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 이익공유제가 답이다
- 수정 2026-05-11 19:32


이도흠 | 한양대 명예교수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대략 300조원에 이르는 연간 영업이익에 대해 15%의 성과급과 임금의 50% 상한제를 없앨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이후 논쟁이 한창이다. 그 와중에 이재명 대통령이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지나친 요구로 국민적 비판을 받게 되면 해당 노조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라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하여 비율과 총액을 갖고 삼성전자 노조와 엘지(LG)유플러스 노조가 설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막대한 영업이익의 결정권은 오로지 사쪽에 있다. 이는 주주들이 재정을 뒷받침하고 회사가 기업가 정신과 결단력을 발휘하여 기술 개발과 설비, 고용에 선제적 투자를 하고 임직원들이 헌신한 성과다. 그러기에 기업이 창출한 이익은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 등 미래의 성장과 이익을 위한 재투자,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대비, 재무건전성 확보, 임직원 보상, 주주 환원으로 쓰여야 한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윤은 곧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가치는 노동을 통해서만 창출되며 이 가치 가운데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돌려주고 남은 것인 잉여가치가 바로 이윤이다.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수요 폭등 등 외부적 요인이 작용하여 매출이 오른 덕분에 총이윤이자 영업이익이 오른 것이지만, 막대한 이윤이 난 것은 그만큼 임금으로 가야 할 몫을 자본이 가진 데서 기인한다. 당연히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우선이다.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서 타당하고 공정한 해법은 무엇인가. 이런 모든 것들을 초래한 조건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전제다. 1860년대에 46%에 이르던 기업의 평균이윤율이 10% 이하로 떨어지자 신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하였다. 이 체제는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윤을 끌어올렸다. 공공 영역을 시장체제에 편입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하여 비정규직과 대량 해고를 양산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세계화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는 ‘상위 10%가 소득의 52%, 자산의 76%를 차지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한 것이다’(‘세계 불평등보고서’).
이것만인가. 필자에게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것이 있다. 그렇게 하여 이윤이 올랐으면 기업이 기술 투자를 하고 고용을 늘려 경기가 활황 국면을 맞아야 하는데, 왜 거의 모든 나라가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가. 데이비드 코츠의 ‘장기 침체와 축적의 사회구조’라는 논문을 읽고 나서야 이 의문이 풀렸다. 2008~2018년 미국 기업의 평균이윤율은 8.15%로 상승했는데 자본 축적률은 1.89%로 하락하였다.
쉽게 말하여, 1860년대에 자본가는 1만원을 투자하면 4600원을 벌었지만, 이 기간에 미국의 자본가는 1만원을 투자하여 815원을 벌었고 주머니로 들어간 것은 189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나머지 626원은 어디로 갔는가. 지대(땅세)와 은행 이자로 빠져버린 것이다.
현재 세계는 ‘지대 수취자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다. 지대란 월세처럼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들어 전혀 노동하지 않은 채 발생시킨 초과 이익’(브렛 크리스토퍼스)이다. 카를 마르크스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도 중세 농업사회의 잔재인 지대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실은 그 반대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지대는 번창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과 토지, 지적 재산과 같은 고유 영역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천연자원, 에너지, 상수도, 통신, 교통 등의 공공서비스, 민영화한 국영기업 등의 인프라, 금융,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으로 촉수를 뻗고 있다. 지대는 불로소득이다. 지대 영역이 늘수록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동력인 노동자의 열정, 기업가 정신, 경쟁심, 자유주의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놀러만 다니면서 한달에 수십억원을 버는 건물주 친구를 둔 노동자나 기업가가 일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이제 대전환이 필요하다. 에스테반 마이토는 이 추세로 갈 경우 선진국 기업의 평균이윤율이 2050년대에 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였다. 지금부터 불평등은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완화하는 길로 가지 않으면 파국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진정으로 살리려거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같은 자본가들이 나서서 ‘이익 공유제’를 수용해야 한다. 이익 공유제는 우리나라 제헌 헌법에도 명시하였던 조항으로 공산주의적 발상이 아니다.
주주들이 집회를 하고 보수 언론이 연일 노조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근시안적 생각이다. 이익을 노동자에게 빼앗겼기에 기업이나 주주가 손해를 본다는 주장은 억측이다. 이익 공유제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브지지뜨 도르몽 등이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다양한 유형의 이익공유 제도가 고용에는 모호한 영향을 미치지만,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으로 나타났기에’(‘이익 공유제: 생산성과 고용을 증가시키는가?’) 장기적으로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런 것들에 힘입어 프랑스는 1967년부터 실시하던 이익 공유제를 1990년부터는 50명 이상 기업으로 범위를 넓힌 데 이어 지난해부터 11명 이상 기업으로 확대하였다. 이익 공유는 기업의 이익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의 병들을 치유하고 상생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초과 이익은 가장 공헌이 큰 노동자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노동자에는 당연히 정규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3만5천여명도 포함시켜야 한다. 그들은 이를 함께 만든 주체이자 1등 공신이다. 사쪽은 통 크게 15%를 주고 노조는 하청노동자의 몫을 위해서도 연대하자. 아울러,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상향하는 ‘케이(K)칩스법’ 등 세제 혜택, 금융 정책, 전력과 산업용수, 부지 조성과 도로와 항만 건설 등 물류 인프라 지원, 외국 시장 개척 협상, 규제 완화, 연구개발 지원, 인재의 육성을 통해 도와준 국가와 사회의 몫도 크다.
그만큼 사회에도 환원해야 마땅하다. 그러고도 200조원 가량 남을 터인데, 이 재정을 사쪽이 바라는 대로 쓸 수 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국민은 소비를 늘리고 국가는 지원을 더 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이익 공유는 시혜가 아니라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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