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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 가지고 왜 PD를 해"... 미녀도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백조히프 2026. 5. 1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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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그 얼굴 가지고 왜 PD를 해"... 미녀도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변은아는 왜 반짝일 수 없었나

 

26.05.16 15:38 | 최종 업데이트 26.05.16 15:38 | 김정주(mukhyangr)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을 위해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서 내가 가장 놀란 대사는 다름 아닌 6화에서 장미란(한선화)이 변은아(고윤정)를 처음 만나 던진 말이었다.

"그 얼굴 가지고 왜 PD를 해, 배우를 하지."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 여성 인물들은 대체로 묘한 투명함을 가진 얼굴로 등장한다. 피부가 하얗고, 눈이 크며, 아니 그냥 예쁘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지은)이 그랬고,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김지원)도 그러했으며, 이번 작품의 변은아 역시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해방일지>를 완벽한 드라마라고 추앙하는 편이지만, 굳이 하나의 흠을 꼽자면 염미정, 그러니까 김지원의 비현실적 미모라고 생각한다.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해방일지>를 완벽한 드라마라고 추앙하는 편이지만, 굳이 하나의 흠을 꼽자면 염미정, 그러니까 김지원의 비현실적 미모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정도 외모라면 태어날 때부터 해방이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 JTBC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은 박동훈(이선균)의 입을 통해 "춥게 입고 다니는 애, 예쁘게 생겨 가지고"라는 말로 분명하게 예쁨이 언급된다. 이 대사는 <나의 아저씨> 7화에 나온다. 또한 최유라(권나라) 역시 15화에서 이지안을 두고 "자기가 예쁜 줄 모르는 스타일이구나"라고 말한다. 반면 <나의 해방일지>의 세계 안에서 염미정은 딱히 '예쁨'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나 대사 역시 그녀의 외모를 그렇게 전면에 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번 작품의 변은아 역시, 적어도 이 세계관 안에서는 '예쁜 인물'로 설정된 것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시청자의 눈에는 고윤정 배우가 예뻐 보이지만, 작품 내부에서는 그 외모가 특별히 언급되거나 작동하지 않는 방식일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을 한순간에 깨뜨린 것이 바로 장미란의 대사였다.

이게 왜 충격이었냐면, 변은아는 단지 시청자의 눈에만 예쁜 인물이 아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관 안에서도 변은아는 예쁜 사람이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장미란이 봐도 배우를 해도 될 정도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공식이 달라진다.

모자무싸의 변은아(고윤정) ⓒ JTBC

변은아는 예쁘지 않아서 반짝이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급 외모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도 반짝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 존재 위에 오래전부터 엑스표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이 몹시 놀라웠다. 박해영 작가는 외모가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 익숙한 말을, 정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자기 안쪽에 엑스표가 찍혀 있으면 이상하게 흐려진다. 반대로 압도적인 외모가 아니어도 자기 존재에 동그라미를 친 사람은 자주 반짝인다.

살면서 빛나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다 반짝였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 엑스표를 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빛나지 않았다. 얼굴은 분명 빛을 받을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존재가 그 빛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그 정도의 외모는 아닐지라도 수시로 반짝이는 사람들도 제법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의 반짝임이 그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동그라미를 친 사람들이었다.

결국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존재의 아우라다. 얼굴이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얼굴을 통과해 빛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흔히 자존감이라고 부르는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고, 더 복잡한 감각이다. 내가 나를 괜찮은 존재로 느낄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버려졌을 때, 내가 버려질 만한 존재였다고 믿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랑받지 못한 순간을 내 존재 전체의 판결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가.

변은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에 그어진 엑스표는 쉽게 동그라미로 바뀌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는 더더욱 어렵다. 자력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어린 시절에 그어진 동그라미 역시 쉽게 엑스표로 바뀌지 않는다. 좋은 사랑을 오래 받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의 외력이 아무리 거세도, 안쪽에 이미 찍힌 동그라미는 꽤 오래 버틴다.

그러니 7화에서 미란의 "너 예쁜 거 알지? 근데 왜 옷을 대충 입어. 제대로 입은 거야? 아니잖아"라는 물음에 대한 변은아의 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문제를 한정 짓는 거예요. 연필 안 가지고 와서 귀찮게 하는 애로. 진짜 문제가 들통 날까 봐. 그래서 지금은 옷을 대충 입어요."

이 말은 단순히 옷에 대한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쳐진 엑스표를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진짜 문제가 들통나기 전에, 일부러 작은 문제를 앞세우는 것이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기 전에, 그냥 옷을 대충 입는 사람. 내가 버려진 사람이기 전에, 그냥 귀찮고 흐트러진 사람. 내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차라리 사소한 흠집을 먼저 내미는 사람.

그러니까 변은아는 빛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빛나면 안 된다고 믿어버린 사람에 가깝다. 이미 빛날 조건을 가지고도, 스스로 그 빛을 가리고 있는 사람. 은아는 아직 자기 얼굴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얼굴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말은, 자기 존재를 아직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에 가깝다.

이런 작법을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겠다. 황동만이 그토록 무가치해 보여도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은 것처럼, 변은아 역시 이토록 가치 있어 보여도 생각만큼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겉으로 보이는 가치와 실제로 느끼는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은아가 동만에게 크로스로 그린라이트를 보내는 것은 딱 맞아떨어지는 핍진성이다. 은아는 동만의 결핍을 알아본 것이고, 동만은 은아의 결핍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다. 둘은 서로를 구원하는 대단한 존재라기보다, 적어도 서로의 엑스표 앞에서 쉽게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6화 끝자락에서 동만은 말한다 "도와줄게요." 그러자 은아는 답한다. "이미 충분히 도와주고 있어요. 우리 서로." 그리고 둘은 말한다. "크로스."

크로스그래서 6화 끝자락에서 동만은 말한다. 도와줄게요. 그러자 은아는 답한다. 이미 충분히 도와주고 있어요. 우리 서로. 그리고 둘은 말한다. 크로스. ⓒ JTBC

이 얼마나 박해영다운 사랑의 발음인가.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구원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이 가엾은 피구원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무가치함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도와줄게요"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충분히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도움은 방향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방향을 넘나든다.

결국 변은아는 예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자기 얼굴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란, 누군가를 더 빛나는 얼굴로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얼굴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곁에서 오래 바라봐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우리 모두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며 박해영식 사랑의 발음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싸움 속에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돕고 있다. 충분히. 그러니 우리 서로, 크로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돕고 있다. 충분히.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우리 모두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며 박해영식 사랑의 발음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싸움 속에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닐 테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돕고 있다. 충분히. 그러니 우리 서로, 크로스 -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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