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지난 1/13일 콩팥 악성종양 제거 수술 잘 하고 오늘 퇴원했네요.. 좋은 집도의 만나 로봇수술로 잘 된 것 같심다. 아산병원에서 수술 후 케어를 잘 받아 빠른 회복으로 닷새만에 퇴원했네요.
수술 후 회복하는 동안 병실에서 가져간 노트북으로 영국항공전 6회분 마지막을 완성했심다. 오늘 박대표에게 보냈기에 여기에도 소개하네요.. 한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마시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스토리와 그 시대상황에 감정이입하며 읽어주셨으면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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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영국 본토 항공전
(6회) 본토 항공전의 개시와 영공군의 위기
(독공군의 본토 항공전 개시)
본토 항공전을 펼치기 전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탐색전 격인 해협전투를 통해 영독 양측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초전 때 자신감에 넘치던 독공군은 이 기간 동안 영국의 2배가 넘는 손실을 입었다. 자신들이 압도적이라 분석한 사전정보들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격추된 대부분이 저속의 폭격기와 쌍발 전폭기인 메서슈밋-110들이었지만 이런 격추비가 계속된다면 영공군 제압이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일말의 불안감도 커졌다.
<영국 전쟁화가 폴 내쉬 작 ‘영국항공전’(1941)>
하지만 영국 역시 수적으로는 더 많은 적기 격추가 있었지만 독일 에이스 전투기 메서슈밋-109와의 공중전에서는 결코 우세를 장담할 수 없는 호각지세를 보이자 자신들의 스핏파이어와 일대일의 교환비율로 소모된다면 본토 항공전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항공력 유지가 난망할 것이라 여겼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소모되는 경험 많은 전투기 조종사 수의 재확보였다.
다른 한편 12기로 구성되는 항공대대 간의 공중전에 있어서는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과 로테(대장기+호위기)나 슈밤(느슨한 4개 편대) 대형처럼 부단한 전술연구를 했던 독공군이, 시대에 뒤쳐진 융통성 없는 편대비행을 전투시에도 고수하던 영공군에 비해 전투 효율성과 유연성 면에서 앞선다고 인정해 영국 측 역시 그 공중전 전술을 전투를 거듭하며 벤치마킹하였다.
<영불 해협을 넘어 영국본토 공격에 나서는 하인켈스 폭격대>
독일 측도 자신들의 폭격기 대대가 프랑스, 네델란드, 벨기에 등의 기지에서 발진해 도버 해협으로 들어서자말자 더 높은 고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영국 전투기 편대들에 의해 피격 당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영국 측의 조기경보 레이더망과 중앙집중형의 통합관리센터 및 그 작동시스템의 존재를 확실히는 몰랐지만 점점 더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영독 양측이 상대의 장단점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영국측이 독공군의 이런 소모전 페이스에 끌려가면 전투기 고갈 속도가 더 빠를 게 확실시되자 전투기사령부 사령관인 휴 다우딩은 처칠과 영해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협전투의 포기를 선언했다. 이로써 해협전투는 독일의 승리로 돌아갔으며, 7/11일부터는 본토항공전이 펼쳐졌다.
(괴링의 예측과는 달랐던 영공군의 항공 전력 )
괴링은 해협전투 승리를 발판으로 가용 항공기1,000여대를 총동원하여 영본토 남부 250Km 내에 위치한 공군기지, 방공망, 무기생산시설을 초토화하려 했다. 그의 공격 목적은 영국 전투기사령부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우딩의 뛰어난 대응전술 때문에 영공군은 괴링의 의도대로 그리 호락호락 붕괴되지 않았다.
<과장된 적기 격추 보고에 흡족해 하는 괴링>
그러던 중 연합군에 대한 덩케르크 포위 때부터 영국의 화평제안이나 전시내각 교체를 기다린던 히틀러는 6주간이 지난 7/13일에야 그동안 대기하고 있던 독일육군의 영국본토 상륙전을 의미하는 ‘바다사자’ 작전의 실행을 비로소 승인했다. 이제 상륙전의 첨병역할을 맞은 공군장관 괴링은 해협전투를 통해 확인한 영공군의 만만찮은 방어능력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보부가 제시한 영공군의 가용 항공기 댓수가 300~400기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정보를 확증편향적으로 믿었다.
하지만 영국측 입장에서는 제한적이었던 해협전투에서의 470여기 전투기 소모에도 불구하고 본토항공전이 본격화 될 무렵에는 이전에 월 260대 전투기 생산에서 월 500대로 확 늘어난 생산실적을 보였다. 그래서 독일정보부가 예측한 6월말 당시 잔존 보유댓수 300~400기를 훨씬 넘는 700여기를 사실상 확보하고 있었다.
<영 전투기 양산공장>
여기에는 사회성이 약한 외골수 다우딩과도 사적 융화는 힘들지만 처칠의 친한 친구이자 목적지향적이며 위계질서에 대한 무시 성향이 커 서로 기질과 공적 궁합이 잘 맞은 총명한 캐나다 출신 사업가 비버 브룩이 전투기 생산총괄역을 맡자 둘 사이는 매우 협력적인 업무관계를 구축했던 사실이 큰 역할을 했다.
다우딩이 원하는 전투기 기종의 생산댓수 및 인도기한을 브룩은 무슨 수를 쓰던 맞추어 주었다. 그는 항공기생산성의 가장 중요한 요직에 매우 뛰어난 사업가적 마인드와 문제해결력을 가진 인물들을 발탁해 배치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모르는 공군장교나 항공업계의 이른바 좁은 시야의 전문가들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공장에서 출고된 새 전투기를 전투부대에 전달하는 업무를 기존 조종사가 아닌 항공수송보조부대의 여조종사들에게 맡긴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캐나다계 사업가 비버 브룩>
<영 전투기사령부 총사령관 휴 다우딩>
기술자나 정비사들과 함께 스핏파이어 및 허리케인의 증산과 멀린 엔진의 추력강화를 논의할 때는 그 어떤 고위직의 방문도 사절하거나 기다리게 했다. 그 논의에서 도출된 결과물인 전투기들을 영공군을 위해 만들어줬을 뿐 항공성이 추가로 요구하는 스펙장착 따위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다우딩이 적재적소로 판단한 곳에만 제작 전투기들을 보냈다. 둘은 마치 전생에 함께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브룩은 방해되는 일이 있으면 다우딩 대신 바로 처칠을 찾아갔고, 문제가 미국과 관련된다면 친구인 해리 홉킨스를 통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알렸다. 멀린 엔진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헨리 포드를 설득하려 했지만 협상이 길어지자 패커드사(GE의 전신)로 제휴선을 바로 바꾸어 양산하게 된 사안도 브룩의 대미 비선조직의 가동 때문이었다.
(영공군 사령부 내의 ‘빅윙’ 논쟁)
괴링은 자신이 예측했던 영공군의 잔존 전투기들을 소모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점점 공격 항공편대 집단을 매머드 화해갔다. 그러나 다우딩이 휘하 전체 4개 전투비행단 중 가장 신뢰했던 제11전투비행단(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 구역담당)의 뉴질랜드 출신 키스 파커 소장은 레이더 망과 중앙집중 관제시스템에서 포착된 적의 주력 항공대의 예상 댓수와 선로 등을 파악하여 필요하다 여겨지는 예하 대응 전투기들을 축차적으로 신속히 발진시켰다.
<10전투비행단 사령관 트레포드 리 멜러리 소장>
<11전투비행단 사령관 키스 파크 소장>
이 전술은 대규모 방어편단을 구상하여 독일 측의 대규모 공습에 맞대응하자는 남서부 구역 담당 제10전투비행단의 리 멜러리 소장 등이 주장한 ‘빅윙’ 전술과 정면으로 부딪혀 사령부 내에서 적지 않은 논쟁을 촉발했다.
<남동부 11비행단과 남서부 10비행단의 방위구역>
리 멜로리는 총사령관 휴 다우딩과 그가 총애하는 심복이자 11비행단 사령관인 키스 파크가 독공군의 대규모 공세에도 소규모 편대만 보내 치고 빠지는 전술에 본토 항공전이 시작된 이래로 계속해서 커다란 불만을 보였다. 영공군의 에이스이자 호쾌한 항공전의 신봉자인 12비행단의 더글라스 바더 대대장 역시 ‘빅윙’ 전술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리 멜로리와 바더는 연속적인 독 항공단의 대규모 공세에 영국도 전투기를 한번에 대량 동원해 건곤일척의 맞불항공전(Big Wing)을 펼치는 게 소모적인 소규모 찔끔찔끔 대응보다 승리에 더 확실하다고 주장하며 ‘스몰 윙’ 대응으로 일관하는 키스 파크와 다우딩의 대독 기본전술에 적지 않은 의문과 불만을 토로하며 반기를 들었다.
<빅윙 전술이 제대로 먹힐 수 있는 대규모 공중전>
여기에 대해 파크는 ‘빅윙’ 전술이 겉으로는 호쾌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행상 여러 어려운 문제점이 많다는 점을 들어 빅윙론자들을 비판했다. 먼저 이 전술을 구사하려면 적 항공단의 위치, 이동방향, 정확한 전략 목표를 안 뒤, 아군 요격기를 신속하게 대거 모으는 게 요체인데 많은 경우 그 신속성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자신의 담당구역이 독공군의 주력 공격지역이라 적기 출몰지역에 최대한 빨리 요격기를 투입하여 초기 저지하는 능력이 각지에서 발진한 아군 전투기들을 시차적 지체 속에 공중에서 모아 대형을 갖추어 독 항공단에 대응하는 빅윙 전술보다 오히려 더 실효적이라 주장하며 리 멜로리 등에 재반박했다.
유수한 영공군 가문 출신인 리 멜로리는 식민지였던 뉴질랜드 출신 파크가 총사령관 다우딩의 총애를 받아 자기보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11비행단을 맡으면서 다우딩이 좋아하는 스몰 윙 전술을 충직하게 쓰며 신뢰를 더 획득해 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의 골은 괴링의 대공습 때 파크가 제10전투비행단에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을 때 리 멜로리는 이를 슬쩍 사보타지하는 지경으로까지 연결되었다.
다우딩은 이 반목하는 둘을 어떤 식으로든지 중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회성 부족의 그로서는 리 멜로리를 설득하고 구슬리며 빅윙론자의 체면을 세워줄 최소한의 타협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었던 게 어쩔 수 없는 리더적 한계였다. 내심 파크의 견해를 지지하던 다우딩은 두 사령관을 모아 지금은 전술적 논쟁보다 ‘영국의 생존’과 이를 위한 ‘조종사 확보’가 더 화급하다며 ‘빅윙 논쟁’을 덮어버리는 임시봉합책이 고작이었다.
후일 영국 본토 항공전의 승리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면서도 원수 진급도 못한 채 전투가 끝나자 한직으로 토사구팽된 다우딩의 운명은 처칠 수상의 권위조차도 공식석상에서 무시하고, 자기편 만들기와 걸끄러운 동료들과의 관계성 제고에 한참 둔감했던 그의 인간적 특성에 크게 기인했다.
(‘독공군의 ’독수리의 날’과 대공습 지속)
영공군 사령부 내에 이런 불화가 있었음에도 독일 측은 이를 활용할 기회를 놓친 채 ‘독수리의 날’을 정해 공습의 강도를 점점 절정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독공군의 대공세에서는 아킬레스 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주력 에이스 전투기 메서슈밋-109의 턱없이 짧은 체공시간 문제였다. 날개 아래에 보조연료 탱크를 부착하려 해도 그리 되면 이 전투기의 장점인 고공에서의 기동력과 속도가 훼손되기에 채택이 기각되었다.
독공군의 도르니에, 하인켈스, 융커스 폭격기들이 대륙에서 발진하면 메서슈밋-109와 메서슈 밋-110이 이들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주력 호위기인 메서슈밋-109는 연료문제 때문에 영국 본토에서의 체공시간은 30분이 채 안되었다. 대륙기지로 귀환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폭격기들을 본토에서 호위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영본토의 고공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영국 전투기단은 폭격기대를 향해 급강하 하면 메서슈밋-109기들이 대적하려 올라오는데 이때 스핏파이어와 메서슈밋-109가 1대1의 난투적 공중전을 치루는 동안 2선급 허리케인이 독폭격기들을 사냥하듯 공격하는 전투패턴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를 예상한 독공군이 호위기의 물량을 대폭 늘여 허리케인과 전투를 벌였음에도 체공시간 때문에 메서슈밋-109는 신데렐라처럼 시간이 되면 대륙 귀대를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독수리의 날 펼쳐진 공중전>
그리 되면 메서슈밋-110이 강한 화력무장에 힘입어 공격하는 영전투기들을 홀로 대적해야 했는데 스피드와 기동력에 있어서 스핏파이어의 상대가 되지 않아 호위가 아닌 사냥감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드디어 괴링은 자신이 갖고 있는 5개의 항공함대 중 2, 3, 5함대 3개를 총동원하여 1500여대의 항공기를 모아 200여기 정도 남았다고 본 영전투기 전력을 완전히 소멸시키려 8/10일을 ‘독수리의 날’(Der Adlerstag)이라 명명하고 총공습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악천후 때문에 날씨가 개이리라 예견된 8/13일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망의 8/13일이 되었지만 오전 날씨가 여전히 궂었기에 대공습 시간을 12시로 연기한다며 발진취소 명령을 내렸지만, 명령전달 착오로 오전에 발진한 채 그대로 영본토로 날아간 폭격기대도 있었다. 요하네스 핑크 대령 예하 도르니에-17 폭격기 74대는 구름 속에서 자신들을 호위할 전투기들 상당수가 공격취소 명령을 받고 회항한 다음에도 목표로 계속 날아갔다.
하지만 정밀한 군사지도 제작없이 여행 가이드나 영국 국립지도원에서 펴낸 일반인용 지도에 의거한 폭격지점에 대한 지도 제공으로는 핑크 대령 폭격대가 오인폭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개연성이 너무 컸다. 이들은 영전투기사령부 공군기지가 아닌, 목적지에서 80Km나 떨어진 해양휴양 도시 본머스에 소재한 해안 사령부를 폭격했다.
거기에다 제 때 출현한 영전투기들의 요격을 받아 엄청난 피해를 입고 간신히 대륙기지로 복귀했다. 영국의 레이더 기지가 전날 모두 격파되었다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적기들이 나타나 자신들을 공격한 데 대한 폭격대장의 불만은 이 ‘독수리의 날’ 대공습이 앞으로 펼쳐질 전투의 향방을 암시하는 전조를 보여주는 듯 했다.
‘독수리의 날’ 독공군은 대륙에서 발진한 남부지역 공략을 위한 2, 3 항공함대들과 함께 노르웨이에 있는 제5항공함대 폭격기 70여대에게도 스코틀랜드 동부를 공격하라는 협공적 대공세 작전을 개시했다. 영국 남부지역 공격시에 북동부 영공군 전투기들이 방어하려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독일 2, 3, 5 항공함대의 위치와 공격구역>
독일 측이 예상컨대 잔여전력이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공군이 이 지역을 담당하는 자신의 제13전투비행단에 많은 수의 전투기는 배치할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감시 레이더망까지 부실해 잘하면 영국 전투기들에 시달리지 않고도 전략적 폭격을 성공하지 않을까 크게 기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현지에 도달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노르웨이에서 도달거리가 600Km나 되기에 메서슈밋-109의 호위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다우딩의 레이더 망은 이 지역에도 촘촘히 깔려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기지에서 발진하자마자 영공군은 손금보듯 독폭격대를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서슈밋-109가 동행하지 않았기에 독일측 예상보다 훨씬 많이 배치된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으로 슈투카와 융커스, 메서슈밋-110으로 구성된 독폭격대를 칠면조 사냥하듯 할 수 있었다.
<허리케인에 요격되는 융커스-88>
<호위기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영 전투기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메서슈밋-110>
남쪽 폭격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첩이라 할 정도의 독일 제5항공단 폭격기대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 날 가장 많이 격추된 융커스 88, 융커스 87(슈투카)들은 이제 더 이상 영국 항공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영정부와 언론계는 예전에 다우딩이 행한 고집어린 레이더망 설치와 상당수 전투기의 이 지역 분산배치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는 찬사 릴레이가 이어졌다. 독공습에 지친 영국민에게도 새로운 항전 에너지를 부여했다.
하지만 독폭격기들의 손실이 점증되는데도 괴링은 영국의 전투기 전력 바닥이 멀지 않았다고 믿고, 수차례의 대규모 발진 폭격을 남서부 지역에 계속했고, 폭격기 손실에 비해서는 적지만 영국 전투기들도 소모시키는 전과는 그런대로 있었다. 문제는 영전투기들의 잔여댓수에 대한 괴링의 오판이 적지 않은 데 있었다. 영국이 이 무렵 생산해내는 전투기 수가 그가 가진 정보보다 훨씬 상회하는 데도 그는 본토 항공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믿었다.
(패배의 풍전등화 위기에 몰린 영공군)
이 날 이후 쏟아진 독공군의 우박같은 폭격세례에도 연이은 오폭에 의해 핵심목표였던 영전투기사령부와 스핏파이어를 생산하던 비커스 수퍼마린 공장은 희한할 정도로 피해가 경미했다. 독폭격대는 남부 사우드햄튼 지역을 한 시간여 폭격했음에도 롤리 자전거 공장, 픽퍼드 가구 및 냉동육 창고들만 부수었다.
영국 측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몰랐기에 독일 측은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유유하게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온 부대들도 적어나마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 전투기의 요격을 받았기에 압도적인 우세를 예상하게 했던 출격 전 낙관적인 정보들과는 전혀 딴판인 양상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상에서 메서슈밋-109에 의해 파괴되는 허리케인>
그럼에도 독공군은 영공군 제11전투 비행단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고 믿었다. 폭격대가 보기에 확실히 일부 공군기지에서 활주로와 부속건물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기에 그렇게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은 영공군의 신속한 복구능력이었다. 한 동안 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대파라고 여겼지만 영국 측은 복구에 총력을 가해 하루 이틀 후면 핵심 기능들을 되살려 냈다.
그보다 더 큰 다행은 다우딩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콘크리트 지하 전화선과 레이다망, 그리고 중앙집중 관제센터의 온전함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괴링은 이미 빼든 칼을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영공군에 가랑비에 옷젖는 맛을 보여주겠다며 항공기 손실비가 나쁨에도 계속된 물량 공세를 펼쳤다.
<하루에 서너번 출진해 격무 한계에 달한 영조종사들>
이따금씩 영국 측 레이더 감시망은 짙은 구름으로 대편대를 식별하지 못해 1개의 스핏파이어 편대(4기)가 출격했을 때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독일의 대편대가 영국의 군사적 요충지 폭격에도 성공하기가 쉬웠다. 이런 식으로 독측의 파상 공세가 지속되자 방어측인 영국도 점점 전투기가 고갈되는 속도가 빨라졌고 주요 중요기지들이 요격당하는 빈도도 잦아졌다.
<독폭격기대에 피격당해 활주로와 시설들이 대파된 11전투비행단 소속 탱미어 비행장>
독일도 그간의 학습효과를 통해 오폭 사례들을 많이 줄이고, 중요 전략 목표지 폭격에의 성공률도 높혀갔다. 거기에다 독조종사들보다 하루 평균 서너번의 출격을 감수해야 했던 영 조종사들의 전투 피로도와 줄어드는 숙련 조종사의 수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들은 모두 영공군의 방위력을 최저수준으로 급락시켰다.
<폭격기 하인켈스에 요격당하는 초짜 조종사의 스핏파이어>
바야흐로 영공군에 최대의 패배 위기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다우딩이 우려하던 그 때가 드디어 다가온 듯 했다. 다우딩의 전투기들에 무수한 폭격기 손실 타격을 입었지만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괴링도 이제 거의 다 왔는가 싶어 마지막 기력을 쏟아부어 잉글랜드 남부지역을 맹폭하는 폭격단을 연일 출진시켰다. 다만 항복압박용으로 런던 공습만은 배제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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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7 20:17
첫댓글 수술이 잘 되었고 회복이 잘 되어 간다니 참으로 반갑고 기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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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공 고맙소이다. 로봇수술로 까다로운 위치에 들어선 해당종양만 정밀제거한 현대의학의 힘을 적지 않게 느꼈네요.. 최근에 아산병원이 암관련 분야 수술들을 많이 해와 임상경험이 많이 축적된 데 대해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합디다.
마누라가 자신의 강력한 아산병원행 주장을 따르지 않고 내가 똥고집을 피워 김포우리병원 같은 서민적 지역 병원에서 집도하게 했다면 콩팥 하나 그냥 날리는 수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디기 공치사해 쌌네요.. -
22.01.17 20:27
항공기의 손실도 문제지만,단 시일에 되지 않는 조종사의 양성과 우수한 조종사를 확보하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영국은 영연방이나 폴란드 출신 조종사 그리고 나중엔 미군의 흑인 조종사까지 항공 전력에 참여 할 수 있었지만 독일의 경우는 러시아 항공 전력과도 싸워야 하고 참 곤란한 일이 많았겠습니다. -
맞아요.. 조종사 부족 문제로 체코(86명), 폴란드(141명), 캐나다(90명), 뉴질랜드(102명), 호주(21명), 남아공(21명), 로디지아 (백인 1명), 자메이카(백인 1명), 아일랜드(9명), 프랑스(13명), 벨기에(29명), 미국 백인(7명, 영공군에 자원입대, 영화 진주만에서 나옴),팔레스타인 출신 유대인(1명) 등으로 다양한 외국인 지원자 및 용병들로 조종사 풀을 구성해 출격시켰지요.
언어소통상 문제로 초기에 상공에서 혼란을 겪었지만 체코출신 요제프 프란티세크는 영국항공전 기간 영공군 2위의 격추 에이스가 되기도 했심다. 미 흑인 조종사들은 영국항공전 이후 연합군이 '43년께부터 전세 역전으로 독일 영공에 출몰했을 때 따로 부대를 구성해 폭격대 또는 전투기 조종사로 메서슈밋-109와도 맞짱 뜨며 전공을 올렸지요. -
22.01.17 23:34
와~천만 다행입니다. 무병장수 아닌 1,2病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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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요. 수인공이 소개해준 29회 삼성생명 박후배와도 작년 6월에 암보험 하나 들어놘 게 있어 제거 종양 조직검사에서 세포암 냄새가 풍기면 약정보험금의 반은 건질 수 있는 길을 만들었심다. 암이 아니면 좀 아쉽지만 아닌데로 좋고요.. 아무튼 옵션을 두개나 쥐고 있으니 든든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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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잘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계속 잘 care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요즘 태평양전쟁에 관한 유튜브들에 푹 빠져있는데
과달카날과 그 이후의 진전사항에 대해 한,미의 여러가지 영상및 해설들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간의 공중전에 관해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제로센, 미쿡의 와일드캣, 헬캣, 코르세어등의 진전 등등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약간의 중독증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지박사가 태평양 전쟁에서 미일간 항공전에 빠져 있다니 반갑소이다. 꿰어맞추기 식이지만 어찌 이 시점에서 나와 항공전에 관심이 같이 뻗쳤는지 쪼매 신기함다.
제로센 초기 모델은 일본 미츠비시의 젊은 천재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가 유럽 항공업계를 탐방한 뒤 영국 스핏파이어와 독일 메서슈밋-109의 장점들을 '후발자의 이익'으로 흡수해 출현시켰기에 태평양 전쟁 초기 무적의 속도와 기동력을 가진 최고의 전투기로 군림했지요. 하지만 조종사에 대한 안전장치가 너무 미흡해 기체에 기총 몇 발만 맞으면 바로 화염에 쌓여 폭발했기에 '가스 라이터'라는 별칭도 같이 받았심다.
미군은 제로센기를 잡으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헬캣, 무스탕 같은 대항기를 개발해 중반부터는 공중전에서 드디어 우세를 잡게 되지요.. -
@김재민 처음에는 미국도 제로센의 제원을 자세히 모르고 있다가,말기에 들어서 물에 빠진 제로센을 건져내어 제로센 분석에 들어가서 와이드 켓,코르세어 등을 개발하고 전술도 개발하여 제로센은 미국의 항공 전력에 밟히게 됩니다.나증에는 고참 조종사들도 다 소모되고, 카미가제 공격 때는 착륙하는 것만 가르쳐서 가는 연료만 주고 보냅니다. 울면서 안 가겠다는 신참 조종사를 어루고 달래서 죽음의 길로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 태어난 젊은이 들은 참 욕 봤습니다. 센니바리에 개털이 들어 간 것을 모르고 처녀 음모라 생각하고 도츠케키 한 젊은이의 최후가.. -
@이길영 길영공은 이번에도 전쟁사의 무기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는구려. 나도 미국이 처음에는 미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제로센을 1대1로 대적하지 말고 꼭 1대2의 대형속에서나 공중전을 벌리라는 지침을 줬을만큼 초기에 제로센에 대한 공포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 기록들을 제법 자주 만났네요.
그런데 '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전세가 미측으로 기울어지면서 미군은 제로센 잡을 연구를 거듭했지만, 일본은 제로센 기종을 개선하지는 못한 채 숙련조종사들까지 소모전으로 내몰아 소모했으니 중후반부터는 필리핀의 레이테 해전 등에서 노후 기종으로 카미가제 자살특공이나 할 정도로 몰리게 되엇심다.
선발자를 벤치마킹으로 따라는 잘 갔지만, 자신이 선두에 섰을 때 스스로 앞서 나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능력이 부족했던게 일본이 가진 전통적 한계 같심다. 그리고 센닌바리가 어떤 기능을 한 물건인교? 예전에 한번 들었는데 잊어버렸심다..-
@이길영 참, 도색적인 샤머니즘이 물씬거리는 치기문화처럼 여겨지네요... 왜 여인의, 그것도 처녀의 거시기 체모가 총알과 포탄파편을 피하게 해주는 최고의 부적으로
떠받들려졌을까 일본의 전국시대와 에도시대 문화를 한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심다..
이 센닌바리 부적문화에 연유해 6, 70년대 베트남전때 위문공연 간 우리 여자연예인들이 공연 중 한국군 장병들에게 총알 피해가라고 들고 간 팬티 선물을
인심좋게 던져 준 스토리가 이제사 쪼끔 이해가 되네요.. 센닌바리보다는 훨씬
점잖아진 부적 세레모니라 하겠심다..
에로스적 상상의 에너지 제공표식을 죽음에 직면한 군인들에게 효험있는위안품처럼 여기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 같심다. 혹시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일자위대 군인에게 보내는 센닌바리가
다시 부활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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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수술이 잘 되었다니 반가운 소식이네요. 몸조리 계속 잘하소.
국민들의 단결심이나 애국심.. 그리고 암호전문 해독이나 레이다 설치, 기계 제작 등의
과학 기술적 사안에 일부나마 잠재 또는 우위력이 있었던 점이 주효했고..
또한 당시 처칠같은 정치/외교적 감각이 뛰어난 리더가 있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본토 항공전을 비롯..결론적으로 볼 때는.. 2차대전은..미국이란 나라의 지원과 참전이
있었기에.. 결국 영국을 중심한 연합군 측이 독일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판단이 되더군요.
평소 과학 등 국가의 기술력을 키우고...인문학 인재들도 많이 배출하여..나라 전체의 수준을
지속 높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궁극적으로 이러한 전쟁참화를 예방하거나 이겨내는 데
절대적인 핵심사안이 됨을 새삼 느끼게 됩디다. -
서토의 가호어린 성원이 태평양을 건너 내게도 전해진 모양임다. 서너 시간이 걸린 수술이었지만 나는 전신마취된 채 한 숨 자고 깨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습디다. 개복도 하지 않고 배에 1센치 정도의 빵꾸 5군데를 내어 거기로 AI 로봇 집개손이 들어가 내 MRI와 CT 사진들을 보고있는 집도의의 조종에 의해 종양 부위를 정밀제거한 것 같은데 깨어난 순간에는 내장을 휘적거려선지 속이 제법 거북했고, 우리한 통증도 제법 동반하데요.
그래도 시간이 가며 투여되는 진통제 덕에 통증도 크게 완화되고, 이틀 째부터는 기다리던 방귀도 부웅하고 나오니 거북하던 속이 한결 편해지며 퇴원 마지막 이틀 전부터는 노트북까지 만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속도가 눈에 띕디다.
와이프가 24시간 대기해 시다바리 역할을 즐겁게 해주니 6인실 병실이었지만 호캉스 하듯 널널하게 지내다 나왔네요. 예전 같으면 열흘 이상 잡아놨을 건데 코로나 시국이라 모두 닷새째에 다 퇴원시켜주는 것도 맘에 들었심다.
본 본토항공전에서 독일의 실패는 정보력 부재와 플랜 B가 없는 무식한 공격전술로만 일관한 괴링 같은 정치적 인물이 군사전문가들을 제치고 독일 공군의 최고지도자가 된게 가장 큰 원인이라 여김다 -
재민공, 수술이 잘 되었다니 다행이고 축하 드립니다.
잘 몸조리하여 빨리 원상태로 완전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그 와중에서도 성의껏 올린 글 잘 읽었습니다. -
법사, 보내준 염원공력에 고마움을 크게 표하외다.
마지막 기간 병실에서는 초고작성을 마친 상태에서 관련 사진들을 채취해 글 내용에 맞게 배치한 작업 정도만 한 정도였네요. 처음에는 예전에 올린 PPT 강의안 내용을 그대로 옮기려 했는데 기승전결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생각보다 연재 분량이 늘어나버렸네요.. 그냥 새로 개작한다는 맘으로 다시 써내려가고 있심다. -
물론 어릴 때부터 그 비싼 녹용 등.. 여러 보약재로 강화된 김박사의
건강한 체력 자체가 큰 받침이 되엇겟지만...
수인형님 말슴대로..역시 평소 김박사에 대한 로열티가 강한 박여사께서
김박사의 목숨을 살렸다는 게 보다 정확한 평가일듯 하네요.^^
어수선한 병원에 갔다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거나..혹은 예민한
장기들을 잘못 건드리게 되면.. 암만 체력이 좋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테니 말임미다. -
아니, 내가 무슨 녹용을 소시적부터 섭취했다고 서토가 예단을 하며 실 눙치는거요?.. 우리 마미가 허리 튼튼해지라고 한번씩 소꼬리 사와 곰탕처럼 끓여준 것을 얻어먹었던 기억은 남미다.
와이프가 나보다 동네병원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냉정해 큰 병은 무조건 국내 최고병원에서 진료받고 수술도 맡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김포 우리집에서 한번 진단 방문하는데 대중교통으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잠실 풍납동으로 내 보냅디다. 뇌혈관 진료와 이번 수술 건에서 특히 그랬네요. 보험도 최근 10년 사이에 제법 많이 들게 해놨고요.. -
김 박사는 그래도 어부인 덕분에 보험도 잘 갖추어져 있군요.
저 같은 경우 무연금 무보험이라 즉을 병 걸리면 그냥 타잔 영화에 나오는 폭포수 뒤로 임종을 맞이 하는 비밀의
장소를 떠나는 코끼리 모양으로 죽음으로 가는 여행을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질 나쁜 병 말고 화끈한 심장마비 이런 것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성남 조폭들이 소리없이 잘 죽이던데...나도 몹쓸 병 걸리면 글마들한테 돈 좀 쥐어주고 조용히 가는게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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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공이 마닐라에서는 국내 보험사에 보험을 들 수 없능교? 말 그대로 보험을 들어놔야 유사시에 야무진 대처무기가 되는데..
노쇠하여 죽음이 임박하면 폭포수 뒤 임종의 장소로 이동한다는 코끼리들의 마지막 여행길이라는 표현에 콧등이 시큰거리외다. 갑자기 60년 전에 봤던 흑백필름의 타잔 영화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말이지요.. 어어 하다 우리가 벌써 그 세월을 꿈결처럼 보낸 듯 함다. 인생의 절정기도 별로 맞아보지 못한 채 길고 가늘었던 한 생애인가 싶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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