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살아온 역정

3. 머리통 굵어지는 초등 3~4 학년 시절

백조히프 2018. 5. 26. 10:10


3. 머리통 굵어지는 초등 3~4 학년 시절



<토성교 3~4학년 시절>


내 기억에 의하면 토성교는 4학년까지 같이 올라갔다가 5학년 올라가며 남녀 분반으로 한번 헤쳐 모여진 뒤 6학년으로 이어져 졸업 때까지 주욱 이어졌지 싶다. 그래서 4학년은 여학생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한 시간이었다. 남녀공학으로 갔더라면 우리와 같은 기수에 졸업했다던 바니걸스 자매(고정숙+고재숙)와도 같은 반 할 기회가 있었을 뻔 했는데 못 이뤄져 그게 많이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건진 60년대의 토성교 전경>


3학년 때부터 공부머리가 터지기 시작한 나는 공부 좀 하게 되자 그때까지 그렇고 그런 학생에서 주위 학우들로부터 단연 뜨는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서 싸움으로 전교 5위권에 드는 동네친구들도 한 두어명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재미이 건드리면 내가 가만 안둔다’ 하고 보디가드적 우정을 표시해 주자 나도 이 친구들에게 뭔가 해주는게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보니 엉뚱하게도 ‘공부를 계속 더 잘하자’로 연결되었다.


그래야만 이 싸움꾼들과의 절친 자리가 더 공고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후일 읽은 이문열의 소설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 속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와 소설 속 학교의 싸움짱 엄석대와의 관계에서처럼 말이다. 


반에서 공부 좀 하는 여학생들은 다수가 나와 백선생 과외팀에서 이미 잘 아는 사이였기에 내게 우호적이었고, 공부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여학생들조차 대개는 내게 흠모의 시그널을 계속 던져대었다. ‘아, 공부는 모름지기 잘 하고 볼 것이여..’ 하며 이때부터 문화권력의 맛을 설핏 깨달았다.


당시 우리 반에는 2학년 때부터 전학 온, 풍채 좋고 언변 좋은 27회 정중진이가 급장을 도맡아가며 최고 권위를 누렸는데, 3학년 중반부터 학급에서 떠오르기 시작하는 김모가 거슬렸는지 슬슬 이런저런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4학년이 되자 담임이 된 서선생은 처음에는 나와 서먹했으나 금방 학급 분위기 파악하고는 호의적인 관계로 돌아섰다. 정규고사나 모의고사에서 초장에는 정중진이와 1등을 자주 나눠 가졌지만 가을로 가면서 나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는 듯 했다. (어디까지나 내 기억으로는..)


<부친의 ‘같이 묵고 살자’ 정신>


부친은 이 무렵 관재국이 적산가옥의 불하 기능을 다해 없어지면서 세무서에 편입되자 자동 뻥으로 세무공무원이 되었다. 어린 귀에도 세무서와 세관이 공무원의 꽃보직 근무처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들리던 시절이었다. 모친의 후일 전언에 의하면 주사급인 부친이 출근하면 같은 동료 직원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업무협조 부탁용 흰 봉투가 책상서랍에 수북하다 했다.


<1964년 가을 무렵의 우리 가족>


부친은 그 봉투 중 상당 부분을 과장이나 국장들에게 또 상납하고.. 남은 몫에서도 기마이 좋게 아랫사람들에게도 잘 분배해 직장내 평판이 아주 괜찮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혼자 독식하겠다는 자세를 경멸하며 콩 하나라도 나눠먹는 공동 분빠이와 독식위험의 분산 정신이 꽤나 투철했던 모양이다.

물론 필체와 글빨 좋고, 외모도 호남상에 머리까지 비상해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니 상사들이 서로 당겨가려 할 정도로 대단했다는 식으로 모친은 남편 우상화 자랑을 자식들에게 이 당시 엄청 했다.


집에는 항상 현금흐름이 풍족한 듯 했고, 모친은 동네 친한 아줌마들에게 사금고 역할을 하며 이자 받는 놀이에 한참 재미를 붙이는 듯 했다. 한번씩 거금을 떼이는 경우도 가끔씩 있어 방바닥에 도골도골 구르며 액통해 할 때는, 이를 보다못한 부친이 의연하게 ‘이 여편네야, 돈놀이 좀 작작해라’ 하고 위로금 조로 현찰이나 수표를 던져 주면 모친은 ‘와이고 우리 서방 최고!’ 하고 벌떡 일어서는 그림들을 옆에서 수도 없이 봤다.


<도오쿄 올림픽과 우리집 TV 수상기>


64년 10월 초 일본이 패전 후 부흥을 전세계에 알리는 도요쿄 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이 실황 중계를 보기 위해 부친은 한 두달 전 ‘제니스(Zenith)’라는 미제 TV 수상기를 사가지고 와 우리 집 기와지붕 위에 설치하게 했다. 아마 우리집 근처에서는 처음 세우는 TV 안테나였지 싶었다. 영화관에서만 보던 활동사진을 집 안방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신났다.


<1964년 도오쿄 올림픽의 성화 점화>


KBS TV가 부산지역에는 아직 개통되지 않아 일본 방송만 수신할 수 있었기에 일본 프로야구와 프로레슬링, 스모, ‘우다노 그랜드쇼’ 같은 대형 버라이어티 쇼, 사무라이 사극, 철인 29호 만화영화 등 별천지 프로그램들에 제대로 빠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선사해준 부친이 참말로 크고 높게 보였다.


이런 중에 전세계가 들썩한 도오쿄 올림픽을 집 안방에서 보게 되니 <정신조 권투>나 <장창선 레슬링> 결승게임처럼 빅게임 볼거리 때마다 동네 이웃들이 낮밤으로 모여들었고, 우리 부친과 모친은 으쓱거림 속에 동네 방문객들을 관대하게 맞았다. 마치 7, 80년대 우리나라 다방들에서 복싱 빅이벤트전 벌어지면 관람 손님들 모아놓고 커피나 쌍화차 팔며 TV 틀어주듯이 말이다.


한번은 부친과 청년기 자취시절 동향의 룸메이트로 나중에 국제신문 사진기자가 된 이기자 아재가 우리집에 모인 사람들을 ‘동경 올림픽 시청열기에 빠진 부산시민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쓰기 위한 기사 사진용으로 찍어간 적도 있었다. 그 대가성 서비스로 우리가족들을 TV 수상기를 배경으로 하여 찍어준 게 위에 올린 사진이다. 


 <저물어 가지만 알찼던 4학년 시절>


그 해 가을인가 우리학교에서는 4학년 학급대항 야구시합이 벌어졌는데 곱상하고 몸집 작은 내가 처음 후보선수로 출전하여 우리 반이 한 게임 건지는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서드에서 빠른 발로 홈슬라이딩하여 득점한 것과 하위타선으로 나와 그라운드 홈런을 날린 것이 5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다음 날 담임선생이 ‘재에미이는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운동도 잘하데.. 아들내미 가지려면 요런 놈을 가져야 해’ 하며 아그들 앞에서 칭찬해 주니 ‘이제 운동도 잘해야것다’ 하는 생각이 꽉 들었다. 그 때부터 야구 피칭과 캐칭, 타격 연습을 내 동생과 동네 아이들 끼워 틈만 나면 동네 거리에서나 경남중 운동장에 가서 열심히도 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는 기말고사 학급 1등을 했다고 부친이 준 꽤 큰 액수의 축하금으로 모친, 두 동생과 함께 동아극장에 가서 ‘장렬 633 폭격대’ 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당시에는 내용 배경을 세세하게 몰랐지만 그래도 영화 씬들과 스토리 전개가 한국영화들과는 급이 다른 수준이라서 초등생 눈에도 참 인상 깊었다.



<인터넷에서 건진 당시 영화 포스터>



이 인상을 바탕으로 수십년이 지난 수년 전에 다시 ‘위디스크’ 다운 사이트에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영국공군이 노르웨이 피요르드 협곡 속에 있는 독일군의 V-2 로켓용 장착 중수소 폭탄제조 공장을 폭격하기 위해 열심히 비행훈련하는 도중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기어이는 여러 악조건들 속에서 성공했고, 마지막에 주인공 배우는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영국제 전쟁영화였다.


아마도 그 1년 후(1965) 신상옥 감독이 촬영하여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수출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빨간 마후라’의 전신 모델격이 되지 않았나 싶은 영화라 할 수 있었다. 이 기억에 오래도 남는 영화를 보고, 극장 앞 석빙고에 가서 아이스케키 류를 식구들이 실컷 먹고도 돈이 남아돌자 모친은 나를 근처 서점으로 데려갔다. 


난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 내 안목을 새로 키워준 책을 발견했는데, 바로 ‘세계위인전집’ 20권 중 그 첫 번째가 되는 책이었다. 당시 개봉관 영화 입장료가 60~80원 할 때 이 책 한권 값이 150원 했던 것으로 갑자기 떠오른다. 1~2권이 미국위인들 편으로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에이브러험 링컨, 라이트 형제, 에디슨, 린드버그 등의 스토리가 어린이용이 아닌 성인용 도서처럼 촘촘하게 잘 기술되어 있었다.


이 책 전집에 홀딱 빠져 6학년 졸업 때까지 20권을 낱권씩 내 돈 모아 사서 완독을 하고, 여기에 5학년 땐가 부친이 사다 준 ‘국민생활 대백과’라는 책을 집에서 끼고 살다시피 했다. 과학탐구 쪽 보다는 사회탐구 쪽에 더 큰 관심을 가지다보니 위인전 얘기들과 함께 세계사와 외국 문물에 대한 호기심들이 날로 커져 갔다. 


<김승옥 소설-1964년 겨울>



나라 전체는 박정희의 민선대통령 취임과 함께, 김승옥의 소설 ‘1964년 겨울’에서 묘사되듯 정치사회적 상황이 많은 시민들에게 핍박스러운 암울함을 최고조에 다다르게 하던 시절이었건만, 나와 우리집에는 그 때가 마치 ‘골든 에이지’인 것처럼 따사하게 흘러갔다. 성인이 되고서도 오랜 세월동안 내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대해 큰 관심과 공감을 보일 줄 모르게 만들었던 커튼이 바야흐로 드리워지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