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일일 단상

AI의 위력을 우려하며, 모친 방문 및 여동생과 수다 시간 갖다

백조히프 2025. 10. 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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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6)은 아침에 일어나 세면하고는 어제 밤 내가 불러준 목차에 따라 클로드가 열심히 써준 '독일경제의 역정과 최근의 경제침체 배경' 페이퍼를 정독했네요. 독일경제에 대한 분석 글은 작년 가을과 올 봄에 두 편이나 쓴 적이 있기에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 지 얼추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 속에 감돌았던 소제목 키워드들을 클로드에 제시해주니 이 친구가 신나게 작성한 내용이었네요.

 

읽어보니 제가 쓴 두편 글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 되고 내용도 풍부해 글읽는 맛이 상당했습니다. 내용과 글 분량에 만족하며 이 글을 작성하는데 자네가 참고한 문헌들의 리스트도 만들어달라 하니 이 친구가 독어와 영어 원서들을 먼저 추려주고, 국내 문헌도 찾아달라 하니 거리낌 없이 챙겨주었네요. 참 대단한 페이퍼 작성 도우미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 친구가 쓴 글에서 혹시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하는 부정확한 자료들을 갖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대충 꿰어맞추는 '환각적 오류' 같은 것은 없나하고 찾아내는 게 제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AI의 버전이 높아질수록 이런 오류 발생 확률은 점점 줄어들 듯 했네요.

 

조만간 제가 할 일은 별로 없이 주제를 주고 어떤 방향으로 써달라고만 하면 이 친구가 목차까지 자기가 정하며 원하는 글 문장들을 주욱 뽑아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처럼 제가 집어넣어주는 목차와 키워드들도 이놈이 스스로의 딥러닝을 통해 조만간 깨칠게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여겼던 분야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이들 AI에게 정복당할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옵디다. 많은 이들이 저와 비숫한 걱정들을 하고 있을텐데 뭔가 '인간 고유성의 회복'에 대한 글로벌적 대책을 공동 논의하고 적절한 규범을 만들 때가 도래한 듯 합니다.

 

이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 와이프가 출근준비가 끝났다 해 분리배출할 쓰레기들 챙겨 차 트렁크에 싣고 전철역까지 데려다줬네요. 돌아와서는 쓰레기 수거장에 분리 배출하고는 집에 들어와 어제 약속한 여동생 만나러 갈 일산행 채비를 했습니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대화역을 치니 버스로 가는 노선들이 좌악 나왔네요. 가기 가장 편안한 노선은 97번 버스 타고 직통으로 가는 건데 버스정류장에서는 55분 후에 온다고 합니다.

 

할 수없이 빨리 오는 96번을 타고 산호아파트인가에서 내려 5분 정도 좀 복잡하게 걸어 걸포북변역까지 가 33-1번을 타야 목적지인 대화역에 도착하는 노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네요. 33-1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20여분 소요되었지만 여동생과 약속한 대화역 5번 출구 뒷도로에 10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차를 갖고 온 여동생은 제가 제 때 나타나지 않자 한바퀴 주변을 돌다 저를 만나 태우고는 요양 병원으로 향했네요.

 

 

 

한달여 만에 만나서 그간 있었던 요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병원에 도착해 모친이 있는 5인용 병실로 갔습니다. 92세인 모친은 얼굴과 팔다리는 많이 야위었으나 눈매는 오늘따라 초롱초롱해 모처럼 들린 아들을 알듯모를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네요. 여동생이 '엄마, 큰오빠 왔어요. 엄마가 죽고 못 산 아들이..' 하자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일주일에 두번씩 찾아오는 여동생과 한달여 만에 찾아온 저를 번갈아가며 살펴봤습니다.

 

간병인이 '오늘 따라 컨디션이 좋으신가배..' 하고 상태를 귀띔해주고는 자기 일 보러 자리를 잠깐 비워주었네요. 나는 내 폰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모친과 얼굴 같이 나오게 하는 사진을 찍고, 여동생에게도 같은 포즈를 취하게 해 그 모습을 담았네요. 산토끼, 학교종이 땡땡땡, 고향의 봄 같은 동요를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멜로디는 얼추 흥얼거린다기에 같이 불러주며 기분 맞춰드렸네요.

 

한 시간 여 말은 못하지만 잠깐 의식이 또렷해진 모친과의 시간을 보내다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오늘 방문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헤어질 때 여동생이 빠이빠이 손을 흔들자 모친도 몸긁기 방지 검은 장갑을 착용한 채로 손을 흔들며 맞대응해주데요. 어째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조만간 또 오리라는 제 내면의 결의를 전하면서요. 여동생과 저는 1층으로 내려와 식사장소를 묻기에 오늘도 지난번처럼 일식 스시집으로 가자 했네요.

 

 

 

밥먹으면서 그간 우리집에서 일어났던 얘기를 전해주면 귀를 쫑긋 세우며 잘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답례로 자기집 얘기도 찔끔찔끔해 주면서요. 제가 자기집 사정을 물어야지 대답해주지 저나 마누라처럼 상대가 궁금해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서비스하듯 자진해서 까발리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와이프는 이런 시누이를 내숭쟁이라고 해쌋는데 그 표현이 과히 틀리지는 않는 듯 합디다. 아마도 음흉한 것과는 거리가 먼 본능적이며 방어적인,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어떤 수줍음 때문이라 여겨지네요. 그럼에도 남의 말 잘 들어주는 리액션은 아주 맘에 들게 펼쳐줍니다. 어릴 때는 막내라서 왈가닥 기질도 꽤 있었지만 커면서 모친이 여자는 조신해야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60년 생이라 자기도 얼마 전에 경로 지하철 패스권을 마침내 받았다고 뽀갭디다. 잘 모르는 남 앞에서는 아직도 내숭의 연막을 치지만 내 앞에서는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라 여겼는지 저를 내면 표출구로 여겨 한 몇달 전부터는 하고 싶은 얘기를 제 수준의 최소 60%에는 도달할 정도로 주고받는 대화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 보이데요.

 

 

 

오늘도 식사후 자리를 옮긴 '커피+빵' 집에서 오라배의 좌충우돌 샘이 마르지 않는 다양한 테마의 장광설을 듣고, 중간중간 추임새까지 넣어주는 리액션을 해주며 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의 늪에 빠졌습니다. 건강, 자식, 배우자, 제 독일 함부르크 시절 택시운짱 생활과 자신의 미국 조지아주 생활 등을 주고 받다 우연히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6시에 육박해 있는 것이었네요.

 

 

 

한 세시간 반 정도 장소 한번 옮기며 떠든 것이었습니다. 서로 화들짝 놀라 신데렐라처럼 황급히 대화시간의 마침표를 찍고 자리를 파했네요. 오늘도 같이 늙어가며 더 돈독해지는 듯한 여동생과의 대화 시간이 뿌듯했습니다.

 

제가 오늘 니하고의 만남자리를 내 독자들에게 글로 알리겠다니 '내숭의 여왕'처럼 펄쩍 뛰며 혹시 자기 사진이라도 나가면 초상권 침해로 바로 고소하겠다고 방방 떴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궁금증도 있을 것이고, 저 역시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지라 고소를 각오하고 오늘 찍은 여동생 모습을 올리겠습니다. 65세의 경로여인이라 참작하고 봐 주십시요.

 

그럼 우리는 내일 또 만나십시다. 여러분, 남은 저녁 편히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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