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간 제주 방문 2
2019. 5. 7
아침 일찍 성산 일출봉으로
밤 1시반 경에서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눈을 뜨니 5시 50분이었다. 7시에 체크아웃할 요량으로 샤워와 세면을 끝내고는 짐싸기를 서둘렀다. 6시 50분에 현관문을 나오니 하우스 앞에 세워둔 K3가 ‘아재, 쫌 일찍 일어났구먼’ 하고 ‘얼릉 떠납세’ 재촉하는 듯 했다.
성산일출봉을 쳐넣으니 가는 길에 ‘옛날옛적’이라는 토속음식점이 뜨기에 여기를 중간 목표로 삼아 길을 떠났다. 토요일 아침길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차들이 많지도 않고 교통상황이 드라이빙 하기에 딱 좋았다. 제주에서 동쪽 해안도로로 가는 줄 알았는데 조천, 송당을 거쳐 성산읍으로 들어서는데 40여분 밖에 안걸리는 내부주행로 코스가 제시되었다.
조그만 마을들과 산속 좁은 길을 달리는 코스가 많았다. 오가는 차들이 드문드문한 길을 따라가며 한번도 못본 제주섬 북동 방면의 여러 곳을 눈에 담는 맛이 제법 아기자기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전경들이 5~6년 전 동기들과 일본 대마도 방문시 버스여행 속에 비쳤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때 담겨졌던 풍경들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출발한지 25분여나 되었을까 중간목적지인 ‘옛날옛적’이 가까워졌다는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시키는대로 큰길로 나와 우회전했더니 음식점 건물과 함께 주차공간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차들이 없어 혼자서만 주차한 뒤 나와 보니 이른 아침이라 당연히 개점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너무 일찍 와 슬펐던 곳>
<못먹어도 홍보해 주는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
죽은 자식 부랄 만진다고 아쉬움에 젖어 문닫은 음식점 문앞에 가보니 10시가 개점시간이라 써있는 해산물 메뉴표시판이 옆에 서있었다. 살펴보니 1인용으로는 만원짜리 성게알국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내 이놈을 일출봉에 도착하면 시식하리라 점찍고는 인증 셀카 몇컷 하고는 다시 여로에 올랐다.
일출봉 주차장에 도착하다.
한 15분여 더 달리니 드디어 일출봉 근처가 나타나고 저멀리 일출봉 실체가 보이며 공영주차장 표시가 도로 표지판에 등장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음식점들에서 성게알국이 12,000원 한다는 가격이 보였고, 마침내 공영주차장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허겁지겁 도착 일출봉을 배경으로 삼은 인증 사진들을 찍고, 근처에서 성게알국이나 한 그릇한 뒤 정상까지 오르려 했다.
<일출봉 도착 인증샷>
아침 요기 시켜주는 음식점들이 없어 거니는 중에 한 집이 문을 열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가격들이 벽에 명기되어 있지 않아 물어보니 성게알국이 15,000원 한다했다. 만원에서 만이천원 한다는 가격을 알고 왔기에 지나쳐온 가게들보다 좀 비싼 것 같다고 하니 주인장 말은 성게알 가격이 비싸져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격을 알 수 없게 해놓은 것이 요런 명소 바가지 가격 때문임을 알게 되자 자리잡았다가 바로 뛰쳐나왔다. 인근 음식점들도 담합하듯 만오천원을 호가하자 발품을 더 팔아 언저리 허름한 집을 찾아 들어갔더니 주인아줌마가 자기네는 성게알 값이 너무 올라 한동안은 메뉴로써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꿩대신 닭이 된 만원짜리 매생이 국>
뭐 다른 것은 없느냐 하니 만원짜리 매생이국 메뉴를 권했다. 꿩 아니면 닭이라는 생각으로 이 메뉴로 하겠다고 결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36년전 박점주와 여기 왔을 때도 48년 전 수학여행 때도 일출봉 정상까지 올라가 본 기억은 없었다.
시장하던 차라 매생이국을 한 그릇 뚝딱하고 다시 주차장 쪽으로 와서 정상까지의 계단 오름길 입장료를 2,000원에 구입했다. 올라가기 전 그 옛날 박점주와 와서 조랑말 타보던 작은 마장이 눈에 띄기에 감상에 젖어 그곳 주변을 폰카메라에 몇 폭 담았다.
<박점주가 헤벌쭉하며 조랑말 타던 마장>
문디가 곤색 줄무늬 원피스에 멋부린 검은 선그래스를 끼고 뽀글이 퍼머를 한 채 노처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지가 원하던 먹물서방 만났다고 입을 헤벌쭉거림시롱 바람결에 머리카락 흩날리며 조랑말 타던 그 장면들이 아스름한 옛그림처럼 떠올라졌다. 지금은 전국에서 관광차 온 외지인 가족들과 그 아이들, 그리고 중국인 단체 관광단 사람들이 마장 안과 그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무계단으로 걸어 정상까지, 그리고 하산
올라가며 정상에서 잠깐 머문 뒤 내려오는 총시간이 얼추 4, 50분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나무계단을 왁짜지끌하는 사람들과 함께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벤취들도 알맞은 곳에 놓여있어 고맙기 짝이 없었다.
<올라가는 길에 본 성산포>
<내려가며 본 성산포>
올라가다 쉬었다 하며 오르는 중에 아래를 쳐다보니 성산포 전경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 속에 아득한 포즈로 좌악 펼쳐져 있었다. 성산 오른쪽으로 바다가 들어오는데 자그마한 성산읍 공간이 마주하며 살포시 들어앉아 있었다.
<정상에서 한 컷 하는 중국 아지매들>
우리같은 마지막 중년들도 중간에서 한두번만 쉬면 올라가는데 큰 무리없는 배려심 깊은 등정로였다. 한 20여분 지나니 드디어 정상 부분이 나타났다. 먼저 도달한 관광객들이 정상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주변 경관을 눈에 잘 담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곳곳에서 까르르 거림 속에 한국어와 중국어가 가믓가믓 섞여 들려왔다.
<맞은 편에 한가롭게 앉아있는 우도>
<내려오는 측면에서 본 우도>
<양 봉우리를 앞에 놓고 본 우도>
나도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곳 풍치를 눈과 머리 속에, 그리고 폰카에 저장하기 위해 부지런히 찰칵거리면서도 때로는 셀카로, 때로는 주위사람들에게 부탁해 내 몰골을 담은 인증 컷들을 가끔씩 담았다. 조금 멀리 맞은 편 바다 속에 앉아있는 우도 전경이 참으로 한가롭게 헤시시 비춰졌다.
<정상에서>
<정상을 지키는 식물군>
<정상에서 본 일출봉 앞바다>
<정상에서 내려오기 직전 한 컷>
정상 근처는 움푹 파진 자그만 분지를 이룬채 자생적으로 자란 푸르른 식물들과 풀들로 덮혀 있었다. 한 15분 쯤 교차되는 여러 상념 속에 머물다 하산 길로 들어섰다. 정상 근처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성산포는 더 멋있었다.
<중국 아지매가 내려오는 계단에서 품앗이로 찍어준 컷>
나무계단을 내려오다 자기 그룹에서 뒤처진 어느 중국 아줌마가 혼자서 힘들게 셀카 포즈를 잡고 있길래 내가 찍어주겠다 하고 몇 컷 찍어주었더니 품앗이 하겠다며 자기도 내 폰카로 나를 찍어주었다. 덕분에 안정되고 여유로운 자세로 일출봉 하강계단에 서있는 내 모습을 몇 장 더 건질 수 있었다.
<소담스레 피어있는 유채꽃>
<일출봉 측면 절벽>
다 내려오니 길 오른 쪽으로 제주도의 브랜드인 노오란 유채꽃 공간이 소담스레 펼쳐져 있었고, 옆면으로 드러난 일출봉 절벽이 눈에 포착되었기에 얼른 찍어대었다. 드디어 홀로 온 일출봉 방문의 마침을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눈 앞에 보인은 빽다방으로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서 차쪽으로 찾아갔다.
시간을 보니 10시 반경이었다. 1시 반에 시작되는 한라대 심포지움장을 방문하는 여정에 올랐다. 넉넉잡고도 1시간이 채 안걸리는 거리였다. 이번에는 동쪽 세화-해수안해변도로로 가는 코스였다. 날씨도 어제와는 달리 화창하게 개인 가운데 느긋하게 하는 드라이빙은 내가 생각해도 와아 요 맛에 단독여행을 하는갑다 하고 주억거려졌다.
한 30분도 안되어 김녕 해수욕장, 함덕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표지판들이 나타났고, 저멀리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차를 돌려 잠깐씩 둘러볼 시간은 있었지만 이번 여행의 주목적인 한라대를 12시 반까지는 찾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더 급했기에 후일을 기약하고 제주시로의 주행을 계속했다.
행사장에 도착
제주시로 들어오니 교통이 조금 붐볐지만 정체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어느 횡단보도에서 예멘인으로 직감되는 젊은이 두 사람이 멀쑥한 용모와 옷차림으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오늘의 발표 테마와 관련해 적색 신호등에 걸린 정차 속에서도 그들이 뒷모습 행로를 눈여겨 지켜보았다.
<한라대 컨벤션 센터 도착 인증 샷>
제주시내를 제법 달리다 보니 드디어 한라대 캠퍼스가 표지판에 나타났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목적지에 12시 반도 못되어 들어섰다. 행사장인 한라켄벤션센터 건물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A켄벤션 홀로 찾아 들어갔다. 홀 로비로 들어가 진행요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한 꼭지 발표자임을 밝히고 참가자 등록을 했다.
<혼자 자고 가기가 과분했던 515호실 내부>
주최측인 국제자유도시센터의 고용석 진행팀장이 반갑게 맞아주며 오늘 하루 숙박할 건물내 숙소로 나를 안내해 갔다. 5층에서 내리니 완전히 호텔의 내부공간 같았다. 심포지움 참가자들을 위해 호텔룸의 컨셉으로 지었다는데 배정된 515호에 들어가니 뭐 일반 호텔방 그 자체였다.
<도착 신고한 컨벤션 A홀 로비>
짐 캐리어만 방에 놔놓고 로비로 내려오니 김신효 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분은 진주 출신으로 나와 같은 학교인 한국외대의 러시아과를 졸업한 러시아통 동문이었다. 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오늘의 행사장 내부를 둘러봤다.
<개회식 20분전 행사장 내부>
<동원된 학생 청중>
개최 세레모니 후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다
개최 30여분 전 이 모임의 진행사회자로 지명된 이보연 교수(관광경영)가 김신효 교수 소개로 나를 찾아와 수인사를 나눴다. 40대 후반의 복스러운 용모의 여교수였는데 젊은 시절 미국에서 이 직장 저 직장 다니다 늦깎기 공부길에 들어서 어느 명문대학의 박사학위를 건진 뒤 2년 전에 이 학교 전임으로 임용되었다 했다.
부산 출신이라기에 고향 까마귀라 맘이 좀 편해져서 ‘이교수님은 4학년인교, 5학년인교?’ 했더니 처음에는 말귀를 못알아 듣다가 3초도 안되어 이해한 듯, ‘교수니임.. 저 아직 4학년이에요.. 5학년이라니.. 옴마야, 동갑인 우리 남편에게 집에 가자마자 이르겠어요’ 하며 한참 억울한 미소 속에 눈을 흘겼다. 어디 가나 요놈의 입방정이라니..
개최시간 10 여분을 남기고 행사장으로 들어온 전이사장과 조우했다. 90년대 초 중앙대 상대 연구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영국신사풍의 스마트함은 세월에 부식되어 어느 새 사라지고, 중후한 인생연륜 풍기기와 내려놓음과 비우기 삶에 익숙해진 듯 얄궂은 마후라 하나 목에 걸친 준자유인의 복장으로 모처럼 만난 후배를 반겨 주었다.
<심포지움 행사 플랜>
드디어 4학년 이교수의 사회로 개회식이 시작되고 전이사장의 개회사, 김성훈 한라대 총장의 격려사가 있은 뒤 한정화 전 중소기업청장의 ‘4차 산업혁명시대의 SMART 기업가 정신’이라는 오프닝 기조 강의가 끝난 뒤 1세션(국제경영·국제관계)에 속한 김재민의 ‘제주-예멘 난민문제’ 테마 강의를 위한 첫 번째 발표가 이루어졌다.
테마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시사성이 있었는지 청중들의 들을 태세가 양호한 가운데 준비해 간 11페이지 짜리 PPT 파일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부산 액센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주어진 시간이 15분여 밖에 안되었는지라 어떻게든 시간을 지키려고 내용을 그냥 읽지 않고 각 페이지에 나오는 핵심들을 구어체로 풀어 소개했다.
<예멘의 최신 개황>
<입국 반대파의 주장 근거>
<예멘난민 수용에 부정적 여론 우세>
<진보적 시민층의 수용 찬성 근거>
9페이지 독일의 사례에서는 한 2분을 배정했으나 비교를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수용 소극성, 이태리와 동유럽국(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크로아티아)의 배타성이 그냥 자동뻥으로 입에서 새어나오는 바람에 한 1분 여 더 잡아먹었다.
후반부 우리나라의 초인색한 난민판정률과 열악한 수용 인프라 및 인도적인 개선방향에서는 이해협조적인 추가설명을 할 상황이 못되어 나중 추가시간에 다룰 요량으로 페이지에 나와있는 굵은체 핵심내용들만으로 한 2분여에 소개하고 서둘러 마쳤다.
<썰렁해지는 분위기>
국회청문회장처럼 마이크를 끌 수도 없고 예능프로 PD처럼 빨리 마쳐달라는 수신호도 보낼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어 결국 행사 후반부 프로그램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생략되었다.
지역언론까지 동원하며 이 학술심포지움의 외부홍보 효과를 노렸지만, 운영상의 묘를 확보하지 못해 끝까지 발표자석에서 고지식할 정도로 자리를 지킨 나까지도 많이 아쉬워 한 부분이었다.
<김재민 테마 토론장>
테마당 역시 15분이 주어진 토론타임에서 내 테마에 대한 토론단은 관록있는 좌장교수와 함께 젊은 남교수와 여교수, 그리고 제주관광공사에서 나온 중년의 여성 공무원으로 구성되었다.
좌장교수의 노련한 진행 속에 토론자들은 약간 의례적 말잔치로 겉돌기는 했지만 논점제기 포인트들이 비교적 명료해 나와 질의-답변을 주고받는 3합 정도의 토론은 할 수 있었다. 특히 두 남녀 교수는 테마의 전격성과 내용의 튼실함이 꽤 인상깊었다는 소감을 피력했는데 늙은 아재에 대한 예우감도 있었겠지만 기분은 좀 삼삼했다.
하지만 다른 나머지 테마들에서는 장시간 소요 발표자만큼이나 논점 제기자들의 소감피력적 논평으로 인해 질문으로 가는 중간단계가 엿가락 늘어지듯 길어져 저 양반이 말하려는 논쟁적 질문요지를 저러다 혹시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판깨는 장광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나마 ‘제주관광 산업의 수익률 제고 방안’과 ‘남북관광 교류협력과 당면과제’,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제주의 미래’ 테마들에서 좀 건질만한 논쟁적 제기 포인트들이 더러 있은 것을 빼고는 나머지들에서는 ‘참 이렇게 진행되어져서는 안될건데..’ 하는 우려들로 가득 차게 한 시간들이었다.
<폐회식 기념 컷: 한복판 전용욱 이사장, 왼쪽 끝 4학년 이교수, 오른끝 둘째 김신효 소장>
앞에서부터 발표자나 토론자들의 시간준수 의식이 결여되거나 무시되는 바람에 토론 타임도 좀 형식적으로 짧게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발표된 페이퍼들의 논문화 개조 요강 소개와 전이사장이 주관하는 종합토론 시간이 몽땅 날라가고, 기념사진 촬영을 겸한 폐회식이 서둘렀데도 좀 늦게 마쳐졌다.
발표 테마수가 6개가 아닌 4~5개로 줄어들고, 시간준수 장치들이 좀 더 엄격하고 다양하게 가동되었다면 이번의 부실성을 더 많이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바램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최측의 장기간 프로그램 유지 및 진행 추진력과 외부강사들의 접대에 만전을 가하는 준비성은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회가 끝나고 발표자와 토론단, 학교관계자들 모두가 참석한 지역명소 혜원횟집에서 가진 만찬연에서 오고 간 인간적 교우맺기의 친교시간이야말로 한국적 정서에서 이런 학술 프로그램 모임의 진정한 성과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시간이었다.
실력과 친화력을 겸비한 전용욱 교수가 같이 늙어가는 왕년의 제자를 옆에 불러 앉혀놓고 사람들 앞에서 살갑게 챙겨주니 특별한 ‘제주의 밤’이 푸근하기만 했다. 거기다 4학년 이교수가 앞에 앉아 꼬들꼬들한 제주 옥돔회를 같이 음미하며 자기를 늙은 김모가 다짜고짜 5학년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주변 돌아보며 떠드는 것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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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영 19.05.07. 19:10
그런데 우리나라가 외국인 출입에 대해 호구라는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심다. 박통시절부터 화교들이 자기 생일은 잊어도 체류허가 갱신일은 죽어도 잊지 않는다 하지 않습디까? 그만큼 빡세게 외국인 관리를 했다는 반증이지요.
그런데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도 이런 배타주의가 여전히 횡행한다면 해당국은 '촌놈 국뽕주의'에 찌들었다 하겠심다.
필리핀도 50세 이상은 미화 5만불,이하는 75,000불을 예치하면 본인 포함 3명까지,초과 인원 1인당 15,000불 예치를 시켜야 하였습니다.지금은 법이 완화되어 20,000불이 되었지만,이것은 거주할 자격이지 취업을 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바로 강제출국시킵니다.
예멘이 아니라 저거 할배라도 무분별하게 채류하게 안됩니다.
우리의 여권은 무비자입국이 되는 나라가 많는 관계로 최저 만불에서 이만불까지 거래가 됩니다.
어느 나라이든 자국민 우선 정책을 펴는 것이 당연하고,도움이 안 되는 외국인은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아이도 치대를 나와도 면허시험을 못 보게 하는 관계로 결국 현지인과 합작하여 치과를 개원하였스니다.
중국 아지매가 품앗이로 찍었다는 사진이 그래도 제일 나은듯 함미다.^^
김박사 글을 읽다보니..학교의 교직자가 아니어서 그 깊은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대학에서 주최하는 포럼이니
세미나니 하는 행사가..학문적 목적보다는 주로 횟수/실적 위주로 다루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일부 드는군요.
음악인들이 가능한 명색있는 공연기회를 만들어 실적을(?) 올리려는 노력에 비유된다 할까요.
그리해야 돈이 들어오고 지원이 보강된다는 머 그런 것-^^ 내용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타(?)는.. 머 그런..^^
예산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좀 많이 나오는지 지역언론과 방송에도 홍보하면서 나같은 초짜 발표자에게도 발표료 50, 왕복항공료 20, 호텔급 숙박 7, 만찬 5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아마 골프치는 아재들에게는 골프비용 보조금도 좀 나갔을겜다.
아무튼 서토의 후각과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림을 뚫어보는 통찰력은 시애틀 한 구석에서 마약기기 행상하기에는 아까운 민완 첩보요원 수준이요..
근자의 제주 예멘난민 건은 왠지 좀 씁스름한 건으로 사료되어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사료됩디다.
우선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남성들 위주로 단체 비행기로 왔다는 점도 그렇고-
아마도 누군가의 지시로.. 일시적 소나기를 피해 있도록 예멘내 정치적 주요 행동대원들을 피신시킨게
아닐까 하는게 저의 음모론적(?) 추측임미다. 따라서 추이를 끝까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주요 행동대원 피신망명설도 서토의 고감도 촉각을 믿으니까 한번 같이 지켜보겠심다. 아니면 말고..
박점주님 뿐 아니라 젊은 김박 자신도 그림 속에 같이 집어 넣고 지난 시간도 그리워하고 또 같이 오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느낌을 팍 받았씀...
밉니곱니하며 같이 산 것이 수십년이라 이젠 자기 자신의 일부처럼 자연스럽지만 그러면서 또 늘 챙겨주는 도타운... 진짜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은 택도 없지만 이 캐릭터는 한 때 내가 우울한 척 다운모드를 유지하면 '나가서 애인이라도 만들어봐라' 하고 조선시대 왕비같은 허장성세적 세리프도 막 날릴 정도였지요.. 얼매나 자신 있는 척 하던지.. 그래 싸니 피우는 척 하다가도 바로 돌아가곤 했심다.
그 사모님은 인생을 초월한 분 ㅋ
점주님의 스케일? 호연지기?? 는 우리들 같은 범부들 여럿 묶어도 비교도 안될 것 같소..
애초부터 김박이 점주님에게 간택?을 당하고..
그리고 사육되었던 것으로 보입미다..
김박은 복도 많소..
어느 모임에서나 시간 안 지키고 혼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는 참 난감하지요. 세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는 것은 윗대가리가 엉뚱한 짓을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런 밑바탕 세포 하나하나가 작은 것부터 안 지키고 예의가 없어서이기도 하지요. 가정교육부터 안 됐다고나 할까.요즘은 가정교육 자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독일놈들처럼 시간지켜 끝내려 했던 소생이 바보처럼 여겨질만큼 다른 이들은 지 하고 싶은 말 늘어지게 그냥 해 댑디다. 질문하는 아재들도 이건 뭐 토론참가자 개런티 값 하는라고 그랬는지 질문으로 가기위한 서론과 중간단계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사안을 보는 자기관점을 아는 것 자랑하듯 늘어놓는 게 아님미까? 한 마디로 골 때립디다.
박점주 얘기는 요 글 보고 더 충성심을 바치라고 다분히 후카시 좀 넣은 묘사였심다.
요새 재민공 올린 사진을 자주 보니 그래도 고등학생 때 앳된 옛 영상이 옅어지고 현실감이 조금씩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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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남의 나라에 살지만, 우리 나라는 호구 중 호구의 나라입니다. 허술한 의료 보험제도 등등 명분에 빠져서 실속이 없습니다. 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의 출입국 관리는 아주 엄격합니다. 외국인이 발 붙이기가 싶지 않습니다.중국인들을 잘 못 받아 들어서 ,경제권이 화교들에게 다 넘어 간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