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보고서 6: 변곡 기로에 들어선 우리가게
5월 초 연휴를 맞아 올라간 지난 5/3(목)일 밤부터 5/8(화)일 오전에 내려오기까지 목 3시간, 금 10시간, 주말 토, 일요일 낮 타임 16시간, 월 10시간 해서 총 39시간을 단독 투입되어 그동안 계속 강행군 해온 와이프의 숨통을 좀 틔어주고 왔네요.
물론 그전에 올라왔을 때도 금요일(14:00~24:00)과 월요일(14:00~17:30) 근무는 맡아줬지만 이번처럼 집중근무는 지난 구정연휴 때 이래 두 번째임다.
그동안 ‘유동인구+배후인구’의 절대규모가 커지 않고 구역상권의 활성화가 지지부진해 신생점의 핸디캡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매출상승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품새가 우리가족에게 여전히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고 있네요.
하지만 4월 중순부터 날씨가 풀리며 캐널시티 인공운하를 거니는 산보객들이 늘어나고, 기다리던 여름 시즌이 가까워지면서 주말 매출은 간간이 눈에 띄게 고점을 찍어주는 날이 많아져 장사맛과 함께 이 시기에 1년 승부를 걸어보자는 호승심을 그럭저럭 자극하고 있심다.
지난 12월 중순에 개점한 이래 우리가족은 와이프와 둘째놈이 합쳐서 매월 400시간을 근무했어도(본인의 매월 14~30여 시간 노동은 제외하고도) 알바 기회비용인 ‘7,530 x 400 = 3,012,000(원)’ 중 일부라도 만져본 적 없이 계속 기나긴 초기 암흑기를 더듬어 가고 있는 중이네요.
이 상황에서 지난 4월 초 CU 본부 CEO에게, 지속되는 매출부진으로 폐점 수순을 밟게 될 경우 일방적인 계약유지 파기라는 덤태기가 씌워져 엄청난 위약금을 무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으로써 그간의 영업상황을 말하고, 시세보다 100이 비싼 가게세에 대한 특별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증명 서한을 좀 글빨있게 작성해 보냈심다.
반응이 바로 와서 김포신도시지역 CU체인 담당자인 C팀장과 2주 전 가게 앞 파라솔 테이블에서 두 시간 여에 걸친 면담을 가졌네요. 이 양반 왈, 점주님의 사정을 십분 이해해 건물주를 만나려 했지만 요리조리 피하며 CU 본부에 집세계약 조건을 성실히 이행해 달라는 요지의 내용증명 서한을 도리어 날렸다는 소식을 전하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그건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냐고 되묻고는, 건물주와의 재협상 얘기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니, 우리 가게에 부과하는 192만원(6대 4 분배규정에 의해 CU는 128만원)의 집세는 애초 계약 잘못한 CU 본부가 최소 50만원 정도는 특별지원금으로 가게세 부담을 경감시켜줘야 하는게 공정하지 않느냐고 따졌지요.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윗선에 상신은 해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눙칩디다. 일단 5월 집세 지불을 중단하며 건물주를 협상장에 나오게 하겠지만, 이 사람도 대출이자 갚는다고 우는 소리를 하기에 집세 인하가 그리 쉽지는 않을거라 미리 오금을 박는 예상도를 들려주네요.
대신 마케팅을 좀 더 활성화하여 집세 문제를 우회해 보자고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초라한 회유성 발언으로 이 건에 대한 본사의 생각을 전해 줍디다.
<밤의 활기로 북적거리기 시작한 우리가게 건너편 캐널시티 운하>
본사가 점주들에 계약을 권할 때 예상했던 매출보다 현저하게 떨어질 경우 1년 내에 큰 페널티 물리지 않고, 점주 손실을 최소화하며 합의이혼해 준다는 사례는 여전히 살아있냐 하고 물으니, 이 부분도 요즘 여러모로 어려워진 본사 상황에서 거의 적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번 더 튕기네요.
요컨대 당신은 우리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렸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 Go!’를 하지 않는다면 초기 투자금을 다 날리고 나가는 수 밖에 없으니 퇴로가 막힌 이판사판 배수의 진을 치는 수 밖에는 없다고 아주 옹골차게 쐐기를 박습디다. 제가 공정거래위에 제소해 봤자 면피성의 합의만 붙일 뿐 계약 내용 자체를 넘어서는 판결은 결코 내려주지 못할거라고도 충고하면서요.
언론에 터뜨려도 자기들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으니 점주님 마음대로 하시라고 마치 제 수를 다 읽고 있다는 듯 아주 담담하게 본사의 ‘슈퍼 갑’ 포지션을 한번 더 인지시켜 줍디다.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당근책은, 1년이 지나도 매출부진을 못 벗어날 경우 이보다 매출이 나은 기존 편의점으로의 이전을 주선하는 정도라고 알려주네요.
마치 트럼프처럼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상대방에게 최고의 으름장을 놓는 전형적인 압박 블러핑 기법을 구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심다. 일단은 본사의 기본입장을 전달받은 것으로 만남의 의의를 두었고, 이번 여름시즌의 매출 커브를 주시하며 이 난관을 헤쳐나갈 해법들을 가족간 의견교환을 통해 열심히 찾아보려 하네요.
며칠 전 어느 신문기사 카툰에서 본 ‘부당이득’이란 용어를 접하고, C팀장에게 대면조차 거부한 채 자신의 자본소득만 오로지 고수하려는 건물주에게 한번 협상무기로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기사 내용을 스크랩해 보내줬더니 본사 재계약팀과 법무팀의 조언을 받아, 실효성은 떨어지지만 한번 써먹어는 보겠다는 답이 돌아왔심다.
법률적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타인의 재산이나 노무로 일방은 이익을 얻고, 타방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적 현안을 건물주가 인지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부당이득’이라 한다는데 이를 입증할 수 있다면 건물주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겠다 여겨집디다.
문제는 건물주의 계약 상대가 개인점주가 아닌 거대기업 CU라는게 많이 애매하기에, 부당 집세의 상당부분을 실질적으로 무는 쪽은 한계상황에 빠진 개인점주임을 적극 어필해 지금 건물주가 ‘부당이득을 편취하고 있음’을 부각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CU가 이 작전을 적극 써먹어줄 지는 저도 아직 확신을 못하겠네요.
이런 암울한 상황을 떠나면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생전 처음 하는 장사란게 저와 우리가족에게는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하네요. 집에 가만히 앉아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채 죽치느니, 가게란 걸 운영하며 다양한 고객들과 접촉하는 맛이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흥미진진하게 만들 때가 많습디다.
얼마 전에는 가게 뒤편 아파트에 산다는 외국인 한사람이 간간이 들려 아사히 맥주 4캔을 사가기에 와이프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독일에서 왔다 하지 뭡니까. 와이프가 ‘왔따!’ 싶어서 자기도 함부르크에서 유학생 와이프로 오래 지내다 왔다 하며 독일어 대화를 시도하니 이 친구가 감격하여 나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겁니다.
<4캔 만원의 수입맥주군>
우리 서방이 2주에 한번씩 올라오니 언제 한번 날 잡아 식사 한번 하자 해서 3주 전 그 친구의 한국인 약혼녀와 함께 가게 근처 돼지갈비 레스토랑에 초대해 환담시간을 즐겁게 가졌네요.
36살의 금발에 차분한 인상의 친구는 구동독 지역 코트부스라는 데서 태어나 자라다 통독후 서독 중남부의 칼스루에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는데, 현재 아우디 베이징 법인에서 품질관리 파트를 수년째 담당하고 있다 합디다. 미모의 한국인 약혼녀는 같은 계열의 폴크스바겐(VW) 서울지사에서 근무하는데 이 친구가 베이징에서 출장차 왔다가 장래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 사이라 하네요.
엔지니어에다 구동독 지역에서 반듯하게 교육받고 자란 탓인지 상당히 예의 바르고, 젠체하는 분위기가 거의 풍겨지지 않아 꽤 맘에 들었심다. 제가 무슨 면접관처럼 독일과 중국 자동차 업계, 독일맥주 등에 대해 좀 아는 바를 펼치며 계속 질문을 하고, 이 친구는 자기 생각을 성실하게 전해주는 모양새의 만남이 되었심다.
옆에서는 이번 판문점에서의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의 만남처럼 와이프와 S여대에서 독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약혼녀가 독일과 독일남자에 대해 한참 대화하는 듯 했고요. 저처럼 베이징에서 주말에 김포 왔다 일요일 밤에 돌아가는 생활을 당분간은 할 것 같다기에 언제 제가 올라올 때 날잡아 부부끼리 또 만나기로 했심다.
그 사이 들어오고 나가는 알바스탶들도 좀 있었지만 이제는 좀 정착이 될 듯해 보이네요. 평일 야간(0시~9시)은 우리아들이, 그 다음(9시~14시)은 애니메이션 전공하는 여학생이, 14~24시까지를 와이프가, 그리고 주말 오전오후(8시~16시)는 근무하다 이번에 입대하는 건축 전공 남학생의 여동생이 바톤을 이어받아 맡아주고 있심다. 마지막 심야는 '영화-봄날은 간다'에서의 주인공 유지태처럼 영상음향악을 전공한 친구가 듬직하게 받쳐 주고요.
그 중간인 주말 오후와 밤(16~24시) 타임을 전직 항공승무원 출신으로 아직도 한가닥하는 용모의 40대 중반 Y여사가 우리와 인연이 닿아 맡아주고 있는데 이 주말 시간대가 손님들이 많이 드는 빅타임대이기도 하지만 왕년의 고객접대 솜씨가 워낙 프로급이라 주매출의 최고치를 거의 도맡아놓고 기록하네요.
이렇게 우리가게에는 자다 떡받는 역할을 해주는 보물단지지만, 다른 한편 화끈한 영업력에 비해 자기 주장도 강해 와이프가 어떨 때는 누가 사장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모르겠다고 약간 옹알댈 정도로 자기근무 시간대에는 매장과 콕피트 내 청결함 유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카리스마를 보임다.
이번에 제가 주말 낮땜빵 근무를 하는 말미에 교대하러 온 여사가 검수해야 할 제품 박스들이 매장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고, 콕피트도 자기가 한 주 전에 정돈했던대로 되어있지 않자 “사장님, 이게 뭔가요? 또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네요.“ 하고, 예의 다혈질적 타박을 할 기세를 보입디다.
Y여사는 나를 바로 비난하려는 것보다는 앞에 근무했던 젊은 알바스탶들에 대한 원망조의 심정을 싸잡아 토로하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꼴에 점주서방이라고 “여사, 너무 그리 혼자 깔끔 떨지 마소. 정돈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도 숨 좀 쉬고 같이 살게 탁한 물에서도 묻혀 사는 법 좀 배우소.”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지 뭡니까.
여사가 순간 붕 쪄서 “그럼 정리정돈 같은 것 저도 그만 둘까요? 저도 그러면 편해서 더 좋아요.” 하고 반어법으로 맞받아치니, 예라 내친 김이라, “제발 좀 그리해 주소. 다른 사람들 피로감 안느끼게. 이 무슨 결벽증의 과시인교?” 하고 좀 많이 나가버렸더니 상황이 순식간에 확 열전으로 에스컬레이트화 되어 버렸네요.
여사가 갑질에 대한 분기를 억지로 감추고 검수물건 박스로 가서 씩씩거림을 삼키며 검수작업 하는 것을 보고서야 ‘아, 내가 또 분별없이 깨춤을 춰버렸구나!’ 하는 자책감이 퍼뜩 듭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몇 마디 화해의 말을 떠듬떠듬 건넸지만 중대 결심을 하는 듯 묵묵부답 모드로 돌아서 응징의 얼음바람을 쌀쌀하게 날립디다.
집에 와서 이 상황을 전했더니 와이프가 ‘하여튼 가게에 도움이 안되는 일만 치는 인간이네.’ 하며 여사가 좋아하는 둘째놈에게 얼른 가게 가서 물건 발주도 하고, 여사 심기도 좀 파악하고 온나‘ 하고 급파했네요. 아들놈에 의하면 여사가 ’결벽증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여기 그만 둘 지도 모르겠다.‘라고까지 하더란 검미다.
그 다음날은 와이프가 출동하여 여사가 좋아하는 폐기제품들을 유통마감 기간 전의 것들이라도 앞당겨 챙겨주며 남편의 질정없는 언사에 대해 ‘노여움을 푸소서’ 하고 왔다 하네요. 또 여사가 일전에 건의했던 간이 식탁대에 맞는 다리 높은 의자 둘도 이케아에 가서 얼른 사와 큰 아들과 조립하여 비치도 했고요.
이런 위무공작이 쪼끔 먹혔는지 카리스마 여사가 당장 그만 두는 인적자원관리 상의 참사는 좀 피한 듯 함다. 아, 이놈의 삐딱선 타기 좋아하는 성질머리는 어째 세월이 흘러도 고쳐지지를 않네 하는 반성도 한참 하면서요.
제가 내려오는 전날에는 포스에서 결제실수 하도 심하게 한다고 늙은 서방을 쥐잡듯 한심하게 보던 와이프가 한밤중에 찾아온 4만원짜리 거액구매 손님들을 맞아 너무 기쁜 나머지 한순간 흥분해,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교양있게 넣어주는 데만 신경쓰다 카드를 기기에 꼽았지만 결제를 잊어버린채 돌려주며 손님들을 보내버린 황망한 해프닝도 있었심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점잖은 개 부뚜막에 뜨윽 드러눕는 것을 제대로 본 그런 사건이 발생한거지요.
하여튼 우리가게는 이런저런 사건들의 누적 속에 오늘도 극적인 상황 반전기에 올라타기를 꿈꾸며 계속 흘러가고 있심다. 최초로 맞는 이번 여름의 호황기가 폐점이냐 계속 가느냐의 기로에 선 우리가족에게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반 불안반의 심정을 꽉 움켜진 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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