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보고서 2: 겨울 불황기와 편의점 사회학
작년 12/29(금)일부터 새해 1/1일을 거쳐 어제 1/5(금)일까지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와이프 따라 매일 편의점 실습을 나갔네요.
주말을 넘긴 1/1(월)일부터 1/5(금)일까지 우리 둘이 8~10시간 근무한 낮타임은 OO여만원 안팍의 매출을 보였고, 야간 알바생이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한 시간대는 보통 XX만원 안팍에 불과해 말로만 듣던 겨울 불황기를 제대로 체감했심다.
둘째가 담당하는 저녁과 밤 시간대가 그나마 꽤 되는 피크타임을 보여줘 평일에는 하루 전체 YY만원대 매출을 찍곤했네요. 선임 점주들이 3월까지는 이 추세를 감내해야 된다 하니 볕들 날 기다리며 고객층과 이들의 니즈분석, 매출제고 개선 방안들에 고심하며 이 시기를 학습의 시기로 잘 넘겨야 될 듯 함다.
덕분에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와이프가 손님 역할을 맡아 현금과 카드결제 처리, 교통카드 충전, 쓰레기 봉투 수량대로 판매하기, 택배물건 처리하기, 카드지불 취소 등의 POS 처리기법들을 실습 받으며 늙은 마누라와 소꼽놀이 하고 있네요.
하루에 3번 물품이 배달되어 올 때마다 이름도 요상한 여러 아이템들을 안경 끌어올려가며 한참 검수한 뒤 진열대나 뒤쪽 워크인 냉장실로 옮기는 작업도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자주도 옵디다. 매출은 안오르는데 몸 움직이는 일은 계속 돌아오니 편의점 밥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심심찮게 체득하고 있네요.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하루 지나면 발생하는 음식 폐기물을 자연히 주식으로 삼게 됩디다. 그래도 남는 예상폐기들 중 Kk 이상을 폐기 마감 무렵에 미리 챙겨 아파트 관리실에 제공하니 관리 아저씨들이 너무 고마와하는 모습에서 와중에 보람을 느꼈네요.
본사에서는 그 양반들이 돈내고 사먹을 기회를 없애는 짓이니 폐기제품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와이프도 폐기 일보전 물건을 제공하는 것은 주고도 욕먹을 수 있다고 주저하는, 예의 A형다운 체제순응적 소심함을 또 보입디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법이 없듯,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본사의 판매전략적 측면에서 쓰레기통에 마구 버리는 것과, 관리 아저씨들을 공짜음식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여기는 본사의 선입견이 별로 맘에 안들어 계속 보내자고 좀 강력하게 주장했네요.
그분들도 체면이 있는 양반들이라 갈때마다 겸양지도가 높아지면서도 챙겨주는데 대한 고마움의 진정성도 함께 높아집디다. 급기야 그저께는 한 양반이 찾아와 대용량 쓰레기 수거백을 여기서 구입하겠다며 준비하라고 용량과 꽤 많은 갯수들까지 알려주고 가지 뭡니까.
도시락 등은 자신들도 잘 들지만, 거동이 불편한 근처 장애자 이웃들에게도 나눠준다면서 우리부부의 마음씀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치하해 주니 와이프 앞에서 서로 맘이 통한 것에 기분이 아주 쌈빡합디다.
그제는 멀리서 저와 대학도 같이 다니며 오랜 세월 친했던 러시아어 전공의 고교선배가 개업축하 인사하러 방문도 해줘 매출 고민 중에서도 에너지 좀 충전 받았네요.
이 양반이 나보다 더 어려운 형편임에도 금일봉을 가져오고, 현재 속이 더 타들어갈 와이프 잘 다독거려 주라는 덕담까지 전해주고 가니 내가 세상사람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긴 맺었구나 하는 자족감도 슬쩍 듭디다.
전상인이라는 사회학 전공자가 쓴 '편의점 사회학'에 의하면, 30년 만에 우리나라를 빠르게 뒤덮은 편의점은 사회정치학적으로 고찰할 부분이 많은 연구의 대상이라 설파합디다.
특히 사회양극화적 측면에서 편의점은 대형마트에서 대량구매할 여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계층을,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있어보이는 도시락과 커피류 등을 포함해 예전에 한개비 담배를 판매하듯 여러 물품들의 소분 구매를 가능하게 해 유인하는 매장이라는 것임다.
그럴 듯한 소비 미학화의 상징개념 주입과 이국적인 매장분위기 조성으로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과 비애를 마약 먹은 것처럼 잊게 해주고, 수많은 컵라면과 30여종이 넘는 담배들을 비치함으로써 마치 스스로가 소소한 구매결정권을 가진 듯 행사하게 하며, 현실에서의 낮은 존재감을 위무하여 격차사회에 대한 분노감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지요.
듣고보니 상당한 울림이 있는 '불편한 진실의 폭로' 같습디다. 어쨌든 편의점은 이들 고달픈 삶을 사는 20~40대의 경제적 약자들이 다 먹여살린다는 셈인데, 제법 괜찮은 아파트 인구를 배후 인구로 삼고 있는 우리 편의점은 이들 비중이 작아 드나드는 고객이 적을 수 밖에는 없겠다고 여겨지데요.
거기에다 우리 편의점 옆으로 붙어 있는 상점가 공간들이 분양사인 라베니체 측의 비싼 월세(12평, 210만원) 때문인지 대다수가 여전히 공실로 남아있기에 번듯한 상권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채 우리만 덩그러니 장소선점용으로 외롭게 서있는 실정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경제' 효과를 현재로서는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으니 추운 날씨와 겹쳐 근처를 다니는 유동인구 발견이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이 호전될 것임을 어느 정도는 믿고 있지만 풀릴 때까지는 고난의 행군을 하며 나름 내실을 다지는 데 식구끼리 지혜를 모우려 힘다.
'2+1'이나 '수입맥주 4캔 만원' 하는 행사에 적극 동참하고, 찾아주는 고객들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이들이 찾는 품목과 약자층이나 중산층 가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선제 발주하여 주민들과 항상 상생해야겠다는 결론으로 맘이 굳어졌심다.
덧붙여 '편의점 사회학' 책에서 소개된, 제가 좋아하는 작가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김영하의 '퀴즈쇼'를 알게 되어 반가왔네요.
특히 김애란의 이 단편(2004)은 두번이나 읽었는데 이 젊은 언니의 다른 작품(두근두근 내 청춘, 달려라 애비,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 등)들에서처럼 발군의 번뜩임을 또 보입디다.
빠른 시일 내에 김영하의 '퀴즈쇼'도 챙겨 볼 작정임다. 20대의 고독한 영혼들이 생활전선에서 먹먹하게 살아가는 치열함을 같이 느끼며 공유해 볼까 해서 말이지요.
외로운 영혼의 약자 고객층, 바쁘게 살아가는 아파트의 소시민 거주인들, '을 중의 을'이라는 알바생들의 의식 내부와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야 이들에게 우리네 삶의 작은 쉼터 분위기 제공을 더 제대로 할 수 있을거라 여기기 때문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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