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일일 단상

아르헨티나 젊은 친구와 옛기억을 같이 반추하며, 2장 집필이 순탄한 하루를 보내다

백조히프 2026. 2. 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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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젊은 친구와 옛기억을 같이 반추하며, 2장 집필이 순탄한 하루를 보내다

 

오늘(2/12)은 아침 기상이 늦어져 7시40분인가에 일어났네요. 몸 컨디션이 별로인가 싶어 누워서 시간을 조금 더 끌다 마침내 아침 체조와 세면을 마친 뒤 8시 반경에야 PC 앞에 앉았습니다. 이런 날도 있는갑다 싶어 평소와는 다른 아침 시간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네요. 오늘도 어제에 이어 '마키아벨리 경영학' 2장 집필이 주업무가 될 것임을 짐작하며 그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냥 얻어걸리는대로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을먹었습니다.

 

그래도 저녁 글쓰기 글감 확보를 위해 SNS 뉴스들을 먼저 챙겨봤습니다. 그러다 무슨 동영상 뉴스가 나오면 제목에 솔깃해 동영상도 살펴봤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오다가다 만나는 동영상이니 제목에 준하는 동영상 장면에 얼른 도달하기 위해 마우스로 건너뛰며 클릭해서 찾아보거나 중간에 광고가 자꾸 나오면 그 동영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다 어제 쓴 글에 조회수가 의외로 좀 나와있길래 왜 그런가 하고 글을 다시 읽어봤네요.

 

최근 한 일주일 간은 다른 일에도 바빴지만 글 내용이 제 맘에 드는 게 별로 없어 글쓰기 릴레이를 이어간다는 목적만 이루고 그냥 제 블로그에 방치만 했습니다.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다 싶으면 글 내용에 맞는 그림이나 사진을 삽입해 넣어 완성도를 더 높인 뒤 이 글을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아름다운 인생학교 카페에다 공유링크를 걸며 옮기네요. 시간은 제법 소요되지만 찾아주는 방문객 수가 이 작업을 할 동인을 제공해 줍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에 들어가볼 기회도 만들어 주고요. 오늘도 여기에 들어갔는데 특별한 친구 하나가 한달 전 쯤에 쓴 제 메시지에 한참 있다 쓴 장문의 답 메시지 글을 발견했네요. 큰 아들이 2000년대 초 독일 뮌헨에 있는 괴테인스티튜트에 중고급 독일어 연수를 갔습니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거기서 보냈기에 일상적 독일어는 저보다 훨씬 잘했지만 독일어 특기로 한국외국어대에 수시합격으로 들어가려면 독일에서 건진 중고급 독일어 어학증명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작전은 맞아떨어져 아들놈은 여기서 비교적 수월하게 건진 어학자격증으로 외대 독일어과에 수시합격생으로 잘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 모든 작전을 배후에서 구상한 사람은 제 와이프 박모였네요. 아들은 인서울 대학의 졸업증으로 CJ제일제당에도 입사해 가정도 이루며 자기 인생을 잘 헤쳐 나가는 듯 합니다. 얘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앞에서 언급한 특별 친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틴 이라이소스였네요.

 

아들놈이 뮌헨 어학원 시절 같이 독일어를 배우며 알게 된 클라스메이트라고 했는데 코스를 마친 후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도 아들 후돌이가 준 제 블로그 주소를 통해 제 블로그에 독일어 인사를 하며 들어온 게 아닙니까. 후돌이보다 대여섯살은 많은 선배급이었지만 제게는 깍듯이 'Herr Doktor!' 하며 존칭어를 써주는지라 저도 마음을 열고 대해줬네요. 후돌이보다 저와 이메일 교환으로 더 가까와졌습니다.

 

2013년인가 아시아 투어를 하다 저와 후돌이가 있는 한국에도 방문했네요. 제가 당시 근무하던 울산 현대중공업에도 서울서 저 만나러 KTX 타고 찾아왔습디다. 여기까지 인연을 만들어 찾아온 이 친구가 대견스러워 저도 최선을 다해 이 친구를 접대했네요. 중공업 안으로 데리고 와 제 차로 대형 도크와 영빈관을 구경시켜준 뒤 방어진 일산에 있는 어느 오리고기 구이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불빛어린 밤바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소맥을 하며 한국적 접대술을 구사했습니다.

 

이 친구는 그 순간순간이 경이로왔는지 사진찍기를 멈추지 않았네요. 저와는 독일어로 대화했지만 간간이 제 짧은 스페인어로 아르헨티나에 대한 체 게바라, 뮤지컬 에비타,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 근대사 등에 대한 화제로 접대해 주니 이 친구가 뽕가며 제가 좀 존경스러웠던 모양입디다. 저도 그 밤이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었는 데 이 친구는 그 잊을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과 인상을 결혼 후 8살이 된 자기 아들 Fermin에게도 수시로 들려줘 아들까지 이미 한국빠로 만든 듯 했네요.

 

자기는 아르헨티나 굴지의 알루미늄 제조사에 그때나 지금이나 근무하고 있어 미국이나 유럽 출장도 자주 다닌다고 전해줬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자기 부인과는 이혼해 지금 아들과 모친 세 사람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서 산다며 제 근황과 후돌이의 안부도 물었네요. 저는 은퇴해서 프리랜서 작가로 노년을 보낸다 했고 후돌이도 결혼해 와이프와 맞벌이 하며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전해줬습니다.

 

페이스북 상이지만 제 이메일과 블로그 주소도 알려줬네요. 아마 조만간 저그 아들 데리고 한국여행 계획하고 있다는 연락이 올 듯 하네요. 저도 이 부자를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온다면 후돌이 부부와도 조인트해서 만나자 했으니 저그 아들 데리고 K 드라마와 K 팝의 본산인 한국 방문을 어떻게든 성사시키지 않을까 여겨지네요.

 

이 친구에게 생각도 안한 긴 글 쓴다고 오전을 거의 다 보냈습니다. 조금 쉬었다 오후부터는 오늘의 본업인 2장 집필에 매진했네요. 글 문틀이 잘 잡혀있어 저는 글 속에 나오는 경영학의 리더쉽과 조직관리, 전략관리에 나오는 용어와 개념들을 주석 속에 설명하는 작업을 해주며 제 글의 완성도를 높혀갔습니다. 이대로 가면 출판사에서 또 좋아할 듯 하네요.

 

오늘도 아침시간은 좀 다르게 시작했지만 오후부터 본 작업이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가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고 여겨집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다시 뵙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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