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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보고서 4-혹한기 속에서도

백조히프 2018. 3. 29. 19:50



편의점 보고서 4-혹한기 속에서도

 

 

지난 주 금요일(1/19) 오후에 올라가 주말을 식구들과 보낸 뒤 와이프와 캐널시티 편의점에서 월(1/22)~(1/25)요일 오후 4시까지 근무하다 내려왔네요.

 

원래는 월요일 오후에 내려오려 했으나, 와이프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가게에 혼자 매여있는 게 안스러워 하루 이틀 하다가 목요일까지 머물렀심다. 특히 이 기간 수도권 날씨는 최근 10년 이래 최고한파가 몰아쳐 우리가게에도 낮에는 사람들 왕래가 더 줄었던 듯 했네요.




하지만 와이프는 이 낮시간을 알뜰살뜰 잘 활용해 제가 가게를 지키는 사이 바깥 나들이를 몇 시간씩 하며 여러 일들을 처리한 게 꽤 만족스러웠는지 계속 저를 붙박이로 잡아놓으려 하지 뭡니까? 이제 난이도 높은 교통카드 충전, 택배물 등록, 제휴카드 할인 및 점수적립까지 얼추 하게 되니 혼자 두어도 쓸 만하다 여겨졌던 게지요.


 

화요일에는 와이프 대학 동창들이 멀리서 왕림해 주어 물건 개비도 많이 해주고, 모처럼 근처 베트남 샤부샤부 집에 모여가 자기들끼리 식사하며 수다떨고 나니 훨씬 기분이 좋아진 듯 합디다. 처음에는 친구들 앞에 쪽팔린다고 제가 빨리 부산 내려가기를 원하더니, 그 외출시간을 큰 문제없이 맡아주자 이젠 아예 틈만 나면 고정으로 삼으려 하네요.



 

손님들도 제가 카운터에 있으면 딱 보면 알겠다는 듯 서비스 기대치를 팍 낮춰주기에 꽤 버벅거리고, CU측이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가르쳐 준 접객용어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해도 별 타박이나 불만 없이 잘 받아주며, 오히려 늙은 주인아재에 대한 연민감까지 발동시키며 동병상련의 중장년 단골층까지 생겨날 기세입디다.


 

 

며칠 전에는 작은 놈이 저그 엄마가 자기들 세대의 업무처리 기준에 못미치는 템포로 일하는 게 답답했는지 제법 자주 다그치자 이 늙은 여인이 열받아 , 나오지 말아. 다른 알바 쓸거야!’ 하니, 며칠 후 요놈이 내가 그만 둘거야. 일욕심과 책임감이 약한 엄마하고는 속터져서 같이 일 못하겠어!’ 하며 서로가 ‘You’re Fired!‘ 하는 사건도 있었네요.


 

요럴 때 본인의 존재가치가 좀 있다 여겨집디다. 와이프 편을 왕창 들며 작은 놈의 성급한 성질을 좀 세게 나무라자 앗 뜨거라 싶었던지 약간 수구리 자세로 나옵디다. ‘여기 그만 두면 우리집에서도 나가야 하고, 호적에서도 파버릴거다!’ 하고 으름장을 놓으니 요놈이 그제사 꼬랑지를 내리며 쪼끔 사태파악을 하는 듯 하데요.

 

수요일인가 이런 분위기 속에 세 사람이 가게 내에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제가 야무지게 사고 하나 쳐버렸지 뭡니까? 모처럼 왕근이 여자손님이 와서 근처 롯데마트가 휴무일이라며 매출이익률이 좋은 국내산 맥주, 안주류 등을 이만원어치나 사서 작은 놈 앞에 놓아 계산하려는데 갑자기 POS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제가 옆에 있는 모니터가 켜지지 않기에 접촉점검한다고 좁아터진 공간에 빽빽하게 또아리 튼 선들을 이것저것 뽑았다 끼워넣었다 하는 와중에 생긴 사고였심다. 손님은 다음에 오겠다며 물건을 냉큼 카운터에 놓고 가버리고, 다음 들어온 손님들에게도 사정상 현금으로만 결제된다 했더니 최소한의 물건만 사가게 되는 상황이 한 30분 가량 패닉처럼 전개되었네요.

 

기계치인 와이프와 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이놈이 본부에 전화를 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시스템 장치들의 눈꼽만한 글씨들을 식별하며 지시 가이드에 따라 간신히 재복구해 놓지 뭡니까? 아빠라서 성질은 제대로 못부렸지만 그 열받고 있음을 바로 짐작할 수가 있어, 이를 눈치 챈 와이프가 권하는대로 가게에서 평소보다 일찍 퇴장해 냉각기를 가지는 수 밖에 없었네요.


 

둘이 나온 김에 다리 높은 의자들을 보러 최근 근처 고양시에 새로 생겼다는 이케아로 가는 도중에 놓쳐버린 이만원짜리 그 매출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어찌나 아깝던지요. 와이프는 약 올린다고, 하루종일 기다렸다 찾아온 그 알짜배기 매출을 그리 디디한 사고로 날려버린 그대의 솜씨가 참말로 대단하다고 가는 내내 놀려먹습디다.


 

 

이케아에 가서는 그 옛날 독일시절 이케아에 들러 당시 학생부부들에게는 천금같았던 품질과 디자인 그럴 듯 하고 가격 쌌던 테이블, 옷장, 가구들을 쇼핑한 뒤, 네 식구가 꼭 들러서 먹던 식당 메뉴들 중 추억의 12알짜리 미트볼과 치즈 돈가스가 있기에 옛 생각하며 같이 시켜먹었네요. 그리고는 가게창고 안에서 점심 먹을 때 받칠 접이식 소형 철제 테이블과 카운터에서 사용할 등받이 의자를 챙겨왔심다.

 

아들놈은 그 사이 매출이 제법 올랐는지 약간 기세가 회복되어 저녁에 좀 된다는 연락이 왔습디다. 와이프는 그 놓친 이만원을 더하면 실제는 얼마인데 하며 끝까지 제 실수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뒤끝 작렬극을 펼치데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런 류의 해프닝 사건들이 우리 가게에서 펼쳐질 것인가가 슬쩍 기대까지 됩디다.

 

지난 번에 언급한 높은 임대료 문제는 좀 더 통계적 매출실적을 살펴본 뒤 임대주에게 어필해 보기로 방향을 잡았네요. 임대주와 이 문제로 먼저 전화통화한 씨유직원은 임대주가 의외로 그간의 사정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매출추이를 더 챙겨본 뒤 3자 간에 이 문제를 재논의해 보자는 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한 4월까지는 매출 상승세부터 살피고자 함다.

 

편의점에 하루 10시간 이상 잡혀있다 집에 오면 독서는커녕 TV도 챙겨보기 싫을만큼 육체적 피로도가 만연합디다. 10시 경이라도 잠오면 바로 누워 잤네요. 와이프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보다는 가게 일에 더 단련되었는지 이번처럼 내가 하루 중 일부를 단독으로 맡아주고, 주말을 철저히 쉴 수 있다면 계속 해볼 만 하겠다고 강한 체력에의 자신감을 내비치네요.


 

가게 계속 꾸려나갈 수 있는 정도의 매출만 보장되면, 난생 처음 점주도 되어보고, 이제 바람끼도 싹 가버린 늙은 서방과 한번씩 가게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도 그 재미가 쏠쏠한 모양임다. 거기다 캥거루였던 둘째 아들까지 자기 밥벌이를 하며 점점 가까와지는 방송음악계 본격 진입의 기다림 시기가 든든하게 받쳐지는게 상당히 맘에 들어하는 눈치네요. 아울러 잠시 손놓고 있는 자신의 드라마 작가 꿈도 언젠가 이어줄 수 있는 이 공간이 시간이 갈수록 꽤 대견스레 여겨지는 모양입디다.


오히려 제가 완전한 편의점 아저씨화되는 게 싫으니 최대한 다른 일터 가지면서 땜빵용으로만 도와달라는 것이 자기 본심이라고 해쌌습디다. 저도 제발 그리 되었으면 하네요. 꽤 되어 보이는 보따리 지식을 별로 쓰지도 못한 채 늙어서 가게에만 호구지책을 위해 목매다는 생활인이 되는 게 최대한 늦춰줬으면 하는 바람 말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