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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속도와 역세계화의 속도

백조히프 2026. 5. 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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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계화의 속도와 역세계화의 속도 

  • 수정 2026-05-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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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로 이름 붙인 지난해 4월2일 전세계를 상대로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미국 연방 국제통상법원은 지난해 5월2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관세 부과 명령을 무효화했다. AFP 연합뉴스
 
 
 
 

최필수 |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바야흐로 격변의 시대다―라는 말은 오래된 관용구다. 사람들은 과거를 추상적으로 기억하고 현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저 관용구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과연 격변의 시대인가?

 

진짜 격변이었던 35년 전을 생각해 보자. 소련과 동구권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 폐허 위에서 개념으로 존재하던 세계화가 물질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보급된 인터넷이 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무역과 투자가 수직상승하고 이윤과 욕망이 들끓었다. 이 변화는 파괴적이 아니라 포용적이었다. 소련과 동구권도 세계화에 초대받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때맞춰 북방정책을 구사하고 개방형 통상국가를 표방하며 세계화의 가장 뚜렷한 수혜자가 됐다.

 

그런데 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명백하다. 세계화의 불만을 등에 업은 트럼프가 등장했다. 세계화를 추동하던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발을 빼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미국이 공공연히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두 나라가 벌인 전쟁으로 전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던 학자들은 디커플링, 신냉전, 심지어 전전기(前戰期, Pre-War Era)와 같은 이름으로 이 시대를 명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름 뒤에는 복잡한 현실이 있다. 우선 세계 무역은 계속 늘고 있다. 2025년 세계 무역은 7%나 증가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과 중국의 교역은 줄었지만 중국은 베트남과 멕시코를 경유한 새로운 밸류체인(가치사슬)을 형성하여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트럼프는 관세를 올렸지만 미국의 수입은 줄지 않았고 중국의 수출도 줄지 않았다.

 

디커플링의 양상도 복잡하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 때 디커플링을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완화해 개념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와 같은 첨단 부문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작동하고 있지만, 백색가전 같은 비첨단 부문에서는 중국의 하이얼이 지이(GE) 설비를 인수하여 미국에서 멀쩡히 영업하고 있다.

 

테슬라도 여전히 상하이에서 생산을 계속하고 있고, 애플은 서서히 인도의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80%의 아이폰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걸쳐 밸류체인을 형성한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 수요에 힘입어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관세부과를 무효화한 법원 판결들도 트럼프식 폭주의 제동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2월에는 상호관세에 대해, 며칠 전에는 보편관세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간 부과했던 상호관세는 이미 환급을 시작했다. 트럼프가 취임한 뒤 1년 남짓이 지난 시점에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그 양상은 복잡하고, 그 속도는 느리다. 적어도 35년 전과 비교하면 그렇다. 하루아침에 붕괴했던 동구권과 달리 미국은 쉽게 붕괴하지 않는다. 미국이 구축한 자유무역 국제질서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세계화가 정치적 기획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기업들의 이윤추구 동기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함께 만들어 인류에게 선사한 아이폰과 같은 “소비 가능한 첨단제품”이라는 선물은 여전히 강력한 매력으로 인류를 유혹할 것이다. 800달러였던 아이폰의 가격을 1200달러로 만드는 정책은 인기가 없을 것이다. 이윤과 욕망을 거스르는 방향의 변화는 느릴 수밖에 없다.

 

전쟁도 확산되기 어렵다. 미디어가 발달한 상황에서 대량살상 공격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생활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복잡한 공급망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다. 저가형 비대칭 무기인 드론이 등장하고 중거리 미사일의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항공모함과 탱크와 같은 전통적 공격 수단이 무력해졌다. 러시아와 미국이 벌인 최근의 두 전쟁은 역설적으로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소음 속에서도 세계의 경제적 하부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가장 큰 수혜자였던 이 국제질서는 생명력이 꽤 강하다. 진영논리로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세력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북방정책을 폈던 보수 정부의 유연성과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했던 진보 정부의 실용성을 좀 더 견지하자. 그 바탕 위에서 변화의 속도에 맞춰 차분하게 대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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