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외도하는 사람, 나쁜 사람일까 아픈 사람일까
- 수정 2026-04-28 09:0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도취와 흥분의 미성숙한 사랑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오래전에 ‘외도’에 대한 사회계층별 인식 차이를 다룬 논문을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논문에 따르면, 상류층, 중산층, 빈민층은 각각 외도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상류층은 남녀 모두 배우자의 외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경향이 있었고, 자신의 외도에 대해서도 도덕적 죄책감이 거의 없었다.
빈민층 여성은 외도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남성은 외도 의지가 약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외도에 대해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중산층은 남녀 모두 외도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경제적 이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외도
논문은 이러한 차이를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상류층에게 결혼은 사랑과 분리된 경제적·정략적 결합이기 때문에, 외도에 대한 정서적 충격이 작았고 이에 따라 외도가 바로 가정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빈민층 여성에게 외도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생존 전략으로 작동했다. 이들에게 외도나 이혼은 ‘반지하’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 기회였기에 도덕적 금기 의식이 크게 작동하지 않았다.
반면, 중산층의 경우 외도로 인한 가정 해체는 경제적 위협을 암시했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과 가계소득 감소는 즉각적인 삶의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30평형대 아파트에 살던 부부는 20평형대 아파트나 오피스텔로 옮기거나, 자가를 가진 부부는 전세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것이 중산층을 외도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윤리관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분석이었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놀라운 관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보고들은 외도는 반드시 이런 경제적 설명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40대 초반, 업무차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다양한 직업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과 밤새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기혼과 미혼이 섞여 있던 그날의 모임은 낯선 외국 도시가 주는 해방감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관계의 일회성 때문인지, 술기운이 오르자 “연애나 결혼 중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느냐”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중 한 기혼 여성은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바람이 끊긴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상대는 학교 후배, 직장 상사, 협력사 직원 등 다양했으며, 당시에도 직장 후배와 바람을 피고 있다고 밝혀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그녀의 솔직함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녀가 통념적인 의미의 예쁘거나 매력적인 용모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외모였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그 자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한 번씩 돌아볼 정도의 눈에 띄는 미모의 여성도 한 명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화려한 연애담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남자들에게 대시를 받은 적도 거의 없는 모태솔로”라고 고백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고, 누구에게도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는 ‘무성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바람은 의지의 영역
그날 만남으로 인해 나는 바람은 ‘성적 매력의 영역’이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람을 피우고 싶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내보내게 된다. 바람에 대한 바람은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떠돌다 누군가에게 가닿고 엮이게 된다. 반면, 아무리 성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관계에 대한 욕망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의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 오랜 지인이 자신의 불륜 문제를 상담해온 적이 있다. 그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결혼 생활 내내 크고 작은 외도를 반복해왔다고 털어놓았다. 죄책감 때문에 그만두고 싶지만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긴 대화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그에게 외도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감각, 즉 ‘자기감’을 확인하는 도구였다. 어린 시절 빈곤한 환경에서 자라며 키도 작고 운동도 못하는데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또래 세계에서 전혀 인기가 없었던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못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깊이 내면화하고 있었다.
공부로 성공해 전문직이 되었고 결혼도 했지만, 마음속 결핍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그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투명 인간’ 같던 자신이 누군가의 대상이 되는 순간, 존재가 또렷해졌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이든 불륜이든 외도든, 그것이 반복되어 중독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 된다. 그에게 외도는 ‘존재 확인’이었지만, 어떤 사람에게 외도는 ‘복수’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도덕을 강요했던 부모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고, 자신을 버린 과거의 연인이나 현재의 배우자를 향한 무언의 보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외도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비난하지 못했다. 외도는 윤리의 문제이기 이전에 정서의 문제였고, 도덕의 문제 이전에 결핍의 문제처럼 보였다.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아픈’ 사람들이라고 봤다.
성숙한 사랑의 삼각형
하지만 더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들을 아픈 사람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가 제안한 ‘사랑의 삼각형 이론’은 사랑이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친밀감’은 정서적 유대감을, ‘열정’은 강렬한 성적 끌림과 흥분을, ‘헌신’은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약속과 책임감을 뜻한다. 세 요소의 조합에 따라 사랑의 유형이 달라지는데, 세 요소가 골고루 갖춰질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완성된다. 열정만 존재하는 사랑은 ‘도취적 사랑’이고, 친밀감과 열정만 있는 사랑은 ‘낭만적 사랑’에 머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외도를 반복하는 사람은 낭만적 사랑과 도취적 사랑은 가능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정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관계가 오래되면 설렘과 열정은 희미해지고 권태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시간에도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지만, 도취와 흥분의 세계로 끊임없이 도망치는 사람이 외도하는 사람들이다. 어리고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도망자들, 그들이 ‘무책임하다’고 비난받는 이유다.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는?
필자는 언론사에서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한 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먹고산다. 현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누구라도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정확한 위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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