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컴플렉스를 파헤친 <영화-롤리타>
2013. 6. 10
작성자: 백조히프(김재민)
1955년 러시아계 이민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 의해 출간된 소설 ‘롤리타’는 중년의 인텔리 남자가 12세 밖에 안된 요사스러운 소녀에게 홀리다시피 빠져 ‘광적인 사랑’을 집착적으로 바치다 파멸한다는 스토리이다. ‘험버트 험버트’(H.H)라고 하는 40대 후반의 불문학 교수가 유년기에 못 이룬 풋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죽은 그녀 또래 분위기의 소녀를 찾는다.


<나보코프의 소설 표지와 아드리안 감독의 영화 포스터>
그 은밀한 욕망이 대학 부임지 근교 하숙집 여주인 딸 돌로레스(롤리타)를 만나 이 소녀의 본능적인 유혹에 정신없이 빠져들면서 운명적으로 펼쳐진다. 나보코프는, 이런 험버트류의 중년남자들이 빠지는 9~14세 사이의 선택된 어린 요정들은 ‘몽상적인 천진난만함과 세속적인 천박함의 묘한 조합적 매력’ 속에 인텔리 남자들의 이성적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막강한 魔性을 보인다고 묘사한다.


<백치미의 무심함으로 험버트의 애를 태우는 어린 요정>
예를 들어 이들 요정은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 벤치에 발을 올린 채 롤러 스케이트 끈을 매면서 무심히 허벅지를 살짝 드러내면 험버트들에게는 그냥 상황종료라는 것이다. 이 영화(96년 아드리안 린 감독작)에서 롤리타(도미니크 스웨인 분)는 햇빛 비치는 연못 옆에 매트리스를 펼친 채 얇은 시스루 투명옷을 걸치고 엎드려서 대중잡지를 보다 몸을 돌리면서 미소 띤 눈길로 험버트(제레미 아이런스 분)를 힐끗 쏘아봄으로서 그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다.

이 롤리타와 같이 있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여주인 샬럿 헤이즈(멜라니 그리피스 분)와 결혼까지 하지만 그녀는 험버트가 자기보다 딸의 관능미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이성을 잃어 차 속에 뛰어들다시피 사고사를 당한다. 혼자된 험버트는 여름캠프에 보내졌던 ‘로’(롤리타의 애칭)를 찾으러 가 동부에서 중남부에 이르는 긴 자동차 여정에 오른다. 긴장되면서도 짜릿했던 첫날밤을 어느 모텔에서 보낸 뒤 행복감에 젖지만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여행내내 떨치지 못한다.

<여행지 모텔에서의 첫날밤>
로는 엄마의 사망소식을 접한 후 자신을 갈망하는 양부에게 의지해야먄 하는 현실적 조건 속에, 다른 한편 자신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적 매력을 자랑스러워 하며 몸을 맡긴다. 하지만 그녀는 험버트가 너무나 괴로워 하며 자신을 원하기에 그 요구를 들어줬을 뿐 이 남자를 사랑한 적은 한번도 없다. 필요한 동안만 그와 동행하려 했고 자신이 진짜 좋아한 극작가 퀼티(프랭크 랭갤라 분)가 유혹하자 그냥 도주하기로 결심한다.

<금지된 사랑임을 알면서도 운명의 저주처럼 빠져드는 험버트>
자신이 찍은 요정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과 숭배를 하는데서, 그리고 그 요정은 한시적 관계로만 인식하는데서 이 금지된 사랑의 행로가 비극적 결말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내포하는 것이다. 퀼티에게로 도망친 로가 그로부터도 내팽개진 채 어느 평범한 청년과 가정을 꾸렸지만 생활고로 3년 만에 험버트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 그녀를 한번 더 같이 지내자고 설득하려 찾아간다.
돈 4,000불을 받고 로는 뛸듯이 기뻐하지만 험버트의 제의를 거절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퀼티였다고 마지막 대못을 박는다. 완전한 파멸적 감정에 휩싸여 퀼티를 찾아간 험버트는 권총으로 열방 이상 난사하며 자신의 우상을 빼앗아간 자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행한다.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산아래 계곡에서 들리는 천사같은 아이들의 노래소리에서 로의 음성만이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 쓰라린 회한을 보인다. 소설의 첫머리와 마지막 엔딩에서 반복되는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마음의 불길,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라는 마음 속 한 문장을 읊조리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엔리코 모리오네의 품격있는 내면 음악은 정말이지 그 허망하면서도 비탄어린, 이상한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마음을 짜릿할 정도로 잘도 표현한다.)
체포된 뒤 감옥에서 자신의 사랑 얘기를 글로 써다가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죽고, 로 역시 같은 해 크리스마스 날 분만 중에 죽었다는 에필로그와 함께 소설과 영화는 그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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