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일일 단상

긴축책은 왜 위험하고 불공정한 경제정책인가?

백조히프 2025. 10. 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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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는 10월의 첫날이었네요. 지구촌 이상기온으로 한국에도 엄청난 폭염이 쏟아졌는데 그 무더위들이 이제사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기조차 했습니다. 1년 중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드디어 마수걸이하며 찾아온 듯 참 반갑게 여겨졌네요. 하지만 11월 중순까지 한 6주간 이 계절이 음미되다가 곧 겨울에 자리를 내어주리라 생각하니 그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제 오전은 '고조되는 프랑스 재정위기와 한국사회에의 시사점'이라는 분석 글에 대해 뤼튼 AI와 어떻게 씨름하며 글을 완성했나 하는 과정을 밝히는 블로그 챌린지 글을 쓴다고 보냈네요. 다 쓰고는 은행 일 있다는 와이프를 차로 은행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근처에 있는 총각야채 가게에 들려 내가 좋아하는 2500원짜리 중국산 커피땅콩 한봉지와 와이프가 부탁한 3000원짜리 바나나 한줄기, 2500원 하는 고구마 한봉지, 마지막으로 4000원 하는 8개 묶음 홍시감 한 팩을 사는 한낮의 쇼핑을 했네요.

 

일보고 나온 와이프와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 점심으로 한식 음식 한끼 하기에는 서로 식욕이 안 당겨 가까이에 있는 맥도날드나 버거킹, 아니면 파리바켓에서 샌드위치 사먹자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여기 갈까 저기 갈까 잠깐 좌고우면했지만 최종적으로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파리바켓으로 마누라가 모는 차를 타고 가 손 큰 와이프가 고른 네 덩이나 되는 샌드위치를 사서 집에 돌아와 아점용으로 같이 해치웠네요.

 

나는 커피 한잔 만들어 들고 PC 앞에 다시 정좌했습니다. 그저께 작성한 '프랑스 재정위기..' 보고서를 해피캠퍼스에 올리고, 제 고교 홈피에도 친구들의 댓글 반응을 기다리며 같이 올렸습니다. 함께 늙어가지만 경제 관련 글이라면 역사물 못지 않게 여전히 큰 관심을 보이는 동기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예상대로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가 역사물 글들보다 더 빨랐습니다. 댓글 수도 많이 달렸고요.

 

어제 오후는 제 보고서 속에도 시각적 자료로 소개된 마크 블라이스의 책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2016)라는 책 제목이 내 마음을 끌어 YES24에 들어가 중고서적 판매가를 알아보고, 19,500원 정가 책을 6,500원+배송료 3,400원 하여 9,900원에 득템하는 주문을 넣으며 쾌재를 내질렀습니다. 아니 이런 책이 9년 전에는 왜 내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지 하는 아쉬움과 함께 늦게 나타난 '후발자의 이익'을 챙겼다는 흡족함이 동시에 교차했네요.

 

책이 도착할 때까지 이 책에 대한 서평과 내용 리뷰 글을 읽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인 폴 크루그만과 장하준의 이 책에 대한 호평까지 곁들여 필자미상의 어느 블로거가 쓴 A4 5 페이지 분량의 꽤 통찰력있는 리뷰가 이 책의 전체 내용을 잘 짐작하게 해주었네요.

 

<긴축책의 위험성과 불공정성>

 

마크 블라이스는 전통적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재정적자에는 소위 '확장적 긴축책'을 써야한다는 '1보 후퇴, 2보 전진'이라는 경제정책적 처방이 가장 그럴싸 할 것 같지만 역사적 사례를 볼 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밝힙니다. 1차대전 이후 하이퍼(살인적) 인플레에 시달리던 독일경제가 긴축적인 경제정책을 펼쳐 화폐와 물가안정의 성공을 기록했지만 거기에는 긴축책 그 자체보다 독일의 제조기술력이 뒷받침된 수출경쟁력이 절하된 자국 통화가치 속에 가속화된 공헌이 더 컸었다고 해석하지요..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예외적 성공사례가 있었습니다. 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을 때 입니다. 해외 원화 투기세력에 대한 원화방어를 위해 한국정부가 보유 외화를 많이 당겨쓴데다 세계화 경영 바람이 불어 해외에 나간 대기업들이 현지 금융권에서 빌려 쓴 외화빚이 상당했네요. 이에 한국경제에 대한 상환능력 불안을 느낀 서구은행들과 투자펀드들이 일시에 한국정부를 향해 외채 상환을 요구하자 외환보유고가 80억불 밖에 안되어 당시 말기 YS 정부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지요.

 

IMF는 550억불의 구제금융 제공 댓가로 한국정부와 한국기업들에 강력한 재정긴축책과 워크아웃이라는 사람을 왕창 자르는 기업구조 조정을 요구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쳐온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다시피 하루 아침에 기업과 은행에서 직장을 잃고 자영업계로 내몰린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았지요. 정부 역시 수많은 공무원들을 해고하며 복지예산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격렬 시위 같은 것은 다행히도 많이 일어나지 않았네요. 한국이 재빨리 외환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부 대신 민간에서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이 벌어져 고갈된 보유고도 좀 채웠지만, 각자도생으로 무너질 뻔한 사회적 연대감을 되살린 게 그 국난을 견디게 해준 국민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네요. 지금의 프랑스와는 다른 견고한 제조업 기반으로 3배나 떨어진 원화환율에 힘입어 해외시장에서 한국제품들이 가성비 최고 갑의 제품으로 변신해 엄청난 수출외화를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IMF가 시키는대로 쪼작쪼작 긴축책 설계에만 매달린 채 이런 수출시장에서의 대반전은 전혀 예상못했지요. 그러나 김우중 같은 기업인들은 1~2년 안에 수출수입으로 외환보유고를 채워놓을 수 있으리라 자신하고, 수십년 간 닦아놓은 해외 거래선들과의 네트워크를 풀가동하여 한국제품들을 신나게 팔아제꼈습니다. 일단 팔릴만한 품질의 제품을 기존 및 신규 해외 바이어들에게 반값도 안되게 엥겼으니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의 IMF 해외특수를 누렸지요.

 

김회장의 예언대로 한국기업들은 98년과 99년 상반기 기간만 수출흑자 400억불을 기록해 99년 말까지 IMF 빚 550억불을 2년 만에 조기상환하는 역전극을 펼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수백만의 민간가계가 파산되는 국가적 희생을 치뤄야했네요.

 

이 가계들의 가장 중 과거 자신의 중산층 삶으로 복귀한 비율은 30년이 지났어도10%가 채 되지않았습니다. 나머지 90%는 사회적 약자층으로 전락해 인생역전을 고대하며 온갖 노력을 경주했겠지만 생애를 마칠 때까지 회한 속의 굴곡진 삶을 살다 가야만 하는 운명을 감수해야 했네요.

 

마크 블라이스는 이 장면에서 긴축책이란 역사적으로 볼 때 기업이나 은행들이 자신의 자산수익을 위험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도덕적 해이' 속에 추구하다 아차 하고 예상이 틀려 연쇄도산 같은 부도위기에 몰릴 때 흔히 하는 짓을 묘사합니다. 이들은 정부에 '우리가 망하면 나라경제가 망한다'거나 '석기시대적 물물경제 시대로 퇴행할 수도 있다'라는 배째라 식의 자해 위협술을 구사해 시장에 포획된 정부로 하여금 국민세금으로 엄청난 구제금융을 제공하게 만드는 파렴치한 짓을 여러번 했다고 비판하네요.

 

2008년에 있었던 미국발 금융위기 때 오바마 정부와 EU 각국이 국민혈세로 만들어진 구제금융을 그 알량한 금융시스템 보존을 위해 천문학적으로 뿌리게 한게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밝힙니다. 블라이스는 '탐욕적인 실책을 저지른 자본가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못하고 국민세금으로 그들을 살린 뒤, '위험의 사회화'라는 분산 매커니즘 속에 당연한 듯 긴축책을 펼쳐 아무런 잘못 없는 '사회적 약자층에 고통분담을 강요한다'라고 직언하네요. 이는 '강력한 긴축책'이 사회통합을 해치고 계층 간 불평등성을 극명하게 보이게 하기에 쉽사리 선택해서는 해서는 안되는 독약처방적인 정책임을 냉철하게 경고합니다.

 

지금까지 블라이스의 긴축책 얘기로 제법 긴 글 써왔네요. 덕분에 우리가 30여년 전에 겪었던 IMF 외환위기 얘기도 반추해 봤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얘기로 여러분 찾아뵈러 합니다. 남은 하루 의미있게 잘 보내십시요. 그럼 오늘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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