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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폐지가 의미하는 것

백조히프 2025. 5. 13. 12:32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폐지가 의미하는 것 

 

  • 수정 2025-05-13 08:08
  • 등록 2025-05-13 08:00
서울대학교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윤태우 | 일본 홋카이도대 박사과정·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서울대 경제학부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더 이상 개설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경제학부 학생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빼놓을 수 없다며 강의 개설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정년 퇴임한 뒤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맡는 전임 교원을 채용하지 않고 강사가 그 강의를 맡아왔다고 하니, 이번 결정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불거진 문제는 비단 특정 강의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의 오랜 기형적 구조와 문화가 더욱 고착되어 가는 과정 중 한 단계다. 서울대 다양성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2023년 10월 기준 서울대 내국인 전임교원 2215명 중 서울대 학부 출신은 78.4%(1737명)에 이른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경우, 누리집에 프로필을 공개한 교원 36명 중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는 32명이었고, 출신 학부를 공개한 교원 21명 중 18명(85.7%)이 서울대 출신이었다.

 

외국인 교원은 2명으로 모두 백인이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진은 서울대 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셈이다. 세계에 수많은 국가와 대학이 있고, 국내에도 많은 대학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가히 기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서울대 교원의 기형적 인적 구성에 대해 오래전부터 ‘동종 교배’ ‘순혈주의’라는 비판이 있었다. 교원공무원임용령 제4조 3항은 대학교원 신규 채용 때 특정 대학 출신(학사)이 모집 단위별 채용 인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이 훌륭한 인재라 할지라도, 문제는 다양성이다. 교수라고는 하지만 평생 교육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도 여전히 성장 중인 연구자들이다. ‘서울대 학사-미국 박사’라는 이력은 특정 경제학 사조 속에서 교육받았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김수행 교수가 퇴임한 2008년 이후만 보더라도 20년 넘게 서울대 경제학부라는 획일적 연구 환경 속에 있으면서 교수진의 상당수가 다양성의 자극을 경험하지 못한 채 학문 연구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꽃필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번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서울대 구성원으로서는 신참에 해당하는 이들(학생)로부터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서울대는 한국 사립대학 100여곳에 투입하는 예산에 버금가는 예산을 투자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온 국민과 한국 사회 구성원이 낸 세금의 상당 부분을 서울대에 투입한 결과다. 그 투자는 카르텔을 구성해 특정 개인과 집단의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공헌하라는 바람이다.

 

서울대 경제학부는 학부 시작을 1910년대로 보자면 110여년이 지났고, 해방 뒤 서울대에 편입된 지도 80년이다.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받아온 데 반해 노벨상 수상자 한명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돈 먹는 하마’ ‘비효율적 요소’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획일성을 요구하는 군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원 사회’가 되었다고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데, 한국 사회는 서울대를 깜빡하고 그 시대에 놓고 온 듯하다. 서울대는 그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갈 의무가 있다. 기형적 인사 구성 속에서 기형적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는 지금, 서울대는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곳에 머물러 학생들의 발목조차 붙잡아 둘지, 선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