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공정하다는 착각’과 AI 시대의 이익 분배
- 수정 2026-05-12 19:34


박현 | 논설위원
요즘 한국 사회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라는 두 거대 기업을 두고 마치 열병을 앓는 듯하다. 증시에선 두 회사 주식으로 수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포모(FOMO·나만 뒤처질까 불안한 상태)에 빠져 이제라도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두 회사 반도체사업부 직원들이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성과급을 받는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노력의 대가가 보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더 나은 성과를 향한 동기 부여도 작동한다. 다만 최근 논란의 핵심은 ‘수준’과 ‘방식’이다. 통상적 범위를 크게 벗어난 초과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리고 그 배분이 과연 사회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삼성전자 노사가 영업이익(올해 약 300조원)의 10~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1인당 지급 상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상황은 이런 질문을 더 증폭시킨다. 특히 보상 논의가 반도체사업부와 정규직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은 논쟁을 키우는 요인이다.
‘공정한 보상’을 둘러싼 논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성공한 개인은 자신의 성취를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 성과에 상당한 ‘운’이 개입돼 있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성공한 이들이 자신의 성취를 온전히 실력의 산물로 간주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래서 사회에 빚을 졌다는 인식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정 환경, 교육 기회,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 같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샌델 교수는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근거한 보상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 성과 역시 업황, 정책 환경, 기술 패러다임 변화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삼전·닉스가 대표적 사례다. 두 회사는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인공지능(AI) 투자 붐의 직접적 수혜를 누리고 있다.
삼전·닉스의 막대한 초과이익은 기업 내부의 노력만으로 일군 게 아니다. 부품을 공급한 협력업체와 그 노동자, 전력·용수·부지를 제공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환경 부담을 감내한 주민, 그리고 자본을 공급한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여가 축적된 결과다.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 고전 ‘경영의 실제’에서 강조했듯,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이익 창출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 위에서만 확보된다. 초과이익의 배분 역시 이 관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인공지능 확산이 고용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점이다. 이는 미국 기업들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한국도 이미 신규 채용 시장에 큰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을 보면, 2022년 말 챗지피티 출시 이후 청년 일자리가 26만명가량 감소한 배경에 인공지능 확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형적·반복적 업무일수록 자동화가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흐름은 구조적이다. 인공지능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일수록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충격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정부 대응은 아직 초기 단계다. 올해 2월 발표된 ‘인공지능 행동계획’은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고용 충격에 따른 부의 재분배 문제까지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로봇세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부담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공지능 확산 속도를 고려하면 관련 논의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
국외에서는 한발 앞선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미국에선 로봇세를 넘어 ‘컴퓨트세’(Compute Tax)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거대언어모델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연산 자원에 과세하는 방식으로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기업을 주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일자리 급감, 독과점 폐해, 에너지·자원 소비 급증 등 인공지능 확산의 부작용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새 제도 도입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나의 현실적 대안은 인공지능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의 일부를 사회적 기여 형태로 환원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삼성·닉스 역시 기업 내부를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얼마를 나눌 것인가’ 못지않게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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