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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향한 비난, 중요한 진실이 하나 빠졌다
[주장] 노동자의 성과급 배분 요구는 정말 불경할까,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노조에 묻는 게 옳은가
26.05.04 19:39 | 최종 업데이트 26.05.04 19:39 | 임승수(reltih)
삼성전자 노조가 회사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갈 태세입니다.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임직원의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성과급 상한선도 폐지했습니다. 덕분에 직원들이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게 됐는데요. 그렇다 보니 삼성전자 노동자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를 둘러싼 여론 분위기는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삼성전자 파업 관련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3%가 노조의 파업 예고와 관련해 '무리한 요구 및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로 부적절하다'고 답했습니다. '적절하다'는 응답은 18.5%에 불과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다른 기업보다 직원 연봉도 높습니다. 이미 임금도 많이 받는데 거기다가 이윤의 15%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고 하잖아요. 너무한 것 아니냐는 정서적 반발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임금은 노동자의 기여에 대한 보상, 이윤은 자본가의 기여에 대한 보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이 자기 몫인 임금도 꼬박꼬박 받는데 회사 잘 된다고 자본가 몫 일부까지 성과급으로 가로채려고 하니 이기적인 것 아니냐, 너무 욕심부리는 것 아니냐 하는 거죠.
이윤은 자본가의 몫?

대중들이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에 대해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대체로 임금이 노동자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고, 이윤은 자본가의 기여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만약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겠죠.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15%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자본가(개인이든 집단이든)가 가져가는 85% 그러니까 훨씬 거대한 몫에 대해서는 당연시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이윤은 당연히 자본가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사업 자본금을 댄 대가가 이윤이니까요.
불멸의 경제학 고전 <자본론>을 집필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받은 임금이 그 자신이 업무에서 수행한 노동의 가치보다 훨씬 적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일당, 월급, 연봉, 이렇게 시간 단위로 임금을 받다 보니 정확하게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마르크스는 이게 착시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10시간 일하면서 100만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했어도 임금으로 40만 원을 받으면 4시간 분량밖에 못 받는 셈이죠. 지불받지 못한 60만 원, 그러니까 나머지 6시간이 자본가의 이윤이 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10시간 중에서 불과 4시간 만이 자신과 가족을 위한 노동시간이고, 6시간은 자본가에게 빼앗기는 시간이라는 겁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실을 <자본론>에서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은 사실상 노동자의 노동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자본가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하는데, 이윤을 자본가의 경영 노동에 대한 대가로 볼 수는 없을까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회사들이 많이 있지요. 자본가가 전문 경영자를 고용해서 경영 노동을 맡기는 거죠. 그렇다면 고용된 전문 경영인이 경영 노동을 수행했으니 회사 이윤을 자기 몫으로 취할까요? 아닙니다. 그저 약속된 급여와 성과급을 받을 뿐입니다. 이윤은 여전히 소유주, 그러니까 자본가가 자기 몫으로 가져갑니다. 그러니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도 이윤은 경영 노동의 대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본가가 이윤을 취하는 궁극적인 명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소유권입니다. 내 돈으로 투자해서 내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라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이윤을 가져가는 궁극적인 명분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 '소유권'이란 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외 없이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겁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 주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명분은 뭘까요? 노예가 노예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유권 관계가 당대의 법으로 확립되는 순간, 노예한테는 딱 먹고살 만큼만 대우해 주고 노예가 일한 성과물을 노예 주인이 다 가져가도 합법이 됩니다. 착취가 합법화되는 거죠.
봉건제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주, 지주가 농노, 소작인이 열심히 농사지은 농작물의 절반을 합법적으로 가져갔잖아요. 그건 영주와 지주가 광활한 농지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법적으로 확립되면 그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에게서 수확물의 절반을 지대라는 명목으로 착취할 권리가 주어지는 거예요.
왜 노동자를 탓할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취하는 이윤도 같은 맥락으로 봤습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건 회사와 공장에 대한 '소유권'을 통해서라는 거죠. 내가 자본금을 들인 내 회사이니 노동자들에게는 먹고살 정도만 임금으로 지급하고 이런저런 비용을 제한 후 나머지는 전부 내 것으로 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자본가의 착취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주장이죠. 마치 과거 노예제와 봉건제 사회의 법과 제도가 그랬듯이 말이죠. 이러한 착취가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필연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자본주의 주류경제학에서는 '이윤은 불확실한 투자 리스크를 감수한 자본가의 정당한 대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리스크로 따지자면 노동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노동자는 일자리에서 잘리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지요. 자본가가 투자가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은 '자본'이지만, 노동자가 실직했을 때 잃는 것은 '생존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자본가의 사업 실패 리스크만 특별취급하는 이유는 뭘까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리스크 감수 행위 그 자체는 아무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건 오로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노동이라고 봤어요. 돈이 아무리 많이 쌓여있다 한들 전 인류가 아무런 노동도 수행하지 않는다면 쌀이 나겠어요, 건물이 새로 생기겠어요? 결국 가치를 창출하는 건 노동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의 성과물을 나눌 때 자본가들은 회사나 공장에 대한 '소유권'을 무기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매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시스템이라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삼성전자 노조가 욕심이 과해 자본가의 이윤까지 탐내는 게 아니라, 빼앗긴 몫 중 일부를 찾아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점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금'이라는 것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지 않습니까. 자본가의 관점에서 '임금'이란 결국 비용이지요. 비용을 줄여야 자본가의 이윤이 커질 테고요. 하지만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면 '임금'은 생계비입니다. 생계비는 팍팍한 것보다는 넉넉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지금처럼 자본가의 관점에서만 사안이 다뤄지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어렵다고 봅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소위 정규직 중심이라 하청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에는 관심도 없는 귀족 노조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어마어마한 성과는 궁극적으로는 협력사, 중소 부품업체, 사내하청, 파견직, 용역직 등 수직으로 늘어선 위계 체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위로만 올라가고, 비용은 아래로만 전가되고 있지요. 그 과정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내몰리는 건 저 아래의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이들과 연대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겠지요. 저도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를 귀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돈 잘 버는 회사가 왜 못 버는 다른 회사를 도와주지 않냐고 비난하지는 않죠. 왜 노동자한테만 유독 모진 잣대를 들이댈까요? 정작 노동자를 원청, 하청,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친 건 자본가들입니다. 인건비 주는 게 아까워 이런저런 꼼수를 쓰는 건데요. 비정규직 문제를 만든 장본인인 자본가들은 놔두고 왜 애먼 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지. 참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

이재명 정부 들어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바뀌고 공휴일이 됐습니다. 앞선 정부들과 비교할 때 노동계급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가 확연히 느껴지는데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맞춰 노동에 대한 국민의 의식도 함께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본가가 가져가는 거대한 부는 당연시하고, 노동자의 성과급 배분 요구는 불경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어쩌면 노예 의식일 수 있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가 잘사는 것이 국민이 잘사는 것 아닐까요. 노동자 출신인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했죠.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한때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을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 그것은 과연 '발견'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대학살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렇듯 같은 사건도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갖게 됩니다.
노동 문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한쪽의 이름, 한쪽의 시선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용 여론조사 정보]
- 의뢰기관 : 에너지경제신문
- 조사기관 : 리얼미터
- 조사기간 : 2026년 4월 27~28일
- 조사 대상 : 전국 18세 이상 성인
- 응답자 수 : 1000명
- 조사방법 : 무선 100% 자동응답(ARS) 전화조사
- 응답률 : 4.6%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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