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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하는 미국...마지막에 움켜쥔 것은 괴물이었다

백조히프 2026. 4. 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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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쇠퇴하는 미국...마지막에 움켜쥔 것은 괴물이었다

 

 

[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대이란 전쟁이 보여준 트럼피즘의 모순과 질서 설계 능력 상실

 

26.04.22 14:47 | 최종 업데이트 26.04.22 14:47 | 임상훈(anarsh)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이란 관련 기자회견 도중 총으로 겨냥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20세기 미국의 세계 지배는 생산력과 군사력, 달러 체제, 제도 설계 능력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떠받친 질서였다. 그러나 그 질서가 더는 예전 같은 효능을 내지 못하게 되자, 미국이 마지막에 움켜쥔 것은 새로운 세계 구상이 아니라 트럼피즘이라는 괴물이었다. 이 괴물은 하나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불개입을 말했고, 표정으로는 고립주의를 흉내 냈으며, 옷차림만 보면 반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듯했다. 그러나 실제 몸짓은 정반대였다.

손은 더 멀리 뻗어 남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발은 더 거칠게 타국의 땅을 짓밟았으며, 목소리는 동맹을 설득하기보다 충성을 다그쳤다. 물러서겠다고 말하면서 더 난폭하게 들어왔고, 부담을 줄이겠다고 외치면서 더 위험한 방식으로 개입했으며, 낡은 세계화를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더 노골적인 힘의 위계만 드러냈다. 그래서 트럼피즘은 하나의 노선이라기보다, 쇠퇴하는 패권이 자기 모순을 봉합하지 못한 채 밖으로 분출한 기형적 형상에 가깝다. 그것은 사상이라기보다 증상이고, 전략이라기보다 발작이다.

이번 전쟁은 그 증상의 가장 선명한 사례다. 미국은 이란을 때렸지만, 이란을 고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란이라는 국가를 힘으로 약화시키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이란이라는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더 외롭고 더 취약한 위치로 몰아넣는 데는 실패했다.

 

결과는 미국이 구상한 질서가 아니라, 미국이 통제하지 못하는 반작용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권 탄압, 비민주적 통치, 핵 불투명성으로 비판해 온 이란을 향한 국제적 시선도, 전쟁이 시작되자 선제공격의 적법성, 주권 침해, 민간인 피해, 확전 위험 쪽으로 옮겨갔다.

공습 후 달라진 국제사회 반응

전쟁 전의 이란은 분명 국제사회의 비판 한가운데에 있었다. 유엔 총회는 2024년 말 이란 인권 결의를 80대 27, 기권 68로 채택했고, 유엔인권이사회는 2025년 4월 이란 관련 감시와 조사 메커니즘을 24대 8, 기권 15로 연장했다.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도 전쟁 하루 전인 2025년 6월 12일 이란의 핵 안전 조치 불이행을 19대 3, 기권 11로 판단했다. 유럽연합 역시 2025년 4월 기준으로 232명, 44개 기관에 인권 제재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 수치들은 전쟁 전 이란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란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제도화된 비판과 압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공습이 시작되자 국제사회의 반응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25년 6월 16일, 카타르 외교부가 공개한 공동성명에서 20개 아랍·이슬람권 국가는 6월 13일 이후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단호히 거부하고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제법 위반,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 침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 훼손을 함께 거론했다.

다음 날인 6월 17일에는 걸프협력회의가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회기에서 이스라엘의 이란 영토 공격을 규탄했다. 이어 6월 24일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을 주축으로 한 신흥 경제국 연합체)는 공식 공동성명에서 6월 13일 이후 이란 영토에 가해진 군사 공격이 "국제법과 유엔헌장 위반"이라고 못 박았다.

전쟁 전까지 이란을 문제 국가로 지목하던 외교 언어가 전쟁 후에는 공격 중지와 주권 침해 비판의 언어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는 비서방 국가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서방도 이란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공세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우선 자제와 민간인 보호, 외교 복귀를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서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가면을 쓰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여론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쟁 개시일에 이란을 우호적으로 본 응답이 6%에 그쳤다. 그런데 같은 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영국이 어느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50%였고,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9%에 머물렀다.

며칠 뒤 영국의 대이스라엘 방공 지원에 대한 조사에서도 반대가 49%, 찬성이 25%였다. 이란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쟁이 시작된 뒤 서방의 대중 여론이 반이란 전선으로 힘 있게 결집하지 않았다는 뜻은 분명하다.

민간인 피해는 이런 전환을 더 빠르게 밀어붙였다. 2025년 6월 20일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그에 따른 상호 공습이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를 낳았다고 하며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이 성명은 병원과 주거지역, 핵시설, 에너지 시설이 공격받는 상황이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당시 잠정 집계로 최소 224명이 사망했고 약 90퍼센트가 민간인으로 보고됐으며, 뒤이어 안보리 문서에는 430명 사망, 3500명 이상의 부상 수치가 제시됐다.

미국 전략의 한계

정권 비판은 논리와 도덕의 언어를 필요로 하지만, 폭격과 사망자 숫자는 훨씬 더 즉각적인 감정과 반응을 낳는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란 정권의 억압을 잊지 않더라도, 적어도 먼저 말해야 할 문제를 달리 설정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 전략의 한계가 드러난다. 미국이 진정으로 노린 것은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 넓은 반이란 국제연합을 만들고, 이란 정권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외부 압박을 통해 내부 균열을 키우는 것이 전략적 목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제기구의 공개 담론은 이란 인권보다 휴전과 민간인 보호를 더 중시했고, 비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주권을 옹호했으며, 서방 대중도 군사개입 확대에 적극 동의하지 않았다. 군사적 성과가 있었다고 해도 정치적 정당화와 국제연합 형성에서는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지 전쟁이 실패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이 정말 이란을 변화시키고 핵 위험을 줄이며 중동 질서를 다시 설계하려 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전통적 개입주의 기준으로 보아도 미숙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의 기준으로 보아도 자기 모순적이었다. 패권국의 전략도 아니었고, 고립주의의 절제도 아니었다. 어느 이론에도 충실하지 못한 채 두 논리의 약점만 한데 끌어모은 전쟁에 가까웠다.

만약 진정한 목표가 이란의 핵 위험을 제거하고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먼저 필요한 것은 국제적 정당성 확보였다. 유엔과 동맹, 지역 국가들을 묶어 이란을 다시 한번 규범 위반 국가로 분명히 고립시키고, 군사행동이 불가피하다면 그 목적과 범위를 제한하며, 동시에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사후 계획과 외교적 출구를 함께 제시해야 했다.

더 나아가 이란 내부 사회와 반체제 세력이 외부 공격 때문에 오히려 침묵하지 않도록, 압박과 지원의 경로를 정교하게 분리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그런 복합 설계 없이 타격이 먼저 나갔고, 그 결과 이란 체제의 억압성보다 공격의 적법성과 민간인 피해가 더 앞에 놓이게 됐다.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전용 헬기 ‘마린 원’에 탑승해 있다. ⓒ AFP 연합뉴스


패권국이라면 질서를 세워야 했는데, 이번에는 충격만 만들고 질서는 만들지 못했다. 반대로 트럼프가 스스로 말해온 미국 우선주의와 제한적 개입의 문법에 충실했더라도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진지한 이론이었다면, 그것은 미국이 중동의 끝없는 전쟁에 다시 발을 깊이 담그지 않겠다는 원칙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이 경우 목표는 이란의 완전한 굴복이나 중동의 재설계가 아니라, 미국 본토와 세계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줄 핵 위협과 해상 위협만 좁게 관리하는 것이 된다. 그러려면 대규모 공습보다 역외 억지, 해협 통항 보호, 동맹국 비용 분담, 정보전과 제재, 제한적 협상, 단계적 핵 동결 같은 수단이 우선됐어야 한다. 즉 미국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드는 대신, 비용은 줄이고 목표는 좁히며, 개입은 최소화하는 방식이 나왔어야 한다.

결국 이번 전쟁의 더 깊은 실패는 결과의 실패만이 아니라 형식의 실패에 있다. 미국이 전통적 패권국이었다면 훨씬 더 정교하게 고립과 압박, 정당성과 사후 질서를 설계해야 했다. 미국이 진정한 미국 우선주의 국가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넓고 모순된 방식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했다.

미국이 정말 패권국으로 남고자 한다면, 더 많은 무기를 동원하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 기형의 형상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세계를 다시 설계할 능력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힘의 몸짓만 반복하는 한, 미국은 지배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잔해를 더 넓게 흩뿌릴 뿐이다.

이번 전쟁은 그 사실을 보여주었다. 상대를 굴복시키려 할수록 오히려 자신이 세우고자 한 질서의 정당성부터 허물리고, 개입을 통해 위신을 회복하려 할수록 오히려 통제 불가능한 반작용만 키운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미국이 지위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바깥의 적보다 안의 괴물과 결별해야 한다. 트럼피즘은 쇠퇴의 불안을 힘의 과장으로 덮으려는 충동이고, 질서의 빈자리를 충격의 연속으로 메우려는 유혹이다.

패권은 단지 강함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절제와 설계, 정당성과 예측 가능성, 동맹을 묶는 신뢰와 사후를 감당하는 책임이 함께 있어야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이란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위협은, 세계를 다룰 언어를 잃은 채 세계를 계속 흔들려는 그 내적 괴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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