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트럼프 관세의 역설…글로벌 공급망 ‘중국 파워’ 키웠다
- 수정 2026-04-22 07:25

미국발 글로벌 관세 전쟁이 1년을 맞은 가운데, 세계 무역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관세의 역설’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해 기존 ‘완제품 생산 공장’에서 신흥국에 부품과 장비를 대는 ‘공장들의 공장’으로 변신하며 세계 공급망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빈 방문길에 오른 인도·베트남 등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국가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며 한국 기업들의 경쟁자로 급부상한 만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세계무역기구(WTO)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글로벌 상품 교역량은 전년 대비 4.6% 늘었다. 증가폭은 앞선 2023년(-0.9%), 2024년(2.7%)보다도 오히려 커졌다.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와 무역이 위축될 것이라는 당초 우려를 뒤엎는 결과다. 국제금융센터 자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지난해 미국의 실질(실효) 관세율은 8.2%까지 치솟으며 8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미국의 수입액과 중국의 수출액은 나란히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런 역설적 현상의 배경으로는 3가지 핵심 요인이 꼽힌다. 먼저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 인상을 우려하며 일찌감치 대규모 재고 확보에 나서는 사재기 무역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장비 수출입이 늘어나며 글로벌 무역 성장의 약 3분의 1을 견인한 점도 주된 요인으로 거론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중국의 태세 전환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 산하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신흥국으로의 수출을 늘리며 ‘공장들의 공장’으로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해 단순 조립하던 ‘세계의 공장’에서, 이제는 베트남·인도 등 신흥국 공장에 핵심 부품과 장비를 공급하는 ‘제조업의 뿌리’를 장악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대미 직접 수출액은 약 1300억달러(약 191조원) 줄었지만, 신흥국으로 향한 중국의 중간재 및 자본재 수출은 1750억달러(약 257조원) 이상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의 무역흑자는 1조3천억달러(약 1910조원)라는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 최고 145%에 이르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길이 막히자, 대신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신흥국을 상대로 기계와 원자재 수출 등을 대폭 늘리며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변화는 전자 제품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중국의 대미 노트북·태블릿 수출 물량은 2024년 7400만대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이후인 지난해 2300만대로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베트남이 미국에 수출한 물량은 2200만대에서 5600만대로 2배 넘게 늘었다. 이는 블룸버그가 미국의 관세 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중국 폭스콘, 비야디(BYD) 등 주요 전자제품 제조사들은 베트남 북부 박닌성, 푸토성 등에 중국산 부품을 조립해 수출하는 대규모 공장을 짓고 현지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내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이란 목적을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되레 중국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베트남·인도·멕시코 등 신흥국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이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 부과 이후 ‘중국(중간재 공급)→제3국(조립·가공)→미국(최종 소비재 수입)’으로 이어지는 삼각 무역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중간재 허브’로 변모 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를 피해 글로벌 사우스(신흥국 및 개발도상국) 지역에 대대적인 현지 투자를 단행하며 핵심 소재와 부품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변화는 한국 기업에 호재보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신흥국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의 수출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에 한국산 중간재를 수출하며 반사 이익을 누리던 시대가 저물었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로 중국의 대규모 무역 흑자, 미국의 적자가 굳어지면 미국의 관세 정책이 앞으로 더 독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중간재 경쟁력 제고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라며 “안정적인 제조업 기지를 구축한 중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활용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우리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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