약간 신비스러운 또래 도시 소녀에게 바치는 달뜬 감정을 개울 건널 때 업어주고, 소나기 내리는 원두막에서 비 피하게 해주려 자신은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수숫단을 만들어 바치는 장면들로 탁월하게 형상화 시킨 것이 이 소설의 명작성이란 것을 그당시는 제대로 알리가 없었다.

    

전병호 선생의 일반사회 과목에서는 고교시절 권남술 선생에게서 반복되는 정치 및 행정 체제와 경제일반을 배웠던 것 같고, 물상시간에 뿔테 안경 쓴 선생으로부터는 빛의 굴절이니 천체의 구조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름만 전해들었다. 이 양반이 진도에 쫓기지 않고 상대성 이론에 대한 주요 개념들과 과학사에 끼친 영향들도 자신이 공부 좀 더 해와 전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크다.

 

하지만 강석진 선생이 진행한 생물시간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의사들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와서 수업한 강선생은 2학년 땐가 동물의 혈액이 응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실험실에 생닭을 한 마리 준비해와 메스로 닭의 입천정을 긁어서 나오는 검붉은 피를 비이커에 담고, 가위로 닭목을 자르는 시범으로 나를 비롯한 여러 꼬맹이들의 비윗장을 뒤집는 실습장 체험이 지금도 끔찍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그 이후 난 피에 대한 공포증으로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피칠갑의 수술 장면은 트라우마처럼 보지 못하며, 병원에서 채혈을 할 때도 간호사들이 팔뚝 혈관에 꽂는 주사바늘을 응시하며 쳐다본 적이 없다. 문디 영감, 왜 그리 리얼하게 수업을 진행하여 비위 약한 어린 친구들이 평생 피하는 추억 한조각을 남겨줬을꼬 했다.

 

하지만 3학년 때 강선생으로부터 배운 멘델법칙이나 혈액형에 대한 특징, 다윈의 진화론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등은 고교 올라가서도 잘 써먹었을 만큼 과학과목 중에서는 가장 인상에 남았다.


  <한려수도를 처음 접하게 해준 중3 때 선상여행> 

 

가을로 접어들며 중3 시절의 마지막 가을 수학여행을 부산에서 배타고 한려수도로 충무까지 가서 한산도 이순신장군 영정 사당을 둘러보고 오는 코스가 있었다. 돌아오는 선상에서 아이들에 무작스레 손지껌 잘하는 걸로 악명 높은 3-5반인가 담임 진용호 물상담당 선생이 모처럼 아그들 하고 어울린답시고 고스톱인가 섯다하는 판에 끼어들었다.

 

패를 돌리다가 마침 그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니 요거 뭐 요런 가시나처럼 예쁘장한 놈이 다 있노?’ 함시롱 사람들 앞에서 히야카시 날리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면에는 여체탐구욕으로 이글거리는 이 작은 악마님을 요 멍청이가 어따 대고 먹고 싶은 가시나같다니 속으로 같잖아서 헛웃음이 났다.

 

<고교 입시 총정리와 아슬했던 합격>

 

여행 이후 우리 모두는 경남고 입시에 각자의 공부방식으로 매진했다. 입시 한달을 앞두고는 서대신동 대티턴널 앞 어느 집에서 각 학원가의 유명 강사들이 모여 자기 전공의 총정리 과외를 한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다. 일반사회를 담당하던 어느 선생으로부터 슘페터란 경제학자와 그의 창조적 파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몸붙이고 있는 경성대에서 기업가 정신에 관한 강의를 할 때에도 잘 써먹을 정도이다.


<고입준비 와중에도 큰 인상을 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1883~1950)> 

 

경남고 입시는 중학 때와는 달리 1월 중순에 행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친모친과 주위 친구들은 당연지사 내가 될 것으로 꽉 믿고 있는 게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나도 내 자신을 믿어보자 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각 과목 시험을 치루며 입시 당일을 보냈다. 그 다음날의 체력장 시험도 100미터 달리기에서 13초 중반대 기록을 끊었을 정도로 전체 무난하게 치루었다.

 

그런데 필기고사에 대해 신문사가 제공한 답안과 비교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오답갯수가 근 60개에 육박했다. , 이러면 거의 떨어지는 수준이라는 느낌이 바로 왔다. 엄청난 재앙 앞에 내몰리는 심정으로 경남학원에 들러 여기서 제시하는 답안으로 다시 계산해 보니 다행히도 52개선으로 줄어들었다.


<아득한 기억 속의 경남고 덕형관> 

 

이 정도면 해볼만 하다는 안도감 속에서도 그 날 밤을 거의 설친 채 다음 날 아침 일찍 경남고 게시판 앞으로 두근거리는 심정 속에 찾아 갔다. 가서 보니 내 수험번호가 떡하니 올려져 있지 않은가. (이름도 같이 적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새 뒤척거리며 떨어졌을 때의 생각하기 싫었던 상황들이 이제사 멀리 사라졌음을 알고 눈물이 핑 돌았다.

 

모친에게 내 번호 있다고 전화로 알려주니 자신은 사실 걱정 하나도 안했다고 좀 밉살스러울 정도로 태평스레 받아들이는게 아닌가. (가식의 여왕처럼..). 아무튼 용궁에서 살아돌아온 토끼의 심정으로 합격의 달달함을 즐기면서 3월 입학식 때까지의 한달 반을 영화관 순례와 친척집 방문, 그리고 영해 외가를 혼자 방문해 또래 사촌들과 함께 머문 2~3주간의 체류로써 이 시기를 보내었다.

 

<69년에 발생한 국내외 주요 사건>


1.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성공

 

‘57년 소련의 스푸트닉크 유인 우주선의 선제발사 성공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미국은 케네디의 선거공약에서처럼 전국력을 동원하여 NASA를 통한 우주탐사 경쟁에 돌입했다. 소련의 소유즈 계획과 미국의 제미니, 아폴로 계획의 각축 속에 69720일 아폴로 11호는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월면 착륙과 탐사를 성공적으로 행했다.


   <달에 연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 

 

나는 이 초유의 광경을 이날 아침 6~7시 사이 우리집 TV에서 방영되는 실황중계로 생생하게 시청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비록 이 방영이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실내 스튜디오에서 조작 촬영된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음모론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상황을 참작하고서라도 말이다.

 

2. 닉슨 독트린 선언

 

6811월 존슨 후임으로 당선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69725일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서서히 손을 뗄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국들에도 군사적 직접지원보다 경제적 간접지원과 아시아국들 간의 집단적 동맹체제 수립을 지원하는 등을 골자로 하는 동아시아 외교정책노선을 발표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을 예고한 닉슨 독트린(1969/7) 

 

이를 닉슨 독트린이라 하는데 2차대전 후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체제가 종식됨을 의미하며 세계경찰로서의 미국 역할을 아시아권에서는 크게 포기한다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이는 베트남전으로 무너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국내용으로 재조정할 필요 속에 행해졌는데, 한미동맹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후일 주한미군 2사단이 철군하는 계기가 되었다.    

 

3. 박정희의 3선 개헌 시도와 가결

 

‘68년 총선에서 온갖 부정선거로 국회의원 총수의 70% 이상을 확보한 집권 공화당은 ’691월부터 박통의 3선을 위한 개헌의 불가피함을 공화당 고위 당료들을 통해 흘리며 여론을 떠보는 행보를 시작했다. 야당인 신민당은 40여석의 의석으로 이런 시도에 결사반대한다는 강력한 방어전략을 펼쳤지만, 쪽수 부족으로 10월에 군사작전 하듯 전격적인 투표놀음을 실시한 여권의 파렴치한 개헌안 통과를 참담하게 지켜만 봐야했다.


<날치기 통과된 3선 개헌안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내 기억으로는 이 날치기 가결작전을 주도한 공화당 총무는 김택수(1) 의원이고, 저지 선봉장인 신민당 총무는 김영삼(3) 의원이었다. 3년전 새누리당의 경남중고 출신 김무성과 새민주당 문재인 구도의 원조처럼 여겨졌다. 확실한 의원총수 2/3를 확보하기 위해 김형욱이 이끄는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신민당 의원 3명도 매수되어 찬성파로 돌았다. 그 중 하나가 토성동 시절 동네친구 성모의 부친 성낙현 의원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중3 생활>

 

이 해 여름 우리 부친이 자신의 부서팀 남녀 부하직원들과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단체 야유회를 갔을 때 거기에 끼어 나만 야매로 따라간 적이 있었다. 부친은 팀장인지라 주위에 남녀 부하직원들을 양 옆에 거느리고 맥주잔을 돌리면서 일본 엔카만 불렀다. 당시 청와대 안가에서 박통이 졸개들 데려놓고 놀 때 자신의 일본어 능력과 일본 취향을 과시하려 왜가요를 자주 부른다는 세간의 소문을 어디선가 들었는지 좀 아니다 싶었는데도 그대로 따라 연출하는 듯 했다.

 

나중에 찍은 단체 사진과 스냅사진들을 보니 몇몇 여직원들은 부친의 연애 파트너가 되었지 싶은 혐의가, 그 몇 년 후 다른 사건들에서 마주쳤을 때 제법 짙게 느껴졌다. 아무튼 그 여직원들이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나를 자기 보스 장남이라고 거기서도 제법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나는 그 여인들이 늘씬한 수영복을 입고 저그끼리 모여 수다떨며 놀면서도 나를 숙맥이 아이 취급하며 거리낌없이 끼워준게 몹시 고마운 추억으로 남는다.


<중3 때 경남중 29회인 남동생, 아직 왈가닥이었던 여동생과 집에서>

 

안그래도 여체 상상만 수백번도 더 하던 내 앞에 수영복 입은 여인들이 실체로 나타나 누나연하며 곱상한 페티 하나 나타났다고 먹을 것 마실 것 갔다주며 이런저런 말을 거는 데 대해 얼떨떨한 바보 행세를 하면서도 얼마나 꼴렸는지는 그 언니들이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아무튼 69년 여름의 최고 추억이었다.

 

3시절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중 1, 2때와는 달리 희안하게도 거의 또렷하지 않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이 누군지, 반장이 누구였는지, 오래 학창시간을 같이 했다는 박상국이가 같은 반이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기억력 총기가 예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냥 장기남이가 전학년 규율부장을 하며 한번씩 모타리 작은 3학년생들 우습게 보는 행동을 한 2학년 삐딱이 덩치들을 본보기로 우리 교실에 몇 명 데리고 와 훈계와 함께 빰따귀 몇 대씩 때라는 광경만 생각날 뿐이다. 이 친구가 동급생 학우들 앞에서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 꼬맹이 약자들의 학교내 위계 포지션을 확실히 보호해 주는 정의의 수호자 엉클 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 이외 학우들과의 관계나 여타 연관된 사건들이 그리 크게 떠오르지 않는 걸 봐서는 그 당시 나만의 내면 색계여행이 어지간이도 계속되며 깊숙했던 모양이다.

 

그런 중에도 또 하나 머리에 남는 기억은 동대신동에 있던 조용수 집에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놀러갔는데 저그 형의 책인 듯한 독일어 교과서와 참고서를 처음 만난 것이다. 영어 외의 알파벳으로 기술된 외국어 책은 처음 보는지라 아주 흥미로왔다. 문법이나 단어도 비슷한 점이 많아 고교 들어가면 무조건 불어가 아닌 독어를 선택하리라 결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순간이었다.


<60년대 중반 공전의 인기를 모은 미국 드라마 '전투'>

 

사실 초등 시절 숨 꼴깍거리며 시청한 미국 TV드라마 전투(Combat)’ 시리즈물에서 독일군들이 저그끼리 씨부리는 독어 대화는 자막이나 더빙 번역이 없었기에 그 절도있는 쇳소리의 빠른 음감만 느꼈는데, 거기에 대한 궁금증도 독일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더 상승시켰다.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나중에 내 청년시절의 엑기스같던 십수년을 투자하게 만든 독일유학 생활로까지 연결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3 시절을 아련하게 만든 영화 3편과 그 사운드 트랙들>

 

1. 사운드 오브 뮤직

 

3 가을부터 한평생 기억에 남는 명작 영화들을 단체관람으로 많이 봤는데 그 첫 편이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수녀원에서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수녀 마리아는 일탈적 신앙인의 태도를 좀 교화하게끔 수녀원장에 의해 부인과 사별한 트랩 해군대령 집에 일곱 자녀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뮤지컬 영화의 지존 '사운드 오브 뮤직'>   

 

군대식 가풍에 젖어 있던 7자녀들에게 마리아는 멋진 노래 가르치기로 이 집안의 분위기를 일신하며 이런저런 반전 끝에 트랩대령과 결혼하여 명실상부한 이 집안의 키멤버 안주인이 된다. 그 당시 뮤지컬 영화의 여신 줄리 앤드루스가 타이틀곡 “The Sound of Music’을 비롯하여 ‘Do-Re-Mi’, ‘My Favorite Things’, ‘Something Good, ’Edelweiss’ 같은 주옥 같은 노래들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공전 히트에 크게 기여했다.

 

난 그 당시 외워서 부른 부래 에델봐이스의 가사와 곡을 지금도 기억하며, ‘도레미 송’, ‘마이 페보리트 씨잉즈썸씽 굿등의 음률을 오래오래도 좋아했다. 이 영화와 사운드 트랙들만 생각하면 69년 가을이 바로 떠오를 정도이다.

 

2. 대탈주 작전(The Great Escape)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 설치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들이 땅굴을 파고 탈주한다는 이 영화는 2차 대전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63년에 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69년에야 개봉되었다. 여기에 주연으로 나온 스티브 맥퀸이 행한 마지막 오토바이 탈주 씬은 지금도 호쾌하면서도 전율스럽게 느껴진다. 후일 영화-빠삐용에도 주연한 이 배우에 대한 70년대 초 이후의 사랑이 찰스 브론슨 사랑과 함께 막 피어오르게 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본 영화에 나오는 스티브 맥퀸의 전설적 오토바이 탈주 씬(1963)>

 

난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인 포로들의 행진’(엘머 번쉬타인 작곡)이라는 사운드 트랙을 듣는 순간 너무나 귀에 바로 꽂혀 영화관을 나온 다음날 바로 LP판을 매입해 당시 유행했던 포터블 전축을 통해 내 방에서 틈만 나면 최고 볼륨으로 무한 반복해 들었다. 영화-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휘파람 허밍의 콰이 마치’, 영화-사상최대의 작전에 나오는 주제가와 함께 평생 전쟁영화 3대 타이틀 OST로 모시게 되었다

 

3. 닥터 지바고

 

수년 전 우리 동기회 홈피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영화이다.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 전후를 배경으로 의사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 역)와 풍운의 강단있는 여인 라라(줄리 크리스티 역)의 다섯 번에 걸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스펙타클한 연애담이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맞물려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영화 포스터와 라라의 서늘 눈매> 

 

3 당시의 단체관람에서는 왜 이 영화가 전세계 영화팬들을 쥐락펴락한 영화인지 러시아사에 대한 짧은 역사적 배경지식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이틀 주제곡인 ‘Somewhere’s My Love?(라라의 테마)’는 듣는 순간 사람을 바로 빠지게 했다. 정치적 이유로 소련당국이 현지로케 촬영을 허가해주지 않아 스페인에서 찍었다던 러시아적 설원 풍경도 정말 압권이었다.

 

난 이때 현대극장 영화관 화면에서 처음 만난 줄리 크리스티의 깊고 푸르면서도 서늘한 눈동자에 빠져 60이 넘은 지금에도 그 마력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