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살아온 역정

바람처럼 왔다 홀연히 사라진 서토

백조히프 2018. 10. 13. 06:42

바람처럼 왔다 홀연히 사라진 서토



지난 10/7(일) 시애틀 거사인 서토 김의철 동기가 한국에 갑작스런 방문을 하여 소생과 1박2일을 지내다 10/11(목) 인천공항을 뜨는 번개 여정을 가졌네요. 점점 노쇠해 가시는 모친을 두 여동생들의 권고에 따라 한번 뵙고 가는 것이 이번 방한의 주목적이라 했심다.


워낙 짧은 체류기간이었기에 얼굴 본 동기들은 김수인, 김재민, 옥충석 정도였고 나머지 동기 지인들에게는 떠날 때까지 전화인사로만 방문신고와 안부교환을 한 것으로 알고 있네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 서토는 시애틀행 비행기로 알래스카쪽 북극항로로 막 귀향을 끝냈을 것임다. 

 

서토는 우리 동기들을 위해 이 짧은 여정의 초반 기록원으로써 소생을 지목하여 자신이 평소 특별히 흠모하던 경주 근교 산내에서 수년째 귀거래사를 읊조리는 귀촌인 옥도사의 집을 취재차 찾아가는 길에 동행을 요구해 함께 1박하고 돌아오는 일정을 가졌네요.



<경성대에서>


우리 둘은 월요일 서토가 수인공과 서울에서 낮점심을 함께 한 뒤 오후 3시 경 부산으로 KTX와 함께 내려와 제 경성대 산학교수 연구실에서 첫 조우를 했심다. 마침 10/9(화)일이 한글날 휴일이라서 경성대 교정에서 방문기념 사진 한방 박고서는 약간 느긋한 마음으로 옥도사의 지시에 따라 울산행 SRT에 몸을 실어 4시 반 경 부산역을 떠났네요.


한 20 여분 만에 울산역에 도착하니 옥도사가 도사용 적자주색 개량한복을 입고 쌍용 코란도를 끌고와 반가운 세레모니를 짧게 행한 뒤 우리를 픽업해 주었심다. 가택까지 한 35분 거리라 했지만 가는 길가의 정경들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는 옥도사의 자상한 배려 덕에 한 50여 분간 초가을에 접어든 호젓한 가도를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달렸네요.



<옥도사집 도착 기념>


가택에 도착하니 옥도사를 지근에서 보필하려 부산살림을 마저 정리한 채 최근 입주한 안주인 고여사가 환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심다. 서토가 부산역에서 알현용으로 구입한 4만원 짜리 부산어묵 한 상자를 전하며 역사적 기념사진을 한 두 컷 한 뒤 집 주위를 잠깐 둘러보고서는 고여사가 정성스레 마련한 저녁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네요.


이건 뭐 옥류관 냉면 만찬장 저리가라 할 정도의 황감한 식탁이었심다. 두툼한 갈치 토막이 왕창 든 갈치찌개가 주 메뉴로 자리잡은 채 명절제수용 같은 쇠고기 전이 가지런히 놓였고, 옥도사가 특히 좋아할 고구마 줄기무침과 몇몇의 나물들이 산사에 들어선 듯한 정갈스런 건강식단을 받쳐 주었네요.


우리 둘의 폭풍흡입 일파가 지나가면서 두 양주의 합류 스토리 전말과 서토의 2000년대 초 나진-선봉 방문기 및 문통 치매설에 대한 서토의 썰이 슬슬 펼쳐졌심다. 고여사는 옥도사가 전 부인을 떠나 보낸 후 3년 간의 탈상기간을 만료한 연구소 소장 시절 만난 인연을 이어오다 최근 자신의 둘째 아들을 결혼시킨 뒤 산내 집으로 오게 되었다 하네요. 



<고여사가 베푼 첫 만찬>


서토는 그 당시 중국 장백산 쪽으로 해서 입북한 뒤 나진 市長까지 만나봤다는 얘기와 함께 문통이 최근 치매가 들어 청와대 예스맨들의 장막에 가려진 채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펼쳐 이 정권이 향후 많이 걱정된다는 열변을 토했심다.

 

박애숙처럼 문통 팬인 고여사가 잘 차려준 저녁 얻어먹고 이 무슨 희떠거운 소리냐 하며 내심 못마땅해 하는 데도 My Way! 하며 예전에 미국에서 이런 말 하면 같잖아 하던 사람들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김사장 말이 맞습디다‘ 하고 인정해 주더라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지흥석 박사가 언젠가 봤다던 서토의 열변시 번져나오는 희번뜩한 귀기가 요즘은 氣도 좀 빠지고, 옥도사도 옆에 있고 해서 그런지 별 섬뜩함도 없이 그냥 흥미로왔을 뿐이었심다. 옥도사는 골수 문빠일 줄 알았던 서토가 의외로 문통을 씹어돌리자 야, 요것봐라 하며 예상외 상황에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경청만 했네요.



<야외마당 페치카에서>


산내의 밤날씨는 제법 쌀쌀해졌는데도 고여사가 설거지할 동안 우리 셋은 마당에 비치된 간이 페치카 같은 데서 나무조각이나 작은 둥걸들에 불 붙이면서 하던 얘기들을 마저 이어갔심다. 설거지를 마친 고여사가 맥주와 과일 안주, 불 위에 구워먹을 거리들을 갖고 와 먹으면서 한 시간 여 더 노작거리다 우리의 침소가 마련 된 별채로 자리를 옮겼네요.


황톳방 두 칸과 샤워실로 구성된 내부는 옥도사의 치밀한 성격이 엿보이듯 상당히 아기자기하게 꾸며졌습디다. 여기에는 옥도사의 옛 직장동료들이나 고여사의 부산 친구들이 규칙적으로 찾아와 새 살림 차린 부부의 집들이 세레모니를 챙기는 듯 했네요.


<별채 방 식탁>


<별채 황톳방 침소>


첫 날을 우리 둘이는 그런대로 편안한 밤으로 보냈심다. 서토가 한번씩 가벼운 코골이를 하고 시차로 한 밤중에 일어나 불을 켠 채 독서를 잠깐 했지만 잠을 못 자게 할 괴벽은 결코 아니었네요. 아침에 일어나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오니 서토도 일어나 세면하고 이부자리 잘 정돈한 채 소생을 기다리고 있었심다.


주인 내외가 부를 때까지 TV 켜 놓고 서토의 미국생활과 내가 궁금했던 미국내 27 동기들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국내외 정세에 대한 서토의 견해를 한참 듣고 있는 중에 윗채에서 옥도사가 내려와 고여사가 떡국을 준비했다고 알려와 아침식사 하러 올라갔네요.





<아침에 본 옥도사집 근교>


떡국은 아주 맛있었고 속을 든든하게 해 주었심다. 게다가 후식으로 나온 송이버섯은 북한에서만 나는 줄 알았는데 남쪽에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며 황송한 마음으로 그 향취와 맛을 음미했네요.


고여사가 이 자리를 염화시중의 미소 속에 내내 흐뭇하게 굽어보는 옥도사를 어찌나 살갑게 챙기는지, 야 이 인간이 고진감래라고 첫 부인과 사별 후 근 10여년 간 허허했을 내면을 제대로 메워주는 후반기 파트너를 이제사 만났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심다. 참 보기 좋았네요.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서토 역시 오래동안 묵혔을 그간의 자기 얘기를 스르르 꺼냅디다. 인생 중반기에 암만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는 하나 라스베가스에 너무 자주 들락거린다는 부인의 질책을 서토의 심사가 꽤 안좋았을 때 받았다 함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어느 날 가족 버리고 집을 제 발로 뛰쳐나갔다가 돌아올 타임을 놓쳐 직싸게 고생하던 스토리를 밥값 삼아 주절주절 털어놓기 시작했네요. 고여사가 관심을 왕창 보이며 추임새를 넣어주자 얘기에 가속이 점점 붙어갑디다.


<서토가 진솔한 얘기를 들려준 본채 거실> 


쥐뿔없이 나와 거의 노숙자를 방불케 하는 밑바닥 생활로 가는 중에 서토를 긍휼하게 여긴 여인이 구원의 여신상처럼 나타나 서토를 슬슬 챙겨줬다 하네요. 서토 역시 도움을 받았다 하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반대급부를 지불하려 노력하는 위인인지라 이 부분을 더 가상하게 여긴 부인이 제법 성대한 결혼식을 통해 서토를 꽉 잡아 놓으려 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얘기 속에서 캐치했심다.


어어 하다 결혼식까지 치루게 된 서토는 첫 부인과 본의 아닌 이혼을 하게 되었고, 두 번째 시작된 결혼생활 중에도 자신을 사회로 복귀시켜 준 새 부인과의 의리지킴과 홧김에 집을 나왔지만 첫 부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사이의 부대낌에 점점 힘들어지는 갈등기를 맞이했던가 보네요. 

 

하지만 누구에게 얽매이는 생활을 질색해 하는 서토로서는 얘기가 진행되는 품새로 봐서 두 아들도 낳아준 채 재혼도 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려주는 첫 부인 미세스 성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 모양이었던 갑심다. 고여사를 비롯한 우리 세명은 서토의 거침없는 고백록에 빠져들어 근처 산보 스케줄도 생략한 채 계속 멈추지 말고 Go 하라는 반응을 눈에 띄게 보여 주었네요.


결국 새 부인과의 결별은 어떻게 했는지 얘기가 건너 뛰어지는 바람에 자세히는 모른 채 어물쩍 넘어갔심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산전수전 다 겪은 오디세우스처럼 증대되어가는 수구지심 속에 첫 집이 있는 이타카 섬으로 가보니 미세스 성이 정숙한 부인 페넬로페처럼 서토를 기다리며 받아주는 데 대해 감읍하며 또 한번 '돌아온 탕자'처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하네요.


이 대목에서는 소생도 뻑 가서 지금 얼마만큼 원래의 진실된 스토리에 조미료를 뿌렸는지 감지조차 되지 않심다. 하여튼 서토가 모처럼 옥도사 집에 와서 제 숙박료와 밥값까지도 충분히 지불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던 본인 삶의 진솔한 한 꼭지를 거의 사상최초로 도도하게 펼친 것 만은 확연한 실화였다 하겠네요.


<바가사리 해물탕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


옥도사의 코란도 차로 근처에 있는 유명 댐을 살펴본 뒤 약간 늦은 점심을 평판이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가 바가사리 해물탕으로 인상깊게 잘 음미했심다. 고여사는 옥도사를 찾아온 옛 친구들을 편안하게 대접하는 중에도 새 낭군을 공경하고 친밀하게 챙겨주는 모습에서 옥도사가 참 늦복을 많이 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네요. 

  

마침 휴일 보내러 와 부산 정관의 누나집에 머물고 있는 막둥이를 픽업해 가덕도 대안학교로 태워주러 가는 옥도사의 일정에 운좋게 편승하여 우리 둘은 서토가 이틀 밤을 묵을 광안리까지 옥도사 차로 편하게 올 수 있었심다. 중간 산내 집에 내려준 고여사와 재회의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고속도로에 올라타 휴게소에서 커피타임을 한번 가진 채 광안리까지 일사천리로 달렸네요. 옥도사와 고여사님, 성심으로 맞아준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하외다.


광안리에 도착해서는 서울과 부산에 있는 서토의 두 여동생들이 잡아준 무슨 호텔에서 체크인 하며 이들과 조우했네요. 한 동생은 소생의 평생교육원 인문학 강좌를 찾아준 김선민 여사였심다. 다른 언니뻘 동생은 서울에 사는 김예철 여사였고요.


두 자매 모두 화끈한 성격으로 오랜 만에 만난 오빠를 극진히 챙겨 줍디다. 작은 김여사는 자신의 인문학 강좌 선생이라고 소생도 정중하게 언니에게 소개해 줬고요. 네명은 근처 물회 잘한다는 집으로 가서 또 한번 든든한 식사를 했심다. 마치고는 서토가 오늘 작별하기 전에 김박사 노래 꼭 한번 들어야겠다 하고 교시를 내리자 근처 지리에 밝은 작은 김여사가 우리를 곧장 노래방으로 안내했네요.


소생도 서토가 기타연주를 하며 유튜브에 올리겠다는 닐 다이어몬드의 ‘솔리터리 맨’을 이 기회에 한번 듣겠다 싶어 참 잘됐다 하고 흔쾌히 따라 나섰심다. 첫 곡으로 소생이 ‘비와 당신’으로 스타트를 끊자 큰 김여사가 요즘 팝송 교실에 열심히 다닌다며 90년 대 말의 팝 ‘I.O.U'를 부르며 분위기를 바로 끌어 올렸네요.


그동안 코인 노래방을 틈만 나면 전전하며 연습했던 레퍼토리를 펼치면 큰 김여사가 못지않은 팝송 레퍼토리로 맞받아 주어 마치 두 사람의 노래경연장 같은 분위기가 장장 3시간이나 펼쳐졌네요. 서토는 첫날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열변에 열변을 토하다 목소리가 약간 잠기었는지 초반에는 나지막한 김정호 류의 노래들만 부르며 열창하는 노래들은 좀 삼가하려는 눈치였심다. 

 

하지만 분위기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가자 소생이 부탁한 ‘솔리터리 맨’을 선곡해 잠긴 목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창해 주었네요. 가사 내용을 대충 짐작해 보니 이 노래가 왜 서토의 18번 곡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가를 아침에 들었던 얘기와 결부시켜 보니 바로 아귀가 맞아떨어집디다. 목소리 회복한 뒤 기타연주 속에 분위기 팍 깔면서 부를 서토표 이 노래가 마구 기대되어졌네요.


드디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심다. 서토는 다음 날 동생들과 모친을 만나뵌 뒤 목요일 오후 서울을 떠날 예정이라 했네요. 바쁜 내한 일정 속에서도 첫 이틀을 그간 꽤 오래 못본 옥도사와 함께 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참 뿌듯했심다. 다른 두 사람도 당연히 그랬을 거고요. 

 

호텔 방에서 담담한 재회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던 그 순간이 다시 한번 오래 갈 추억의 장을 새겨놓을 거라 믿어짐다. 서토, 목요일 아침의 작별 전화와 금요일 저녁에 보내준 시애틀 잘 도착했다는 카톡 문자 반가왔소. 다시 볼 때까지 또 열심히 사십시다. A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