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미국이 자신의 누적된 교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대미흑자국이었던 일본과 서독 재무상들을 불러 엔화와 마르크화의 인위적인 대달러 강세를 요구하는 ‘플라자 합의’를 맺었다. 미국에 대해 그때나 지금이나 노(No)라고 할 수 없었던 일본은 서독보다 더 강력한 엔화 강세를 감수했다. 대달러 250엔에서 2배가 넘는 120엔으로의 환율변동을 거대한 미국시장을 잃을까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였다.
이런 말도 안되는 미국의 우격다짐에 일본 기업들은 수출 가격경쟁력이 확 떨어지자 자국내 수출 비중을 줄이고, 외국으로 나가는 해외직접투자(FDI)를 통한 현지생산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다. 대신 일본내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지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출처: 김학균, "일본 경제의 짧은 부활이 끝나고 있다", 경향신문, 2024. 8. 1.
한편으로 일본정부는 수출감소를 내수경기 촉진으로 만회하려 초저금리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으로 민간소비가 어느 정도 살아났지만 곧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일어나 많은 기업들이 본업보다 부동산 투기에 ‘재테크’라는 명분으로 광분해 일본증시의 거품 활황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일본 경기는 급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기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이 기간 중에도 한 두 번의 짧은 반등 성장기간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장기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져 내수 경기는 살아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디플레의 늪을 빠져나가려면 초저금리책을 유지하며 통화를 무진장 살포하여 인플레 국면을 만들어야 한다고 치유책을 제시했다.
2012년 11월 2기 집권에 성공한 아베 수상은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구조개혁에 의한 경제성장을 세 화살로 하는 ’아베노믹스‘ 플랜을 디플레 늪에서 벗어날 비책이라 들고나오며 근 10년간을 밀어부쳤다. 주변국의 경제학자들이 아베노믹스의 부정적 리스크(GDP 대비 260%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끊임없이 경고하며 실패시 세계경제에 재앙이 될거라며 더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다.
다른 대책이 없던 아베정부는 무모할 정도로 무한정한 통화발행과 초저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동원해 ’슈퍼엔 약세‘를 상당 기간 이룬 덕에 2022년부터 일본경제가 드디어 디플레 늪을 벗어나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3%대의 인플레 국면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일본 수출기업들은 ’역사적 엔약세‘의 호조건으로 수출 특수를 누렸고, 수익이 증대해 일본 증시도 활황세를 탔다. 아베노믹스의 3번째 화살인 기업 성장책은 이렇게 수출기업들에나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수출기업이나 증시 투자자가 아닌 내수기업이나 개인 민간가계에는 수퍼엔저로 인한 인플레가 엄청난 생활고에 빠뜨리는 主요인이 되었다. 일본 GDP의 50%를 차지하는 민간가계 중 주식투자 인구 12%를 뺀 88%는 수 십년 만에 겪어보는 인플레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대다수 국민은 고물가 시대에 임금은 오르지 않아 실질소득마저 감소된 채 수년 째 적자가계를 움켜쥐고 생활비 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들은 갑자기 제3세계 국민들에 버금가는 낮아진 생활수준을 체감하며 민심이 돌아버려 아베 후임인 기시다 총리의 국민지지율이 20% 수준에서 밑돌게 해 퇴진시켰고, 급기야 지난 총선에서 만년 집권당인 자민당에도 참패를 안겨 주었다.
내수기업들 역시 개인소비가 바닥을 기니 임금을 올려주지도 못한 채 고용도 현상유지하기에 급급했다. 임금이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르니 일반가계의 실질소득도 줄어들어 생활비 절감에 더 매진해야 했고, 내수기업들 역시 불황에 빠지는 악순환의 길로 들어섰다. 엔 약세는 대다수 일본 국민들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대악수가 되어 정치권에서 타국들과는 달리 금리인상을 도리어 요구하는 상황으로까지 연결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무한정 통화공급을 한다고 국가부채율을 260%까지 만든 업보로 금리인상도 손쉽게 할 형편이 아니었다. 금리 1%만 올려도 국가부채에 대한 엄청난 이자부담을 일본 정부가 떠앉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지날 달 마이너스 금리 만이라도 벗어날 정도의 금리인상을 물가잡겠다는 신호를 위해 정치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경제가 많은 국민들의 고통을 담보로 수출기업들에 의해 ’22년과 ‘23년 1~3%대의 GDP 성장을 했으나 ’24년은 다시 마이너스 0%대의 역성장을 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베노믹스 정책도 부분적 성공 만을 거둔 채 곧 폐기되리라 여겨진다.
출처: 이명찬, "1인당 소득 첫 한일 역전과 '투키디데스 함정'", 중앙일보, 2024. 8. 14.
‘2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서 한국에 사상 처음 추월을 당한 일본으로서는 디지털 분야의 인프라 투자를 등한히 했기에 재역전하기가 아무래도 쉽지 않으리라 보인다.
근 30년의 침체기를 겨우 벗어나나 했지만 불과 수년 간의 호황 끝에 다시 경기침체기로 빠질 확률이 큰 일본경제의 역정을 살펴보며 우리 경제도 ’잃어버린 OO년‘이 되지 않게끔 첨단산업에의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경제의 역동성 유지를 위한 강소기업 중심의 생태계 구축에도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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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공
24.11.16 12:25
첫댓글 세계 경제에 해박한 김박을 삼성경제연구소 석좌 연구원 초빙을 추진합시다!^^
김재민
작성자24.11.19 13:18
어허이.. 과찬의 말씀을.. 이제 7학년이 되며 우리 사회로부터 이런저런 강의를 해 볼 기회도 점점 닫히는 판에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경제칼럼 작성능력에 스스로가 '아따 쫌, 살아있네!' 하고 기꺼워 할 뿐이네요. 수인공 같은 독자가 집중해 애독해 주니 그저 계속 쓸 힘이 생김다.
마닐라공
24.11.17 08:59
일본은 패전이후의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들어가자
미국이 소련 등 공산국가의 견제를 위하여
일본의 전후 복구에 막대한 자금을 넣었지요.
더구나 우리의 전쟁으로 순풍에 돛 단듯 호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은 국방비의 부담없이 기업 투자에 몰두할 수가 있으니 오히려 경기가 안좋아지는 것이 더 이상하였지요. 그러나 일본이 미국을 넘어설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자,일본의 팔을 비틀어서 엔화를 급격히 절상시키고, 거기다가 기업을 수익 향상을 위하여 초저리의 금리를 제공하게 되지요.이러자 모두들 엔캐리로 해외의 자산투자,
그리고 국내의 부동산에 소위 재태크로 나서지요,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관계 당국은 금리 인상을 하게 되자, 상황은 급격히 반전되어 장기 불황으로 야당에게 정권까지 넘어갔지요,무능한 야당으로 다시 재집권한 자민당의 아베는 초금리정책에 국채를 일본 중앙에게 무제한 매입하게 하여 죽을 때까지 엔화를 10여년 동안 풀었지만 별무소용이었지요.
정말 갑갑하게 되었습니다.우리나라도 폭발 직전의 부동산과 마물린 가계부채로 어금버금한 상황입니다.
김재민
작성자24.11.17 10:08
역시 일본통인 마공인지라 종전 이후 일본경제의 역정을 빠삭하게 훑어주네요. 어느 면에서는 소생 글 내용보다 더 소상하게 살펴본 데도 있심다. 계속 요런 피드백성 견해도 많이 전해주시구려..
마닐라공
24.11.16 12:12
수도권의 부동산 값에 흐뭇하게 미소짓지 마시고
비싼 아파트 팔고 그 돈으로 1/6도 안되는 부산의 아파트 한채 사고
나머지 돈은 달러를 사서 구렁이 알 품듯이 죽을 때까지 필요할 때 쓰고 갈 생각해야합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이만, 오늘 밤이라도 검은 옷 입은 신사 따라 갈 수도 있습니다.
중철아! 내 말 맞제!
김재민
작성자24.11.17 09:53
얼마 전에 돌연사로 타계한 중철거사 얘기가 나오니 소생도 맘이 거시기 함미다. 참 정이 많고 의협심도 대단한 친구였는데 요리 홀연히 가다니.. 사는 게 참 한치 앞이 안보이는 미로 같심다.
이길영
24.11.17 04:54
요즈음의 우리의 물가가 수년 전에 일본에서 느꼈던 물가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소득에 비하여 체감 물가 수준은 다 죽자하는 수준입니다,
이것 너무 한 것 아냐?
김재민
작성자24.11.17 09:56
마공 부부가 일본 국민들이 요즘 겪는다는 높아진 물가고를 일본 방문하며 직접 체험한 모양이구료.. 최근 우리 물가상승 수준도 만만찮은데 그 이상입디까?
이법사
24.11.17 08:14
오나 가나 부동산이 문제로군요.
김재민
작성자24.11.17 10:00
법사가 사는 LA 거처는 집값이나 집세가 그동안 어느 정도 올랐나요? 뉴욕 쪽은 엄청나다 하던데.. 한국보다는 상승폭이나 속도가 한참 아래일 걸로 짐작됨다만..
이법사
24.11.19 11:34
@김재민 지역차가 있지만 미 전역이 팬데믹 이후에 집값이 제법 올랐어요.
미국은 본래 십년 가 봐야 인플레이션 폭 이상으로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었거든요.
재택근무 때문에 사무실 많은 도심지 주위의 근교 집값이 좀 올랐고 매물이 별로 안 나왔지요.
대신에 사무실 건물은 공실률이 커서 값이 내려갔고요.
캘리포니아에서는 실리콘 밸리라고 하는 산호세 지역이 팬데믹 이전부터 엄청 올랐는데 지금은 백만불 가지고는 하꼬방도 못 사며 이백만불 줘야 50년이상 낡은 방 두 개 짜리 작은 집 정도, 부부가 애들 둘이 키우자면 한 사백만불은 줘야 겨우 방(침실) 네 개 쯤 되는 50년 이상 된 헌집입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고 대충 봐서 그래 보입니다. 육백만불 쯤 주면 별로 손 볼 데 없는 비교적 새집에다가 방은 6개 이상 되는 괜찮은 집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산호세 지역 좋은 동네 이야기이고 좀 멀리 가면 값이 내려가는데 출근이나 학군이 문제지요.
김재민
작성자24.11.19 15:48
@이법사 법사가 궁금해하는 소생의 갑갑증을 해소해주려 살아보지 않은 이에게는 접해보기 힘든 미국 서부의 집값 추세를 세세하게 알려주네요.. 고맙심다.
대충 한화로 계산해 보니 그래도 한국 집값들 보다는 좀 싸보이는 느낌을 받네요.
이법사
24.11.19 14:36
@김재민 문제는 주택 가격도 가격이지만 주택 세금이지요.
각 주마다 세율이 다른데 2023년도 세율을 보자면 1년에 내야 하는 세금이
가장 싼 축에 드는 알라바마가 주택가의 0.40% 이고 캘리포니아는 0.75% 이라서 싼 축에 듭니다.
뉴욕은 1.40%이며 뉴저지는 2.23% 입니다.
공짜로 집을 줘도 세금 때문에 서민은 비싼 집에 살기 어렵지요.
하와이는 예외적으로 싸서 0.32%고요, 본토는 1% 전후하는 곳이 많고 1%에서 2% 사이도 몇 주가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김재민
작성자24.11.19 15:49
@이법사 요것도 흥미로운 정보임다. 우리나라로 치면 재산세네요.
마닐라공
24.11.17 10:49
일본에 千昌夫(센마사오)라는 가수는 직업보다는 일본의 버블 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이었다. 우연히 사들였던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땅에 도호쿠 신칸센이 들어서면서 그의 땅은 순식간에 값이 올랐고, 그로 인해 그는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음에도 가요계 생활을 은퇴하고, 전적으로 부동산 사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각지의 빌딩과 맨션, 호텔 등을 소유하여 「노래하는 부동산왕」등으로 불리며 큰돈을 벌었다. 한 때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대부분의 호텔이 센 마사오의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심지어 미국 여배우와 재혼하고,집에 개인 비행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1991년 버블 경제가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부동산 사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결국 3천억엔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되었다.(단, 현재 은행으로의 공적 자금 투입으로 인해 최종적인 개인 부채액은 1,034억엔.)
부동산 사업으로 인해 큰 빚을 지게 되면서 1991년 3월에 다시 가수로서 복귀하였으며, 현재 가요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다. 밤무대에서 그의 노래가 수록된 CD와 테이프도 팔고 있다한다.
김재민
작성자24.11.17 10:05
아따, 대단한 인물 사례 하나 소개해 주네요. 이 가수 이름을 보아하니 한국계 냄새가 많이 나는데 아니라 합디까?
인생 참 롤러코스터 한참 탄 삶을 살았네요. 내 글에 나오는 '잃어버린 30년'의 일본 현대사를 제대로 함께 한 어느 일본인의 표본 같심다.
마닐라공
24.11.17 10:53
우튜브에 星影のワルツ,北国の春,味噌汁の詩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그의 노래를 일본어로 악단의 가수들이 취입한 음반이 있고,유튜브에 나옵니다.
김재민
작성자24.11.17 16:34
별자리 왈츠, 북국의 봄, 미소즙의 시(?).. 북국의 봄은 북한의 김광숙이란 여가수가 부르는 것을 한번 보고 들은 적이 있네요.
마닐라공
24.11.17 10:57
1988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순위. 세계 50위 기업 가운데 무려 33개가 일본 기업이고 더구나 20위 위로는 일본 기업이 자그마치 16개에 달하며 시가총액 1위 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의 3배가 넘었다 심지어 일본 기업을 제외하면 최상위 6개 기업의 총합이 2847억 달러로, 1위 NTT의 기록인 2768억 달러를 턱걸이로 겨우 넘어서는 정도이다. 참고로 1988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3억 달러로, NTT 시가총액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1988년 당시 국가별 GDP 순위에 NTT의 시가총액을 대입하면 호주를 제치고 15위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의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GDP를 미국과 비교해보면 1987년부터 1997년까지는 미국의 55% 이상을 기록했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의 60% 이상을, 1995년에는 미국의 72.6%를 기록했다.게다가 당시 일본 한 나라의 GDP가 나머지 아시아 국가 전체의 GDP를 합친 것보다 컸다.
마닐라공
24.11.17 10:58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GDP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겼는데, 이는 2010년대 초반 이후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1994년 일본 GDP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7.8%였는데, 어느 정도냐면 2020년대 초반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2024년 EU, 중국 GDP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다.
1인당 GDP도 경이로웠다. IMF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1인당 GDP는 1986년부터 2002년까지 빠짐없이 세계 Top 5안에 든 것은 물론이고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998년을 제외하곤 90년대 내내 1인당 GDP가.미국보다 훨씬높았다. 그 기간 동안 5위를 1번(2001), 4위를 4번(1989, 1991, 1992, 1997), 3위를 5번(1993~1996, 1999), 심지어는 2위를 2번(1988, 2000)이나 기록할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당시 일본의 1인당 GDP는 미국보다 낮았던 적이 단 4년(1986, 1998, 2001~2002)밖에 없었을 정도였던 것은 물론이고) 북유럽 국가들도 능가하면서 스위스, 룩셈부르크에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김재민
작성자24.11.17 18:08
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가격이 최고공 행진을 했을 때 일본 열도를 팔면 미국 땅도 살 수 았고, 소니를 비롯해 잘 나가는 일본계 기업들이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드 빌딩, 록펠러센터 빌딩, MGM 영화사 등등을 마구 사들이자 '일본의 2차 진주만 공습이 시작됐다!'는 미언론 보도 타이틀도 생각나네요..
참 기괴했던 시절 일본기업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부동산 거품사가 끝간데 없이 펼쳐졌지요. '91년부터인가 일본열도에서 거품이 비누방울처럼 터지면서 현타(현실적 타격)가 오기 시작했심다. 마공이 어디서 더 생생한 자료들을 찾아 왔구려.. 대단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