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체험기

나홀로 간 제주 방문 3

백조히프 2019. 5. 15. 09:25

 

 

나홀로 간 제주 방문 3

 

 

2019. 5. 15

 

멋진 회식연의 밤과 두 여교수와의 아쉬운 동승

 

둘째날 밤 해원횟집에서 한라대 심포지움 주최측과 테마 발표자 및 토론자 그룹 참석 가능자들이 가진 회식연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전용욱 이사장의 여유있는 객담 주도 속에 참석자들은 이번 학술모임이 약간 아쉬운 운영의 묘는 있었지만 돌발적인 사건사고 없이 전체적으로 무난히 잘 마쳐져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임했다.

 

<해원횟집 건물 전경>

 

 초반 공식적인 세레모니에서 각 테마 발표자는 자신의 페이퍼를 소논문 형식으로 갈무리 하여 주최측에 제출하면 심사하여 사단법인 국제자유도시센터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국제자유도시연구에 실어주겠다는 안내지침까지 전달받았다,

 

‘Full Sentence’ 논문형식의 페이퍼는 90년대 초중반 독일어 박사학위 논문과 90년대 후반 현대경제연구원 시절 썼던 여러 편의 연구보고서 이래 처음이라 감회가 무상했다.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근무시절에는 긴 글 읽기 싫어하는 대부분의 윗대가리들 때문에 찌익 땡~’ 식의 프리젠테이션용 브리핑 양식으로만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해원횟집 창밖으로 본 바다 야경>

 

9시 반 경에 파한 회식연에서 주최측이 제공한 컨벤션 건물 내 호텔급 숙소로 가는 길에는 4학년 후반 이교수가 모는 차에 내 테마 토론자로 참석하여 괜찮은 소감을 전해준 미모의 최교수, 그리고 또 다른 남자 토론자 교수와 동승했다. 가는 길에 이교수는 내가 아까 실언한 ‘5학년인가요?’를 웃음 속에도 계속 물고 늘어지며 최교수에게 하소연했다.

 

영리한 4학년 초반 최교수는 일면 늙은 김모가 너무 나갔네 하고 화답적인 추임새를 보였지만, 다른 한편 , 그 정도 갖고..’ 하는 중립적인 염화시중의 미소도 흘릴 줄 알았다. 회식자리에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못나눴기에 이 언니를 염두에 두고 학교 앞에 닿으면 커피숍에 가서 이바구나 좀 더 나누자고 제안했다.

 

최교수는 그러자는 분위기였지만 이교수가 늦은 밤이고, 주말에 내려온 자기 남편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며 초를 쳤다. 문디, 가면 혼자 가지 커피 토크 나누고 싶어하는 최교수까지 차 모는 위세로 가정으로 돌아가자하고 순장조로 삼을 것은 뭔가하는 안타까움 속에 혼자 컨벤션 로비 앞에서 쓸쓸히 내려야 했다.

 

<70대 먹물 사르트르의 지적 글빨과 말빨에 꼴깍 간 10대 천재소녀 사강> 

 

하아, 요놈의 입방정 때문에 지성과 함께 6학년 중반의 아재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미모를 갖춘 여류들과 제주의 푸른 밤 속에 편안하게 담소할 기회를 날린 게 못내 아쉬웠다. 마치 74세의 사르트르가 사팔뜨기 눈을 한 채 슬픔이여 안녕을 써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매혹적인 10대 후반 여류 프랑솨즈 사강과 단골 카페에서 자주 만나 나이 차도 잊은 채 서로 거림낌없이 노가리 나누던 그 스토리의 재현을 꿈꾸던 그림이 허무하게 사라졌으니 말이었다.

 

아쉬움을 부여안고 방으로 올라오니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세수만 하고는 TV나 인터넷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내일 오전은 서귀포로 가서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를 방문한 뒤 오후에는 만장굴을 보고는 공항으로 가자 하는 계획만 대충 그리고는 바로 숙면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서귀포 정방폭포로 향하다

 

나이 들면 새벽잠이 줄어드는 지 피곤 속에 잠자리에 들었건만 6시 조금 넘어 눈이 떠졌다. 커튼을 제끼며 바깥을 내려다 보니 예전의 유럽이나 중국, 일본, 동남아 여행지들에서 느꼈던 낯선 곳의 고즈넉한 아침 풍경들이 여유로우면서도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학교숙소 방에서 내려다 본 전경>

 

 

9시에 체크아웃하리라 생각을 하고, 샤워와 세면을 한 뒤 비치되어 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느긋이 포트에 물 끓여 타마셨다. 아침 TV뉴스와 인터넷 읽을거리 찾아 읽으며 제주의 마지막 날을 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마지막 아침을 일찍 맞으며> 

 

850분 자고 난 침상을 좀 정리하고 최종 짐 점검한 뒤 청결한 정리정돈을 책임져주는 청소 아줌마에 감사의 인사쪼로 2,000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로비로 내려왔다. K3에 올라타 정방폭포를 치니 1시간 20분이 걸린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라산을 오른 쪽에 끼고 서귀포까지 내려가는 종주 코스였다.

 

중간에 만난 제주말 방목장

 

제주시를 벗어나 호젓한 산길로 들어선지 한 30분도 되지 않아 제주 조랑말들을 방목하는 시 관장 사육장이 나타났다. 차들이 서 있길래 나도 차를 세워놓고 맑은 공기 좀 마시며 허리 좀 펴려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뎅과 달걀 토스트를 파는 포차가 있었다. 토스트를 많이 사가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오뎅을 몇 개 주워먹었다.

 

<오뎅 주워먹는 JM>

 

쌍방울 자매 같은 두 여주인이 여손님들에게도 자꾸 삼춘, 삼춘해쌌기에 현기영의 제주 4.3 사태를 다룬 소설 순이 삼촌에서 이곳 사람들은 아저씨나 아줌마를 통칭해서 삼촌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여기서는 그리 한담시요?‘ 하고 아는 체 했더니 육지 양반이 뭐 좀 아네하며 급반갑 모드로 돌아서 주었다.

 

<목가적으로 뛰놀며 목초 뜯는 말떼>

 

 

방목장 근처로 슬슬 접근하니 고갱의 타히티섬 말들처럼 조랑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가운데 중간중간 끼어있는 까치들과도 동무하며 말 그대로 많은 인간들보다 더 삶의 질이 높은 목가적 망중한을 보내는 것이었다. 말 하니 두어 달 전에 다녀온 몽골의 말들도 떠올라졌다.

   

<사람에게 다가서기 좋아하는 꼬마 말과 까치>

 

 

체형들이나 용모가 비슷한 걸로 보아 13C 후반 항몽세력 삼별초군 해체를 요구하던 여몽연합군에 3년 간이나 대항하다 제주 애월 땅까지 쫒겨온 이들을 토벌하려 들어온 몽골군이 데리고 온 몽골마가 그 선조가 아닐까 하고 짐작되었다. 이 팔자좋은 말들과 까치들을 폰카 속에 옮기며 지켜보다 서귀포 길로 다시 들어섰다.

 

서귀포에 닿아 정방폭포를 찾다

 

차 기름이 깔랑깔랑하던 차에 맞춤맞게 서귀포 시내로 들어왔다. 제주도 제2의 시라는 서귀포가 육지에서 꽤 오랜 기간 제2의 메트로폴리스로 폼잡고 있는 내 고향 부산만큼이나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 도시는 그 옛날 고2 수학여행 때 학교 대표밴드였던 워커스가 당시 인기절정 벤처스 악단의 주요 곡들을 여관 안마당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연주해 같이 온 학우들과 몰려든 근처 주민들을 한밤중에 열광시킨 그 기억 속에 다시 살아났다. , 그때 우리는 청춘의 초입에 막 들어서서 대입준비 고3 쇠고랑을 막 차기 직전이었지라 하고..

 

80년대 초 박점주와 같이 온 신혼여행 때도 청춘의 마지막 꼬리를 붙잡은 채 도달한 제주에서의 첫날 밤은 내가 피곤했던지 점주가 긴장했던지 내용상 좀 부실했다. 하지만 서귀포에서의 둘째 밤에는 부부의 연을 제대로 선포한 완전합일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서귀포라는 지명이 어찌 맘에 들지 않으며 잊혀지겠나 싶었다.

 

뭔가 흐뭇한 기분에 들떠 기름도 3만원 정도만 주입하면 될 것을 4만원이나 넣어줘 예정에도 없던 곳을 방문할 때를 대비하기조차 했다. 아무튼 좋은 기억을 갖고 오전 중에 계획한 정방과 천지연 폭포 중 정방폭포 쪽으로 먼저 기수를 잡았다. 10분도 안되어 정방폭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다를 포함하는 정방폭포 원경>

 

<접근해서 찍은 폭포 전경>

 

국내에서 유일하다는 뭍에서 바다로 직접 폭포물이 떨어지는 정방의 장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천지연, 천제연과 함께 제주 3대 폭포로 불리는 정방은 높이 23미터, 너비 8미터, 깊이 5미터에 달하는 아담한 규모지만, 주상절리를 주변 경관으로 하는 그 풍치는 서귀포와 제주도 전체를 아우르는 랜드마크로 등극하는 데 거의 이의를 제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나가는 일본 여인에게 부탁한 인중 샷>

 

더우기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동남동녀 500명을 권신 서복과 함께 이곳으로 보냈다는 스토리 텔링까지 입혀내고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서복 전시관까지 정방폭포로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놓으니 이들의 방문 안마당처럼도 여겨졌다.

   

 

<기괴한 소나무를 통해 본 폭포>

 

이미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는데도 이번 방문 역시 먼 길 오기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하고 여길 정도로 폭포 자체와 앞에 놓인 바위들과 바다, 기괴하게 구부러진 소나무, 주위 절벽들이 하나의 선계와도 같은 공간을 이루어 시대를 초월한 채 영원한 존재감을 유지할 것 같았다.

 

70년 전 광기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런데 1947~1954년 기간의 제주 4.3 사태 속에서 ‘4811월 벌어진 끔찍한 민간인 학살극이 야만과 광기 속에 저 폭포수 위에서 펼쳐졌다는 사실이 떠올려지자 지금 눈에 보이는 찬연한 폭포 주위 공간을 마냥 찬미할 수 만은 없었다.

 

그 당시를 겪은 생존자들의 체험적 구술과 발굴된 여러 공식 사료들에 의하면, 248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빨치산 무장대의 부역자라는 혐의 속에 혹은 무장대원의 가족이거나 친척이기에 대살(代殺)의 대상으로 몰려 토벌군경과 서북청년 자경대에 의해 불문곡직하고 한달여 사이 총탄과 죽창으로 살해되었다고 했다.

 

  <당시 많은 희생자를 낸 폭포 위 소남머리 사무소 건물(인터넷에서 건짐)> 

 

아니, 이 무슨 역사적 비극이란 말인가.. 한국전쟁을 전후 해 북녘 땅에서도 수많은 우익인사들과 그 가족 일가가 똑같은 이유로 공산 세력에 의해 잔혹한 운명을 맞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남녘 끝 제주도 전역에서 3만명이라는 민간인 생명이 이런 야만적 광기만이 판을 친 이념의 대결장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것을 어쩔 수 없는 전쟁 속 참화 중 일부라고 그냥 넘어가며 묻을 수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잡혀 거의 무조건 살륙되는 현장에서 산속으로 동굴로 숨어들어간 민초들을 마치 토끼사냥 하듯 한 곳으로 몰아 연기를 피워 집단 질식사를 시키거나(영화-'지슬' 참조), 체포되면 무차별 처형을 한 가장 큰 학살터 중 하나가 여기 정방폭포였다니 정말 이 사실을 알고서는 정방의 절경을 그냥 맘 편하게만 즐길 수는 없었다.

 

<절경 속 원혼들이 떠도는 바다>

 

이 절경 바다 아래에는 그 때 세상을 하직한 수많은 원혼들이 여전히 떠다닐거라 짐작하니 최고의 경관을 보이는 이곳을 방문한 기쁨도 어느 순간 숙연해졌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중국과의 역사적 연고를 강조한 서복전시관만 세울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이들 원혼들을 위무할 추모위령탑도 당연히 같이 존재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4Km 떨어진 천지연 폭포로

 

절경에 대한 감탄과 역사적 비극에 대한 숙연함이 교차되는 가운데 정방을 떠나 인근 4Km에 떨어져 있다는 천지연 폭포 쪽으로 K3를 몰고 갔다. 15분도 안되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쪽으로 걸어가니 정방폭포에서 풍겨나온 절경 속 비감함보다는 그냥 따사한 남방국에 들어섰다는 이국적 편안함이 많이 묻어왔다.

 

<입구로 들어서자 맞아주는 난대림>

 

<천지연 폭포 전경>

 

<인증샷 1, 2>

 

 

이곳은 이름 그대로 하늘과 땅이 만나 이루어진 연못이라는데, 폭포 길이가 22미터, 그 아래 못의 깊이가 20미터로 정방과 높이는 비슷했지만 폭포물이 떨어지는 연못 아래는 훨씬 더 깊었다. 근교를 둘러싼 녹색의 식물군으로 이루어진 난대림은 동남아의 베트남이나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인상들을 떠오르게 했다.

 

<입구 근처 다리와 아래에 보이는 잉어>

 

 

폭포수가 떨어지는 깊이 20미터의 못 속에는 무태장어라는, 바다에서 산란하고는 하천이나 호수로 돌아오는 길이 2미터, 무게 20킬로에 달한다는 회유성 어류가 있다는데 내가 간 날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입구 돌다리 근처에서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것만 볼 수 있었다.

 

폭포수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주변 경관을 음미하며 걸어갔다. 난대림 속을 거닐다 보니 얼마 전에 감상한, 왕가위 감독이 장국영을 주연으로 내세워 90년대 후반에 만든 영화-아비정전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경내 기념품 가게 윈도우에 비친 앙증스러운 미니에이츄어>

 

 

 

살아온 황량한 인생역정으로 내면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껴앉고 살아 누군가를 결코 깊이 사랑할 수 없는 아비’(장국영).. 친모가 있다는 필리핀 저택을 찾지만 받아주지 않는 친모의 냉랭함에 한껏 실망하며 허위적허위적 돌아서 가는 명장면적인 뒷모습을 롱테이크 샷으로 잡았을 때 비춰진 그 녹색림이 여기서 어쩐 일로 오버랩 되었다.

 

다른 한편 ‘71년 고2 수학여행 때 들린 이곳에서 학우 일행과 떨어져 향후의 학업노선과 관련해 뭔가 중대결단을 내리는 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따로 걷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 때 폭포 앞에 있던 서너 살 위 누나뻘 되던 여대생 3명이 교복입고 돌아다니던 나를 보고는 저기,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겠어요?‘ 하며 말 걸어오던 그 순간 역시..

 

<서울 언니들의 옛 이미지를 찾는 중에>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나 듣던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로 까까머리 동생뻘에게도 깎듯한 존대어 부탁을 해왔던 그 깜찍하고 예의발랐던 언니들은 지금 어디서 뭐하며 같이 늙어가고 있을까.. 그런 상념 속에 같은 곳들을 굽어보니 쏜살같이 흘러간 48년 세월이 그저 속절없이 네다바이 당한 듯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서귀포를 벗어나 만장굴로

 

이 날 오전의 방문 숙제였던 정방과 천지연 폭포 탐방을 마치고는 마지막 방문지인 제주도 북동 내륙에 있는 만장굴을 보러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려 해물탕 전문 식당을 차 몰면서 부지런히 찾았다. 어디선가 바다 경관이 좋은 곳에 놓인 주차장을 가진 식당이 보이길래 차를 세우고는 들어갔다.

 

 <서귀포 떠나면서 가진 전복 된장찌개 점심> 

 

그 전날 못먹어본 성게알탕을 찾았지만 여기도 성게알 값이 한참 올라 한동안은 취급하지 않을 거라 했다. 되는 메뉴를 물어보니 전복 넣은 된장찌개를 권하기에 그냥 주문했다. 가격은 12,000원 했지만 식당 앞 바다경관도 좋고 시장기도 있고 해서 제법 전복이 많이 들어간 찌개를 감사하게 잘 먹었다.

 

<멋들어진 주차장 얖 바다 전경>

 

 

식당 건너 주차장 앞에 있는 바다 위 저 바위섬 같은 게 무엇일꼬 하는 의문을 품으며 차에 올라타 만장굴을 쳤다. 북동쪽으로 주행시간이 한 40분 정도 걸리다고 나왔다. 우리 군번에 운전해 찾아가기 딱 알맞은 거리였다.

 

서서히 서귀포를 빠져 나가는데 왼쪽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한라산이 계속 보였다. 한 컷 하고 싶었지만 운행 중이라 눈으로만 감상했다. 초등시절 한라산 높이가 해발 1,950미터로서 남쪽에서는 지리산보다 더 높은 1위산으로 배웠는데 산세가 높기는 해도 가파르거나 험준하지 않고 그저 느긋하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2000년대 중반 인기 있었던 내 이름은 김삼순드라마의 마지막회에서던가 주인공 김선아가 한라산 아래에서 올라가다 정상인 백록담 입구 무렵에서 설치된 나무계단을 헉헉거려 오르며 자신의 자아와 인간적 정체성을 확인하려던 그 장면이 머리 속 어딘가에서 숨어있다 툭 튀어 나오기도 했다.

 

만장굴에 들어서다

 

<만장굴의 위치도>

 

다시 호젓한 종주 도로로 접어들어 구불구불한 산속 길을 가다 어느 지점에서 만장굴로 가는 우회전 길이 나타났다. 큰 문제 없이 네비 시키는대로 따라가니 드디어 만장굴 입구 표지판이 보였다. ‘83년 신혼여행길에서는 못가봤던지라 자연 ’71년 고2 수학여행 때가 생각났다. 그때 학우들과 관광버스 타고 이 길로 들어섰지 하고..

 

 

<만장굴에 대한 설명 표지판>

 

<입구에 들어서며>

 

주차장에 들어서니 그때와는 격세지감이 일 정도로 주변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전체 7Km에 달한다는 굴길이에도 관광객들에게는 입구에서 1Km까지만 관람보행이 가능하며, 왕복 한 40여분이 걸린다는 안내방송 멘트가 들려왔다. 중국인 이외 서구쪽 외국인 관광객들의 얼굴도 많이 보였다.

 

<벽에 붙어있는 박쥐떼>

 

 

‘71년 당시에는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조명등이 없어 깜깜이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다녀야 할 판이었다. 내가 총기있게 준비해 간 성능좋은 군용 랜턴이 웬간한 서치라이트 역할을 해줘 의기양양하게 앞장 서 학우들의 향도 역할을 했던 기억도 새삼 떠올랐다. 종유석 벽에 붙어있던 박쥐들이 불빛을 보고 날라다녀 모두 화들짝 놀랐던 생각도 나고..

 

<중간에 들어가다 만난 거북형태 용암체> 

 

<중간에 들어가자 갑자기 넓어진  광장 공간> 

 

지금은 조명시설과 중간중간 챙겨볼 곳에 대한 소개 표지판들이 잘 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걸어가며 둘러보게끔 여러 시설물들이 곰살맞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옛날에 체험했던, 영화-인디애나 존스에나 나올법한 어두컴컴한 동굴 탐험의 스릴감은 아쉽게도 거의 사라졌을 정도로..

 

여러 주목할 만한 요지들을 잠깐씩 서서 쳐다보며 사람들을 따라가다 드디어 반환점 격인 용암 돌기둥(석주)’ 앞에 도달했다. 주인공답게 특별 조명들을 많이 설치해 준 덕에 아주 그럴싸한 모양새였다. 수년 전 가족들과 한 베트남 여행에서 하롱베이를 방문했을 때 어느 종유굴에서 하이라이트로 감탄 어리게 본 그런 용암탑 같았다.

 

 

 

<반환점이 된 용암 돌기둥>

 

반환점을 찍고는 같이 돌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한 15분간 걸어나오니 들어갈 때의 입구가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4시를 조금 넘어 있었다. 이제 5시까지 OK 렌트사로 돌아가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 550분발 부산행 제주에어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충 설정한 스케줄대로 시간 기똥차게 맞추며 돌아다녔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박점주에게 오늘 방문한 곳들에서 찍은 사진들을 감상단상과 함께 카톡으로 보냈더니, ‘와이고, 우리 늙은이.. 젊은이 못지 않게 다부지게 다니며 구경 한번 잘했구만이라..’ 하고 되도 않는 지역불명 사투리 어조 써감시롱 늙은 서방의 홀로 행한 제주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돈줍고 가재잡고' 식으로).

 

제주 여행 소감

 

난데 없는 학술대회 참가차 36년 만에 가본 나홀로 제주여행은 지난 2월에 다녀온 몽골 탐방과 함께 올해 들어 2연타석 히트를 기록했다 싶을 정도로 멋진 체험이었다. 평소 제자 학생들에게 독서와 함께 여건될 때마다 여행 많이 하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거의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이번에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가는 여행도 괜찮지만 이번처럼 단독으로 차몰며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상이나 시대에 대한 상념 속에 유명지를 찾아 호젓한 산과 마을 길을 다니는 로드무비적 여행 체험도 세상사에 찌던 우리네에 정말 영양가 있는 힐링 치유제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23일 간의 단기일정에서도 수십년 간 못가봤던 곳을 야무지게 다시 돌아보고 머리 속에 업데이트 스캔까지 해온 이번 여행길이 또 한번 추억 어리고 인상 깊었던 여행체험을 모아놓은 김재민 여행 인상기리스트에 자리잡게 되어 뿌듯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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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9.05.15. 17:07

재민박사 48년만에 간 제주 여행이라니 고교 수학여행이후 첨갔단 말이요?

해외 동포 사할린 동포도 아니고 조총련도 아닌데
너무 오래간만에 갔다는
느낌이오.
사진과 글들이 잘 어우러져서 마치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재주가 쥑입니다.
요번 일요일 날 부석사 무섬 마을 문화기행 함께 갑시다.좋은 글들이 와르륵 나올것 같습니다.
 
김재민 19.05.15. 19:13
아, 83년 신혼여행 간 이후 처음 갔으니 36년 만임다. 고쳐 놓았네요.
부석사 여행도 마침 부산 있을 때니 따라가겠심다. 마치 종군기자가 된 것 맨치로..

작년처럼 늦잠 자는 바람에 못따라가지 않게 아침 5시 반 모닝콜 부탁하리다.
 
백민호 19.05.15. 17:08
부산에 있으면 19일 7시 까지 해운대 양운고 정문으로 오세요.
 
 
김수인 19.05.15. 19:29
정말 재미있게 읽었네...아이고, 다음편 나올때까지 우찌 기다리지...
또 일 만들어보셔.ㅎㅎ
 
김재민 19.05.16. 07:30
수인공, 항상 내 글에 과분한 리액션 보내주는 것 그저 고마울 뿐이요. 계속 동력원으로 삼아 치매 올 때까지 열심히 동기들을 위해 이런저런 잡문들 많이 올리겠소이다.
 
 
김수인 19.05.16. 10:05
김재민 감사합니다 ㅎㅎ
 
 
이원익 19.05.16. 01:45
제주도 다시 가 본 듯 실감나게 읽었네요. 한참 동안 미국에서도 특히 서부에서 웅장하고 거대한 곳들만 보다가 이런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곳들의 사진과 살가운 묘사를 다시 보고 읽으니 새삼 정겹고 그립네요. 수학여행 때 사진찍었던 그 자리, 정방 폭포도 그때는 철없이 그냥 멀거니 구경만 했었고...그런데 사진에 있는 새는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인데 글에는 까치만 나오네요. 까마귀보다 좀 작고 날개와 배에 흰 깃이 있는 까치를 모르실 리는 없을 테고.  
 
 
김재민 19.05.17. 09:45 new
법사도 나처럼 최근의 제주 풍경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소생도 옛날에는 멋모르고 처음 접했던 제주의 문화관광 유산들을 별 감흥 없이 그저 멀뚱멀뚱 보기만 했었심다.

그런데 이제 인생의 나이테와 함께 세월 속 기억도 좀 쌓이고, 유홍준의 '우리문화답사기'나 김훈의 '자전거 여행기' 같은 책을 읽고는 스스로도 머리 속에 스토리텔링을 입히며 다시 찾아보니 요런 곳들이 제법 새롭게 눈에 들어옵디다.

까치가 아닌 까마귀라는 법사의 지적은 내가 거의 틀렸겠심다. 우리가 도시공간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보니 관념적인 조류의 이미지만 꽂혀 실체 구분을 못하는 때가 많심다. 덕분에 고쳐놨네요.
 
 
지흥석 19.05.16. 09:33
나도 작년에 제주도를 주마간산으로 들렀습니다만 팩키지 관광을 따라다니느라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외려 김박의 글이 더욱 더 실감이 납니다. 충실한 내용의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재민 19.05.16. 11:24
지박사가 작년에 한국 온 김에 제주까지 살피고 간 모양이구려. 바쁜 일정 속에 패키지 여행이라 주마간산식으로 스쳐봤다 하지만 그래도 축적해 놓으면 때될 때 새로운 변형물로 멋있게 다시 재탄생해줄 거라 여김다. 어디든 여행 많이 다닙시다. 가능하면 글로도 그때그때 기록해 놓고요..
 
 
김의철 19.05.16. 23:54
사진만을 보아도 김박사의 성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설령 82세라 해도..사진없이 글만 올리는 일은 치매상태만 아니라면 가능할 수도 있따(?) 여겨지는데 비하여
65세 즈음에(?) 들어선 분이, 이처럼 여러 장의 관련 사진을 글목에 배치하는 일은 결코 쉽지않다 생각됩니다.

 
김박사가 여러면에서.. 여전히 열정적이며 또한 매우 건강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가 있겠네요.
아마도.. 홈캄잉 80주년 모임에까지 참석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아닐까 상상됨미다.^^

 
 
김의철 19.05.17. 00:21 new
업무가 끼인 2박 3일 일정은 결코 긴 시간일 수가 없을 터인데..
사전 섬세한 일정 계획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여정의 소화라 하겠습니다.

덕분에 정말이지..마치 수인행님이 권고한 EBS 테마 여행기를 보듯, 편안히 앉아서..크게 변화한
제주의 모습을 보게되어..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특히 제주의 음식값이..이곳의 일반식당 음식대와 비슷한 수준인 점도 눈에 띄입니다.

미국이 점차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소득수준이 있는 나라인데..
한국의, 식대를 포함한 생활물품 가격이 계속 인상되고 있는듯 보여...
 
김의철 19.05.17. 00:21 new
돈있는 사람들이야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오만원 용돈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며
엄살을 떨고계신 수인행님(?) 같은 분들은.. 여러모로 애로가 많겠다는 상상도 되는군요.^^

식대와 생활용품 가격이 저렴해야 그 와중에도 살아볼만한 여건이 되는 것인데..
그런 가격들이 높아지는 것을, 오히려 선진의 표상으로 삼으려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주거비가 높다보니 일반상품의 가격수준도 결국 동반상승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
 
김재민 19.05.17. 10:30 new
서토가 요번에도 긴 댓글 폭탄으로 오랜 KNG 지우에 대한 글값 보시를 톡톡히 해 주는구려. 내가 생각해도 이번 제주여행은 '가재잡고, 도랑치고', '마당쓸고, 돈줍고', 그리고 '똥퍼고 야경돌고'의 전형이었다 하겠심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가였던 노발리스 아재가 떠든대로 '"세속적인 것에 고결한 의미를, 일상에 신비스러운 외양을,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진기한 특징을, 유한에 무한의 외관을 부여한다'는 로맨티시즘의 정신을 흉내 좀 냈네요.

별 것 아닌 사건들의 흐름에 스토리텔링이나 사진들 삽입하는 '아연 도금의 맥끼칠'을 해 좀 번쩍거리게 만들려다 보니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소생의 고생길 글쓰기 틀로 잡혀버렸심다.
 
김수인 19.05.17. 10:21 new
김의철 엄살 아니요 ㅠ빌딩 야간경비라도 해야할 형편인데...퍈의점 알바하러 김박네 의논하러 가야할듯
 
 
김재민 19.05.17. 09:35 new
김의철 진짜 한국물가가 어느새 독일수준을 넘어선지도 꽤 오래 됐다고 독일 자주 다녀오는 지인들이 전합디다. 서토가 사진으로 보기에도 고만고만한 한끼 음식 값들이 시애틀 수준에 육박하거나 능가한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지요? 어제 국내보도에는 서울의 유명 냉면집 평양냉면 한 그릇이 14,000원을 호가 한다고 불평하는 기사도 떳습디다.

내가 독일에 있던 8, 90년대만 해도 맥주, 육류, 전자공산품, 차량 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물가수준이 최소 1.5~2배는 되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합디다. 우짜다가 이리 됐는지..
 
김재민 19.05.17. 11:41 new
김수인 거 참, 내년이면 비슷한 신세가 될거라 여겨져 항상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느낌다. 그런대 박점주가 어떻게든 지원금 받으면서도 수익 내볼거라고 알바비를 작년의 반수준 밖에 지출하려 들지 않네요. 줄은 알바 노동력 벌충을 소생을 최대한 돌려 하려는 깜냥으로 요즘은 2주가 아닌 열흘에 한번씩 불려 올라 감다.

올라가면 금, 토, 일, 월까지 하루에 7~9 시간을 거의 무임금으로 뺑이쳐야 하니 한달이면 근 60시간을 무급 노동으로 갈취 당하다 내려옴다. 정상적인 시급으로 치면 60 x 0.835=51.9(만원)에 해당하는 알바 보수이나 그동안 계속 무급으로 뭉개지다 성수기에 들어선 지난 4월에야 그간 부려먹은 값조로 처음 30을 던져줍디다.
 
김재민 19.05.17. 11:06 new
김재민
요런 알짜배기 저임 노동력이 있는 한 박점주는 그 어떤 추가알바도 현재로써는 쓸 생각이 없겠다 싶네요. 그러니 수인공은 혹시라도 알바 뛸 작정을 하더라도 소생을 제거한 뒤에나 염을 품어야 할 듯 하오이다. 수인공을 위해서는 나같은 개저임 알바는 사라져야 하는데.. 그저 송구스럽심다..
 
김재민 19.05.17. 12:07 new
김재민 하지만 90세 인생이라 살 날이 한창 남았는데 편의점계 알바 진출 꿈을 여전히 못버리시겠다면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에 함 찾아오소. 수인공의 그 언젠가를 위해서는 운전면허 따듯이 좀 복잡한 POS 기계 다루는 법을 내가 아는만큼 같이 노가리 풀며 원하는 만큼 실습시켜 드리겠소이다..

배워놓으면 근처 편의점에 기품있는 먹물 노익장 알바로 진출할 기회가 더 많을거라 여겨짐다.
 
김의철 19.05.17. 00:07 new
동문회에서 실비를 제공, 김박사 같은 분을 자주 여러 곳에 출장(?) 보낼 수 있다면
동문들은 가만히 앉아서 여러 좋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되리라 봄미다.^^

동문회비를, 건물을 짓는데 쓰거나.. 아니면 묵고노는데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부문에도 사용하여..동문들의 견문확대에 일조가 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주어진 자원의 효과적 활용.^^
 
김재민 19.05.17. 12:03 new
늙어가는 인간이 폭주하는 여행 글쓰기 일감에 매몰되어 더 빨리 골로 가는 꼴을 보려 하능교? 안 그래도 요즘은 어데 갔다하면 소생 잡문 글 기다리는 서토, 지박사, 수인공, 백교장, 길영공 같은 동기 독자들이 생각나 '기행문 숙제를 빨리 해야 할낀데..' 하고 시키지도 않은 일에 점점 조바심이 커져가는 '홀로 책임감'에 빠져들고 있심다.

그런 판에 여행기 무조건 써야 하는 '출장 여행 Job'을 소생에게 주자고 서토가 난데없이 주장하니 '서천에 나는 새가 웃을' 말도 안되는 상상력임다. 내가 일에 치어 35세에 요절한 모차르트도 아니고, 평생을 입도선매식으로 소설 쓴다 허덕거렸던 또스토옙스키 행님도 아닌데 말이네요..
 
김수인 19.05.17. 09:15 new
여행비 지원, 기막힌 아이디어 ㅎㅎ
 
 
김의철 19.05.17. 19:56 new
옥자선사께서, 4.3이니 하는 등의 정치 사상적 부분은.. 설령 현장과 연관되었다 하더라도
가급적 언급을 피하도록 그토록(?) 권고 하셨건만..

마치 문통같은(?) 고집으로, 기어코 그런 내용을 끼워넣은 부분과..
4학년 여교수와 어찌해 보시려 은근한 수작을 거신 부분이 그나마 "옥에 티"(?) 로 보여지는 외에는..

여러면에서 아주 훌륭하고 성의가 가득찬 여행기로 사료되는 바입니다.^^
여행기 작성에 정말 노고가 많았습니다.
 
김재민 19.05.17. 12:01 new
내가 안 그래도 요 부분 언급하면 마닐라 길영공과 산내 옥도사가 눈에 쌍심지 켜고 뭐라 할 것이라 걱정했기에 소개 할까말까 꽤 망설였심다. 이 양반들을 나보다 더 무서워 하는 박점주도 옆에 있었으면 더 확실히 만류했을낌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떻게든 중립화해서라도 언급하지 않으면 김모가 쭈그러든 x치라도 짤라야 할 판이라 그냥 내질렀심다. 사마천처럼 궁형을 받더라도 말이지요. 두 양반은 관용을 베풀어 주옵소..

도입부에서 독자들에 어필하는 장치로 여교수와의 은근짜 수작 스토리 삽입을 위해 '사르트르-사강'의 나이 차를 잊은 지적연애담까지 동원했는데 서토에게는 좀 객쩧게 보였던갑소. 박점주는 더 시니컬하데요.
 
지흥석 03:44 new
김재민 박점주님의 끊임없는 관심이 부러울 따름이요...
난 어디가서 말만 좀 많이해도 구박을 받는터라..ㅠㅠ
 
 
백민호 19.05.17. 06:19 new
재민박사 여행기 적는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핸것 알고 있습니다.
짧은 일정에 사진과 설명
스토리 만들어 내는 기술
대단합니다. 부석사, 무섬마을 가서도 여행기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김재민 19.05.17. 09:20 new
백교장, 요리 격려사를 계속 날려주니 귀얇은 내가 주제나 함량도 모른 채 냅다뛰듯 또 낑낑댑미다. 마, 팔자라 여기고 이번 여행길에도 최선을 다해 종군기자역을 수행하겠심다. 가는 날 아침 모닝콜이나 확실히 해 주시구려..
 
 
백민호 19.05.17. 12:21 new
비도 조금 온다니
덥지도 않고
해볕에 그을지도 않고
좋은 날 입니다.
한국 최고의 아름다운 절집 이라는 부석사
선묘 낭자와 의상대사의
사랑이 깃든 부석바위
국보가 5점이나 있는 부석사 입니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도
되어 있습니다.

무섬마을도 비오면 다리건너기가 좀 미끄러울것 같습니다.
한국적인 전통 가옥들이
숨쉬고 있는 정겨운 마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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