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일일 단상

태평양 전쟁 후반기 전투들을 살펴보고, '슌킨 이야기'도 브런치에 올리다

백조히프 2026. 1. 2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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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후반기 전투들을 살펴보고, '슌킨 이야기'도 브런치에 올리다

 

 

오늘(1/20)은 6시50분 쯤에 일어나 명상, 체조, 세면을 하고 7시 20분 경에 PC 앞에 앉았네요. 어제 '44년 10월 후반 필리핀 레히테 만에서 벌어진 미일 간 최종 해전 상세 격돌기를 세심하게 읽고는 그 전후 전쟁 스토리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독일군을 상대로 한 유럽 전투들은 많이 읽고 탐구했었지요.

 

<이오지마(유황도)의 위치>

 

하지만 미일 간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진주만 폭격과 미드웨이 해전을 끝으로 이 책은 덮어 놓았기 때문이었네요. 물론 다른 문헌들을 통해서 산호초 해전, 과달카날 전투, 사이판 전투, 마리아나 해전, 레히테 만 해전, 이오지마 상륙전, 오카나와 상륙전에 대해 요약된 전투 스토리는 알았습니다. 다만 각 전투들 간의 유기적 연결성, 양측이 부딪힌 전략적 목표, 진행과정과 결말, 태평양 전쟁의 흐름에 끼친 영향 같은 항목들은 심도있게 살펴보지 못했네요.

 

제가 경영학 전공자니까 각 전투들의 분석을 통해 기업들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할 경영전략적 시사점들도 도츨하고 싶어 이들 전투사 분석에 더 매달리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2000년대 초에 구입해 한 2/3까지 독파했던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에서 미처 다 못읽었던 태평양 전쟁 후기 전투들에 대해 이 아재는 어떻게 기술했나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크게 동하기도 했네요.

 

 

아무튼 제게는 생체리듬이 가장 고조되는 아침 황금시간대에 다른 것은 모르겠고 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책은 잘 읽혔지만 아쉬운 것은 제 시력이 나이듦과 함께 점점 침침해진다는 사실이네요. 이러다 실락원 쓴 밀턴처럼 말년에는 실명하는 코스로 점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듭디다. 안보이는 글들은 노안 돋보기를 사용해 확대해 보고 침침함이 한계에 다다랐다 싶으면 뒤에 있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눈 휴식도 취해줍니다.

 

책 속에서 일본군이 태평양에서 미군의 물량공세와 정보전 및 군사기술상의 우위에 의해 판판이 깨어지지만 중국에서는 종전 무렵까지 장제스의 중국군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가지며 전선유지 통제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레히테 만 해전에서도 한때 역전할 기회도 있었지만 구리다 함대가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자기 꾀에 빠져 공격 템포를 멈추었듯, 구리다 역시 유리한 국면을 바로 앞에 두고 혹시나 매복이 있나 싶어 갑자기 철수하는 패착을 둡니다.

 

그후 일본군은 이오지마(유황도)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을 잔뜩 괴롭히다 막판에는 병력, 무기, 식량이 떨어지지만 증원군과 보급이 단절되어 소멸되는 수순을 반복하네요. 이런 전투사들도 나중에 전자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이번 기회에 열심히 정리해서 모으려 합니다. 제가 생각해 보니 이제 7학년 1반이 되며 언제 뭐야 해서 저승사자와 동행할지도 모르는 판에 이런 작업 수행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나네요.

 

 

2차대전사 책을 한참 읽고나서는 아침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SNS 기사들을 살펴봤습니다. 어느 영화평론가의 외화 '하우스 메이드'에 대한 리뷰 글이 흥미로와 죽 읽어봤네요. '하녀'의 계보를 잇지만 전작들과는 다른 새로운 하녀 캐릭터를 생성해 반전과 반전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글이었습니다. 저도 넷플릭스나 메가파일에서의 다운로드를 통해 이 영화를 꼭 챙겨보리라 마음 먹었네요.

 

 

브런치에는 어제 올리려다 못올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에 대한 문학단상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슌킨이라는 맹인이지만 꺽달진 성격의 사미센 예인을 숭배하는 하인 사스케가 그녀를 무조건적으로 보살피다 그녀가 어느 손님에게 수청들 것을 거부하자 뜨거운 물을 뒤짚어 써 얼굴에 큰 화상을 입게 되지요. 사스케는 그녀가 자학으로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눈을 바늘로 찔러 맹인이 됩니다.

 

비로소 슌킨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동행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슌킨의 변덕과 까탈스러움에도 이를 사랑의 표시로 받아들이면서 마조히즘적 헌신을 극한까지 펼쳐간다는 스토리네요. 일본적 유미주의에 대한 문학적 탐색을 대하고 당혹스럽고 불편했지만,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질감보다는 한결 낫다 생각하고 그 포스트모던적 성취는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소설에도 익숙해져야 저도 한 차원 같이 올라갈거라 믿어면서요.

 

 

저녁에는 SNS 기사들을 살펴봤는데 현대차에 근무하며 은퇴정년을 얼마 안남긴 생산직 근로자 한 분이 최근 현장 투입이 시작된 휴머노이드 AI 로봇 '아틀라스'의 가성비 갑인 노동생산성에 감탄하면서 후배 근로자들의 일자리 상실을 걱정하는 인터뷰 기사가 생생했습니다. 지금은 위험한 공정에만 선별적으로 투입되지만 조만간 생산직은 물론이고 사무직 일자리도 싹쓸이 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한 걱정을 하네요.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나 이렇게 현장에서 같이 일해보고 겪은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인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AI와 인간의 공존 방식과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이끌어져 나와야 할 것같은 조바심이 났습니다. 오늘 글은 이 정도로 마치겠네요. 남은 밤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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